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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 목사 아내 칼럼 ] 아버지와 와이셔츠
2018년 05월 02일 (수) 15:59:43 장경애 객원기자 jka9075@empal.com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어릴 때 내게 비친 나의 아버지는 만능이셨다. 내가 필요한 것, 불편한 것, 부족한 것, 힘든 것, 모르는 것 등을 아버지께 말씀만 드리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계신 듯 다 이루어주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를 크기로 말하면 큰 산보다 더 크셨다. 아직도 내 심비에 새겨진 아버지는 태산보다도 더 큰 산이다.
 

또한 부지런함을 말할라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근면하셨다. 언젠가 친정에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받으셨다.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는 수화기에서 숨 가빠 하시는 소리가 귓가로 들어왔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만들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시면 하나님께서 특별 근면상을 주실 거야.”라고 말씀 드렸다.
 

어떤 아버지인들 자녀사랑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나의 아버지의 자녀사랑은 좀 유별났다.

초등학교 시절, 내 필통엔 언제나 뾰족하게 잘 깎아 놓은 네 자루의 연필과 한 개의 지우개가 항상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아버지께서 날마다 필통을 점검하시고 그렇게 넣어주셨다. 아버지의 이러한 사랑덕분에 지금도 연필을 예쁘게 깎을 줄 모른다. 꼼꼼하고 자상한 아버지 덕분에 우리형제들이 좀 피곤하게 자란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 만큼 자녀 사랑도 남다르셨다.

내게는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일들과 추억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에 저축되어 있어 울적할 때면 그것을 하나씩 꺼내어 보곤 한다.
 

그 중에서 생뚱맞지만 유난히 생각나는 추억거리 하나가 있다. 아버지의 생신에 있었던 일이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된다.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사 남매는 코 묻은 돈을 함께 모았다. 그리고 그 몇 푼 안 되는 적은 돈으로 선물을 하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마다 입고 다니시는 와이셔츠를 선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버지께서 귀가하시기 전에 준비하였다가 드리려고 들뜬 마음으로 동생들과 함께 옷가게에 갔다.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는 상점이건만 발걸음은 날개 달린 듯, 가뭄에 마른 낙엽처럼 가볍기만 했다.
 

옷의 치수를 알고 갔어야 했지만 우리 사 남매가 깜짝쇼를 하려했기에 어머니께 아버지의 치수를 묻지 않았다. 동생들에게는 내가 아버지의 치수를 잘 아니까 문제없다고 자신 만만해 했다. 사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마음에 아버지 치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pixabay_com / bingngu93 / touch-2579147_640

옷을 파는 사람이 치수를 물었다. 나와 내 동생들은 우리 아버지를 자랑하면서 으쓱해 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남자 나이에 맞는 표준 치수 와이셔츠를 내 놓았다. 그런데 그 옷을 보니 내가 보기에 아니, 내 동생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로 너무 작아 보였다. “더 큰 것은 없나요?” 하고 물으니 “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아버님의 체격이 무척 건장하신가 봐요?” 라고 묻는다. 나는 으스대기라도 하듯 대답했다. “네, 우리 아버지는요, 굉장히 크세요.” 그리고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 큰 치수의 옷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은 맞을 거라고 하는데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다. 그 이유는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아버지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여 준 그 옷 역시 내 눈에는 아버지에게 작을 것만 같았다. “더 큰 것은 없나요?” “네, 이것이 제일 큰 것인데… 이 이상은 없어요. 만약 작으면 가져 오세요.” 우리는 더 큰 것이 없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바꾸어 줄 것을 확인하고서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그 옷을 사고 가게를 나왔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생일 축하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 형제는 의기양양하여 흥분된 상태로 아버지께 축하의 노래를 불러 드리고 케이크도 자르고 선물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들이 드린 선물의 포장을 뜯어보시고는 이내 단추를 풀어 입어 보셨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것은 아버지께 좀 적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찜찜한 마음으로 사온 와이셔츠이건만 그것은 내 생각과는 정 반대였다. 옷이 너무도 컸다. 마치 의사들의 가운 같았다. 나는 겸연쩍고 창피하여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우리 식구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손자들이 아범을 무척 크게 본 모양이구나!”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치수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 치수는 가게 주인이 권했던 표준 사이즈에서 한 치수 정도 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더 큰 것, 더 큰 것” 했으니 교환하러 가는 내 발걸음은 사러 갈 때와는 달리 너무도 무거웠다. 그것은 가게 주인에 대한 창피함도 물론이려니와 그보다는 내 마음속에 있는 내가 본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의 혼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들 중에는 이렇게 큰 착각을 한 나에게 원망내지는 투덜거릴 만한데 아무도 그렇게 한 동생이 없었다. 동생들도 아버지를 나와 같이 크게 생각했던 것이었으리라.
 

지금도 내 아버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 때 그 일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어떤 어려운 일도 나의 아버지는 다 해 내실 것 같았고, 불가능이 없을 것만 같았을 그 때가, 아버지의 그 기백과 건장함이 그립기만 하다.

이 땅에서의 아버지는 백수를 향하여 가고 계신다. 또한 나는 아버지 와이셔츠를 살 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 많은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어릴 때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게 너무도 소중하다. 바라기는 늘 천국소망 속에 지금처럼만 몸과 맘이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나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나의 아버지는 가장 큰 와이셔츠도 작은 것처럼 보였던 그 때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게 크게 느끼고 싶건만 세월이 갈수록 작아지시는 아버지 모습에 맘이 많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이제는 바꾸러 가지 않을 정확한 치수를 알고 있으니 새 와이셔츠를 장만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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