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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브엘쉐바' 네게브 사막 작은 성읍
2018년 07월 25일 (수) 11:36:05 김세권 mungmok@gmail.com

김세권 목사 / Joyful Korean Community Church(Texas, Dallas) 담임
 

   

▲ 김세권 목사

쉐펠라를 지나는 40번 유료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드디어 브엘쉐바에 이른다. 재미있는 것은 네비게이션 앱이 경찰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걸 보지 못해서 무지 흥미로웠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이 과속하면, 경찰이 지켜 서서 경고하거나, 또는 네비게이션 앱이 말해줘서 속도를 조절하게 해준다. 아주 옛날에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다가 과속하면, 무엇이 그들의 속도를 조절했던가. 하나‘xof님이 역사 안으로 개입하셔서(divine intervention) 빨리 가지 못하도록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앱에서 떠드는 히브리말이 들린다. 물론 알아듣진 못하지만, 지금 그분이 내게 속도를 낮추라고 말씀하시는 건 없나 잠시 생각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과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스케줄에 맞춰서 가기를 원하신다. 그게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다 싶다.

한참을 가는데, 정 박사님이 차를 돌려 왼쪽 길로 들어서라고 한다. 표지판은 브엘쉐바로 가려면 직진하라고 하는데, 왜 여기서 꺾어야 하는 지를 첨엔 몰랐다. 알고 보니, 교통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오늘날의 브엘쉐바 신도시였다. 조금 후 점심은 거기서 먹을 거란다.

결국 왼쪽 길로 들어서서 똥글뱅이(이스라엘의 도시는 거의 대부분이 교차로에 회전교차로 방식을 만들어놓고, 먼저 오는 차가 돌아서 방향을 정해 갈 수 있게 해놓았다. 이게 뻘겋고, 퍼런 불이 켜지는 신호등보다 효과적이란다)를 몇 개 지나 텔 브엘쉐바로 들어섰다.

거기서 국립공원을 마음대로 들어가는 자유이용권을 하나 샀다. 정 박사님은 어디서 꺼냈는지 기자출입증을 들고 왔다. 인정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여긴 받아 준단다. 거 참 신기하다. 이곳에 오래 살면, 그런 일도 있다. 입구에서 떠들썩한 한 무리의 미국사람들을 만났다. 자기가 일행을 미국에서 끌고 온 목사라며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무척 쾌활한 사람이었는데, 정 박사님이 히브리대에서 학위를 했다니 성경에 관해 묻는다. 시므이에 관해 물은 건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대답을 못했다. 다시 보면, 이름을 일러 줄 건데 말이다. 그런 걸 뭘 물어보나, 사무엘서만 읽어봐도 아는 건데 말이지. 그 사람은 이스라엘은 놀러 와도, 성경은 안 읽나보다.

텔 입구에는 수도가 있고, 거기서 찬물이 나왔다. 이런 사막에 찬물이라니. 뭐랄까, 텔 지하에 있는 수조와 연결해서 상상력을 키우라는 건지, 아니면 현재 이스라엘의 관개 시스템을 자랑하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땡볕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더위를 무릅쓰고 텔 위로 올라갔다. 텔은 주전 8-9세기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로 따지면 왕정 초기다. 아마도 여기 산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독립적인 왕이 다스리는 동네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네게브 광야 한 가운데 이런 작지만 규모가 있는 성읍을 세웠다는 게 대단하다.

어떤 이들은 브엘쉐바에 아브라함의 흔적이 있는지 묻는단다. 워낙 오래 됐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상관없다는 게 정 박사님의 말이다. 아브라함은 목자였고, 양을 쳤다. 잠을 잤어도 천막에서 잤을 것이고, 어떤 구조물을 세우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그의 물리적인 흔적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건 그의 흔적을 지닌 건물이 아니다. 대기에 떠도는 그의 호흡과 양떼를 향한 외침을 이곳에서 듣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그가 무지 먼 옛날에 호흡했던 대기를 지금 나도 들이키고 있다. 그러면 그걸로 되었다.

텔에서 네게브 사막을 돌아보던 정 박사님이 묻는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게 하셨을까? 다른 대답도 있겠지만, 광야에 서면 답은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비옥한 땅에서는 사람들이 절박하지 않다. 신도 여럿이다. 척박한 곳에서는 사람이 절박해진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절대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한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했듯이 결국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 아닐까.

최소한의 삶의 여건은 과연 재앙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최소한의 생존만을 담보하는 강수량은 의미가 있다. 브엘쉐바의 연간 강수량은 200mm 남짓이다. 이 수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하긴 다른 방법도 없겠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임계점이다. 이보다 비가 적게 오면, 그곳에 아무 것도 심거나 거두지 못한다. 양을 치며 뭔가 조금 심기도 했을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생존이 간당간당한 곳에서 살았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에게, “네가 내 말을 들으면 복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기복신앙과 상관이 없다. 이건 조금 더 가지겠다며 하나님을 향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생존을 위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다. 이런 한심한 곳에서 “네가 내 말을 청종하면 나는 네게 생명을 선물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일부러 아브라함을 이쪽으로 끌고 오신 의도가 눈에 잡힌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헤브론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아마 건기에는 헤브론에서 사람들과 어울렸을 것이고, 우기에는 이곳에 왔을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10월에 이른 비가 내리고, 겨울비가 12월에서 2월까지 온다. 이때가 우기이다. 비오는 철이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브엘쉐바로 양을 몰고 내려왔을 것이다. 네게브에서 천막을 치고 양떼를 돌보면서 아브라함은 매일 하나님을 찾았겠다. 그분이 돌보시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조악한 곳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위에 올라서니, 정상에는 텔을 한눈에 보는 조망대를 세워놓았다. 생긴 게 그저 그랬지만 무슨 상관이랴. 위에는 옛날 건물을 상상하면서 그려놓은 성 조감도가 있었다. 조망대 밑으로는 지하수조로 내려가는 굴이 있었다. 이곳이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우기에 내리는 비를 보관하는 장소는 생존에 절대적이었겠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수조로 사용한 방이 여러 개 있었다. 바깥에서 비가 오면 물이 유입되도록 하는 수로도 만들어 놓았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건 아니다. 삼천년 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니, 말할 게 없다.

텔 너머로 네게브 사막이 보이고, 신도시도 보였다. 텔 주변에는 무슨 시내의 흔적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른바 건천(히. 나할 / wadi)이다. 꼭대기에서 바람을 이마에 맞으며, 정 박사님이 시 126:1-6 이야기를 건넨다.

“하나님께서 포로들을 남방의 시냇물처럼 돌리신다”

네게브(남방)에 비가 오면 건천에 물이 갑자기 넘쳐흐른다. 이 지역의 흙은 로에스(Loess) 황토인데, 물에 스며들어서 가라앉지 않고 물과 함께 씻겨간다. 비가 왕창 와서 와디를 채우고, 황토빛 물이 확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시편기자가 노래했다는 거다. “우기에 넘쳐흐르는 건천처럼 하나님께서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니, 살아있는 생생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급격히 급류를 이뤄 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이 포로를 돌려보내 달라는 염원을 거기에 담았다고 생각하니, 성경이 살아서 심장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텔 입구에는 지금은 무너졌지만 성문과 성벽, 그리고 성벽을 따라서 건물이 있던 흔적이 약여했다. 성벽에 붙은 건물에 긴 의자가 벽쪽으로 붙은 것을 보니, 창세기의 롯 생각이 났다. 고대 가나안의 성문은 말하자면 중요한 회합장소가 아니었던가. 이곳이 그런 곳인지는 물론 알 수 없다. 생각이 났단 것뿐이다. 성문 안쪽에는 작은 광장이 있다.

이쯤해서 텔 탐사(?)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신도시 네게브를 향해서 출발했다. 배도 고프고 좀 지치기도 했다. 네게브 신도시는 쾌활했고, 복잡했으며, 좁았다. 차를 간신히 세우고 식당에 들어갔다. 빵이 맛나다 해서 먼저 한 덩어리를 시켰다. 이어서 나는 연어요리를 주문했고, 정 박사님은 이탈리아식 작은 납작만두를 달라 했는데, 양이 많아서 다 먹질 못하고 결국 음식을 남겨야 했다. 점심을 나눈 후에, 아브라함의 또 다른 거주지 헤브론을 향하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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