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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씨의 여성관 ‘남자 외도 여자 탓’이라고?
분석/ 김씨의 책 <목회자 사모학 사모님 사모님>
2019년 01월 31일 (목) 15:38:37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김기동 씨(성락교회)의 여성관에 의문을 갖게 된 계기는 소위 ‘김 씨의 엑스(X) 파일’ 때문이다. 베뢰아대학원대학교 교수였던 윤준호 씨에 의해서 작성된 엑스(X) 파일에는 김기동 씨의 성 문제를 비롯한 각종 비리에 대한 의혹 내용이 담겨져 있다. 급기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1081회, 2017년 6월 24일 방송)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김기동 씨의 책 <목회자 사모학 사모님 사모님>

김기동 씨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규정을 받았다. 이단 규정 받은 핵심 내용은 잘못된 귀신론 등 그의 비성경적인 신학 때문이다. 김기동 씨의 이단 사상이 결국 그의 윤리에도 영향을 미친 것일까. 재정 문제, 성 문제 등 엑스(x) 파일로 인해 그의 윤리의 심각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김 씨에게 성 문제 의혹이 제기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김기동 씨가 평소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사고와 관련이 있다. 여성을 정상적인 인격체로 여기고 있었다면 이런 일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기동 씨의 책 <목회자 사모학 사모님 사모님>(도서출판 베뢰아, 2012)을 통해 그의 여성관의 일부를 살펴볼 수가 있다. 목회자 부인, 즉 사모에 대한 내용이지만,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와 혼용되어 나온다. 표현하기에 다소 황당하고 민망한 내용도 나온다. 직접 살펴보자.
 

* 남편 외도, 아내 탓?

만약 남편의 외도로 힘들어진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반문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다소 유치한 질문이지만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김기동 씨가 그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답을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남편의 외도의 원인과 책임이 남편이 아니라 아내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아내가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 식으로 말을 했을까. 어이없는 주장이다. 김기동 씨의 이런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김씨 책 본문 내용 중 일부

“성경에서도 말한 아내의 역할은 무엇인가?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는데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여자에게 남편이 있으나 그 남편이 딴 생각과 딴 짓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책임이 전적으로 아내 된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부 사이는 속된 말로 강짜를 부려서 될 일이 아니다. 이해와 양보만이 가능하고 협조와 노력이 절대 필요한 사이이다.”(p.59)

위 문구에서 ‘딴 생각과 딴 짓’은 무엇을 말할까? 남편이 주변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준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외도’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남편 외도의 책임을 ‘아내 탓’으로 돌리는 김기동 씨의 사고는 어쩌다 한 번 등장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의 책에 계속 나타난다. 살펴보자.

“목회도 잘하고 부흥회도 잘 인도했던 어느 목사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목회와 등을 지고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이 모든 책임을 사모에게 씌우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그 결국이 사모에게 있다. 사모는 그 사실을 안 즉시 자기 짐을 꾸려 진정으로 가벼렸고 이 소문은 온 교회에 퍼져 버렸다. 마침내 소문은 더 널리 퍼져 회개할 용기조차 없게 된 것이다.”(p.164)

대게 외도하는 남자들의 원인은 아내인 여자의 도도하고 오만스러움, 자기 성이 성결하다 하는 암시로부터 기인한다.”(p.62)

“사모도 한 남자의 아내이며 또 정상적인 여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기 정신의 본능을 무시하고 이를 불결하게 보기 때문에 남편이 탈선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p.62)

어떤 여성이든지 ‘남편 외도’와 같은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혹,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아내는 그 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남편 외도의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다. 마치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매를 맞을 짓을 했다’며 그 책임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묻는 것과 같은 식이다. 남편 외도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김기동 씨는 남편 외도의 원인과 책임을 ‘아내 탓’으로 돌리고 있다. 김 씨의 말대로 아내에게 그 책임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된 ‘김기동 엑스(X) 파일’의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여고생에게 있는가 아니면 김기동 씨의 아내에게 있다는 말인가?

김기동 씨의 책에 의외의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김 씨가 남편을 언뜻 ‘주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인 단어는 ‘종’인데 이는 아내에게 해당될 수밖에 없다. ‘주인’이라는 표현이 책 전체에 딱 한 문단에서만 등장한다. 두 문장을 통해 ‘주인’이라는 단어는 3번 나온다. 남편을 ‘주인’이라고 표현했으면 아내는 그의 ‘종’이라는 말인가. 김 씨가 자신의 속내를 살짝 들킨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실수의 표현이었을까? 그의 발언을 들어보자.

“한 번 이렇게 되어 버리면 서산 넘어가 버린 주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모는 주인이 서산을 넘어가기 전에 자기 주인을 빨리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p.63)

남편으로 표현된 주인이 산 넘어 딴 길로 가기 전에 꼭 붙잡아 두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때 주인은 왜 서산을 넘어가려고 했을까? 바로 위 본문 앞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자기가 남편의 성적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여 모욕감에 사로잡혀서 불쾌감을 씻어버리지 못하고, 피하다 못해 억지로 폭행 당하는 신세처럼 수동적인 성행위를 못 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남자는 모욕감과 굴욕감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한 번 이렇게 되어 버리면 서산 넘어가 버린 주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모는 주인이 서산을 넘어가기 전에 자기 주인을 빨리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p.63)

아내가 남편에 의해 자신이 성적 도구로 취급받거나, 성폭행 당하듯 성행위를 강요 받아도 남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으로 인해 아내가 받는 모욕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표현했다. 반면 남편이 받는 모욕감과 굴욕감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내가 남편의 성행위에 반발을 하면 남편은 목욕감과 굴욕감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남편은 떠나게 된다는 말이다. 이때의 남편을 ‘주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인이 떠나면 상대적으로 ‘종’은 매우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주인이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주인이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아내가 성적 도구로 취급 받거나 성폭행 당하는 것은 모욕감을 받는 성 행위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는 말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김기동 씨는 ‘아내의 성 도리’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다. 아내가 성 도리를 다 했다면 남편이 떠나는 것, 즉 외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남편 외도의 원인을 성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아내 탓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하나님은 한 여자에게 한 남자가 있어서 서로를 위할 수 있도록 지시하셨으니, 이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남편의 외도는 그 책임이 아내에게 없다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내가 자기의 성 도리를 다했다면 자기 남편을 밖으로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p.61)

‘아내의 성 도리’라는 게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다시 말해 아내가 남편에 의해 자신이 성적 도구로 취급받거나 성폭행 당하듯 한 모욕감을 당했다 하더라도 남편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내의 성 도리’라고 말이다. 다음의 내용이 김 씨의 생각을 좀더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이 성관계를 자주 요구한다 하여 이를 좋지 않은 습관으로 취급하여 불순하게 생각하고 점잖지 못한 행동이라고 핀잔하거나 또 그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하자. 그때 남자의 꼴사나운 자존심은 화를 불러일으켜 ‘너 아니면 세상에 여자가 없나?’는 식으로 오기가 치솟게 되고 급기야는 아름다운 부부 사이에 금이 가도록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 혹 매일 요구해 오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심하다는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인가? 차라리 그러한 남편의 뜻을 온전히 받아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할 권리가 전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성 관계를 싫어하는 아내들이 자기 남편이 일방적으로 일을 해치웠다 해서 남편들을 고소하고 결국은 남편들을 고소하고 결국은 남편들이 아내를 폭행했다는 죄로 벌금을 내는 예가 외국에서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고유의 권한을 무시한 판단이며 아무렇게나 사는 사회에서 표출될 수 있는 촌극이다. 성경은 조물주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인생 생활의 표준이 된다. 성경에서는 결코 아내가 일방적으로 거절할 수 없다(고전7:4).”(p.66)

“아내는 남편과의 성 관계를 정상화시킴으로써만이 여성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남편의 일방적인 요구에 폭행당하듯 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오히려 여성의 몫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p.67)

역시 그것이다. 남편의 일방적인 성 행위 요구에 아내는 그대로 들어주어야 한다는 식이다. 성적 도구로 취급받거나 성폭행으로 여김을 받아도, 아내는 남편의 성행위 요구에 대해 거절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도 했다. 그것이 ‘여성의 도리’라고 했다. 또 ‘여성의 몫’이라고 했다. 김 씨는 여성을, 아내를 도대체 어떠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가?

김 씨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성폭행을 다룬 법정 소송 사건을 예로 언급하기도 했다. 남편이 아내를 성폭행해도 되는가에 대한 법원 판단의 내용이다. 김기동 씨는 외국에서 그 행위가 ‘죄’로 취급 받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아내 성폭행은 형법 제 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저촉된다. 부부 간 강간죄 성립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김기동 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성폭행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아내 성폭행을 죄로 여긴 것에 대해 그는 ‘아무렇게나 사는 사회에서 표출된 촌극’이라고 보았다. 또한 ‘인간 고유의 권한을 무시한 판단’이라고까지 했다. 제정신인가. 아내 성폭행이 인간의 고유 권한이라니 이것이야 말로 코미디 아닌가.

그는 아내 성폭행이 조물주의 의도라고도 말했다. 심지어 성경의 가르침이라며 성경구절까지 제시했다. 아내 성폭행이 정당한 일이라고 정말 성경에 나와 있을까? 김기동 씨가 인용한 성경 구절은 고린도전서 7:4절이다. 그 구절을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살펴보자.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7:4)

위 구절 중 앞부분은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남편이 하며”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의 의미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성폭행 방식을 정당화해 준다는 구절인가? 김기동 씨는 위 성경 구절을 통해 남편이 아내의 몸을 성적 도구로 취급하든 성폭행 방식으로 성 행위를 요구하든 아내가 모두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해괴망측한 이해력이다.

이렇게 반론을 제기해 보자. 만약 김기동 씨의 위 구절에 대한 성경 이해가 ‘옳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위 성경 구절의 후반부 구절(붉은 색 표시)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을 해야 옳을 것이다. 후반부 구절은 ‘남편도 그와 같이’로 시작된다. 무슨 의미인가? 남편도 아내가 요구하는 성행위 방식대로 따라야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아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남편은 자신의 행위를 즉각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야 적어도 김 씨 자신의 방식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형평이 맞지 않은가.
 

* 요부가 되라고?

김기동 씨는 아내에게 ‘요부’(妖婦)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부’의 사전적 의미는 ‘남자를 호리는 여자’, ‘요사스러운 여자’, ‘끼를 부리는 여자’ 등이다.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김 씨는 ‘창녀’는 아니라고 애써 말한다. 들어보자.

“남자는 항상 충동적이다. 생리적으로 탱크가 차게 되면 그것을 적당히 퍼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차면 또 퍼내야 하는 반복이 필요하다. ... 그러나 배설하지 아니하고 차오르게 되면 흥분할 수밖에 없기에 그때 이성에 대한 유혹이 오면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저속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돼지 얼굴을 보고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처럼 이성이면 모두 위험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모는 목회자가 너무 성적 충동이 심하고 여자를 밝히는 행동만 한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아침에 심방 나가기 전에 사모가 먼저 남자의 탱크에서 물을 퍼내 줄 수 있는 역할을 해 준다면 그러한 위험스러운 실수는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사모는 이성을 밝히지 않는 자칭 거룩한 여자라 하더라도 남편을 위험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수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많이 접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시라도 충동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이 말은 사모에게 창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요부가 되란 말이다.”(pp.171-172)

“남편과 마주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요부처럼 노력하다. 남편의 마음을 홀딱 뺏아 버려야 한다. 남편을 기쁘게 하라. 그러면 자신도 기쁘지 않겠는가. ... 이렇게 아름다운 요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p.288)

김 씨는 아내가 요부가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를 했다. 김 씨가 말하는 ‘요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표현을 정리해 보면, 아내가 먼저 능동적으로 남편을 향해 성행위를 위한 끼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계속 들어보자.

“그러므로 남편이 먼저 요구했을지라도 여자인 아내가 먼저 바란 것처럼 행동을 능동적으로 할 때 남편은 그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설령 몸이 지쳐 피곤하다 해도 오히려 한술 더 떠 능동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아내 쪽에서 밝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 아내를 잃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p.68)

김기동 씨의 여성관을 비판하는 게 참으로 민망하다. 이런 사람이 성락교회라는 대형 단체의 대표였다는 게 아이러니다. 답답한 마음이 크지만 계속해서 김 씨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김 씨는 아내가 성행위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남편에게 능동적으로 끼를 부려야 한다고 말한다. 남편이 피곤하다고 말해도 더욱 적극적으로 성행위를 위해 남편을 호리라고 한다. 앞선 내용과 연결시켜보면 그것이 ‘아내의 성 도리’, ‘인간 고유의 권한’이며, 주인된 남편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김 씨는 남자는 항상 충동적이어서 탱크에 찬 물을 퍼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탱크에서 물을 퍼내주어야 한다니 말이다. 이는 성행위를 통해 바로 남자의 정액을 빼주어야 함을 말한다.

자기 부인에게 정액을 다 배설해 버린 남자는 일차적으로 여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자기 아내의 몸에 배설하지 않고 나오는 자는 매우 위험한 나들이를 하고 있다고 의심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p.172)

남자의 정액을 아내가 요부처럼 끼를 부려 성행위를 통해서 빼주어야 하는 게 ‘아내의 성 도리’요, ‘인간 고유의 권한’이요 또한 성경의 의미라는 게 김기동 씨 여성관의 줄기다. 심지어 아내는 남편이 출근할 때 정액을 빼주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때 남편은 교회로 출근하는 목회자를 말한다. 그래야 남편이 딴 생각을 안 하게 될 것이라며 말이다.

“사모는 할 수만 있다면 남편을 많이 유혹하라. 그리고 출근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빈 탱크가 되게 하라”(p.172)

교회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요부처럼 끼를 부려 성행위를 하고 정액을 배설하게 만드는 일, 김기동 씨는 목사의 아내는 그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자신은 그런 일을 위하여 태어난 목회자의 아내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p.173)

목사의 아내, 즉 사모를 향해 위로를 주려는 말인지 고통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김 씨의 희한한 교훈이다.
 

* 음란물 시청, 괜찮은 일?

김기동 씨는 음란물 시청하는 일을 괜찮은 일로 여기는 듯하다. 음란물 시청하는 것을 타락한 것으로 여기는 일을 오히려 ‘우스운 일’이라고 감싸기도 했다. 직접 그의 표현을 살펴보자.

“비디오 시대를 맞이하는 요즘 항간에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잇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청소년들에게는 해로운 것이지만 어른들에게는 필요한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수년 혹 수십년 간의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음란 비디오를 찾는다. 그것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어떤 불만을 해소하고 또 달리 충족시켜 보려는 것에서 그러한 시청각 수단을 의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부부간에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것은 저속하다 하지 않으면서 시청각 수단에 미혹된 사람들은 몹시 타락한 자들로 보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p.60)

음란물 시청을 청소년은 안 되고, 성인은 괜찮다는 식이다. 왜 성인은 괜찮다고 한 것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성인은 수십년 간 성행위를 해왔기 때문에 음란물 시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부부 간 성행위에 불만이 있을 경우에도 음란물 시청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김기동 씨의 ‘음란물 시청’에 대한 생각이 괜찮은 것일까? 김 씨의 책은 성락교회 목회자와 사모를 주 대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책 제목이 <목회자 사모학 사모님 사모님>이기 때문이다. 성락교회 목회자와 사모는 김 씨의 ‘음란물 시청’ 생각에 동의할까? 이단으로 규정 받은 이에게 적용되는 윤리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살펴보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성경구절은 차고 넘치게 많이 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전7:1)

위 구절들의 적용이 수십년간 성행위를 해왔고, 부부 간 성행위에 만족이 없을 경우에는 제외가 되는가?

물론 김기동 씨의 책 <목회자 사모학 사모님 사모님>의 내용이 모두 ‘성’에 대한 것은 아니다. 전체 내용 중 극히 일부분이다. 오히려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일반적인 교훈의 내용도 적지 않다. 몇 가지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사모는 능력이 있을수록 더욱 겸손해야 한다.
▲ 평신도들이 보고 느끼기에 사모는 성스러워야 한다.
▲ 사모의 길을 가는 자들만이 아는 위대한 길을 걸으라. 그리고 사모가 되려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고 선생이 되어야 한다.
▲ 목사는 낮에 비치는 해라면 사모는 밤에 비치는 달처럼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자기 남편인 목사를 다른 목사와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

위의 내용만 보면 여느 사모 관련 서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 내용을 포함하여 김기동 씨가 주장하고 싶어하는 ‘사모학’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모는 기도하며 겸손하고 성스러운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남편에게 성적 도구 취급 받으며 성폭행 당하듯 성행위를 강요 받으며, 오히려 그러한 성행위를 위해 요부처럼 끼 부려 남편의 탱크에서 물을 빼 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사건을 성경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삼하11장-12장).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의 회개 장면이 시편 32편과 51편에 잘 기록되어 있다.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다. 밧세바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다윗의 아내는 에글라라는 여인이었다(삼하3:5).

남의 아내를 탐낸 큰 죄를 깨달은 후, 다윗이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방금 언급한 바대로 회개를 했다. 다윗은 자신의 외도, 바람 피운 것에 대해 결코 ‘아내 탓’을 하지 않았다. 성경도 그러한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는다. 외도는 자신의 탓이요, 회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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