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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 신앙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2018년 08월 16일 (목) 13:29:20 권영삼 목사 032kwon@naver.com

권영삼 목사 / 광교사랑의교회 담임

   

▲ 권영삼 목사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알의 역사는 ‘바알 극복의 역사’이자 바알을 물리친 ‘믿음의 영웅들’의 역사이다. 기드온과 엘리야, 호세아 등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백성 안에서 바알 숭배가 성행했던 시기를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진리의 횃불을 든 믿음의 영웅이었다. 이들이 바알과 싸운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유목민 이스라엘을 매료시킨 농사의 신 바알

광야생활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자신들이 믿던 하나님과 너무나 흡사한 바알 신을 만나게 되었다. 더욱이 자신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반면, 가나안 사람들은 비옥한 땅에서 농사 지으며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이스라엘은 자연스럽게 바알에게 매력을 느꼈다.

바알의 형상은 금송아지였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이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가나안 신 바알을 혼합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나 바알이나 그 신이 그 신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 사사시대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로부터 왕국이 형성되기까지의 200년 역사를 사사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은 유목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삶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정치 체계는 연합체제에서 통일왕국으로 넘어가는 등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 시기, 이스라엘은 주위 가나안 여러 종족들과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이들이 심각하게 맞닥뜨린 문제는 가나안의 농경문화를 뒷받침하는 가나안 종교와 유일신 여호와 신앙과의 갈등이었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남는 문제는 가나안 종교와의 전쟁에 달려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종교문제 차원을 뛰어넘는다. 생존과 번영, 실존과 존재의 문제였다.

바알이 하늘과 땅, 폭풍을 통해 소출을 주관한다고 믿는 가나안 주민들의 예배는 바알에게 영향을 끼쳐 풍년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본래 광야에서 유목 생활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지의 비옥함이나 농작물의 소출과 연결된 가나안 사람들의 문화와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가나안 주민들이 풍년을 기약하는 바알 종교는 강력하고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인가, 바알인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백성들에게 촉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은 본래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왕국을 세우고 살림이 늘어나자 그들은 바알에 흠뻑 빠졌다. 그리하여 바알은 이스라엘에서 꽤 번성했다. 구약성경에는 바알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지명과 인명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하나님을 기능의 신으로 전락시킨 분열왕국의 바알 신앙

다윗 이후 왕권을 이어받은 솔로몬은 부국강병을 위해 외국과 교류하면서 자본과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 적극 수용하는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에 바알 신전이 존재했다. 나라를 분단시키고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은 신생국가의 정통성과 대중성을 위해 바알을 이용했다. 여로보암은 바알을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선전했다(왕상 12:28-30). 하나님 자리에 바알을 슬쩍 끼어 넣어 하나님과 바알을 섞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여로보암의 죄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주전 9세기,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바알 토착화의 절정을 이룬 인물이다. 아합은 여호와 신앙과 바알 숭배의 두 축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이원적(dualistic) 종교정책을 시도했다. 고대 전쟁신으로서 왕국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여호와가, 다신교 세계의 현실적 흐름과 경제와 교역을 위해서는 바알이 필요했다. 이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위한 묘수였다. 하지만 이러한 아합의 정책은 여호와를 기능화(functionalisation)시킨 것이다. 우리가 바알 신앙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엘리야는 이원적 종교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보고 반기를 든 선지자다. 당시 아합은 여호와와 더불어 바알을 섬기자는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오직 주님만 섬기라’는 배타적인 ‘유일 섬김’(monolatry)을 주장했다. 아합은 절반만이라도 여호와 신앙을 지켜주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주장했을지 모른다. 이에 맞서 엘리야는 주님은 절반으로 절대 축소될 수 없는 분임을 명백히 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전부였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전부여야 했다. 엘리야에게 ‘반(半)주님’은 ‘반(反)주님’과 같은 말이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갈멜산 전투가 벌어졌다. 여호와와 바알 중 누가 참 하나님인지 가려내자는 것이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바알은 오른손에 불을 내리는 번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바알의 장기인 불을 내리는 것으로 시험하자고 도전하였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홈 어드벤티지(advantage)를 주었다. 갈멜산 대결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이다. 엘리야가 이렇게 담대하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기반이 되었다.

주전 640년경에 출생하여 8살의 나이에 등극한 요시야 왕은 하나님 눈에 옳은 일을 행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을 걸었다(왕하 22:2). 요시야는 어린 몸으로 하나님을 찾아 산당과 아세라 목상, 조각 신상, 주조 신상들을 치우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화하였다.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고 제단 위의 분향단을 부수었다. 나아가 이방 신상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그 가루를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렸다. 그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뼈를 그 제단 위에 태웠다.

요시야 왕 시대에 활동하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쳤던 메시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바알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렘 11:11-14).

북이스라엘이 패망할 무렵에 활동하던 호세아 선지자 역시 바알 신앙의 심각성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전한 선지자였다. 호세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로 설정하여 설명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광야에서 맺은 부부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따라갔으니 이것이 바로 음행이라는 메시지였다.

호세아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보다 가나안 신 바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훨씬 더 좋은 인상을 주었다. 마치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좋아서 이수일을 버린 심순애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호세아는 이 점을 정확히 꿰뚫은 선각자였다. 그는 성(性)이 개인적 쾌락과 생산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종교를 꿰뚫는 키워드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출애굽의 하나님이야말로 참사랑과 참풍요의 하나님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호 2:5-7).

기능적 신에서 절대자로의 자리매김

바알은 매혹적이고 강력하다. 그 이유는 ‘힘과 돈과 성의 유혹’이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스며있는 본성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바알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언급되지 않는다. 포로 이후에 하나님의 적대자를 대표하는 위치는 사탄이 물려받았다. 그런데 사탄은 성경에서 본래 ‘유혹자’로 등장한다. 이 사실에서 바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바알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과ᅠ얽혀 있다. 이스라엘은ᅠ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계약을 맺은 백성이고 믿음의ᅠ선조들은ᅠ모두ᅠ하나님을 가깝게 느꼈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ᅠ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바알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가장 크게 실망시킨 장본인이다.

성경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 하나님을 향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도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바알에 무릎 꿇은 역사를 보면 인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바알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인간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오늘날 우리는 물신과 왜곡된 성 문화가 넘치는 세상에 산다. 하나님 백성은 권력과 돈이라는 유혹에 힘없이 노출되어 있다. 이런 현대 세계를 사는 하나님 백성의 처지는 힘과 돈과 성의 유혹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던 일부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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