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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부끄러운 역사의 되풀이
대북송금 특검 어디로 가고있나
2003년 06월 11일 (수) 00:00:00 윤길주 ykj77@joongang.co.kr

여·야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이용
국민이 쟁취한 소중한 민주화 자산
국갇민족적 관점서 생각하길


죄를 물으려면 최고 결정권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물어야 될 것 아닌가. 특검이 정치적인 고려없이 수사를 한다면 다른 사람은 놔두고 김 전 대통령부터 구속시켜봐라.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받은 것은 김 전 대통령을 압박함으로써 영남 지역에서 지지를 받자는 목적이다. 이는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신당 창당 전략과도 관계가 깊어 보인다.

며칠 전 민주당 관계자를 만났다. 신당 문제가 자연스럽게 화두가 됐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신당을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이 이슈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당의 성격, 절차, 방법, 전망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던 중 그는 색다른 방향에서 신당의 진로를 진단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의 정부 시절의 대북 송금과 관련한 특검 수사가 신당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특검 때문에 고민이 많다. 특검이 DJ 정부 시절의 핵심 인사들을 마구 잡아들여 구속하고 있는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 신당에 반대하고 있는 구주류는 특검 수사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제를 받아들인 것부터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신당 추진 세력들이 특검제 도입에 미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공격하고 있다. 사실 할 말이 없다.

구주류는 노 대통령이 특검제를 도입한 ‘원죄’를 들어 신당 창당 반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국민이나 당원 정서로 볼 때 특검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이나 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신주류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검 때문에 신당 창당이 어려워 질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냈던 인사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또한 가장 먼저 특검 수사에 대한 강한 불만부터 토로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나라당이 주장한 특검을 노 대통령이 수용한 배경에 대해서도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요즘 울화통이 터져 신문을 보지 않는다. 도대체 특검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들은 공명심과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혀 민족의 장래를 망칠 것인가.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과 정책에 대해 사법적인 잣대를 갖다 대 처벌하다니 말문이 막힌다. 밑에서 일한 이기호 수석이나 이근영 전 산업은행장이 무슨 죄가 있는가. 죄를 물으려면 최고 결정권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물어야 될 것 아닌가.

특검이 정치적인 고려없이 수사를 한다면 다른 사람은 놔두고 김 전 대통령부터 구속시켜봐라.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받은 것은 김 전 대통령을 압박함으로써 영남 지역에서 지지를 받자는 목적이다. 이는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신당 창당 전략과도 관계가 깊어 보인다.”
현재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386 참모’ 중 한 사람도 특검 수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겉으로 말은 할 수 없지만 요즘 특검 수사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특검이 오버하는 것 같다. 과연 특검이 민족의 미래와 향후 남북 관계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에는 법을 뛰어넘는 ‘은밀한 거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시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에 따라 통치권자는 그것이 설사 실정법 범위를 벗어난 것일지라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고 참모들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 이것을 ‘밀실 거러라고 하여 모두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국가 외교는 유지되지 못한다.

이번 특검 수사로 관료들은 대북 정책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인들도 남북 경협이나 대북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샅샅이 파헤쳐지고 처벌까지 받게 되는데 뭐하러 북한에 가겠는가. 암담한 현실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변호사와도 애기를 나눴는데 그도 특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법조인이라서 그런지 법률적인 부분에 무게를 두었다.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과 관련해 특검제를 도입한 게 잘됐다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특검까지 끌고 온 것은 정치권의 잘못이다. 그러나 특검제를 도입한 이상 수사와 그 결과를 존중해줘야 한다. 정치권에서 자꾸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게 되면 특검법에 명시된 특검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특검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민족의 미래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양식을 믿고 기다리는 게 순리라고 본다.”

특검과 관련해 몇몇 사람이 필자에게 들려준 얘기들이다. 아마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이는 박수를 치며 특검에 격려를 보내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우려와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검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특검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수사 결과는 역사의 평가에 맡길 수밖에 없다. 특검제를 주장한 한나라당이나 이를 수용한 노무현 대통령, 또 송두환 특별검사 등이 ‘역사의 죄인’이 될지, 아니면 ‘역사 바로세우기의 주역’이 될지는 후세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특검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은 그야말로 특검 정국의 연속이었다.
옷 로비 의혹부터 검찰의 파업 유도 의혹 등 사사건건 특검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태산이 진동했으되 나온 것은 쥐 새끼 한 마리에 불과했다.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티끌만한 의혹이라도 있을라치면 무조건 특검제를 도입하자고 우겼다. 가히 특검 공화국이라고나 할까.

대북 송금 특검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후 당의 분열을 막고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 방법의 하나가 특검제였다. 적을 공격함으로써 내분을 잠재우는 수법이다. 그래서 특검제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부 당 내부의 주장에도 불구, 한나라당은 특검제 도입을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는 특검제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임기 초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 내각이나 지지그룹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수용했다.

또 새 정권의 틀을 잡기 위해서는 과거의 짐을 털고 가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이 쟁취한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 집단간의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다.
특검이 갖는 신성함이나 절차의 엄격성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대북 송금과 관련한 특검이 향후 우리 민족과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정치권에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부끄러운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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