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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이름처럼, 이름같이
2019년 02월 25일 (월) 14:18:57 장경애 객원기자 jka9075@empal.com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나를 만날 때면 언제나 “경애하는 사모님”이라고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깍듯이 인사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저으며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한다. 그러면 그 분은 정색하시며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하시면서 웃으신다. 그 분이 나를 그렇게 지칭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 이름이 공경 경(敬)자에 사랑 애(愛)자가 합쳐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 아기가 잉태되면 태속에서의 이름 즉 태명부터 시작하여 태어난 후엔 평생을 함께할 이름을 갖게 된다. 어느 가정이나 태어나는 아기의 이름을 대충 짓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자기의 이름을 자신이 지은 사람도 없다. 누군가가 심사숙고하여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멋진 이름을 아기에게 선사한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이름을 짓는 작명소가 생기고 그곳이 문전성시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내 딸이 태어났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귀한 이름을 딸에게 주려고 남편과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고 기도하며 지었다. 이름을 지은 후엔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생명의 본질로 여겼기에 그 이름자를 다른 사람이 쓰면 그 사람의 생명을 훼손하는 행위로 생각하여 임금이나 아버지 등 조상의 이름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신성침해 행위로서 법적인 제재까지 했다고 하는 문헌을 본 적이 있다. 이만큼 이름 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리고 이름 짓는 일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름 그 자체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김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이름 하나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여러 사람의 이름을 지어 준 적이 있다. 어떤 인물이 되기를 원하느냐는 것을 물어 내 나름의 그것과 연관되는 최고의 이름을 지어 주었더니 고마워하며 어떤 이는 사례(?)까지 하였다.

나의 부모님 역시, 부계로나, 모계로나 집안에 첫 아이로 태어난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 주려고 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믿음의 가정에 최초로 태어난 아이니까 기독교 근본정신인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의 경천애인에서 두 글자를 빼 내어 나의 이름을 지어 주셨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내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친정집 거실에 경천애인이라고 붓글씨로 쓴 커다란 족자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어진 내 이름 덕분에 학창시절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내라고 하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집 가훈을 경천애인이라고 적어 냈었다. 그리고 어느 덧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집 가훈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건만 나는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뭔지 모르게 세련된 이름 같지도 않았고 또 동명이인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시대 조류와 문화의 영향을 받듯이 사람의 이름 또한 그런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 어릴 적엔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이름 속에 있는 그 뜻대로 살아오지 못한 중압감이 내 이름을 좋아하지 못하게 했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초등학교 때부터 한 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한자까지 같거나 성(姓)까지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내 이름과 같은 동명이인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고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중, 당시엔 라디오 방송국에서 합격자 명단을 입수하여 놓고 전화하여 문의하면 합격진위를 알려주던 때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했는데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상냥한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렸다. 듣는 즉시 너무 좋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하니 나와 성까지 같은 아이가 앞뒤로 앉아 입학시험을 치룬 것이 생각났다. 내 마음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말도 안 되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한 과에 이름이 똑같은 사람을 뽑을까?’ 혹은 ‘그 아이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을 거야’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다시 방송국에 전화를 걸 용기도 나질 않았다. 합격의 감격을 누리기도 전에 불안에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남동생이 용기를 내어 자기가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처음 전화할 때보다 더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로 숨을 죽이며 있었다. 남동생이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나는 물론 동명이인인 그 친구도 합격했다는 확실한 정보를 확인한 후 불안에서 해방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4년간 동명이인의 그 친구와는 대학 동창 중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나에게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다. 세상적인 이름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앞에 더 더욱 말할 필요도 없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나의 부모님이 비난받기도 하는 것처럼 내가 잘못 살아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비난이 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뿐 아니라 예수님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된다.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함을 새삼 느낀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이름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름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물론 이름으로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 하나로 무엇이 된다면 같은 이름의 사람은 같은 인물이 될 것이다. 단지 이름처럼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어느 덧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역할과 이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사람은 위인이 될 수도 있고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이름값을 못해 얼굴을 들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형편없는 생활을 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녀서 어느 날 알렉산더 대제는 알렉산더 병사가 있는 막사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명령을 했다고 한다.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그렇다면 자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도록 하게!”라고. 이제부터라도 이름처럼, 이름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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