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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의 월권인가 인권위의 월권인가?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의 인권 문제 진단
2019년 01월 31일 (목) 10:42:49 최대권 교수 webmaster@amennews.com

<교회와신앙> 양봉식 기자】 한동대학교에서 ‘들꽃’이라는 동아리에서 성매매하는 여성과 페미니즘 작가를 불러서 ‘성 의 자유와 페미니즘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다.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학교에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내용의 강연을 할 수 없다며 불허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자 주도했던 해당 학생을 무기정학의 징계 조치를 했었다.

그러나 한동대의 징계 조치에 대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을 침해했다며 징계를 취소하라는 권고 조치를 내렸다. 한국교회는 한동대가 학생들에게 무기정학의 징계에 대한 국가 기관의 취고 권고 조치는 단순한 학교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독교 사학에 대한 건학이념을 기초로 한 종교자유와 평등과 교육권 등 헌법이 보장하는 것을 국가가 간섭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주장이다. 일종의 탄압이라는 것이다.

전제국가나 공산주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가 심히 우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성애동성혼합법화반대전국교수연합과 성일종 의원(자유한국당), 조배숙 의원(민주평화당)이 주최한 ‘성매매, 다자성애, 동성애를 인권이라 할 수 있나’라는 주제로 1월 28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세미나를 개최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발제자로 나선 최대권 서울명예 교수의 ‘한동대의 월권인가 인권위의 월권인가?’의 발제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한동대의 월권인가 인권위의 월권인가?

최대권 / 서울대 명예교수 한동대 前석좌교수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1. 머리말

기독교적인 종립대학의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에 어긋나는 행위를 자행하는 학생을 선도하려는 교육적 취지의 절차와 장치에 따라 무기정학 등의 징계를 행한 한동대학의 조치가 헌법적으로 대학으로서의 자율권(헌법 제31조제4항) 행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아니면 징계를 취소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가 합헌 합법적 권고 권한에 속하는 것인지의 문제가 우리의 논의의 중심이 된다. 만약 문제의학생에 대한 징계조치가 종립대학인 한동대학의 자율권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의 한동대학에 대한 권고조치는 위헌적 내지 위법적인 월권행위 내지 권한일탈행위(소위 “甲질”행위)가 된다. 그리고 이 권한일탈행위는 한동대학에 대하여 행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방해행위, 권력남용행위 내지 명예훼손행위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2. 대학의 자율성

솔직히 일정한 징계조치는 교육의 일환이다. 교육이란 순전히 가르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과 벌은 언제나 가르치는 것과 같이 가는 것이 아닌가? 교육기관에서 인정되는 벌에는 훈시나 경고, 근신, 유 무기정학, 퇴학 등이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1) 교육기관에서 인정되는 징계에는 그것을 정당화할만한 이유가 동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당화될 수 없는 징계가 문제되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문제된 학생에 대한 무기정학은 이것이 정당화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징계에서 문제삼아야할 사항은 주로 징계권한의 남용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와 월권했느냐의 문제가 징계조치의 정당성을 다투는 핵심쟁점이 된다. 그리고 그 다툼은 말할 것도 없이 법원에 의한 법적 판단의 문제가 된다. 학생에 대한 징계권한은 학교당국의 엄연한 법적 권한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법원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관할 사항이 될 수 있는지 법리적으로 이해하기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문제된 안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마치 법원(the Court of Law)이나 되는 듯이 법원의 판결문의 포맷을 모방한 사실상의 판결문으로 무기정학을 취소하라는 사실상의 판결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국회입법으로 창설된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인류보편적가치인 인권보호를 구실로 헌법기관인 법원의 관할사항까지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 법원은 인권을 다룰 줄 모르는 또는 다루어서는 안 되는 국가기관이란 말인가?

문제된 한동대학의 징계 건에 개입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과 징계를 취소하라는 권고조치가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대학은 국가에 의해 학생이 강제적으로 배당되는 의무교육기관이나 국가기관이 아니고 학생의 지원과 동의에 기초해서 대학교육을 행하는 곳이다. 한동대학은 종립대학으로서 법적기준에 따라 기독교적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대학이다. 기독교적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이 싫으면 언제든지 한동대학을 그만두고 자기가 선호하는 교육을 행하는 다른 대학을 택하면 된다. 한동대학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면 학교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자명한 법리다. 솔직히 기독교 성경은 대한민국헌법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법치주의의 바탕이 되는 자유, 정의, 진리, 평등, 공정성, 정직, 성실성 등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훌륭한 교육자료도 된다.2)

문제의 학생이 동성애 페미니즘 등의 문제를 가지고 불허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해서 무기정학에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전개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징계철회권고결정문을 읽어보면 적법절차를 위반했다는 논거는 근거가 없음이 법리상 분명하다. 적법절차란 형사절차나 징계절차에서 불이익처분을 받게 될 사람에게 이를 알렸느냐(notice), 변명(변호)의 기회를 제공했느냐 등 절차적 정의에 바탕을 둔 원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록을 보면 이러한 절차적 정의의 요청을 충족시켰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이에서 더 나아가 행사주최자 측 자기들의 주장을 가지고 오히려 학교당국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음을 살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오히려 이들 주장을 학교당국이 들어주지 않았던 점이 학교당국이 그들의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근거가 되었음직해 보인다.

표현의 자유에 자리하는 언론의 자유란 인간이 입으로 내뱉는 무엇이나 보호해주는 기본권이 아니다. 불 꺼진 만원 극장에서 느닷없이 소리치는 “불이야!”는 언론자유의 보호를 받는 언론일 수 없다는 점은 미국Holmes대법관의 금언(dictum)3)을 들 것도 없이 진리다. 이 금언에서 살필 수 있듯이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는 표현이란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표현을 뜻한다. 거짓말이 금전취득의 방편일 때거나 법정에서의 증언일 때 등에는 처벌받는다. 물론 거짓말이 다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폴리아모리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개인의 소신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천부(天賦)의 기본적 인권에 속하는 사항인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헌법이 그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천부의 기본적 인권에 속하지 아니함은 명명백백하다.

첫째로 헌법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호를 천명하고 있다(헌법 제36조제1항). 그러므로 동성애를 포함해서 폴리아모리가 헌법이 보장하는 천부적인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지 아니함은 명백하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들의 한동대학 징계처분에 대한 취소권고의 근거로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거론한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위헌의 조치다.

둘째로 주지하다시피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최저의 출생률을 보여 이민을 받아들임과 같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소멸하게 되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유아양육비 지원이라든지 어린이 수당 등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다양한 국가적 사회적 제도와 환경을 마련해 오고 있다. 그런데 동성애를 포함해 폴리아모리 현상이 우리나라의 결혼문화와 출산율 저하현상에 기여하는 중요한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여자가 “출산기계”일 수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 등 폴리아모리 확산이 반국가적 반사회적인 추세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엄연한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한동대학의 징계에 대한 취소 권고 결정에서 동성애 등 폴리아모리의 논의나 이를 위한 집회가 마치 헌법이 그 보장을 천명하는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천부의기본적 인권에 포섭되는 기본권인양 이러한 기본권을 크게 거론하여 징계취소 권고조치를 결정한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반헌법적, 반국가적 및 반사회적 조치라고 판단될 수밖에 없게 한다.

그것은 결혼기피현상의 확산 및 심각한 출산율 저하현상을 극복해서 건강한 국가와 사회 환경을 조성하고 지키려는 국가차원의 정책과 사회적 노력을 또 다른 한 국가기관은 인권옹호를 빙자해 이를 앞장서서 좌절시키는 적나라한 행동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냐의 질문을 새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3. 국가인권위회의 존재 이유

우리나라 헌법기관인 국회나 행정부나 사법부는 인권보호를 모르거나 소홀이하는 독재적 기관이기 때문에 학교 캠퍼스에서 공개적으로 행하는 폴리아모리 강의나 세미나 혹은 모임을 허용치 아니하는 학칙상의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입법이나 행정명령 또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국회, 행정부, 사법부는 인권옹호와는 상관이 없는 국가기관인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국가는 국민(시민)의 천부의 또는 생래의 기본적 인권(인간의 존엄과 가치, 더 단순화해서 자유)을 담보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조직 구성하는 국가다.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 등은 천부의 기본적 인권 보호를 위한 이러한 국가권력의 조직 구성 원리 가운데 핵심적인 원리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권력의 조직 구성을 담보하는 설계도가 성문헌법전이다. 그래서 프랑스 인권선언(제16조)은 기본권이 보장되지 아니하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지 아니한 나라는 헌법이 없는 나라다 고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바로 이러한 입헌주의4) 전통을 따르는 헌법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헌법은 이 설계에 따라 건설된 국가다.

그러한 만큼 국회, 대통령, 사법부 등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호를 위해서 조직 구성된 국가기관이다. 그렇다면 국회, 대통령, 사법부와 별개로 국회입법으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의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국회가 못하는 일을 국가인권위원회가 한다면 국회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예컨대 국민 다수의 의사가 아니기 때문인데), 이를 존중치 아니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일은 한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와 같은 헌법적 정당성(constitutional justification) 및 민주적 정당성(legitimacy)은 갖추었느냐, 가령 법원이 해야 할 일을 했다면 헌법적 정당성은 지녔느냐(예컨대 헌법에 따라 구성되었느냐, 엄격히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법관과 같이 판단했느냐)와 같은 질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하지 못하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입법으로 세우고 국고금으로 운영하는 시민단체에 불과하고 그 활동은 시민단체의 활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는 일은 일반 시민단체들도 얼마든지 혹은 경우에 따라 더 잘할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국가기관이라는 차원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 대통령, 사법부 등 헌법적 국가기관의 존재 및 기능과의 관계에서 중복적 중첩적(redundant한)인 기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우리나라에서 왜 구지 필요하냐의 질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 민주화(1987년) 이전의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웠던 예컨대 1950년,60년대 또는 70년대라면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 인권의 존재를 비롯해 어떻게 이를 실현하느냐 등 절차도 절차를 활용할 사회 경제적 능력도 지식도 모자랐던 시대라면, 그 시대에 오늘날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힘과 실력을 갖춘 인권보호기관이 존재했다면 민주시민의식의 고양에 참으로 유용했을 것이며 민주화도 훨씬 앞당겼을 것이다.

이 시기는 독재시대와도 시대적으로 겹치는데 우리가 지나온 독재시대에 오늘날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 활약할 수 있었다면 국민의 인권신장에 그리고 민주화의 촉진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진 오늘날 인권은 크게 신장되었고 경제적 여유와 함께 인권 등 권리실현을 위해 여러 민주적 절차와 장치가 폭발적이라고 하리만큼 활발하게 전개활용 되고 있다. 활발한 시민단체의 활약과 함께 어려운 사람을 경제적으로 돕는 국가적 사회적 제도와 장치, 무자력자 등을 위한 무료변호제도와 장치 및 서비스가다양하게 존재한다. 자기의 주장을 펴기 위한 일반 시민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자유가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안정적 국고지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모르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재정적 결핍이 없으니까 인권보호를 위하여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시민단체나 다른 국가기구가 못하는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의문도 든다.

조직사회학적으로 살펴보면 공공기구나 단체가 한번 설립되면 설립당시의 존재목적이 일단 달성되어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어졌는데도 폐기되지 아니하고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들어 내거나 찾아내서 자기의 기구나 단체의 생명을 지속시켜 나가려는 지속성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의 개발독재 산업화시대의 시대적 필요에 따라 생성된 후 아직도 살아남은 수많은 국공립 공사가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 예가 된다.

한동대학교의 학생징계에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국가인권위원회는 유독 동성애 동성혼을 비롯한 폴리아모리 신조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집착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내 놓은 가족 성립 기초로서의 양성평등을 그냥 평등으로 고치겠다는 헌법개정안(2017, 제32조제1항, 그리고 제15조의 “성적 지향”) 등에서도 들어내고 있다.

솔직히 이러한 일은 그 쪽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나 운동가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강력하게 하게 만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겨우 폴리아모리 신조의 옹호를 자기의 존재이유로 삼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위해서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폴리아모리에 대한 신조 옹호와 극적으로 대조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본령인 인권옹호 영역이 있다. 북한주민의 인권옹호 영역이 그것이다. 북한정권이 최악의 인권탄압 정권이라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또 북한주민이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안다. 그런데 가령 권고결정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직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북한 인권에 관련한 연구, 보고서작성, 교육 등, 그리고 2016년에 제정된 북한인권법을 실현하려는 조치들, 예컨대 북한인권법상의 북한인권재단의 현실화를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들, 그런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정부기구, 예컨대 통일부나 외무부라면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서 북한의 인권에 관한 언급이나 인권보호를 위한 정책실현을 자제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독립된기구라면서(국가인권위원회법 제3조) 정부의 정책기구처럼 북한인권실현 문제에 관련하여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서 연구, 보고서 작성, 교육 등 할 수 있는 활동 아무것도 자제하는 입장을 어떻게 변명하며 정당화할 수 있는가? 독립된 기구가 맞는가? 그러면서 정작 북한 인권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시민단체, 탈북단체의 활동에 맡기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를 또 다시 강력하게 묻게 하는 대목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상 독립은 국가인권위원회법(제3조)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업무상 중립성은 명시적으로 언급이 없는 만큼 그 중립성도 요구되는 것인지 아닌지 반드시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독립성의 요청에는 중립성의 요청은 당연히 포섭되어야 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왜나면 독립성이 다른 기관이나 단체나 사람으로부터의 독립의 요청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압력을 넣는 그 어느 것 사이에서의 중립의 요청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소수자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진보 측의 가치 즉 폴리아모리에 편드는 것 즉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에도 독립 즉 중립의 요청을 어기는 것이라 판단된다. 그리고 북한정부의 심기를 불편케 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친북적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독립성내지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판단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정 이념과 정책으로부터도 독립 중립해서 오로지 대한민국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 업무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기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는 특정 이념과 가치를 맹목적으로 지키고 따르는 충견 역할의 수행이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형식적으로는 권고의 효력을 가질 뿐 법적 구속력을가지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결정은 사실상의 구속력은 지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방에 내려 보낸 인권조례제정의 권고에 따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시 도교육구청에서 제정 시행되고 있는 지방인권조례나 학생인권조례가 그 대표적 사례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행사하는 사실상의 권력은 국회, 행정부, 사법부의 권력 모두에 두루 걸친다. 그 사실상의 권력은 입법사항도 행정사항도사법사항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광범위하게 미치는 사실상의 권력에 대하여는 이를 통제하는 효율적인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없다. 견제장치가 있다면 국민의 여론이 있을 뿐인데 국회가 나서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폐기하거나 개정에 임하지 않으면 무소불위의 사실상의 권력을 제어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나 장치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법기술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위헌 무효를 다투는 헌법소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을 다투는 행정소송의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지니는 사실상의 구속력을 근거로 헌법소원이나 행정쟁송의 가능성을 연구해 볼만은 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징계취소권고 결정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적 근거 없이 학교당국이 문제된 학생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언명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한 만큼 그 결정에 관여한 위원들의 업무방해죄, 권력남용죄, 명예훼손죄 등의 성립과 이에 근거한 고소 가능성도 한번 연구해 볼만하다고 생각된다.

<미주>

1) John Finley Scott, Internalization of Norms: A Sociological Theory of Moral Commitment,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71) 참조.
2) 성경은 곳곳에서 법의 정신을 지시해주는 “자유,” “정의,” “진리,” 평등, 공정성, 정직, 성실성 등을 거론함으로써 나쁜 일에 대한 처벌의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의를세우기 위해서도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정의와 법을 따라야할 옳바른 시민이나 학생들의 시민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교육하기에 매우 훌륭한 택스트가 되리라 생각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너희는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위기 19:15), “너희는 재판할 때나 무게나 양을 잴 때불의를 행하지 말고”(레위기 19: 35),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로마서 13: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16)와 같은 성경구절이 그러하다.
3) 미국연방대법원 판결 Schenck v. U.S. 249 U.S. 47, 1919) 참조.
4) 최대권, 헌법학:법사회학적 접근, (서울: 박영사, 1989), 72-10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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