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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삼 / 돈 이야기 ] 돈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허허실실 재미있는 돈 이야기 #03
2018년 04월 06일 (금) 11:36:37 권영삼 목사 032kwon@naver.com

권영삼 목사 / 광교사랑의교회 담임

   
▲ 권영삼 목사

돈과 관련된 칼럼을 쓰면서 접한 책이 있다. <돈의 발명>(알렉산드로 마르초마뇨, 책세상)이다. 이 책은 ‘유럽의 금고 이탈리아, 금융의 역사를 쓰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돈에 대한 기원, 돈이 역사에 미친 영향, 돈을 운영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가지 제도의 발달사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필자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돈에 대한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은 단지 ‘물질’(matter)에 불과하므로 돈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긴다. 지금까지 돈에 대한 필자의 생각 역시 이런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다. 기원을 보니 돈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인류 역사에 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돈의 발명>에 따르면, 돈은 태고(太古)적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사회나 국가에서 돈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물물교환이면 충분했다. 물물교환은 굳이 중세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필자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니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물물교환이 가능했다.

어려서 대전 인근의 시골에서 살았다. 비좁은 골목에 심심치 않게 아이스케키(Ice cake의 비표준어)장수나 엿장수가 왔다. 심지어 리어카(Rear car)에 산더미처럼 살림도구들을 싣고 온 동네에 “그릇 사요, 그릇”을 크게 외치던 부부 그릇장수도 왔다. 지금이야 그런 장수가 없지만 그 때는 놋수저나 놋요강, 고추 한 부대, 떨어진 고무신, 구리철사, 보리쌀 한 말과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했다.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에서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백성만 있던 시대에는 물물교환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계층, 곧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선호하는 모네타(Moneta)가 재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모네타는 과거 로마인들이 사용했지만 중세 이탈리아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물건이다.

모네타는 로마인들이 유노 모네타(Juno Moneta) 신전에서 주조한 금화를 부르던 이름이다. 유노 모네타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여신이다. 이 여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돈이라는 영어단어 Money가 모네타에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에 따르면, 유노 모네타는 로마인에게 유익을 주는 여신이다.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의 거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네타 여신의 활약은 흡사 돈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pixabay.com / stevepb / -coins-1523383_640

로마에는 일곱 개의 언덕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언덕이 캄피돌리오다. 이 언덕에 로마신화의 최고 신(神) 유피테르와 유노 신전이 있다. 기원전 390년, 갈리아인(Gallian)들은 당시 신흥제국으로 떠오르는 로마를 쓰러뜨리기로 모의했다. 그들은 한밤중에 당시 수비가 허술한 로마로 잠입해서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요새를 공격했다. 이를 알아차린 로마의 수호신 유노는 자신의 상징인 거위들을 동요시켰다.

거위들은 날개를 퍼덕이고 요란하게 울어대며 로마인들에게 위험 신호를 알렸다. 그 소리에 잠을 깬 로마 군인들은 무기를 들고 나와 침입자들을 물리쳤다. 그 후 로마인들은 캄피돌리오 언덕에 유노 신전을 세우고 사랑했다. 그리고 이 여신을 ‘충고의 유노’라는 의미에서 ‘유노 모네타’로 불렀다. 이 신전에서는 화폐를 주조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로마인들이 돈(money)을 모네타로 부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돈에 대한 신적 기원은 돈이 가치중립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돈은 가치중립적’이란 말은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 그 자체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을 얼핏 생각하면 매우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 말에는 중요한 가정이 한 가지 숨겨져 있다.

애초에 인간은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으로 구분되어 있어 선한 사람은 선하게 돈을 사용하고, 악한 사람은 악하게 돈을 사용함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는 가정이다. 신앙인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가정이다. 그러므로 돈은 절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돈은 항상 영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돈이 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적 전쟁의 가장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돈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될 수도 있고 사탄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땅에 넘칠 정도로 소유물이 많았던 욥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 소유물을 친 사탄으로 말미암아 모든 재물을 잃고 말았다. 그 이면에는 욥이 소유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사탄의 참소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에 풍성하고 부요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돈으로 풍성하게 하실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풍성한 물질로 돌보셨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창 13:2).

여기서 은은 돈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성경에서 돈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은 창세기 17장이다. 아브람이 99세 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고 상징으로 할례를 행할 것을 지시하신다. 그 때 아브람과 관련된 모든 남자는 언약의 표징으로 포피를 제거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 때 돈이 등장한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 17:11-12).
 

이 말씀에서 돈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케세프(כֶּ֙סֶף֙, keceph)는 은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케세프는 성경에 403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 286회는 ‘은’으로, 101회는 ‘돈’으로, 나머지는 ‘값’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에는 은이 돈의 역할을 대신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탄은 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이 미치는 역적 영향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 마귀의 주된 관심은 돈으로 사람을 유혹해서 그를 자기 수하에 두고 왕 노릇하는 것이다. 돈을 사용해서 돈의 노예가 되게 만들고 자신이 주(主)가 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의 노예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입주한 건물은 전형적인 상가다. 대학가와 아파트촌을 끼고 있는 9층 건물에는 24개의 다양한 상점들이 입주해 있다. 편의점, 치과병원, 부동산, 김밥집, 휴대폰 가게, 네일숍, 식당, 피트니스 센터 등 주로 서비스 관련 상점들이다. 그런데 같은 서비스 업종이라도 취미 생활을 위해 마련된 상점들은 여타 가게들과 다른 점이 있다. 하루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잠을 줄이고 정상적인 가정생활도 멀리한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옆방은 PC방이, 그 옆방에는 마사지숍이 있다. 교회보다 먼저 입주해서 벌써 탄탄한 기반을 닦고 영업하고 있다. 교회 윗층 스크린 골프장에서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맞춰 운동하는 사람들이 쳐내는 골프공 소리가 종종 들린다. 8층은 200여 평 가까운 공간을 당구장으로 꾸몄다. 상가 점주들 모임에 두어 번 참석했을 때 상점주들은 어떻게 하면 이익을 극대화할까에 온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교회는 그렇게 돈이 지배하는 세상 한복판에 덩그러니 홀로 내던져진 셈이다.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교회가 탄생한 직후에 벌어진 이 사건은 복음으로 점점 흥왕해 가는 초대교회에 매우 충격이었다. 아나니아는 바나바처럼 자기 소유를 팔아 상당한 헌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그 처분을 사도들에게 의탁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칭찬받아야 마땅하지 결코 책망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그 일은 죽음에 이르는 일이었다. 성령을 속였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의 문제는 처분한 재산 일부를 숨겼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나바가 자기 소유를 팔아 처분한 재산 전부를 가져온 것과 비교된다. 누가는 아나니아가 돈의 일부를 감춘 사실을 기록하면서 ‘횡령하다’는 동사를 사용했다.

아나니아가 땅을 처분한 후 베드로에게 “땅을 팔고 일부를 놔둔 후 나머지를 전부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자세히 보면 아나니아는 얼마를 감추고도 “땅을 판 돈 전부를 바친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는가”라고 말했다. 아나니아의 행위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다(행 5:3-4).

이처럼 돈 뒤에는 두 존재의 영적 대결이 있다. 한 존재는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시고, 다른 존재는 악의 근원인 사탄이다. 돈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묘약이지만 인성과 사랑까지도 집어 삼키는 요물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주제보다 ‘돈’에 대하여 더 자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은 유별나게 돈 문제에 집중하셨다. 특히, 예수님은 헌금함 앞에 직접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리고 과부가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는 것을 칭찬하셨다.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 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1-44).

돈의 영적 피해를 갈파한 예수님은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주인으로 보셨다. 그리하여 주님의 제자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눅 16:13). 그렇다. 돈은 절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사람이 돈에 무기력한 이유는 돈에 신적(神的)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돈에는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힘과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힘도 있다. 돈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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