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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
가정교회마을연구소 2019년 10월 14일 온누리교회에서
2019년 10월 18일 (금) 16:08:26 한국일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가정교회마을연구소가 주최한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라는 주제의 2019년 정기세미나가 지난 2019년 10월14일 온누리교회(서빙고) 비전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주제 세미나를 발제한 한국일 교수의 강의 발제문를 전재한다. 가정교회마을연구소는 가정, 교회 그리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잃어버린 대사회적 신뢰성을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목적으로 2016년 설립한 기독교단체이다. <편집자 주>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
한국일 교수(장신대 선교학)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일상

I. 서론 

한국은 세계선교역사에 가장 늦게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이지만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축복하셔서 짧은 시간에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한국교회는 모든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전 사회적 영역에 그리스도인들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에 한국인이 거주하는 곳마다 한인교회를 세워 세계선교에 교두보 역할을 하게 하신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세계사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고 또 남북의 대결구도라는 불리한 상황 에서도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실현 되고 있는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선교현장이다.

   
▲ 가정교회마을연구소 주최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라는 주제의 2019년 정기세미나가 2019년 10월 14일 오누리교회 비전홍에서 개최됐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복음을 받아들 인지 한 세기 동안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다른 한편 오늘의 상황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 세기 동안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담당해 온 한국교회가 급속도록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신뢰를 얻어 민족복음화를 실현해 온 한국교회가 이제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 전도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교회 내부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교회가 세상이 나아가 할 바른 방향과 가치관을 제시하기 보다는 자기 안에 머물러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초래하는 현상에 있다.

   
▲ 한국일 교수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한국사회 전 영역에 속한 훌륭한 성도들은 전 사회를 변화시키고도 남을 만한 신앙적 열심과 헌신을 가지고 있으나 교회생활과 일상이 분리된 교인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비기독교사회와 다종교사회 속에서 시작한 교회의 특성이 교회를 강조하다가 스스로 고립된 상황에 머물게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구원 사역과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성도들을 교회 안의 교인에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준비하고 인도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성도의 일상의 삶을 그들이 받은 소명의 현장으로 깨닫고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목회자들의 신학과 목회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정교회마을연구소는 앞에서 언급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본질과 우리시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회복하는 목적을 위해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자 한다.

II. 기존의 교회 이미지 

목회는 교회론과 밀접관 연관성을 갖는다.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목회활동과 영역이 정해진다. 목회를 건물 중심의 목회로부터 마을 전체를 목회현장으로 확장하려면, 또한 성도를 교회 안에 교인으로부터 지역과 마을 속에 살아가는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려면 목회활동의 기반이 되는 교회의 이해가 넓혀져야 한다. 한국과 같은 비기독교, 다종교사회에서 교회가 갖는 비중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적 이유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교회 건물을 중시하였고, 주일 중심과 모이는 교회로서의 특징을 강조해 왔다. 이런 교회를 중심으로 하 는 신앙의 특징들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는 결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회 안에 제한되어 있다. 이런 축소주의적 교회론에 근거한 목회활동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약속한 교회는 우리가 경험한 교회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풍성하다. 올바른 교회론의 회복과 그것에 기초한 목회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축소된 교회 이미지에 대한 회복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교회 이미지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구원의 방주, 분리된 교회, 건물중심의 교회,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

첫째, 구원의 방주로서의 교회는 한국교회가 가장 선호하는 교회의 이미지이다. 한국과 같은 비기독교 사회와 다종교사회에서 구원은 교회에 소속되는 것을 강조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구원론 중심의 신앙을 가장 잘 묘사하는 은유로 사용된다. 그러나 방주는 폐쇄된 공간이다. 들어가는 문만 있고 나가는 문 은 없다. 교회 밖은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오직 교회 안에만 들어와야 살 수 있다. 방주로서의 교회는 전형적인 모이는 교회의 상징이다.

둘째, 분리된 교회는 한국교회의 신앙관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악한 곳, 성과 속을 시공간으로 분리하여 교회를 강조 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형성한 교회 이미지이다. 교회와 세상을 성과 속으로 분리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교회 안이 강조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셋째, 건물중심의 교회론은 두 번째 특성에 대한 대안이다.

두 가지 이유로 교회 건물이 강조된다. 하나는, 비기독교사회에서, 더구나 초창기 시절에 박해와 핍박을 받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교회 건물 안이었다. 교회 밖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들을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예배와 기도 말씀을 통해서 위로 받고 해결 받는다.

넷째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론은 한국교회의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교회에는 프로그램과 활동이 많다. 지역교회들은 성도들의 신앙의 성장을 위한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한다. 또한 성도들이 교회에 헌신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프로그램 중심으로 신앙을 이해하면, 일상에서 삶을 통해서 진행되는 신앙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이미지는 한국교회의 신앙의 특징과 현주소가 무엇인 가를 보여준다. 한국교회는 모이기를 힘쓰고, 교회 안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런 특징은 서구교회에서는 보기 힘든 상황이다. 서구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향한 헌신과 참여가 매우 소극적이며 부족한 반면, 세상에서의 시민으로서의 삶의 참여는 활발하다. 목회 역시 이러한 편협한 교회론을 극복하지 못하면 목회 영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과 마을 전체를 목회 영역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지 않으면 목회는 교회건물 안에서 진행되는 활동에 국한된다. 선교적 교회에 근거하여 지역과 마을 전체를 목회 활동의 대상으로 접근하려면 무엇보다 교회론과 선교론이 상호보완적으로 결합된 선교적 교회론에 근거한 선교적 목회를 시도해야 한다.

III.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의 현장으로서 일상 

일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이며 교회(지역교회를 포함)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선교적 소명의 현장이다. 선교적 파송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현장에서 실현된다. 선교는 더 이상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활동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선교적 파송은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 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종교적 삶은 결코 성전에 제한되거나 일상생활로부터 격리되지 않았다.(호세아6:4-6; 이사야 58:6-7) 기독교의 증언은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선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은 개인적 차원과 공적 차원을 포함 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현장이다. 프로스트(Frost)는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마 13: 24-30)를 설명하면서 천국의 원리를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알곡은 좋은 씨나 원수가 뿌린 가라지 속에서 자란다. 이것은 이 땅에서 시작한 천국은 세상과 분리된 별개의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적 삶의 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임을 증거한다.1)(Michael Frost, Eyes Wide Open. Seeing God in the Ordinary , 홍병룡 옮김, 『일상, 하나님의 신비』 (서울: IVP, 200, 29).

칼 라너(Karl Rahner)는 일상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평범한 매일의 생활이라 고 이해하면서 짧은 책 『일상』에서 일상에서의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라너는 일상은 주일과 대비되는 주중의 시간, 즉 매일 인간이 살아가는 평범한 시간들로 그 속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드러낸다. 라너는 일하는 것, 가는 것, 앉는 것, 보는 것, 웃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라너는 이 일곱 가지 일상생활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일상생활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일상을 살고자 한다. 그에게 일상은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며 그의 거룩성과 은혜를 경험하는 바로 그 장소이다. 때로는 고단한 일상사는 우리를 낙담하거나 절망에 이르게 할 때도 있으나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힘으로 영원한 삶이라는 진정한 축제에 나아가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고 설명한다.2)(K. Rahner, Alltaegliche Dinge. Theologische Meditationen/Band 5(Einsiedeln, 1969), 장익 옮김, 『일상』(왜관: 분도출판사, 1980), 7-46).

리전트 칼리지(Regent College)의 휴스톤(Huston) 교수는 일상 속에 “세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실재는 우리 안에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우리 삶의 일상적 성격을 정화해준다.3)(R.Paul Stevens, Disciplines of the Hungry Heart. Christen Living Seven Days A Week(Wheaton: Harold Shaw, 1993), 박영민 옮김, 『현대인의 생활영성 』 (서울: IVP, 1996), 100).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삶 전체와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거룩함을 깨닫고 체험하기 위해 일상을 주목해야 한다.

거룩함이 실현되는 현장인 일상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일상은 개인적 차원 에서 매일의 평범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삶을 가리키는 말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주일과 대조되는 용어이자 또한 사적 영역과 대비되는 사회의 공적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러한 개인적 또는 공적 차원의 일상에서 경험한다. 이러 한 일상은 평범하지만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현장이다.4)(조은하, 통전적 영성과 기독교교육, 서울: 동연, 2010, 150). 일상의 거룩함을 언급할 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상의 다른 면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일상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통해 실현되는 장소 일 뿐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적 가치를 지닌 현장이기도 하다. 일상에서의 거룩함의 훌륭한 근거를 제시한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제사로 드리라”는 권면 후에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가르친다(롬 12:1-2).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또 다른 측면은 분별해야 하며 대항하여 변화시켜야 하는 세속사회이다.5)(J. Moltmann, “Die grosse Hoffnung und 50 Jahre Theolgie”, in: A World-Changing Theology. 50 th Anniversary of Juergen Moltmann’s Theology of Hope Commemorative Volume. Ed. By Do-Hoon Kim and Seong-Gyu Park(Seoul: PUTS, 2015),73).

필자가 목회할 때 교인의 직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주일예배에 보는 모습과 주중에 직장에서 일하는 현장은 정 반대인 것을 발견하였다. 주일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즐거운 마음과 표정인데, 주중에는 전쟁터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경쟁적이며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세속사회에서 신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임을 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결코 낭만적 현장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조롱을 받거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신앙적 가치와 반대되는 세속적 가치에 타협할 것을 강요받거나 유혹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가난을 영속시키는 구조적인 문제, 정치적 억압,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경제 불평등의 고착, 폭력과 테러, 성차별과 인종차별, 환경파괴적인 정책 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직면하는 현실이다. 교회는 이러한 현실을 정의, 평화, 창조의 보존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분별하고 세계교회와 연대하여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6)(J. Moltmann, God for a secular society. The Public Relevance of Theology (Guetersloh,1999)).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일상에서 실현되나 동시에 일상을 거룩함으로 변화시키는 책임도 함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거룩한 세속성과 세속적인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7)(R.Paul Sevens, Disciplines of the Hungry Heart. Christian Living Seven Days A Week , 박영민 옮김, 『현대인을 위한 생활영성 』 (Seoul:IVP, 1996), 20). 전자는 일상을 거룩하게 하는 원심적 삶이라면, 후자는 일상과 연관된 구심적 예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교인이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폴 스티븐스가 강조한 것처럼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교회에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목회자와 성도의 중요한 과제이다. 세상은 교회 밖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현장이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소명의 현장이다. 세상 안에서 가정을 올바로 세우고, 직업에 충실하고, 날마다 만나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일터 신학은 일상을 하나님 앞에(coram Deo)서 살아가는 일상의 신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직업적 소명에 기초하고, 실제의 삶에서 어떻게 직업적 소명과 선교적 소명을 연결하고 통일을 이룰 것인지, 그리고 이것을 위해 교회에서 성도를 어떻게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평신도 교육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IV. 직업적 소명의 현장으로서 일상 

소명이 위로부터의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파송은 그 소명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세상으로 하나님의 보내심이다. 교회중심주의에 기반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 이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지 못하였다.8)(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 』 (서울: 포이에마, 2014), 108-109). 직업에서, 사회의 공적 위치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교회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교회와 세상, 신앙과 직업이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기형적인 그리스도인 상을 낳는다.9)(한 교인이 말한 회사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갖는 이미지를 소개한다. 회사의 인사과에 근무하면서 신 입직원의 자기소개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세 가지가 떠오른다고 한다. 첫째 까다롭겠구나. 둘째 회사에서 교회일을 많이 하겠구나. 셋째 퇴근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가겠구나. 본 인도 그리스도인이면서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갖는 어쩔 수 없는 이미지는 건강한 직업적 소명론을 형성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자화상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직업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계유지와 더 풍요로운 삶과 자기실현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에 충분히 준비된 생각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적 가치와 날마다 씨름해야 한다. 이런 세속적 가치는 관행적이 며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하는 우상은 단지 종교적 형태가 아니라 오늘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세상을 지배하는 세속적 가치이다. 특히 우리시대를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물질만능주의의 유혹은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경제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경제적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신앙적이며 가치 있는 활동이다. 그리스도인의 직업과 모든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소명론에서 이해된다. 소명은 중세시대에 성직자들에게만 적용되었으나 종교개혁자, 특히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모든 직업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소명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 파송 받았다는 선교적 존재로의 사명은 소명론으로 더 든든한 근거를 얻게 된다. 직업과 일상의 삶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근거로서 소명론을 선교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요 10:10). 하나님 앞에서 평신도의 주체적 신앙과 삶에 관련된 소명론이다.

누구도 소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소명은 다양한 직업과 역할을 통해 실천되기 때문이다. 가장 하찮아 보이는 신분이나 직업에서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신자들의 일상의 평범한 일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일이 된다.

V. 직업적 소명과 선교적 소명의 통일의 현장으로서 일상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은 하나님 나라의 현장이자 소명의 현장이다. 일상을 제외한 파송이나 소명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일상을 무시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상을 직업적 소명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선교적 위임 이며 기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지 않은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나타내는 자리에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한다.

2006년 발표된 통계청 인구조사를 보면 개신교 교인수가 줄었지만 사회지도층에는 여전히 개신교인들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같은 해 중앙일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 고위공무원, 법조인, 군 장성, 의료인, 기업인, 교수, 언론인들을 포함하여 31,800명의 출신 지역, 학교, 종교 등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조사에서 개신교인의 비중은 40.5% 다다랐다. 천주교인의 22.6%와 성공회의 0.3%까지 합하면 그리스도인 전체의 비중은 63.4%로 압도적인 비율을 갖고 있다. 10)(Tim Chester and Steve Timmis, Everyday Church , 신대현 옮김, 『일상 교회. 세상이 이웃 삼고 싶은 교회』 (서울: IVP, 2015), 12).

물론 이런 높은 비율이 저절로 선한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중심부에 있다는 잘못된 우월의식이나 패권적 선교의식은 오히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기능이 나타나는 데 오늘날 이런 현상을 실감한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높은 헌신과 봉사의 신앙을 교회 안에 일로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일상을 선교적 파송과 소명의 현장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폴 스티븐스는 “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이란 그의 저서에서 영성이란 근본에 관한 문제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생활의 현장에서 거룩해지는 것”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일상생활에서 직면하고 경험하는 7가지 주제와 연관하여 제시한다. 노동, 가정생활, 이 성 관계, 형제 관계, 홀로 있음, 이웃 관계, 안식일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매일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내용이다. 이러한 삶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온전한 삶으로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올바른 영성이라고 제시한다.11)(R. Paul Sevens, Disciplines of the hungry heart. Christian Living Seven Days a Week ,박영민 옮김, 『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 서울: IVP, 1996.).

선교현장의 확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속해 있는 삶의 현장, 일상의 삶을 선교 적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선교적 교회론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차적으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증인, 즉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12)(선교적 교회론에 관해서는 필자의 『선교적 교회의 이론과 실제 』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6)를 참조하라). 평신도는 성직자와 다르게 그들의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사회 속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 갇혀 주로 종교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반면, 평신도들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영역을 일상의 삶에서 직접 대면하고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의 삶과 그들의 관심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을 생각한다면 평신도 신학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다. 13)(Vgl. R.Paul Stevens, The Abolition of the Laity. Vocation, Work and Ministry in a Biblical Perspective (Cumbria: Patermoste, 1999)).

세상에서 주어진 성도들에게 올바른 직업적 소명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일상과 직업에 대한 올바른 신학과 목회관이 요구된다. 성도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세상에서 주어진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여기며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신앙적으로 존중하며 바르게 안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교장직을 수행하는 집사가 매 주일 오후에 학교에서 일이 있기 때문 에 주일 저녁예배에 참석하지 못함에 대하여 담임목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담임목사는 집사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집사님은 우리 교회가 학교로 파송한 선교입니다. 그러므로 교장으로서 학교에서 맡은 일을 잘 감당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교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14)(위의 이야기는 수원성 교회 안광수 목사와 대화 중에 나눈 내용이다.).

소명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악한 직업이 아닌 이상 모든 직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직”이며 각자가 속한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 목회자가 교회를 소명의 장으로 받았다면 평신도는 세상을 소명의 장으로 받았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책임이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평신도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며 교회와 세상, 일과 예배 사이를 연결하고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평신도들이다. 그러므로 평신도의 소명은 구체적으로 그의 일상에서의 삶의 현장과 직업현장에서 실현된다. 그리스도인의 선교 적 사명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폴 스티븐스가 말한바와 같이 일상의 삶에서 선교적 소명(파송)을 직업적 소명과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

VI. 일상의 소명을 실천하도록 성도를 준비시키는 교회훈련의 재정립: 직업적 소명과 제자도

직업과 일상의 삶 속에서 소명을 실천하려면 교회에서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제자 훈련이란 이름으로 성도를 양육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든 교회마다 제자훈련의 이름으로 성경공부를 비롯하여 단계별로 다양한 양육과 정들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전도와 부흥회를 통한 교회성장이 한국교회를 지배하였다면, 80년대 이후에 교인들의 성숙을 지향하는 성경공부를 통한 제자훈련이 등장한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평신도 교육과 훈련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서 대학생이나 청년들을 훈련하는 캠퍼스 선교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했다.15)(양희송, “탈학습이 필요한 제자훈련”, 한국교회탐구센타+IVP, 『한국 교회 제자훈련 미래 전망 보고서 』 (서울: IVP, 2016),259-261).

제자훈련은 주로 복음주의 신앙에 서 있는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주도하였다. 제자훈련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하면, 긍정적인 평가는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기존의 평신도에 대한 인식은 평신도를 목회의 대상으로 여기는 목회자 의존적 관계였다면 제자훈련을 통한 개신교의 특징은 그들을 하나님 앞에 주체적으로 세우는 성숙과정이다. 특히 『평신도 깨운다』의 저자인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의 사도직에 대한 소명의식을 일깨워야 함을 강조하며 평신도 중심의 제자훈련을 제시하였다. 교회역사가 짧은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은 분명히 교인들을 성숙하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으며, 또한 성경을 공부하기를 즐겨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질도 제자훈련의 활성화에 기여한바 있다. 그러나 직업적 소명론에 비추어 제자훈련을 평가하자면 여전히 교회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교회 안에 제자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부인할 수 없다.

정재영은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사와 연구를 통하여 제자 훈련은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교회성장에 기여한 바가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볼 때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제자훈련은 일종의 영적 엘리트 양성과 같은 소수의 공동체에 집중하였으며,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양적성장에 치우쳤고, 개교회의 제자를 만드는 편향된 제자도와 신앙의 개인주의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랑의 교회에서 진행한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연구한 노종문은 다른 교회 의 제자훈련과정과 비교할 때 월등한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의 제자 범위에 머물러 있으며, 교육과정에 세상 안에서 직업 영역이나 공적 영역에서의 제자도에 대한 적절한 강조가 결여되어있다고 지적한다.16)(노종문, “거인들에게 배우는 제자훈련”, 한국교회탐구센타+IVP, 『한국 교회 제자훈련 미래 전망 보고서』(서울: IVP, 2016), 211-220). 제자훈련의 대가 데이비드 왓슨 (David Watson)이 지적한 것처럼 “제자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계 획”인데17)(정재영, “한국 교회 제자훈련에 대한 사회학적 검토”, 한국교회탐구센타+IVP, 『한국 교회 제자훈련 미래 전망 보고서 』 (서울: IVP, 2016), 179). 한국교회의 제자도에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를 요약하면, 전반적으로 교회의 일꾼을 양육하는 것에 머물고, 제자들을 직업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적극적으로 파송하는 일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제자훈련을 받은 평신도는 교회 안에 목회자의 목 양 사역에 투입되고 결과적으로 교회 내부의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즉 “훈련받은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지는 않고 훈련 프로그램에 다시 투입해 훈련 참가자만 늘려 가는 현상, 훈련의 루프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18)(위의 책, 220). 제자훈련과 직업적 소명과 연결되지 않으면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은 신앙과 무관하게 되고 세속 적 가치를 좇아 살게 된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19)정재영은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가져오는 이원론적 문제를 ‘가나안 성도’의 인터뷰를 통해서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가나안 그리스도인 』 (서울:IVP, 2015), 93-121; 20) 한국일, 세계를 품는 교회. 통전적 선교신학(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0), 122-132 21) Michael Frost, Eyes Wide Open. Seeing God in the Ordinary , 홍병룡 옮김, 『일상, 하나님의 신비 』 (서울: IVP, 2002), 59).

그리스도인은 소명론과 함께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무대”이다. 제자훈련은 단지 교회 안에서 필요한 종교생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사회생활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직업을 통한 사회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무언인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세속가치를 분별하고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일상의 삶에서 실현하며 살아가야 한다. 프로스트가 마틴 부버를 인용하면서 “이 세상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으로 나누지 말고 거룩한 것 과 ‘아직 거룩하게 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유의미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제자훈련은 비종교적인 속세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도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 안에 계시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일상의 평범한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함으로 그것을 거룩하게 만들어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을 위해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은 교회의 제자도, 목회자의 제자도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제자를 목표로 지향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무엇보다 구원의 교리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을 반복하는 것을 벗어나 세상 속에서 하 나님 나라를 실현하며 공적 영역에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실행할 균형 잡힌 훈련, 즉 성경공부 교재 제작이 절실히 요구된다. 20)이런 신학적 관점에 반영된 성경공부교재로서 목회사회학연구소가 제작 발행한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조성돈 외,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 (일상과 초월, 2014)).

VII. 결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에만 나타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이다. 일상이야 말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삶의 현장이며,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현장이며,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 깊이 경험하는 현장이며, 성도를 토한 선한 영향력이 세상에 드러나는 선교현장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도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나타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 중에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삶의 순간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통로가 된다. 매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하며, 또한 그의 뜻을 분별하여 우리 전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세상을 잊어버리는 특정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의식하고, 일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안내하고 그것을 위한 결단의 시간이 된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예전(Liturgy) 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다. 성도의 삶은 교회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펴보고, 성찰하고, 감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일상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도록 결단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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