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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관계 맺음이 곧 예배다
2019년 06월 28일 (금) 15:53:59 김세권 목사 mungmok@gmail.com

김세권 목사 / Joyful Korean Community Church(Texas, Dallas) 담임

   

▲ 김세권 목사

창세기 18장 1-5절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2절)

‘마므레’(Mamre)라는 이름의 어원(語原)과 뜻은 모른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안에는 원래 없는 단어 일뿐 아니라, 성경 바깥에 있는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 14:13, 24을 보면 아브라함과 동맹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이름이 ‘마므레’이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레 족속 마므레와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마도 고대에 ‘마므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가족이, 그들이 살던 오래된 수풀에 집안 어른 이름인 ‘마므레’를 가져다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자들은 유추한다. 창 23:19을 보면, ‘마므레’라는 이름은 ‘헤브론’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헤브론이었다는 사실을 본문이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브라함이 자신의 땅이 아닌 이 수풀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사람과의 관계가 대단히 좋았나 보다. 아브라함은 인간관계를 대단히 중시했으며 한 번 맺은 관계는 변함없이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하긴 이민자로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을 거다. 가나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이지만 그에게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이런 ‘신현’(theophany)을 봤나!
구약학자들은 구약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부분이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하나님 자신과 또 다른 두 명의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예배를 드리려 했거나 단을 쌓은 것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훔 싸르나(Nahum Sarna)가 쓴 창세기 주석을 보면, 그는 아브라함이 세 사람에게 보인 환대(歡待 / hospitality)가 바로 예배행위라고 해석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예배도 형태와 관련하여 얼마든지 그 모습이 바깥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틀에 박힌 그리고 고정된 예배 형식만을 고집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鼓舞的)이다. 예배는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는 것도 예배이지만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환대가 예배의 핵심이라면, 오늘 날 예배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가 용기를 가질 수도 있겠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예전적 형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예배하는 자의 마음이 어떤가 하는 건 생각해야 한다. 만일 아브라함이 진심어린 환대를 보이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정색하고서 정식으로 단을 쌓을 것을 요구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살아있는 예배의 핵심은 마음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독특한 신현 앞에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대접했다.

메시지

1. 그돌라오멜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노획물(鹵獲物)을 독식하는 대신에 마므레가 분깃을 소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브라함과 마므레가 전쟁 이후에도 서로 함께 살았던 걸 상기할 때에, 아브라함의 대범함이 어떻게 작용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의 친구를 얻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가?

2. 오늘 본문에 나타난 파격적인 신현과 아브라함의 환대를 접하면서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예배 형식은 나의 믿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배 할 때 하나님이 중히 보시는 게 마음이라면, 예배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예배를 통해서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처럼 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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