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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세이연>의 조잡한 계시록 해석에 답한다.
<미주 세이연>이 그동안 제기한 요한계시록 중심의 문제에 대하여
2019년 02월 06일 (수) 16:40:37 진용식 목사 jin-bible@hanmail.net
   
▲ 진용식 목사

서론 : <미주 세이연>과 이단은 서로 닮았다.

많은 이단들을 상담하여 회심시킨 경험이 있는 필자는 이단들의 특성과 행태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이단과 상담하고 토론해 보면 그들의 무지, 거짓말, 억지가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드러난다. 이 특성들은 거의 모든 이단들에게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번 <미주 세이연>의 반론을 읽어 보면 놀랍게도 그 이단의 특성들이 그대로 보인다. 하나씩 살펴보자.

<미주 세이연>의 반론의 글을 보면 처음에도 거짓말을 했지만 반론, 또 재반론에서도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자가 앞의 글들에서 밝혔던 내용들이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독자들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첫째, 무지이다. 이단들은 이단에서 배운 방식대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핵심 성경 구절 하나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무지한 말을 반복한다. <미주 세이연>이 바로 이러한 무지의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미주 세이연>은 자신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교리에 근거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해왔다. 그동안 저들이 한 연구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양태론과 이원론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저들은 양태론도 모르고 이원론도 모르는 자들이다.

앞의 글들을 통하여 충분히 밝혀졌다고 보지만, 먼저 그들은 양태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태론으로 이단을 규정하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음도 분명하다.

저들은 필자가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했다고 하여 양태론이라고 필자를 정죄하였다. 한국의 대표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다’는 주장은 양태론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삼위일체관이라고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끝까지 그것을 양태론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대표적 개혁 신학자들은 그러한 <미주 세이연>의 사상을 한결같이 ‘무식하다’, ‘신학을 모르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저들은 이단으로 보아야 할 이원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두 가지로 구분하기만 하면 이원론이라고 몰아세웠다. ‘참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별하여도 이원론이라고 하고, ‘예수님과 사단이 전쟁을 한다.’고 하여도 이원론이라고 한다. 저들의 논리로 하면 성경 자체가 이원론이 되고 말 것이다.(이 이원론 부분은 다시 집중적으로 취급하겠다.)

둘째, 거짓말이다. 이단들의 본질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저들과 토론이나 논쟁을 할 때 거짓말을 쉽게 서슴없이 한다. 자신들이 가르치고도 불리하면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고, 그리고 상대의 말을 조작하여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행태이다.

<미주 세이연>은 필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역시 많은 부분을 거짓말로 조작하였고 이번 반론에서도 역시 그 조작과 거짓은 계속 이어졌다. 이단처럼 <미주 세이연>도 한 말을 안했다고 잡아떼기도 하고 상대가 하지 않은 말을 조작하여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저들의 이러한 행태는 이단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보고서에 나타난 거짓말과 조작을 지적하였더니 이번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거듭 거짓말을 하였다.

셋째, 억지이다. 억지란 잘못된 것이 드러났는데도 떼를 쓰며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단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억지를 쓰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드러나도 자신들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한다.

<미주 세이연>도 이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개혁신학’이라고 하면서 개혁 신학자들의 주장도 부인하고 심지어 ‘칼빈의 주장’까지 부인하고 억지를 부렸다. 그렇다면 <미주 세이연>의 주장의 근거와 기준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왜 이단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왜 이단의 특성을 갖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무지, 거짓말, 억지는 <미주 세이연>의 이번 계시록 반론에서도 잘 나타났다. 하나씩 반론하겠다.

본론 : <미주 세이연>의 무지, 거짓말, 억지로 일관된 요한 계시록에 대하여 답한다.

1. 미가엘 문제에 대하여 답한다.

미가엘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저들이 필자가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하였다고 주장하기에 필자가 그런 일이 없다고 반론을 펴자, 이제는 ‘필자가 예수님을 미가엘이라고 주장했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역시 거짓말이다. 둘째는 나아가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하면 이원론이다’라고 정죄하였다. 하나씩 반론하겠다.

첫째, 필자의 사상은 ‘미가엘은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저들은 필자의 말을 바꾸어 필자가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하였다’고 하여 필자를 비판하다가, 필자가 그것이 거짓임을 밝혀 반증하자, ‘필자가 예수님을 미가엘이라고 주장했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진상을 살펴보자. 독자들의 선명한 이해를 위하여 먼저 <미주 세이연>의 반론부터 그대로 인용해보자.

“세이연에서는 진용식 목사가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미가엘 천사를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실었을 뿐이다. 단지 안식교나 여호와증인이나 몰몬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미가엘 천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안식교에서 나온 진용식 목사가 아직도 그러한 사상이 잔재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된 것이다.”(미주 세이연, 12월 18일 반론)라고 하였다.

이러한<미주 세이연>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자의 반론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그런데 비록 개인 이인규 씨의 주장이지만 그는 말을 바꾸었다. 그는 10월 8일에 쓴 반박문에서 ‘천사 미가엘을 예수님이라 주장하는 진용식’(10월 8일에 발표한 이인규 반박문)이라고 하였다. 필자가 아예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단정했다는 것이다.”(교회와 신앙, 11월 6일 미가엘 문제에 답한다)

필자는 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인 이인규 씨가 <미주 세이연> 홈피에 올려놓은 글을 중심으로 비판하였다. 이인규 씨가 쓴 글 천사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주장하는 진용식이라고 된 글이 지금도 그대로 게재되어 있다. 그것도 <미주 세이연> 홈피에 말이다.(http://ikccah.org/m1/11389)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저들에게 거짓의 영이 없고서는 이런 거짓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들은 아마 그것은 이인규 씨의 글이지 <미주 세이연>의 글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가 반론을 펼 때 위 주장을 이인규 씨의 글이라고 선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이인규 씨의 그 글이 <미주 세이연> 홈피에 그대로 게시되어 있는 점을 보면 이인규 씨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일 <미주 세이연>이 그렇게 주장하려면, 필자를 이단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 이인규 씨를 마땅히 징계해야 하고, 또 공개적으로 사과시키고, <미주 세이연> 또한 사과하고 홈피에서 그 글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미주 세이연>의 실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둘째,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천사라고 하면 이원론인가? 저들의 주장부터 확인해보자.

“왜 계시록 12:7의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했을까? 진짜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계시록 12장의 내용은 용과 그 사자들과 미가엘과 그 사자들의 싸움인데 만일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끌고 가면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적관계로 나아가서 결국 이원론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미주세이연, 12월 28일 반론)

저들은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하면 이단적인 이원론이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결국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가엘이 예수님이다’라고 해도 이단이고,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하여도 이단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란 말이다.

위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미가엘이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그렇게 거짓말까지 하여 필자를 이단으로 만들지 못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인규 씨는 거짓된 이단연구가란 의미가 숨어 있고, 또한 그러면서도 오월동주처럼 이인규 씨의 거짓을 나무랄 용기도 진실도 없다는 의미도 숨어 있다. 그러나 이제 필자가 주장한 ‘미가엘은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한 그 주장도 이원론 이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살펴보자. 어차피 <미주 세이연>의 말이 맞다면 필자는 이래도 이단이고 저래도 이단이 된다. 이인규 씨처럼 거짓말을 근거로 이단을 만들든, 진실 위에서 이단을 만들든 저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저들은 필자가 뭐라고 하였든 이단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주 세이연>의 위 주장은 이원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사악한 결론이다. 저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천사라는 주장은 누구보다 칼빈의 사상이다. 저들은 필자를 이원론 이단으로 하려면 먼저 칼빈부터 이원론 이단자로 규정했어야 옳다. 칼빈의 주장을 먼저 보자.

“어떤 사람들은 미가엘이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이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 모든 천사가 믿는 자들과 택함 받은 자들을 돌보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사역과 도움을 이용하시므로 그들 중에 첫째 자리를 차지하실 것임은 아주 명백하다."(칼빈, 구약주석 제25권 p247), “많은 사람이 미가엘을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로서 이해하는데 동의한다.”(칼빈, 구약주석 제25권, p.360)

칼빈은 미가엘을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데 동의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칼빈이 이원론자이며 이단이라는 말인가? <미주 세이연>은 답변하기 바란다. <미주 세이연>은 자신들이 개혁신학에 근거하여 이단 연구를 하는 것처럼 말하였는데, 칼빈을 그 개혁 신학자에서 추방하고 이단으로 몰아낼 것인지 결정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주장은 칼빈 외에도 많은 개혁신학자들도 지지하는 학설이란 점이다.

성경 주석가 매튜 헨리는 말하였다. “그 때에 …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1절). ‘그 때’란 박해가 최고 절정에 이르렀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대군’이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 때에’ 미가엘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어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독생자가 성육신하실 것이며 마귀의 역사를 파하실 것이다”(매튜 헨리, 구약주석, p.1042) 이렇게 매튜 헨리는 미가엘을 그리스도로 적용 시켰다.

랑게 주석의 요한계시록 12장의 해석을 보아도 같다. “그리스도 홀로 사탄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의 미가엘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계시록, 1978년, p.302)라고 하였다.

카일 델리취 주석에도 “자기 백성을 위해 미가엘이 등장한 것은 메시야의 등장을 나타낸다.”(카일. 델리취, 구약주석23권, p.535)라고 하였다.

그뿐인가? 저들의 주장이 맞다면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도 ‘이원론’이며, 이단자가 되고 만다. 상임위원 중에 스스로 자신을 감리교인이라고 하며 ‘웨슬리안’이라고 자처하는 이인규 씨는 한 때 장로교로 왔다가 다시 감리교로 돌아간 사람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웨슬리의 미가엘에 대한 해석을 면밀히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는 대장되시고(2:10) 십자가에서 사탄의 죽음의 습격을 치셨다. 신자들에게 악의 모든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보장해 주는 분은 천사가 아니고 그리스도다. ‘하늘의 싸움은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단독적이고 팽팽한 사건이다.’ 실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전쟁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끝난 이 땅의 전쟁에 상응하는 하늘의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웨슬리성경주석 요한계시록, 임마누엘, 1992, p.394)

이와 같이 웨슬리는 계시록의 미가엘과 사탄의 전쟁을 예수님과 사단의 전쟁으로 해석하였다. 이인규 씨를 지도하기로 한 기감 이대위는 이 점에 대하여 그를 잘 지도해야 할 한 가지 요소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 중에 합신 소속 목사가 둘이나 있다. 박형택 목사와 김성한 목사다. 그런데 합신을 세우신 박윤선 박사도 이 본문의 전쟁을 예수님의 전쟁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을 어떻게 볼지 두 분만은 반드시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하늘의 전쟁’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승리하신 전쟁을 말함이다.”(박윤선, 요한계시록, p.236) <미주 세이연>의 주장대로라면 박윤선 박사까지도 이원론 이단자가 되고 만다. <미주 세이연>은 상대의 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자기 궁이 날아가는 것을 모르고 있는 미련한 사람과 같이 되고 말았다.

2. 계시 문제에 대하여 답한다.

필자가 말한 계시는 ‘조명계시’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도 <미주 세이연>은 ‘계시’ 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무조건 ‘직통계시자’란 것이다. 이는 필자를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데 혈안이 되지 않고는 못할 짓이다. 이들의 주장부터 확인해보자.

“그러나 위의 진용식 목사의 내용을 보면 계시로서 요한계시록과 아무 상관이 없는 직통 계시와 유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성령의 조명을 계시라고 말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위의 내용은 성령의 조명을 말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성령의 조명도 계시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한다면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론)

<미주 세이연>의 이러한 주장은 한 마디로 ‘억지’다. 정작 글을 쓴 당사자인 필자가 그것은 조명에 대하여 말한 것이라고 밝혔는데도, 저들은 필자를 직통계시자로 몰아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필자는 강의안에서 “⓹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알아 가면 계시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은 분명히 조명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조명에 해당하는 계시는 지금도 계속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주 세이연>은 조명을 계시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조명을 계시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계시는 ‘조명’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특별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 본문의 ‘계시’가 조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죤 칼빈, 신약성경주석1권, p.455-456) 조명을 계시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누구를 한 번 이단을 만들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단을 만들어야 하는 <미주 세이연>만의 주장이다.

필자의 계시 문제에 대한 글에 지금도 기적이라는 방법으로 특별 계시가 계속 된다고 하는 이인규 씨의 주장에 대하여 <미주 세이연>의 견해를 묻는 질문을 하였다. 이렇게 억지로 필자를 직통계시자로 만들려고 하는 그들인데 왜 필자가 한 질문에 대하여는 답변을 회피하는가? 반드시 답변해주기를 바란다. <미주 세이연>은 필자가 조명을 말했다고 하는데도 그것은 직통계시를 말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특별계시가 지금도 있다’고 하는 이인규 씨에 대하여는 묵인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결국 저들의 이단 연구는 팔이 안으로 굽는 세속 원리 수준에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3. 속죄문제에 답한다.

<미주 세이연>은 필자의 속죄 사역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도 억지를 썼다. 필자가 말한 ‘지금도 계속되는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사역을 말한다고 하였는데도, 중보사역은 인정하나 ‘속죄’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먼저 저들의 주장을 확인해보자.

“예수님이 중보자로서 지금도 중보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속죄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사상이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론)

<미주 세이연>의 이 주장도 억지요 거짓이다. 이들이 비판한 필자의 강의안 계시록 13장에는 분명하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롬 8:34) 예수님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히 4:14-6, 계 13쪽)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중보사역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금도 속죄가 계속 되고 있다고 한 것이다. <미주 세이연>은 내용이나 사상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보사역’을 ‘속죄’라고 하여 용어 사용을 잘못했다고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중보 사역을 ‘속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여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주석 학자 헨드릭슨은 “대언은 자기 백성들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주님이 행하신 중보사역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이 대언자가 주저하는 심판자로부터 호의적인 판결을 쥐어 짜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부 하나님 앞에 그가 있다는 사실 하나님으로도 충분한 대언이 된다. … 화목이든 속죄든 별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된다.”(헨드릭슨 주석, 요한1,2,3, p.61-62)라고 하였다. 중보사역을 ‘속죄’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답하기 바란다. 헨드릭슨도 이단인가?

4. 비유풀이 문제에 답한다.

<미주 세이연>은 비유풀이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억지를 쓰고 있다. 저들은 같은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인 박형택 목사나 신학자들의 해석은 상징이라고 하고, 필자의 해석은 비유풀이라고 정죄한다. 정말 웃기는 네모난 삼각형 같은 억지 주장이다. 확인해 보자.

“네 생물에 대하여 박형택 목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수종드는 천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상징도 비유도 아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는 복음사역자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네 생물이 복음사역자를 가리키는가? 영적 존재로서 네 생물을 사람으로 비유한 것인가?” (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론)

신천지는 ‘네 생물이 천사’라고 한다. 이것은 비유풀이다. 박형택 목사도 ‘네 생물을 천사’라고 하였는데도 박형택 목사의 해석은 비유풀이가 아니고 상징이라고 한다. 아니 그렇게 해 주는 것이다. 같은 해석인데 신천지가 하면 비유풀이가 되고 박형택 목사가 하면 상징이 되는 그 교묘한 논리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스캔들이 되는 그 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들은 필자가 네 생물을 복음사역자라고 한 것을 가리켜 비유풀이라고 한다. 네 생물을 사람이라고 했으니 비유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 생물을 복음사역자라고 한 것은 매튜 헨리의 주장이다. 매튜 헨리는 계시록 주석에서 “그는 네 생물이 보좌와 장로들의 원 사이에,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복음사역자들을 뜻한다.”(매튜 헨리, 신약주석, p.1426)라고 하였다. 매튜 헨리도 네 생물을 사람으로 해석했으니 비유풀이라고 했다면 저들은 주관적으로는 정직한 사람이라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형택 목사는 신천지와 같은 해석을 하여도 상징이고, 신학자들과 일치한 필자의 해석은 비유풀이라고 하는 논리는 아무리 세상의 악한 자라도 가질 수 없는 윤리이다.

하나 더 보자. <미주 세이연>은 필자가 요한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했다고 하여 비유풀이라고 비판하였다. 확인해보자 “진용식 목사의 비유풀이가 신천지와 같다는 것은 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한다. 신천지도 같은 주장을 한다. 유재열이 3년 6개월 동안 광야에서 양육을 받았다며 광야를 미국이라고 하는데 진용식 목사도 교회가 양육 받는 곳이 미국이라며 미국 신대륙이 광야라고 한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론)

<미주 세이연>의 이 주장은 거짓말이며 조작이다. 필자는 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한 적이 결코 없다.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자가 도망간 광야를 해석한 필자의 강의 안에는 “여자는 교회이다. 교회에 대한 사단의 공격을 피하여 교회는 광야로 간다. 교회는 하나님의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게 된다.”(계시록 강의안, p.69)라고 하였다. 필자는 ‘광야’를 핍박받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처’라고 하였다.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피하여 간 곳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박해 받을 때는 카타콤 같은 곳이었고 종교개혁 당시에는 미국 신대륙 같은 곳이었다고 하였다. 직접 그대로 인용하겠다. “성도들이 박해를 피하여 간 곳은 어디인가? 1. 초대교회 시대의 카타콤이며. 2. 종교개혁 시대의 미 신대륙이다.”(계시록 강의안, p.69)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가지고 <미주 세이연>은 필자가 광야를 미국이라고 비유풀이를 하였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조작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이번 글에서도 그렇게 거듭 조작하였다. 이단 만들기에 환장한 자들이 아니고는 이렇게 거짓으로 조작까지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5. 조작문제에 대하여 답하다.

<미주 세이연>이 조작한 문제에 대하여 비판하자 자신들은 조작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특히 백마 탄자에 대하여 조작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먼저 확인해보자.

“진용식 목사는 세이연이 119쪽에서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 세이연의 글을 보면 말 탄 자에 대해서 119쪽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세이연은 진용식 목사가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했고, 오늘날의 교회도 말 탄자가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은 119쪽이 아니라 35쪽이다.”(미주 세이연, 12월 28일 반론)라고 하였다.

<미주 세이연>은 119쪽을 말하지 않고 35쪽을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현재도 세이연 홈피에 올려진 세이연의 글에 확실하게 119쪽이라고 되어 있다. 확인해보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말씀의 사역을 하는 복음사역자로 비유한다(119쪽). 진용식은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하며 오늘날의 교회도 말 탄 자가 있다고 주장한다”(미주 세이연, 10월 1일 반박문) 그리고 후의 반론 글에서는 35쪽이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미주 세이연>은 처음부터 35쪽을 인용한 적 자체가 없다. 35쪽은 계시록 6장의 해석이고, 119쪽은 계시록 19장의 해석이다. 백마 탄 자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내용은 19장이며, 119쪽이다. <미주 세이연>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와 백마 탄자를 복음 사역자라고 했다고 비판하였다. 이 내용은 19장 119쪽의 내용이다.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35쪽은 초대교회에 적용시켜 해석한 내용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복음 전하는 자에 대한 것을 해석한 것이며, <미주 세이연>이 주장한 ‘오늘날 교회에도 말 탄 자가 있다.’라는 말은 35쪽에 있다고 했는데, 35쪽에 그런 말은 아무리 찾아 봐도 없는 말이다. 119쪽이라고 해도 조작이고, 119쪽이 아니라 35쪽이라고 해도 조작인 것은 마찬가지다. 조작에 조작을 거듭하는 저들의 눈을 다 빼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6. <미주 세이연>은 왜 필자가 조작했다고 질문한 내용에 대하여 답을 하지 않는가?

필자는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보고서에 많은 조작이 있음을 밝히고 질문하였다. 그러나 이번 반론에서 미가엘과 백마 탄 자에 대한 것만 답변하고 그 외에 내용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 말은 필자가 조작했다고 지적한 다른 문제들은 <미주 세이연>이 조작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인가? 필자가 주장한 내용 중에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죄는 이단보다 더 악하다고 본다. <미주 세이연>은 조작한 것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사과하고 보고서를 취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작하지 않았다면 하나하나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미주 세이연>이 조작한 문제들을 다시 질문한다.

1) 24장로를 복음사역자라고 했다는 조작에 대하여.

“112쪽에서는 네 생물과 24장로가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하며”(10월 1일, 세이연 반박문)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24장로를 복음사역자라고 하지 않았다. <미주세이연>은 24장로 조작 문제에 대하여 답하라.

2) 헨리 모리스 박사를 안식교인이라고 조작한 점에 대하여.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는 남침례교인이다. <미주 세이연>은 그를 필자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안식교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진용식은 24장로를 교회목사로 비유한 사람이 헨리 모리스와 왈 부르드라고 하면서 인용하는데, 헨리 모리스는 안식교이고, 왈 부르드는 세대주의이다.”(10월 1일, <미주 세이연>의 반반문). 이 거짓말에 대하여<미주 세이연>은 답해야 한다.

3) 일곱 영에 대한 조작에 대하여.

필자는 일곱 영은 성령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는데(강의안27) 성령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조작한 부분을 <미주 세이연>은 대답해야 한다.

4)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복음사역자라고 했다는 조작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말씀의 사역을 하는 복음사역자로 비유한다(119쪽)”(10월 1일, 미주 세이연 보고서). 필자의 강의안 119쪽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복음사역자라고 한 적이 없다. <미주 세이연>의 조작이며, 거짓말이다. <미주 세이연>은 답변해야 한다.

5) 요한계시록 12장 광야를 미국이라고 했다고 조작한 것에 대하여.

<미주 세이연>은 이번 반론에서 필자가 요한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하였다고 조작하였다. 필자는 요한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하여도 선명하게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결론: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 11명은 회개하고 필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필자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인규 씨를 포함한 <미주 세이연> 상임위원 11명은 회개하고 사과해야 한다. 고맙게도 그 중에 한 분 현 모 목사만 <미주 세이연>을 탈퇴하였다고 밝혔다. 앞으로 줄줄이 같은 자세를 취할 것을 기대해 본다. 잘못된 신학의 기준으로 누구를 판단하고 심지어 내용을 조작하여 거짓말로 이단으로 규정했다면, 그는 이단보다 더 악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과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성도의 자격도 목사의 자격도 없지만, 더욱 이단연구가의 생명은 끝일 것이다. 일말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회개하고 사과하고 그 글을 빨리 내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가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했다.’라는 이인규 씨의 조작 글이 세이연 홈피에 버젓이 올라가 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회피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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