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교계·선교 > 명성세습
       
명성교회 세습철회를 위한 향후 대응의 방향과 과제
박은호 목사 발제 "분별없는 교단 정치인들 은퇴해야"
2019년 11월 27일 (수) 16:12:52 박은호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제 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모임‘ 주최로 지난 2019년 11월 26일(화) 오후 7시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2019년 예장통합 총회가 지난 9월 23일부터 포항기쁨의교회에서 열린 바 있다. 이번 총회의 최대 관심사는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총회는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수습안‘이라는 것을 기습 통과시켰다. 그것은 결국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하도록 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의미를 따져보자며 이번 세미나가 열린 것이다. 임희국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제104회 총회 결의의 신학적 의미와 과제: 공교회의 빛으로 본 명성교회 세습‘, 고형진 목사(강남동산교회)가 ’제104회 총회 결의의 목회적 의미와 과제‘, 정재훈 변호사(CLF기독법률가회)가 ’제 104회 총회 결의의 법률적 문제 진단과 과제‘, 박은호 목사(정릉교회)가 ’명성교회 세습 철회를 위한 향후 대응의 방향과 과제‘란 제목으로 각각 발제를 했다. 이중 박은호 목사의 발제문을 전제한다. <편집자 주>

박은호 목사 / 정릉교회

제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이라는 발표와 종합토론에서, 네 가지 주제가 다 쉽지 않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주제가 네 번째 주제라고 생각한다. 명성교회 세습철회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먼저, 개인적인 사정을 먼저 말씀드리면서,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저는 지난 제104회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世間에는, 명성교회를 반대하다가 총대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소문도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발표자가 속한 노회의 총대선출 방법에 대해 제가 동의하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총대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낙관했던 명성교회 세습문제에 대한 총회의 후속결의가, 이렇게 되고 보니 방관자가 된 것 같은 생각에, 自愧感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의 저의 글과 이야기의 흐름은, 지난 제104회 총회의 결의에 대하여, 어떻게 보면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관찰자의 입장이다. 동시에 우리 시대의 한국교회와 특히 예장통합교단을 묵시적인 시각으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선 목회자의 글(생각)이라고 이해했으면 한다.

   
왼쪽부터 박은호 목사, 고형진 목사, 임희국 교수, 정재훈 변호사. (뉴스앤조이)

우리 교단 총회는, 혹자의 표현대로 제104회 총회를 기점으로 소위 명성교회 세습을 지지하는 측이 주류가 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측이 비주류가 되는 분기점을 찍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교단의 이런 기류를 뒤집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교단은 저변의 흐르는 주류가, 명성문제를 묻어두고 가자는 분위기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싸움은 참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주류의 길을 걷는 것이 복 있는 길일뿐만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역설적인 길임을 고백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세례자 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하면서 당시 유대종교의 본부가 있는 예루살렘의 길, 예루살렘 성전 당국자들이 닦아 놓은 그 전통적인 길을 버리고, 유대 광야로 나가서 광야에서(rB'd]miB], ejn th'/ ejrhvmw/ th'" jIoudaiva") 광야의 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신작로(新作路) 활동을 했겠는가? 예수님도 당시 주류인 예루살렘의 길, 예루살렘 성전의 길을 이용하지 않고, 세례자 요한이 닦아놓은 광야의 길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나라(hJ basileiva tou' qeou')를 가지고 오셨겠는가? 그 첫 외침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Metanoei'te: h[ggiken ga;r hJ basileiva tw'n oujranw'n)고 하셨는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늘 우리 시대의 주류의 길에 서기를 추구해 왔던 자들임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주류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그 길,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교회의 길을 찾아갈 수가 없다. 오늘의 우리교단은, 소위 명성의 평화를 긍정하고, 명성의 평화를 소비하는 명성소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제104회 총회의 명성세습 결의가 그 사실을 反證하고 있다. 1C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요한계시록의 경고가,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소비자 노릇을 하지 말라는 인자의 말씀이 아닌가?

   
▲ 제 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지난 2019년 11월 26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뉴스앤조이)  

명성교회가 세습을 철회할까? 사실, 이 문제의 열쇠는 첨부터 명성교회가 가지고 있었다. 교단헌법 제28조 6항의 제정이후 지금까지, 명성교회는 전 방위적으로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했다. 명성교회의 부자세습의 문제만큼, 한국교회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각계각층에서 심지어 교회 밖의 언론에서, 불신자들까지 이구동성으로 그 불법성과 불의함을 외친 사건/일이 있었던가? 그러나 명성교회는 지금까지도 오로지 그들의 길을 걸어오고만 있다. 명성교회 세습의 문제는, 한국교회사에서 ‘명성세습백서’를 남겨서, 오늘의 우리교단과 한국교회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분기점이 이 문제였다는 것을 후대 교회에게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명성교회는, 한국교회가 소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온갖 행사를 일삼던 그해, 10월 31일이 지난 바로 그 다음 달 11월 12일에 초유의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세습을 단행했다. 명성교회의 세습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에 500년 전의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을 무색하게 하는 반개혁교회 행보의 마침표였다.

명성교회가 세습을 철회할까? 명성교회와 우리교단 교회는 내면적으로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이제 와서의 무장해제는 죽음이라는 인식이, 이 사건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세례자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외치던 그 광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예루살렘의 길, 예루살렘 성전종교의 길을 버리고 그 광야의 길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의 첫 일성,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이 말씀은 종말적인 복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배운다. 족장 시대를 거쳐, 애굽의 노예생활, 출애굽과 광야 40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회복하고, 여호수아 시대를 거쳐 사사시대, 왕정시대에 돌입하여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진 통일왕조 이후, 남북 분열왕조시대에 이르러 그 역사적인 길은, 북 왕조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남 왕조 유다까지도, 결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북 왕조의 패망에 이은 남 왕조 유다의 패망의 역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준다. 쇠락의 역사에는 역사의 반전을 가져오는 역사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의 비극이다.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그 시대의 쇠락의 급류에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그러나 그 시대의 종교권력자들은 그때마다 쇠락의 가속도를 감속시키는 예언자들을 그 운전석에서 끌어내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는 그 가던 행보를 계속 했다. 작금의 한국교회와 특히 우리교단 총회(교회)는 이미 쇠락의 길에 들어서 있다. 이제는 쇠락의 가속페달을 의도적으로 밟기 시작했다. 이 급류의 흐름을 막아서기에는 때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옛날 유다 왕조의 패망의 시대에,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가셨지 않았던가? 그들이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 가기 이전에, 하나님은 저 동쪽의 땅 바벨론 제국의 땅으로 먼저 가서, 거기에서 유다 백성들을 기다리고 계셨지 않았던가? 그발 강 가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로 하셨지 않았던가?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만나시겠다고 작정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우리는 헤아릴 때가 되었다. 오늘 우리의 희망은, 바벨론 제국에 패망해도, 포로로 잡혀가 포로생활을 한다 해도, 그것을 넘어서는 변함없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경륜과 섭리를 믿는 것, 거기에 우리의 (먼) 희망의 뿌리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심히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이미, 한국교회를 생각하고 우리교단 총회를 생각한다면, 소수이지만 남은 자의 길을 걷는 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수와 규모, 외형에 교회의 미래를 담보하려는 생각을, 깨끗이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이사야를 부르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헤아릴 수가 있을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 6-13).

한국교회와 우리교단총회의 바벨론 유수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입으로 외치는 구호가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이 시대가 이미 도래 했다. 우리교회 옆, 교회에 나오지도 않는 가게 주인 젊은이 부부가, 저에게 정릉교회 목사가 명성세습에 대하여 결의한 교단총회의 결의가 옳지 않다고 설교했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교회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다. 이제, 어디에서 숨어서 설교하고 우리의 신앙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가 오늘, 이 포럼에서 명성교회 세습철회를 위한 향후 대응의 방향과 과제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단지,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희망의 좌표를 세워주어야 한다는 그 옛날 유다의 왕 요시야의 심정이다(왕하 23장; 대하 34). 이미, 기우는 쇠락의 기운을 막을 길이 없다. 아직도 그 실상에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자들에게는,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들이 우이독경(牛耳讀經)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1) 이제는, 더 이상 우리교단 총회의 미래와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制度的인 교단정치기구인 노회와 총회정치에만 맡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매년 봄마다 총회산하 전국에 있는 68개 노회들이 9월에 개최되는 차기 총회 총대선거에 목숨 거는 총회총대선거노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또 가을 노회는 대개 각 노회마다 신 임원 선출을 위한 임원선거노회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 우리교단 총회나 노회는, 양대 선거가 교회 정치의 핵심 근간을 이루고 있다. 누가, 기득권 권력을 유지하고 또 새롭게 잡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풍토의 교단정치 구조 속에서 무슨 선한 것을 나오며 또 미래의 한국교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한국교회의 갱신과 회복의 문제를 교단정치의 틀거리를 벗어나 이 시대의 주류이기를 抛棄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이 모이는 교회 연합운동을 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준비하는 첫 걸음을 떼고 있지만, 가칭)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이하 신앙고백 모임)이라는 새 흐름, 광야의 길을 닦는 저류운동底流運動을 펼쳐가야 한다.

2) 그럴 때, 새로운 底流運動인 신앙고백 모임은 지난 제104회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을 사실상 허용하는 수습안 결의가, 우리교단의 성문헌법과 성문헌법의 법정신을 正面으로 위반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지난 제104회 총회의 명성세습허용을 위한 수습안 결의는, 우리교단 헌법시행규정 제4장 부칙7조에 명시된 [헌법이나 이 규정의 시행유보, 효력정지 등은 헌법과 이 규정에 명시된 절차에 의한 조문의 신설 없이는 총회의 결의나 법원의 판결, 명령으로도 할 수 없다]는, 우리교단 헌법의 마침표와도 같은 부칙7조를 스스로 무너뜨린 심각한 헌법훼손을 일으킨 무법탈법총회결의이다. 그러므로 총회가 스스로 잘못 결의한 결의는, 제105회 차기 총회에서 반드시 재론하여 헌법과 헌법절차에 따른 바른 결의를 할 수 있도록 제반 방법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헌법 제3편 권징 제8장 행정쟁송의 행정소송, 결의취소 등의 소송 등).

3) 교회의 갱신과 회복은, 상대방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두려움과 회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개발과 부흥의 시대에 한국사회서 살아온 기독교가 걸어온 길들 – 번영신학에 기반을 교회성장주의, 기복주의에 편승한 비 복음적인 세속화 된 교회 안의 제도화 된 전통과 행태, 섬김을 외면한 권위주의 등 - 을 돌아보며 먼저 참회운동을 펼쳐가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대의 전환점마다 역사적인 사건마다, 족장들로부터 언약을 갱신해 오셨다. 언약의 하나님이 스스로 변하셔서가 아니라,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갱신운동이, 언약갱신들을 통해서 나타났다 : 모압평지에서의 언약갱신, 길갈에서의 언약갱신, 세겜에서의 언약갱신 ; 하나님 나라의 도래 앞에서 유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요단 강에서 회개하기 위기 베풀었던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 16세기 종교개혁운동, 경건주의운동, 나치 히틀러 시대의 고백교회 운동, 예언자적인 시대를 꿰뚫는 외침과 광야의 길을 개척하는 그 氣流를 잇는 운동을 다시 이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4) 우리는 교단총회가 스스로 교단헌법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에 反하는 결의나 행보를 일삼는 노회와 총회에 대하여, 다양한 저항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아울러 저항운동이라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교단 총회와 한국교회 공동체, 특히 우리통합교단의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세워가기 위해서 획기적인 영적인 세대교체를 이루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정치권에서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인사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교회의 政治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제104회 총회의 결과를 만들어 낸 기존의 분별없는 교단정치인들은 이제, 일선에서 불출마 은퇴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5) 502년 전 독일의 변방 시골 도시 Wittenberg의 Schlobkirche의 개혁자 Martin Luther가 당시의 주류였던 로마천주교회 제217대 교황 Leo Χ(1513.3.9.-1521년 12월 1일), 그를 추종했던 알브레히트 마인츠 대주교(1490-1545), 면죄부 부흥사였던 도미니크회 수도사 요한 테첼(1465-1519) 등에 맞서 로마천주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내세우면서 일으킨 새물결 종교개혁! 근원으로 돌아가자! AD FONTES! 루터가 외친 AD FONTES!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와 동시대의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무스가 외쳤던 AD FONTES!는 헬라철학이었다.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다시 AD FONTES!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말씀목회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말씀목회만이,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는 교회갱신과 회복의 根幹이다.

박은호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페루 지부, “이재록 신뢰하지 않
“신천지, 안상홍, JMS 등 교
전광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
“명성 불법세습, 우리가 회개합니
다리 달린 뱀 화석 발견
기독교 실용음악 나날이 중흥
무죄 판결난 서울교회 분쟁, 총회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