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오피니언
       
[김희건 빛컬럼] “무엇을 구하느냐”
2018년 08월 20일 (월) 13:23:52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어야 하고, 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 인격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외모도 중요할까? 오래 전 필자가 신대원 입학을 위하여 면접시험을 보는 중, 눈이 몹시 무섭게 생긴 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분을 학교에서 보지 못했다. 외모 때문인지, 입학시험 성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외모도 혐오감을 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의 소명이 가장 중요한 근거이지만, 그것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신학적 소양이라 할 수 있다. 조직신학, 성서 신학, 역사 신학 등 주요한 학문에 대한 올바른 식견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 그 신학적 소양이 나중 목회에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신학적 소양과 관련하여 ‘복음’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신학적 깊은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원이 무엇인가? 이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하여 여러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의 범죄로 말미암아 원래 지으신 창조의 질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구원은 그 관계 속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경배하고 섬기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의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를 향해 사랑과 신뢰로 사시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으로 사는 것이 원래 지음의 목적이었다. 구원이란 관계적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로 확장되고, 이어 자연 속의 확장되는 것이다. 신뢰와 사랑의 관계, 자연을 돌보는 삶, 그런 관계적 삶 속에서 사람은 가장 깊은 삶의 차원을 맛보고 참여하게 된다.

   
 

복음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마땅히 공경하며 섬기는 삶으로 불러들인다.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연장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모든 윤리와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이 관계가 잘못 되면, 다른 모든 관계가 잘못되고, 삶의 근본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질 수 없다. 십계명에서 보는 바, 모든 계명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고 섬기는 데서 시작한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 가장 큰 계명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웃 속으로 확장되는 것을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디서 가장 깊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가? 그것은 관계 속에서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게 된다. 그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그 관계 속에 살지 못하면, 다른 것에서 만족과 의미를 찾는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 중심의 삶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To Have, or to Be (소유냐 존재냐)’에서 언급한대로 현대 사회는 ‘구매력’에 의해 사람을 평가한다고 한다.

돈 많이 가진 사람이 우대받고, 무엇을 살 수 있는가? 그 능력에 의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세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는 가난해도 인품이 뛰어나고, 돈 없어도 고결한 사람이 인정을 받았지만, 오늘날 세대에는 별로 가치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못 생겨도 돈 많으면, 시집가려고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못 배웠어도 돈 많으면 인기가 있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 물론 돈 많음 그 자체는 의미가 없고,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이런 사람은 학교의 이사장도 되고, 어느 기관에서 가장 환영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서와 시대 속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한 유혹 속에 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가치를 좇아 살 것인지? 이 시대의 가치를 좇아 살 것인지? 항상 유혹을 받고 대답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가치란, 하나님을 모시고 그 뜻과 돌보심 속에 사는 것, 하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그 나라와 의를 좇아 사는 것,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사는 것 등을 말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고백하면서, 그 돌보심 속에 살고, 그 거룩한 뜻을 좇아 사는 그 사람이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뜻을 좇아 살기 위해 이 시대 우상의 수준에 가 있는 돈을 중심에서 내쫓아야 한다. 의와 진실을 위해 돈을 잃어야 할 때도 있다. 사는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돈의 권세를 힘입어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영광과 뜻을 좇아 살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이런 가치를 추구해야 할 교회, 또는 목회자들이 그 가치 대신 다른 것을 좇아 살고 있어 교회와 사회 속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신앙의 이름으로 부자 되기를 추구하는 것,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기복 주의 신앙, 또는 성공주의 복음은 사실, 하나님을 빙자한 우상 숭배의 다른 형태인 것을 알고 있을까? 독일의 여성 신학자 D. 죌레(Soelle)에 의하면, 사람이 God을 섬기지 않으면, goods(재물)을 섬긴다고 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진정 섬기는 대상이 God인가, 아니면, goods인가?

기복주의 신앙을 설파하는 사람은 자신이 복음 아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복의 개념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완성되면서, 물질적, 가시적 복에서 신령한 복으로 옮겨진 것을 알고 있을까? 기복주의 신앙을 전파하는 목회자들은 주로 구약을 인용한다. 아브라함의 복, 이삭의 복, 야곱의 복, 등등.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눅 12: 15)는 말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식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마침내 큰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딤전 6: 10)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온갖 비난을 교회 안과 밖에서 듣는 현 세태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기복신앙은 그 근저에 물질 숭배의 정신이 들어 있다. 현대 사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에 대한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가짜 복음으로 번성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오늘날 교회 세습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교회마다 이런 기복신앙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요한 관심을 그렇게 어렵게, 쉬지 않고 기도하고, 어렵게 구한 물질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물질을 가진 자가 크게 인정을 받는다는 세태를 잘 알고 있다. 옳다. 오늘날에는 물질을 많이 가진 자들을 높이고 환영한다.

그렇게 행함으로 빈 손 들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겨 그런 행위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네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 함이 아름답다”고 했다(롬14: 21)고 바울은 가르친다. 이제 교회 안에도 금수저, 흙수저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교회를 섬기는 많은 목회자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겨 주고 있다. 거기에 더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양심 있는 분들, 교수, 학생, 목회자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물질과 그것이 가져 오는 명성에 목을 메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부자 세습의 당사자들은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렇게 환영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예수님이 그러했다. 복음의 핵심, 복음 중의 복음, 피와 살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떠나갔다(요 6: 66).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 중에도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 중에 소수가 복음에 응답하여 믿음과 생명에 이르렀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6: 14).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가? 그들은 성경의 참 복음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태에 영합하는 기복 신앙을 듣고 따르기 위해서다. 기복 신앙은 물질주의 우상의 다른 얼굴임을 아는가?

그런 기복주의, 성공주의 신앙과 목회로 일구어 놓은 기업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 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심사요, 행동이다. 가장 가관인 것은 자기들의 욕심을 기껏 채우고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누구나 마음대로 인용하는 착하고 힘없는 존재로 홀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사람이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70년을 살아온 사람이 바뀔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뀐다는 것은 사람에게 천지개벽을 체험하는 것인데,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 주변에서 무슨 의로운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이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대에 무엇이 한 사람을 가장 인정받게 해 주는지를 알고 있다. 돈을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요, 환영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못 생겨도 괜찮고, 못 배워도 상관이 없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여기 저기 많은 ‘장(長)’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가? 교회 세계 안에서조차 돈의 위세에 굴복하여, 양심을 팔고 웃음을 파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안타깝고 불행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게 ‘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교회의 가치를 떨어 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계14: 4). 자기 소욕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오직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뜻을 찾고 그 길로 가기를 원한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그를 경배하고 섬기는 삶이라 믿는다. 언젠가 그를 눈과 눈으로 보고, 우리 삶을 보고할 날이 있음을 알고 산다(롬14: 4). 오늘날 물질주의 문명의 시대는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된 사람을 구별하는 큰 시험의 시대라 생각된다. “무엇을 구하느냐?”(요1: 38) 이 말씀 앞에 조용한 시간을 갖고 대답해야 한다.

교회와신앙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김용의 선교사 이단 시비 무엇이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원 전원 '교
김삼환 목사 반응 “더 이상 가만
이단 교주는 모두 소시오패스(반사
“헌법위원회 보고서 아예 받지 않
사진으로 본 9월 10일 통합총회
명성 불법세습 용인한 총회재판국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