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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세이연>, 과연 정통 삼위일체관인가?(1)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관은 이단적 삼위일체관이다.
2019년 01월 18일 (금) 10:34:13 진용식 목사 jin-bible@hanmail.net

진용식 목사(세계한인기독교 이단대책연합회 회장)

   
▲ 진용식 목사

서론: 이번 <미주 세이연>의 반박문 역시 천박한 것이었다.

1) 그동안의 논쟁 과정.
지난 2018년 9월 20일에, <미주 세이연>은 자신들의 홈피에 “진용식 목사에 관한 연구보고서”라는 글을 게재하여 필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만행을 저질러 한국교회에 충격을 주었다. 필자는 분노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픈 마음으로 2018년 9월 27일에 “<미주 세이연>의 천박한 연구에 답한다”라는 글을 본지에 게재하였다. 그러자 <미주 세이연>은 2018년 10월 1일에 “진용식 답변에 대한 반박문”이란 제목으로 1차 반박을 하였고, 이어서 10월 8일에는 상임위원 중에 한 사람인 평신도 이인규 씨가 “교회와 신앙에 대한 반박문”이란 제목의 글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반박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서로서로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미주 세이연>의 신학은 평신도 신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이후 필자는 본 글까지 포함하여 현재 총 11회에 걸쳐서 <미주 세이연>의 연구 기준이 잘못되었음은 물론, 필자의 글을 조작까지 하여 이단으로 규정하였음을 밝혔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72
거기에다 한국교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신학자들이 직접 나서 필자의 삼위일체관은 정통 삼위일체관인 반면에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관은 잘못임을 4회에 걸쳐 밝혔다. 그 신학자들은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원(이종윤, 오덕교, 이상규, 김성봉, 이승구, 안명준, 최윤배, 이은선, 박용규, 연규홍, 박응규, 안상혁, 김요섭, 권오윤, 장세훈, 우병훈, 박태수, 박성환, 김성욱, 이성호)과 그 외에 서철원 교수, 권성수 교수, 그리고 김길성 교수다. 이것만으로도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삼위일체 비판이 잘못되었고 오히려 저들의 삼위일체관에 문제가 많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도합 15회에 걸쳐 필자에 대한 <미주 세이연>의 이단 규정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고 비판하였다.

그 후, 무슨 일인지 <미주 세이연>은 죽은 사람들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거의 3개월이나 지난 후인 2018년 12월 28일에 <시사타임즈>(엄무환)라는 언론에 반박문을 게재하더니 한 참 후에 <미주 세이연> 홈피에도 반박문을 올렸다. 지금까지 <시사타임즈>의 엄무환은 <미주 세이연>의 글을 단독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 엄무환과 <미주 세이연>은 뜻을 같이 하는 언론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저들이 늦게 보인 반응이었지만, 필자는 위 반론은 진실과 진리를 더 선명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게 생각된다. 먼저 2회로 나누어서 삼위일체문제부터 재 반증하려고 한다.

2) 필자가 <미주 세이연>의 연구를 천박한 연구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주 세이연>의 필자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필자가 쓴 첫 번째 반박문 제목이 “<미주 세이연>의 천박한 연구에 답한다”라는 것이었는데, 위 반박문 역시 그 천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확신한다.

이 반박문은 <미주 세이연>의 11명의 상임위원들이 회람하여 발표한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 그렇게 믿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며, 믿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2회의 글에 대하여는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런 변명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11명의 상임위원들 중에 이제 와서 한 사람이라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 <미주 세이연>은 이런 수준 이하의 형편없는 이단 연구를 하여왔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 되었고, 거기에다 누구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두렵고 떨리는 일을 하고, 그것도 자기 이름이 들어간 연구 발표를 하는데 그렇게 무관심한 연구를 하도록 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세상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지난 무려 4-5개월 동안 이 문제로 그렇게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는데도, 상임위원이란 사람이 내용도 확인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란 점 하나만으로도 이단 연구를 그만 두어야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필자는 왜 처음과 동일하게 ‘왜 <미주 세이연>의 연구가 천박한 연구라고 할 수밖에 없는가?’를 피력하려고 한다.

첫째는 신학적 수준이 이단연구를 해서는 안 되는 기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미주 세이연>은 첫 번째 보고서에서 이미 많은 실수를 했고 특히 삼위일체 문제에 대하여 큰 오류를 범하였다. 이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은 물론 한국교계가 신뢰할 수 있는 적지 않은 신학자까지 나서서 <미주 세이연>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물론 굳이 신학자가 아니라도 기초적 신학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들의 삼위일체는 정통적 삼위일체가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11명의 상임위원들은 끝까지 필자를 이단으로 만들기 위하여 가졌던 그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늦었을 때가 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금이라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우선 그것을 밝히고 사과해야 하며, 또 잘못된 연구라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일이요 나아가 자신들이 살 길이란 점을 알기 바란다.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거짓과 교만 외에는 없다. 

둘째는 첫 번째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반론도 거짓말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저들의 조작을 한 두 가지 지적한 것이 아니다. 저들은 마땅히 필자가 지적한 조작들에 대하여 하나라도 피하지 말고 모두 답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다. 필자가 조작했다고 지적한 문제들은 삼위일체의 조작으로부터 시작하여 십여 건 이상 되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겨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문제’와 ‘일곱  영 문제’ 정도만 대답하였다. 그것도 ‘일곱  영 문제’는 지극히 피상적 대답을 하였다. 필자가 지적한 조작 중에 하나만 사실이라도 이단 연구를 그만 두어야 할 무서운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본 글에서는 삼위일체 문제를 취급하고 이어서 하나씩 구체적으로 다시 반증하겠다.

이번 <미주 세이연>의 반론을 보면, 객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잘못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그것을 시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였고, 자신들의 오류를 지적한 한국교회의 대표적 신학자들까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하극상을 연출하였다. 그 아집과 고집과 교만을 볼 때, 저들의 반론은 천박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저들은 유독 필자가 옳고 <미주 세이연>이 잘못이라고 한 <한국장로교신학회>에 대하여만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한국장로교신학회 외에 필자의 사상이 옳고 저들의 사상이 잘못이라고 주장한 서철원 교수, 권성수 교수, 그리고 김길성 교수에 대하여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학자들까지 이단으로 공격하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장로교신학회원의 주장은 틀렸고, 서철원 교수, 권성수 교수, 그리고 김길성 교수의 의견은 옳다는 말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위 반론 글이 보여주는 형식적 문제들은 처음 저들이 조작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들의 무지와 조작을 확인시켜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미주 세이연>은 잘못된 신학적인 잣대로 필자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미주 세이연>의 연구와 상임위원들 중에 주로 이단을 규정할 때 많이 사용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양태론이요, 하나는 이원론이다. 양태론과 이원론으로 이단 규정을 많이 한 모 교단 연구도 이들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 분명하다. 같은 사람이고, 또 서로 깊은 친분을 가졌고, 필자에 대한 연구가 그것을 더 선명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들의 삼위일체관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삼위일체에서 잘못된 이단 규정을 하였던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이원론 문제는 그보다 더 문제이다. 저들이 습관적으로 거론한 양태론과 이원론 문제에 대하여 다시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이 이원론은 중요한 문제로 후에 밀도 있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이단으로 규정하려면 무엇보다 그 신학적인 기준이 옳아야 한다. 잘못된 기준으로 하는 모든 이단연구는 모두 잘못이다. 그것은 뒤틀린 잣대로 잰 모든 길이는 정확하지 않음과 같고, 잘못된 저울로 단 무게는 다 정확하지 않음과 같다. 이는 죄악 중에 최고의 죄악이다. 이제 삼위일체 문제 본론으로 넘어간다.

본론: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관은 이단설이다.

1. <미주 세이연>의 위 반론에서 삼위일체 문제에 대하여 보여준 형식적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첫째, 저들이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냐 다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음식점 하는 분들이 저마다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한 점에 대하여.

처음에 필자는 위 글을 읽고 내 눈을 의심하였다. 그것은 저들은 음식점의 원조타령 수준의 이단연구를 하였고, 그런 자세로 필자를 이단으로 하였다는 말로 들렸다. 다른 이단연구도 그런 ‘원조타령’ 수준의 이단연구를 해서는 안 될 일인데 동료 이단연구가를 이단으로 하면서 그것을 원조타령이라고 하는 저들을 보고, ‘필자는 원조타령 수준의 이단 논쟁이라면 내가 먼저 그 원조를 포기하겠다.’고 외치고 싶다. 이제 음식점 원조타령 수준의 이단 연구를 그만 두기를 충고해두는 바이다.

둘째, “사실 심각한 문제는 양태론이 문제가 아니고 요한계시록 해석과 구원론 문제였다.”고 한 점에 대하여.

필자는 처음에 <미주 세이연>이 필자에 대한 연구보고를 보고, 먼저 삼위일체부터 대답하였고, 그 후에 이어서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총 11회나 반론하였다. 저들은 필자가 요한계시록 문제에 대하여 두려워 답을 하지 못하고 피하려는 것처럼 표현하였는데 이미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미주 세이연>은 그것을 가리켜 “사실 심각한 문제는 양태론이 문제가 아니고 요한계시록 해석과 구원론 문제였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 속에 저들의 이단연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 삼위일체 문제는 심각하지 않고 요한계시록과 구원론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를 양태론자로 규정하고 ‘그것은 심각한 이단성과 관계가 없다는 말인가?’ ‘양태론 정도는 이단 연구의 핵심 문제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들은 적지 않게 양태론으로 이단 규정을 하였는데, ‘그 역시 이단의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란 전제 아래 했다는 말인가?’ 역사적으로 양태론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는데, ‘그것도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도저히 알 수 없다.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누구를 이단으로 한다는 것은 감기에 든 사람보고 “곧 죽을 시한부인생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필자가 혹 요한계시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여도 양태론을 주장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단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왜 양태론 문제는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미주 세이연>의 이단연구 자세이며 수준이란 점을 독자들은 알기 바란다.

필자는 <미주 세이연>의 11명의 상임위원들 중에 한 사람도 삼위일체 문제의 오류를 깨닫지 못하는 것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한 교단에서 신학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본 글에서는 우선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2. ‘신학자들이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미주 세이연>은 칼빈을 비롯한 모든 신학자들이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거짓된 주장이다. 저들의 주장부터 보자.

“칼빈이나 바빙크나 벌코프나 박형룡박사나 누구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는 논리를 주장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와 같은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다’라는 메시지가 없다.”

<미주 세이연>의 위 주장은 거짓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저들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거론하고 인용도 하였지만, 면밀히 찾아보지도 않았다. 아니 의도적 거짓말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먼저 이에 대한 <기독교강요>부터 살펴보자.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므로 결국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호와이신 것이다.” (생명의 말씀사, 기독교강요 상권 p.224)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에 관한 자존하시는 분이되기 때문이다. 그가 여호와라면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이 바로 그와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41)

놀랍게도 <미주 세이연>은 예수님을 ‘여호와’ 라고 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이렇게 언급하였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다’라는 메시지가 없다. 칼빈 기독교강요 제1권(the book one)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er) 제13장 제20(chapter ⅩⅢ. 20)에서 삼위일체 하나님(The triune God)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름이 특별화하지 않고 언급될 때마다 아들과 성령은 성부와 마찬가지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연계되었을 때는 두 분의 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에 인격들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각 인격에는 특별한 특성이 있고 그분들 안에 질서가 따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는 시작이요 원천이며 구속은 아들과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고 자주 언급되지만 특히 하나님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다’라고 기록한다.”(미주세이연 12월 28일 반박문)

이 내용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다.’고 했으니 여호와의 이름은 성부에게만 적용된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강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다’라는 메시지가 없다고 단정하였다. <미주 세이연>의 이 주장은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인용한 위 내용 바로 그 다음 줄만 읽어 보아도 정확하게 예수님이 ‘여호와’ 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부분을 잘라버리고 인용한 것이다. 그 다음 부분을 확인해보자.

“그렇다고 이것이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조금도 손상 시키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여호와라고 증거 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사도들이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항상 본질의 단일성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자를 가리켜 성부와 다른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증스러운 신성 모독죄가 된다.”(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234) 

저들은 이 부분을 잘라버린 것이다. 기독교강요 어디를 다 찾아 볼 것도 없이 바로 아래 글을 보면 확실하게 그리스도가 여호와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아래를 보라. 그것이 얼마나 선명한지를.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특별한 설명 없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은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밝히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12:8)‘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그리스도의 응답을 받은 바울은 즉시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그런데, 여기서 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고 있음이 확실하다(칼빈, <기독교강요> 상권, p 234) 

즉 예수님이 여호와임을 이보다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증거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성부 성자가 동시에 표현 될 때는 하나님의 호칭이 성부에게 해당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이제 한국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형룡 박사의 주장을 보자. 더 선명하다.

성자에게 신적 명칭들을 적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이라 칭한다.(렘23:5,6; 욜2:32; 사9:6; 40:3; 참고▶행2:21; 딤전3:16)”(박형룡박사, 조직신학2권, p240)

칼빈도 박형룡 박사도 다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여야 하는가? 그들의 무지와 아집과 교만과 거짓말을 잘하는 본성 때문은 아닌가? 염려스럽다.

그러면 <미주 세이연>의 상임위원 중에 한 분인 평신도 이태경 장로의 장인인 고 원세호 목사는 뭐라고 하였는가를 보자. 그 분도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주장하였다. 이 장로가 평신도로 삼위일체 문제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하여도, 바른 의식만 있어도 자기 장인을 간접적으로 이단을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예수님은 구약의'주'(여호와) 이십니다.”(원세호, 요단출판사, 여호와의 증인의 정체, 54쪽) “예수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여호와’이시다.”(원세호, 요단출판사, 여호와의 증인의 정체, 310쪽) 

칼빈을 비롯한 모든 신학자들은 다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는 주장은 놀랍게도 <여호와의 증인>과 <미주 세이연> 만이 하는 주장이다. 개혁 신학자 중에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학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다음 글에서 이어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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