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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건 빛 컬럼] 이단의 실체
2018년 08월 09일 (목) 10:17:22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최근 어느 이단에 속한 목회자가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여 먼 외지로 데려 갔다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기사를 읽었다.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단의 가르침에 쉽게 빠져들었을까? 곤혹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성경을 조금만 알아도 이단의 실체를 알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리 속절없이 빠져들고, 가정이 파괴되고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을까?

정작 이단에 속한 거짓 목회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변명할 뿐 아니라, 피해 당한 사람들에 대해 무책임한 언사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이단의 실체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밝혀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모든 이단들의 배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이 깔려 있다. 사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호수아가 마지막 한 말이 그것이다.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수 24: 19)

이 말씀 중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특징 짓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거룩성’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거룩하다는 말 뜻은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피조물과 같지 않은 하나님은, 그 능력에 있어서도 피조물과 구별될 뿐 아니라, 그의 생각, 지혜에 있어서도 피조물과 같지 않다. 그 구별됨, 같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은 피조물의 믿음과 경배, 찬양의 대상으로 항상 살아 계신다.

   
 

우리 인생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의 다름을 알고 대해야 한다. 그를 우리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대할 수 없다.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한 피조물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그를 대하는 일은 사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옳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넓은 간격이 있다.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거한다. 우리는 하나님편의 계시와 다가오심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들(예수)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하나님)을 알 수 없다”(마11: 27)

하나님에 대한 이런 성경의 증거를 생각하다 보면, 신앙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서부터 그 뜻을 좇아 믿고 따르고 섬기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칫 소경이 앞을 보지 못하고 더듬더듬 지팡이에 의지해서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늘의 계시를 구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일상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우리 삶을 그에게 맡기며 살고 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다만 그의 뜻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우리 생명과 삶을 그에게 의탁하며 살고 있다.

이런 신앙생활은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실수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왜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힘들고 괴로운 광야길로 이끌어 가는지, 알 수가 없어 항상 불평의 삶을 살았다. 그런 역사적 삶의 배경에서 유혹을 받는 것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규정하고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만들었던 금송아지 우상을 비롯하여, 바알, 아스다롯 등 많은 우상을 만들었던 배경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자기가 만든 우상을 믿는 일이 쉬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들으라’는 것이었다. 듣고 배우고 따르는 삶, 그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임에도 사람은 그런 삶에 항상 실패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우상을 만듦으로 사람은 그 신과의 관계에서 능동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역사는 사실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타락의 한 속성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서있지 못하고 ‘갑’의 자리에 있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현대 교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 앞에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갑’의 욕망이 살아 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일이 우리 인간에게 쉬운 삶이 아니다. 그 타락의 본성, 만사를 ‘자기중심으로’ 살고 행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이단이 사람들 속에 쉽게 자리를 잡는 이유 중에는 그들의 가르침은 공통적으로, 성경의 원 뜻을 찾고 배우는 수고를 내려놓고, 자의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성실한 배움을 요구한다. 그런 배움의 길을 성실하게 좇아가는 목회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단 목회자들의 한결같이 자의적이요, 사람의 욕망을 성경에 투사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니, 자기 해석이 얼마나 성경과 동떨어져 있는지, 본인들은 알 수가 없다(그들은 대체로 신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엉뚱하게, 함부로 해석해 놓고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 해석이 사람의 생각과 욕망에 밀착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것 같다. 하나님과 말씀을 땅으로 끌어내려 짓밟고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이단 사설의 선동자나 추종자나 그들이 바라는 궁극적 목적이 ‘물질’과 ‘권력’에 있음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사람의 생명보다도 그들이 추구하는 물질이 우선이요,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일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질을 근거로 권세를 취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세우고자 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모든 이단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 ‘물질과 권력의 추종’을 공통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사람은 수단이요, 성경도 그들의 욕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단들이 자랑하는 것이 그들의 규모와 세력인 까닭은 그것들이 그들의 위치와 주장을 지지해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단에 속한 사람의 자랑은 그들이 가진 숫자와 물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있는가? 오늘날 이단은 우상 숭배의 다른 얼굴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단들의 실상을 생각하다 보면, 기독교 본연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다시 반추하게 된다. 그것은 주기도문에 잘 표현된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일,” 즉, 하나님에게 그 거룩성을 돌리고, 그 다름(거룩하심)을 인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이요, 그 “나라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단의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더라도, 권력과 물질에 집착하는 일부 교회는 실상 이단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복신앙은 우상숭배의 다른 얼굴이다. 이런 어려운 시대, 신앙의 본질을 찾고 붙잡고 사는 일이 더욱 간절하게 요청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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