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오피니언
       
오직 ‘하나님께만’ 바치는 돈, 헌금
2018년 11월 02일 (금) 11:26:21 권영삼 목사 032kwon@naver.com

권영삼 목사 / 광교사랑의교회 담임
 

   

▲ 권영삼 목사

K집사는 서울 강남에서 24년째 귀금속 전문점을 경영한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폐암을 선고받았다. 그것도 3기에 이르는 중증이다. 게다가 암세포가 림프를 통해 뇌에도 침투해 있다. 50대 중반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는 그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그의 진정성 있는 기도와 주위 사람들의 도고로 K집사는 지금도 연명하고 있다. 그의 신앙은 정금같이 다듬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K집사가 가장 먼저 믿음의 행보를 내딛은 부분은 십일조다.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K집사는 하나님께 인색했다고 고백한다. 가게 임대료와 세금, 자녀교육비, 생활비 등을 1순위로 빼놓고 자신이 사용할 용돈마저 두둑하게 챙긴 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다. 그러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리 만무하다. 그런데 암 투병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본 결과 그야말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음이 가장 먼저 회개거리였다고 한다.

K집사는 여전히 항암 중에 있다. 폐를 강건하게 하기 위해 일주일의 대부분을 공기 좋은 강원도 횡성에 기거하다 주말에 자택이 있는 수도권으로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사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수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십일조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있다. 진즉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헌금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돈

헌금(獻金)은 돈을 바친다는 뜻이다. 돈을 바치되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단어 중에는 대상을 하나님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는 게 있다.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피조물 된 인간의 노래다. 마찬가지로 헌금도 대상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한정된다. 사람에게 주는 돈은 헌금이 될 수 없다. 헌금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해 성탄절 즈음, 담임목사는 해외선교사로부터 성탄카드를 받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선교사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던 터라 소식이 반가웠다.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안부인사 겸 선교지 현황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목사님께서 헌금해 주셔서 가족여행을 잘 다녀오게 됨을 감사합니다”라는 글귀 때문이다.

담임목사는 사비를 털어 선교사에게 돈을 보냈다. 한 해 동안의 수고를 격려하려는 취지에서 가족여행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런데 카드 내용에 ‘헌금’ 때문에 마음이 걸렸다. 목사는 선교사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이 보낸 돈은 헌금이 아니라 후원금임을 분명히 밝히고 앞으로는 용도에 맞는 용어를 사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같은 돈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면 헌금이고 어른에게 드리면 공경이다. 자녀나 아이들에게 주면 그 돈은 용돈이다. 이모에게 용돈을 받은 조카가 “저를 공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면 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엄마는 아들에게 “제게 용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 옳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인이 공천헌금을 받고 구속되었다는 말도 온당한 표현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지원이나 후원을 받았다면 “저에게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하는 것이 마땅하다. 괜한 말로 오해나 혼란을 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후원받은 선교사도 마땅하다. 우리에게 찬양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신 것처럼 헌금의 대상 역시 오직 하나님이시다.
 

헌금은 시험거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가운데 십일조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교회에서 십일조는 신앙의 척도다. 자신의 수입에서 10%를 떼어 ‘다니는 교회’에 헌금하는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다.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로 운영된다. 교회 주보엔 십일조를 낸 교우들의 이름이 인쇄되고 일부 교회에서는 십일조 금액까지 공개한다. 그런 십일조는 신앙인 누구를 막론하고 시험거리다.

필자가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강단에서 십일조 설교를 들으며 ‘교회가 무슨 돈을 그리 밝히나?’하는 의아스러움이 있었다. ‘주일예배에 나가주는(?) 것도 고마워해야할 텐데 수요예배와 구역예배, 금요기도회 그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돈까지 내라고?’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십일조 이야기를 하는 목사님은 돈만 밝히는 세속적인 목회자라고 혼자서 낙인찍곤 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문턱을 넘고 들어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런 기류는 비단 초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십일조에 대한 이상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형편이 어려워 십일조를 못 내는 교인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슬그머니 교회를 포기한다는 말은 고전에 속한다. 근간 들어 ‘십일조 무용론’에 대한 담론이 성경해석학적 영역을 넘어 신학적, 교회사적인 배경을 갖고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헌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대부분 헌금의 오용 내지 악용 때문에 발생한다. 헌금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없애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그 귀한 헌금을 온전하게 사용하면 될 일이다. 필자는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 ‘헌금 무용론’의 무용론을 펼칠 예정이다.
 

헌금은 마음을 드리는 것

어느 교회든 헌금주머니나 헌금함이 마련되어 있다. 또 전통교회에는 십일조, 감사헌금, 월삭헌금, 선교헌금, 구역헌금, 건축헌금, 절기헌금, 주일헌금 등 온갖 헌금봉투를 꽂아놓는 헌금봉투꽂이가 진열되어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돈 없으면 교회도 못 다니겠다는 마음이 든다. 예배당 입구에 마련된 헌금함을 마주할 때마다 주눅이 든다. 또 예배 중 헌금주머니가 내 앞에 이르렀을 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준비한 헌금에는 부담은 사라지고 드리는 자의 마음이 기쁘다.

어쩌면 그런 부담마저도 이젠 옛날 이야기로 치부될지 모른다. 헌금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대형건물에 비치되어 있어야 할 현금자동입출금기(ATM·Automated Teller Machine)가 교인의 원활한 헌금을 돕기 위해 교회 안에 설치된 곳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L장로는 최근 한국교회에서 각광받고 있는 ‘온라인 헌금’이 영 마땅하지 않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어떻게 기계로 대신할 수 있느냐?”며 발끈한다. 마음과 정성이 빠졌다는 면에서 온라인 헌금을 하는 자의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꼬집는다.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정성이 들어가야지, 기계로 하는 게 무슨 정성이 들어간 헌금이냐?”고 힐책한다. 하지만 모든 은행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휴대폰으로 모바일 뱅킹을 하는 시대에 구습을 좇아 헌금하라고 한다면 머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헌금의 방법은 달라졌어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은 헌금자의 태도다. 헌금은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드림의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헌금은 단지 우리 수입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정도가 아니다. 헌금은 우리 삶 전부를 드리는 증표가 되어야 한다.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므로 드리는 자의 준비된 마음이 중요하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 있는 한 교회에서는 헌금 시간이 되면 담임목사가 “이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성도들이 크게 박수를 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을 내는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헌금을 시작할 때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치면서 준비한다는 것이다. 박수에 인색한 사람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그 교회 성도들은 헌금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헌금에는 반드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께 항상 가장 깨끗한 돈을 골라 십일조를 드렸다. 주말이 되기 전에 은행에 가서 하나님께 바칠 헌금을 신권으로 바꾸는가 하면, 돈이 구겨져 있을 때는 다리미로 다려서 깔끔하게 준비하여 드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성도는 자신이 주일에 입고 갈 옷도 전날에 다 준비해 놓을 정도로 주일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주일은 이미 준비하는 시간부터 이미 마음이 온통 주님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필자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 부장장로님은 어린이들에게 드릴 헌금을 이렇게 준비해 보라고 가르쳐 주셨다. 
첫째, 헌금은 항상 집에서 준비하라. 헌금봉투를 여러 개 가지고 가서 미리 집에 준비해 놓으면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릴 수 있다.

둘째, 항상 토요일에 드릴 예물을 구별하여 봉투에 넣은 후 성경책에 넣어 두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봉투에 예물을 넣어 정성껏 드릴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간혹 부모가 교회 앞에서 자녀들에게 헌금을 주느라 지갑을 여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헌금 교육이다.

셋째, 항상 먼저 십일조와 헌금을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라. 이는 물질 사용에 있어서 하나님께 드림이 우선임을 명심하는 과정이다.

넷째, 절대 인색함으로 드리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즐겨 내어 하나님께 사랑받을 것을 권면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다섯째, 헌금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주인 되심의 고백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지금은 별세하셔서 영원토록 주님 품에 계실 장로님의 그 가르침이 그립다.
 

오늘 내가 드리는 예물 속에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돈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우리의 소유와 삶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 헌금이다. 헌금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삶의 전부를 드리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영삼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장재형 씨의 올리벳大 '수천만 달
이재록측, 교계 언론사 등 전방위
‘속죄’ 문제, <미주 세이연>에
<미주 세이연>이 제기한 계시 문
“김기동 씨는 성락교회 감독 지위
순풍 부는 성락교회 개혁측에 대한
콩고자유대학 핵심 문제는 '소유권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