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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의 반론에 대한 정동섭 목사의 반박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용화 이태종 씨의 주장에 답한다
2018년 03월 23일 (금) 12:22:36 정동섭 목사 webmaster@amennews.com

[  이 글은 <교회와신앙>와 <기독교포털뉴스> 2017년 05월 18일에 게재된 ‘5.18을 맞아 문재인 정부에 드리는 특별한 부탁 - 정권이 사이비종교와 유착 공생하는 적폐를 필히 청산해야’라는 정동섭 목사의 기고문에 대해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대표자 구회동)와 권윤자 씨(유병언 부인)가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보내 온 ‘반론기고문’(“고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해 정확한 사실만 보도해 주세요” : 이용화 구원파 고문 / “이제 그만 구원파에 대한 허위비방을 멈추세요! : 이태종 구원파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정동섭 목사의 ‘반박기고문’이다. 이 글과 첨부자료에 대한 책임은 기고자에게 있다. / 편집자 주 ]
 

구원파의 반론에 대한 정동섭 목사의 반박

정동섭 목사 /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Ph.D.

   
▲ 정동섭 목사

필자는 2017년 5월 18일에 <교회와신앙>과 <기독교포털뉴스>에 “5.18을 맞아 문재인 정부에 드리는 특별한 부탁: 정권이 사이비종교와 유착 공생하는 적폐를 필히 청산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필자는 그 글에서 “전두환 5공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사이비종교인 구원파와 유착하여 불의한 정권을 유지했다. 사악한 정권은 구원파 교주 유병언에게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고서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허가했으며 구원파가 산하 오대양 회사를 통해 당시 새마을운동 본부장 전경환을 거쳐 민정당에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바쳤던 것은 널리 드러난 사실이다. 유병언은 민정당 모범당원과 재정후원 회원으로 5, 6공 정권에서 활동하였다, 구원파는 또 레이건 대통령 방한 당시 경호를 지원하기까지 하였다. 32명이 집단 자살(?)한 오대양 사건이 터졌을 때 반사회성 성격 장애자였던 유병언은 자신은 오대양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며 도마뱀처럼 꼬리 자르기 작전을 구사하였다. 사법부는 그를 경제사범으로만 몰아 4년형을 선고했다. (유병언은 오대양이라는 회사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고 박순자는 4억 6천만원을 교주 유병언에게 송금한 대전지역 사채모금책이었다)...구원파는 오대양이나 세월호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일단 책임을 부인하고, 투사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용화 고문과 세월호 사건 당시 구원파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태종 구원파 주일학교 교사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글을 써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보내왔다. 두 사람은 모두 마치 내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조작하여 발언한 것처럼 필자에게 근거가 있는 정확한 사실만 보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성경에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잠 18:17)는 말씀이 있다. 지난 27년 동안 구원파는 늘 원고의 입장에서 “허위사실로 유병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필자를 고소하였으나 피고가 17차례 모든 소송에서 객관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모든 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거짓과 진실, 이단과 정통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파 측에서는 한기총에서 필자를 ‘사이비’로 규정하였다고 주장하며 필자는 구원파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메시지(message)가 싫으니까 메신저(messenger)를 거절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번 기회에 진실을 밝히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양승훈 교수의 <하나 되는 기쁨>에 추천사를 쓴 것을 문제 삼아 정동섭을 이단으로 규정해달라고 ‘허위과장 정보’를 이단옹호신문 <교회연합신문>에 제공하여 한기총 이대위에까지 청원하게 한 것은 바로 구원파 교주 유병언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2009년 전후 유병언이 <교회연합신문> 사장 강○○ 씨와 한국기독언론인협회 김○○ 장로에게 수백만 원의 금품을 주고 사주한 것이 드러났다. 필자를 사이비로 규정하려 시도하였으나 한기총 실행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좌절된 바 있다. 성추문이 나돈 유병언 씨는 “성은 부부간에 즐기라고 주신 선물”이라고 추천사를 쓴 필자를 이단사이비라고 지적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그 후 <부부연합의 축복>을 통해 나의 성신학을 발표한 바 있다. 가정사역자인 내가 쓴 추천사와 성에 대한 신학적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반기독교적인 내용이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나는 한국가정사역협회가 인정하는 건전한 가정사역자이며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학회 감독회원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사이비로 규정된 적이 없다.

오대양 관련 수사 당시 대한민국 검찰은 유병언을 “종교를 빙자한 상습사기범”으로 규정하고 15년형을 구형한 적이 있다. 대법원은 그를 4년형으로 감형하여 복역하게 한 바 있다. 세상에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이 있고, 주관적인 진실이 있다. 구원파는 이번 반론에서도 구원파의 시각에서 본 주관적인 진실로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뒤엎으려 시도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에 구원파에 빠져 ‘가짜 구원’을 받고 구원파 교주 유병언의 통역비서 역할을 담당하다가 지도층에 기도와 예배, 국제적 교제의 필요성을 제안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4개월 동안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가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최후통첩 앞에 1977년 그 집단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대표적인 정통교회라 할 수 있는 ‘사랑의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사이비기독교 이단에서 정통신앙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나는 두 번 구원을 받았다. 한 번은 구원파에서 ‘거짓된 구원’을 받았고, 또 한 번은 정통교회에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행 20:21) ‘참 구원’을 받았다. 사랑과 진리의 하나님을 만난 후, 나는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주고, 무수히 많은 가정을 깨뜨리는 이단 구원파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로 하였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진리 편이라고 확신하고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어 영혼이 멸망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막자는 동기에서 계속 책이나 강연을 통해 구원파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왔다.

나는 근거 없이 정확하지 않은 말을 남발할 정도로 부도덕하고 완악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없는 사실을 조작하여 발언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파와의 많은 소송에서 진실된 사실을 말한 것으로 인정받아 계속 무죄판결을 받았겠는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구원파 저격수’가 되었고, 정통 기독교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여러 사이비종교의 교리와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종피맹) 총재로 봉사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이단전문가의 입장에서 구원파의 반론에 반박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난 27년간 소송을 종합해보면, 구원파의 아킬레스건은 세 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구원파는 이렇게 주장한다. 첫째, 구원파와 5, 6공 정권의 비호는 없었다. 둘째, 32명을 살해한 오대양 사건과 구원파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셋째, 304명의 생명을 수장한 세월호 참사와 구원파는 관계가 없다. 구원파의 이 세 가지 사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차례로 밝히기로 하겠다.
 

1. 유병언은 5, 6공 정권과 어떻게 유착관계를 유지하였는가?

오대양 사건 수사 당시 <한겨레신문> 보도에 ‘전경환 씨가 평소 유병언 사장과 가까워 전경환 씨를 상대로 집중적인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6년 9월 유수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씨를 로비창구로 구원파 교주 유병언은 5공 정권에서 민정당 재정후원회원 및 모범당원으로, 6공에서는 월계수회원으로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다(후미에 첨부된 언론보도자료를 보라).

그러나 유병언은 1991년 상습사기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을 때도, 자신의 비서이며 처남댁이었던 송재화를 모른다고 하였고, 박순자로부터 4억 6천만을 송금 받은 사실이 있는데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고 발뺌을 했고, 분명히 목사안수를 받았는데도 자신은 목사가 아니라고 했으며,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든 장본인인데도 구원파와 자기는 무관하다고 거짓말을 한 장본인으로서(동아일보, 1991.8.3), 항상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인하고 투사하는 방어기제가 몸에 배어있는 거짓선지자이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재판부가 그를 “종교를 빙자한 상습사기범”으로 단죄했겠는가!

1991년 유병언은 필자가 쓴 <5. 18 광주사태>의 역자 서문을 문제 삼아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검찰에 고소하였다. “오대양 사건을 일으킨 구원파는 5공 정권에 엄청난 양의 정치자금을 바쳐 신군부세력을 도와주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주)세모에서는 레이건 대통령 방한 당시 경호를 지원하였고, 그 교주는 민정단 모범 당원과 월계수 회원의 자격으로 활동하였다.”(p.10). 유병언이 5공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는 근거를 이 이상 어떻게 더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는가! 검찰에서는 나의 주장을 진실한 사실로 인정하여 무혐의 처분을 한 바 있다.

나의 글에 반론을 쓴 이용화 고문과 이태종 대변인은 그 당시 언론보도를 모두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보도만 믿기로 한 것인가?
 

2. 구원파와 오대양은 어떤 관계인가?
구원파 측은 2007년 2월 필자와 이영애 사모가 쓴 <‘박옥수, 이요한, 유병언의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죠이선교회)를 통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출판금지가처분 신청과 함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구원파 측은 당시 이 책의 내용 중 ▲1987년 오대양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구원파는 1960년대 초 권신찬 씨와 유병언 씨에 의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47쪽) ▲유병언 계열은 교인들의 재산을 착취하여 사업에 투자했다든가, 오대양 사건에서 보듯 반대자를 살해했다는 등의 열매를 통해 그 이단성을 분별할 수 있었다(57쪽) 등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2006년 10월 경 기독교TV의 금요철야간증집회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오대양 구원파 출신입니다. 제가 8년 동안 그 집단에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오대양 살인 사건의 배후로 구원파를 지적한 내용에 대해,“피고인이 위 책자를 발간하고 강연을 통해 적시한 사실들은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민사소송을 기각하였다.

이보다 앞서 신민당 박찬종 의원은 1991년 7월부터 1992년 3월까지 10차례의 기자회견·교회 강연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 ‘오대양 사건 배후엔 세모 사장인 유병언 씨가 관련돼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오대양 사장이었던 박순자 씨가 끌어들인 2백억 원 대의 사채 중 일부가 (주)세모로 흘러 들어갔다 △변사자 32명이 끌어들인 사채의 일부를 유병언 씨 측이(받아) 정치권에 정치자금으로 헌납했다 △유병언 씨 측이 신도들의 돈 2억6천500만원을 사취한 사실이 있었는데 권력층의 지시로 수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구원파가 오대양의 배후 세력이다 △박순자는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대전지역 책임자였다 △오대양 사건의 변사자는 타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모그룹과 유병언 씨는 1991년 박 의원이 “오대양 사건은 유 전 회장과 그가 이끄는 세모 그룹 및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와 관련이 있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삼아 7억7145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약 3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94년 10월 서울민사지법은 박찬종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구원파 신자였던 김 모 씨가 “구원파 실제 대표는 유 전 회장이며 헌금을 자신의 회사운영 자금에 충당했다”고 진술한 점; ▶오대양이 끌어모은 사채 중 일부를 세모그룹 관계자들이 사용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박 변호사의 발언내용은 대부분 진실에 부합한 사실로 보아지고 일부 증명이 부족하더라도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성이 인정 된다”고 밝혔다. 결국 구원파는 명예훼손에 근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중앙일보, 2014.4.24.).

  문화관광부 종무과에서 2000년에 현대종교에 위촉하여 편찬한 <한국의 종교단체실태연구조사>에서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83년 유병언이 신앙과 사업을 연계하여 헌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자 이에 교역자로 있던 이복칠(이요한)과 그의 추종자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이탈하여 지금의 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중앙교회를 세웠다. 이후 권신찬과 유병언은 더욱 사업확장에 주력하였고 막대한 사업자금을 교인들의 헌금과 사채로 충당하였다. 1987년 9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주식회사 오대양 식당 천장에 32명이 집단변사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 배후에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이 관련되어진 것이 드러나 사회의 지탄과 함께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사건 이후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나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아직도 나름대로의 교회를 유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p. 235) 이것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평가이다.


3. 구원파와 세월호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세월호의 배후가 유병언과 구원파라는 것은 2014년 언론보도와 유병언 일가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유병언이 세월호의 실소유주이며, 그 선원들 상당수가 구원파 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실제로 유병언의 아내 권윤자, 유병언의 아들 유대균, 유병언의 딸 유섬나도 이미 위 회사들의 돈을 횡령하였다는 등의 사실로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도 구원파에서는 내가 세월호 배후에 구원파가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피해를 미쳤다며 나에게 5,000만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구원파가 금수원에서 “10만 명의 구원파 신도가 다 잡혀가도 유병언은 내가 지킨다”는 플래카드 등을 내걸고 수사기관과 대치했던 사례를 지적하며, 필자가 허위사실을 말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2017년 9월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고 탁명환 소장의 표현을 빌자면, 구원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허망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결론: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는 짝퉁 기독교이며 이단이다.
구원파는 역사적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사이비기독교이다. 세대주의신학을 전수받은 딕욕과 지방교회의 영지주의적 신학에 영향을 받은 두 지도자 권신찬과 유병언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인해, 신관과 인간관, 구원관, 기도와 예배관, 교회관, 종말관에서 정통 기독교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가르치는 짝퉁/사이비 기독교이다. 구원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한국정통교회 전체의 판단이다. 그래서 장로교와 성결교와 감리교 등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를 정통 침례교(기독교한국침례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구원파에서 전하는 구원은 성경과 사도들과 지난 2,000년간 기독교가 전해 온 구원과는 ‘다른 구원’이며 ‘다른 복음이다’(고후 11:4).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과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진짜와 가짜,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 것이다. ‘거듭났다’, ‘구원받았다’는 용어를 쓴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유병언이 구원파의 교주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교주의 사망을 계기로 잘못된 신학을 바로잡고 회개하며 정통 교회가 지적하는 점을 수정한다면 소송, 정정, 반론의 공방을 중단하고, 진리 안에서 정통교회와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부산시기독교연합회와 (사)부산시성시화운동본부는 주요언론에“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객관적 진실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유병언씨의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입니다. 정통기독교교리와는 다른 주장을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로 위장해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기독교성결교: 1985; 예장고신: 1991; 예장통합: 1992; 예장합동: 2008).

구원파를 대변해 반론을 제기한 두 분은 필자가 근거 없이 불확실한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이를 반박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이미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구원개념 바로잡기>라는 책을 통해 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신학적으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 구원파가 어떻게 5공 정권의 비호를 받았으며, 오대양 및 세월호가 구원파와 어떻게 연계되었는가에 대한 언론보도를 근거로 진실된 사실을 진술했음을 밝힌다. 나는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을 믿으며, TV와 신문을 비롯한 언론은 객관적 진실을 보도한다고 믿는다. 구원파를 대표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은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보도를 그대로 수용하고 더 이상 무익한 지상논쟁을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

다음은 필자가 참고 자료 중 언론보도의 일부다. 나의 주장은 이런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기사 및 사진과 일러스트의 저작권은 해당 언론사에 있으며, 근거를 밝히는 의미에서 부득이하게 전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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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 ]

1. ‘유병언 왕국’의 힘은 돈·권력·종교‘설교’로 구원파 신도들 정신적 지배

정치권 ‘돈줄’ 노릇하며 각종 사업 이권 챙겨 
정락인 객원기자 | 승인 2014.06.05(목) 18:21|1285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행방이 묘연하다. 유씨는 안간힘을 쓰며 도망치고 있고, 검찰은 총력전을 펼치며 뒤를 쫓고 있다. 도피를 도운 인사들을 구속해 ‘협조자’들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형사범에 대한 신고포상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인 현상금 5억원까지 내걸어 신고 가능성을 높였다. 검찰은 유병언 일가가 약 2400억원의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기소 전 추징보전명령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이 취할 조치는 모두 취한 셈이다. 그런데도 유씨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검찰은 매번 허탕을 치며 꽁무니 따라다니기에 바쁘다. 유씨는 지금 ‘대한민국 공공의 적 1호’다. 이런 그가 검찰 출두 대신 도피를 선택했다. 그는 왜 ‘무모한 도피’를 감행했을까. 일각에서는 권력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5월6일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종교 탄압과 언론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오른쪽 사진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 뉴스뱅크이미지

유병언의 배후는 크게 세 가지다. ‘돈’ ‘종교’ ‘권력’이다. 세모그룹과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그리고 교주 유병언은 삼위일체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의 염색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과 연결된다. 여기에다 성역이나 다름없는 ‘종교’까지 손에 쥐고 있으니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유씨는 이를 밑천으로 정·관계를 넘어 해외 인맥에까지 손을 뻗쳤다.

유씨의 과거 설교 동영상 입수…‘헌납’ 강조

‘종교’와 ‘기업’을 일체화시킨 것은 유병언의 전략이었다. 유씨는 1962년 장인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구원파를 설립한 후 한동안 ‘유 목사’로 불렸다. 1982년 10월 (주)세모를 설립하면서 종교인에서 기업가로의 변신을 꾀한다. 사실 겉포장만 ‘사장’으로 바꿨지, 구원파 교주로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유씨는 ‘돈’과 ‘종교’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구원파 신도들이 내는 헌금을 사업체 운영 밑천으로 삼았고, 급전이 필요할 때는 신도들에게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사채를 끌어다 썼다. 이 과정에서 종종 신도들과 갈등을 빚었다.

세모그룹 직원 대다수는 구원파 신도들로 채웠다. 종교가 없는 직원에 대해서는 입사할 때부터 ‘교율’ 등을 내세워 구원파 신도로 만들었다. 실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관계사 임직원 대다수는 구원파 신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세모에서는 자신들의 회사 운영상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상당수가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기업이 종교였고, 종교가 기업이었던 셈이다.
구원파는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계모임을 조직해 수익금을 공동 분배하면서 종교적 결속을 다지고 조직을 확대해왔다. 전 구원파 신도들은 “구원파의 전도 활동은 공공장소를 피하는 대신 선후배·친인척 등 인간관계를 토대로 은밀히 접근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였다”고 말한다. 유씨는 측근들을 앞세워 각종 종교 집회 때마다 자신을 ‘지혜자’ ‘지도자’ 등으로 부르게 하며 ‘절대적인 상징’을 만들었다.

유씨 일가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업체를 늘려왔다. 생산과 유통, 금융을 장악했다. 돈을 버는 족족 전국 곳곳에 땅을 샀다. 서울을 비롯해 대전·인천·대구 등 대도시와 경남 고성, 전남 완도 등의 토지나 아파트, 병원, 상가 등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구원파 총본산인 경기도 안성의 금수원도 이런 방식으로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그들만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사실상 ‘유병언 왕국’이다.

   
▲ 유병언 관련 1991년 7월31일자 한겨레 기사.

민자당 재정위원 지내…“월계수회 회원” 주장

유병언은 어떤 방식으로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했을까. 최근 시사저널이 입수한 유씨의 설교 동영상(1999년 1월, 2005년 10월)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은근히 헌납을 유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주기도문(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모범의 기도문) 내용 중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대목을 유독 강조한다. 그는 “자기 집 냉장고에 고기 덩어리 한 개라도 있거나, 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기도하면 안 된다. 쌀이고 뭐고 먹을 거 하나도 없으면 이 기도를 해도 된다”며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게 기도가 되겠느냐, 이런 기도는 불필요한 것이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마태복음’에 있는 ‘핍박’을 언급하며 신도들의 이탈을 막고 결속력을 다지는 대목도 나온다. “(그동안) 구원파다, 사이비다, 오대양이다, 별것 다 뒤집어씌웠다. 어떤 더러운 소리를 해도 복음은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을 보면 괴상치도 않다. 너무나 거짓들이 많다”며 “핍박을 면하기 위해 떠나면 핍박은 우리에게 가중된다. 핍박을 받으면 천국이 너희들의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내리는 상이 크니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일찌감치 차남 혁기씨를 후계자로 낙점했는데, 그도 아버지의 설교법을 전수받아 신도들 앞에 나서고 있다.

유 전 회장은 ‘돈’과 ‘종교’를 앞세워 권력층에 선을 대기 시작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TK(대구·경북)가 기반인 5공화국과 맥이 닿아 있었다. 유씨가 뒷배로 접근한 것은 5공 당시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자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였다. 유씨는 전씨에게 경호원을 붙여주기도 했다.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경호원을 파견해줬고, 이 일로 당시 내무부장관으로부터 ‘레이건 대통령 방한 경비 지원 공로 감사장’을 받았다.

1985년 9월 세모는 당시 코리아타코마 등 유수한 조선업체들을 제치고 서울시로부터 한강 유람선 운항권을 따냈다. 회사 설립 3년째인 무명의 중소업체가 혜성처럼 사업권을 거머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입찰 업체들 사이에서는 전경환씨의 도움이 컸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1984년 3월23일 전두환 대통령은 유씨의 회사인 (주)삼우트레이딩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 대통령은 사공일 경제수석에게 “애로사항을 검토해 돌봐주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삼우 측은 부동산 담보 제공과 사업 범위 축소 등 은행 측 요구를 받아들인 뒤 4개 은행에서 25억원을 대출받았다. 유씨는 구원파 신도들에게 “청와대 고위층과 종종 식사를 함께 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신자들로부터 사채를 끌어모을 때나 일부 신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5공 권력층과의 ‘밀접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흘리면서 협박했다는 채권자들의 주장도 있다.

유씨가 권력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혹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1986년 7월 당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유병언의 사기 행위 관련 진정서를 접수하고 내사를 실시해 유씨가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2억여 원을 사취한 사실을 밝혔으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 아무개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를 중단한 일도 있었다. 1987년 8월29일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오대양 사건이 터졌다. 당시 검·경은 집단 자살의 원인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1991년 7월 잠적했던 용의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경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구원파와 교주인 유병언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구원파 신도인 죽은 박순자씨와 유병언의 최측근인 송재화씨(여)의 돈 관계까지 드러났지만 결국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를 두고 ‘권력층의 비호설’이 제기됐다. 1991년 7월 당시 민주당의 김현 의원이 “유병언 사장은 월계수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면서 ‘6공화국과의 커넥션’을 주장했다. 월계수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당시 체육청소년부장관이 주도했다. 유씨는 또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내면서 ‘돈줄’ 역할을 했다.

유씨에 대해 ‘5·6공 유착설’과 ‘배후설’이 확산되자 검찰은 내사에 들어갔으나, 5공 비호 의혹을 샀던 ‘25억 대출’ ‘한강 유람선 업체 선정’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사 무마’ 등은 모두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권력 유착설’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유씨는 1991년 8월, 구원파 신도들에게 거액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 유병언 일가 관계도

구원파 장학생 모임 ‘우정학사’ 인맥 주목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유병언의 인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유씨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급기야 검찰의 수사망을 뚫고 잠적하면서 ‘정·관계 커넥션’ 의혹이 다시 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병언’의 뒤를 봐준다는 유력 인사의 실명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최근 사설 정보지(찌라시)에 ‘유병언 인맥’ 명단이 돌았으나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렇다고 ‘유병언 인맥’이 5·6공화국에서 단절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난해 초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유병언의 사진집 출판기념회에는 4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는데, 이 중에는 성김 주한 미국대사 등 각국 주요 대사와 유씨의 조카사위로 알려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의 모습도 보였다. 유병언의 숨겨진 인맥도 상당하다. 현재 구원파 신도는 1만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군을 비롯해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등에도 신도가 뻗어 있다는 얘기들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세모 출신의 전 구원파 신도로 알려지면서 국제협력관으로 전보됐다.

구원파 장학생 모임으로 추정되는 ‘우정학사’ 출신들도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중 일부는 유병언 일가 계열사에 입사했거나 사회 주요 곳곳에 포진해 있다. 정동섭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는 “우정학사는 젊은 아이들을 키워 구원파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의 이민석 변호사는 “유병언은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고, 최소 20년은 감방생활을 해야 할 처지다. 유씨 나이가 73세인 것을 감안하면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며 “그는 어떻게 하든지 최대한 시간을 끌고 도피하면서 자기가 돈을 준 권력자들을 압박해 도움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유씨를 잡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정·관계 커넥션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5공부터 정권마다 불거진 '유병언 정관계 로비' 의혹

조덕현 기자 deokhyun@chosun.com
등록 2014.08.18 07:41

[앵커]
세모그룹은 5공 시절 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각종 규제 완화 혜택이 이어지는 등 지나는 정권 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유병언씨는 각 정권 핵심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회사의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조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유병언씨의 이름이 정치권에 처음 등장한 건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와 유씨의 친분이 드러나면서부터 입니다. 유씨는 유도 등 운동을 통해 전씨와 인연을 쌓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자신의 사업체로 초대하는 등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5공 실세들이 대출 편의와 유씨의 사기 혐의 수사를 무마시켜줬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또 1986년에는 유씨가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전경환씨가 압력을 행사해줬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한강 유람선 사업자를 1개사만 선정하기로 했는데 이후 2개 업체로 늘었고 사업을 갓 시작한 세모가 유수의 업체들을 물리치고 사업자로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도 유병언씨는 88년 해운업체 한려개발을 인수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사조직인 ‘월계수회’ 멤버임을 이용해 인수자금 200억원을 마련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YS 정부 시절 부도가 난 세모는 DJ 정권 때 법정관리 들어갑니다. 하지만 유씨는 부도 이후에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측근들을 계열사 대표로 내세워 세모를 인수한 뒤,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갑니다.

역대 정권을 거치며 인허가와 규제 완화 과정에서 독점운항권 획득과 선령 규제 완화 등 각종 특혜 의혹은 계속 불거져 나왔습니다.
TV조선 조덕현입니다.
 

3. TV조선 강적들 “오대양 사건과 유병언의 관계”

   
 

4. [뉴스쇼 판]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유병언 계열사 50개

기사입력2014.04.25 오후 10:36

[앵커]
유병언 전 회장의 계열사는 줄잡아 50여개로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오는 고구마 줄기 같습니다. 이같은 백화점식 계열사 운영은 5공 시절 급성장했던 세모 그룹을 그대로 물려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원파 신도들이라는 확실한 판매망을 통해 화장품과 건강 식품 같 은걸 팔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조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982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한 유병언 전 회장은 이후 세모를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그룹으로 초고속 성장시킵니다.
세모 그룹은 1997년 8월 부도를 맞지만, 옛 세모 계열사들은 이름만 바꿔 여전히 유병언 전 회장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습니다.
유 전 회장은 각 계열사에 측근을 앉히고, 아이원아이라는 지주격 회사를 내세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현재 유병완 일가가 가진 계열사는 줄잡아 50여개, 아이원아이를 필두로 이번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 해운 비롯, 선박회사 천해지와 건강식품, 생활용품 회사 등 함께 가진 농장에서 농사만 지으면 세모 제품으로만으로도 자체 생활이 가능할 정돕니다.

이렇게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을 통한 굳건한 판매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구원파 신도 가족
"어머님이 혼자 외롭게 있으니까, (구원파) 10명씩 와서 안마시켜주고 이런 식으로 많이 회유하면서...요, 이불, 뭐 수도 없이 많아요. 베개부터 시작해 많이 팔아먹었어요."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과 수많은 계열사 여기에 구원파의 많은 신도들, 유병언 전 회장이 '세모 왕국'의 주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윱니다.
TV조선 조덕현입니다./ 조덕현 기자 deokhyun@chosun.com


5. 동아일보, 김한길 등 ‘유병언 비호세력’ 겨냥 일침

“유병언 두둔 세력도 파헤쳐야” - 메이저 언론 中 최초
이문원 기자 mediasilkhj@gmail.com 등록 2014.05.21 12:31:36

친노종북 세력이 세월호 참사의 주범인 청해진해운을 비롯해 ‘유병언 패밀리’를 극구 비호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가 메이저 언론 중에서는 처음으로 유병언을 비호하는 좌익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은 21일자 “‘유병언 패밀리’ 비호 세력 누군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의 주범(主犯)은 돈에 눈이 멀어 안전 관련 법규를 내팽개치고 선박을 시한폭탄으로 만든 청해진해운”이라며 “자기 살기에만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의 한심한 행태도 그런 토양에서 생겼다. ‘유병언 패밀리’는 경영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그들이 실제 소유주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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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패밀리' 비호 세력 누군가"

권순활 동아일보 논설위원

 1997년 8월 유병언 회장의 세모구룹이 부도를 냈다. 16억 원의 어음 결제자금이 없다던 유병언 일가(一家)는  1년 7개월 뒤인 1999년 3월 청해진해운을 세웠다. 어떤 묘수를 부렸는지 3000억 원의 금융권 부채중 2000억 원을 탕감받았다. 인천~제주 노선 같은 주요 항로 여객선 운항권을 따낸 뒤에는 무리한 증축과 화물 과적(過積)을 일삼았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主犯)은  돈에 눈이 멀어 안전 관련 법규를 내팽개치고 선박을 시한폭탄으로 만든 청해진해운이다. 자기 살기에만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의 한심한 행태도 그런 토양에서 생겼다. '유병언 패밀리'는 영영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그들이 실제 소유주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확보했다.
정부의 안전관리 소홀과 초기대응 혼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고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사과한 것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한 자세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의 가장 큰 책임이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고 일각에서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궤변이다. 이런 식의 논리 비약이라면 9·11테러의 주범은 오사마 빈라덴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나.
유병언 패밀리가 부도 후 2년도 안돼 재기하고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급성장한 비결은 뭘까. 정치권 관료 금융계 등 곳곳에 포진한 비호 세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세모 출신의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나 청해진해운 계열사 대표로 옮겨간 채규정 전 전북지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강경 좌파세력은 연일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심지어 정권 퇴진까지 주장한다. 그들의 '비판할 권리'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간접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그렇게 성토하면서 정작 집접 책임자인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패밀리 문제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무는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2009년 유병언에게 환멸을 느껴 그를 떠난 수행비서 출신 이청 씨는 최근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할 만한 폭로를 했다. "유병언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수뇌부에 측근을 파견해 깊숙이 관여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유병언이 "유모차를 앞장세워라"라고 직접 지시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생명 인권 서민을 내세우는 '촛불 좌파'가 천민(賤民) 자본주의에 찌든 부패 기업인을 감싸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이해할 단초는 된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그제 "검찰 수사가 유병언 씨 일가에 집중돼 잘못된 초동 대응으로 희생된승객과 아이들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며 유씨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핵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이런 인식은 오해를 부르기 딱 좋다. 그렇지 않아도 유병언 일가가 부채 탕감과 인천~제주 노선 취항 같은 특혜를 받으며 재기한 시점이 현 야당의 집권 시절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대 초반 유일하게 거친 장관직은 '해양수산부 마피아'의 온상인 해수부 장관이 아니었던가.
유병언과 그 자녀들은 지금도 반성은 커녕 국내외 도피와 검찰 소환 불응으로 대한민국을 비웃고 있다. 유병언 패밀리의 각종 불법행위는 물론이고 그들을 싸고 돈 세력들을 성역(聖域)과 정치적 고려 없이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과 관(官)피아 해소, 개각도 필요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무고한 생명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水葬)시킨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일가와 그 비호세력을 척결하는 일이 흐지부지 되는 일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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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위원은 “정부의 안전관리 소홀과 초기대응 혼선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도 국정 책임자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전제한 후 “그러나 세월호 침몰의 가장 큰 책임이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고 일각에서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식의 논리 비약이라면 미국 9·11테러의 주범은 오사마 빈라덴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권 위원은 좌파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을 성토하면서도 직접 책임자인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해 침묵하는 현상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했다. 권 위원은 최근 TV조선의 특종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2009년 유병언에게 환멸을 느껴 그를 떠난 수행비서 출신 이청 씨는 최근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할 만한 폭로를 했는데, 유병언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수뇌부에 측근을 파견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생명 인권 서민을 내세우는 ‘촛불 좌파’가 천민 자본주의에 찌든 부패 기업인을 감싸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이해할 단초는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권 위원은 “유병언과 그 자녀들은 지금도 반성은커녕 국내외 도피와 검찰 소환 불응으로 대한민국을 비웃고 있다”며 “유병언 패밀리의 각종 불법행위는 물론이고 그들을 싸고 돈 세력들을 성역과 정치적 고려 없이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이미 새민련 김한길 대표는 유병언을 노골적으로 감싸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김 대표는 지난 19일 오후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검찰 수사가 지금 유병언 씨 일가에 집중해 잘못된 초동 대응으로 희생된 승객·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며 사건 주범인 유병언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김 대표는 "유씨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핵심이 아니다"며 "진상조사를 제대로 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라며 유병언 전 회장을 재차 감쌌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도 지난 13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KBS를 비난하며 "KBS는 정부 발표 중계형 보도, 받아쓰기 보도, 그리고 구원파와 세모그룹 전 유병언 회장으로 사건의 초점을 옮기는 물타기 보도가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민간 선박인 세월호 침몰을 일으킨 유병언 일당 보다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6. 알려진 회사 재산은 빙산 일각 ‘유병언 왕국’ 어떻게 세웠나

기사입력 2014.04.26 16:28
최종수정 2014.12.19 13:33

·유 회장 측은 2400억원대 자산가라는 말은 오해라고 주장하지만 이 액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30여개의 관련 회사 자산내역만 합산한 것일 뿐이다. 유씨 일가가 등록한 상표ㆍ디자인 건수 등으로 유추할 때 비공개 기업만 100개가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 회장은 청해진해운이나 계열사와 무관하다. 하지만 본인의 법적 책임문제와 무관하게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 재산인 100억원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이 유 회장 일가의 착복비리 의혹으로 번지자 유 회장 측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놓은 말이다.

회사들 “구원파와 관련없다” 부인

“2400억대 자산가라는 말은 오해”라는 유 회장 측의 말은 사실일까. <주간경향>은 세월호 침몰사건 이틀째인 4월 17일부터 유 회장 일가의 재산축적 과정을 추적했다. 지난주 보도에서 “어쩌면 이것은 긴 스캔들의 시작일지 모른다”고 예고했다. 그 후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언론들은 연일 유 회장 관련 회사들의 주식거래, 유 회장 소유 부동산 리스트와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관계 등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보도되고 있는 회사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2400억원대라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30여개의 관련 회사 자산내역만 합산한 것일 뿐이다.

   
▲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찰 수사관들이 4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중 열쇠업체 직원이 검찰 수사관과 함께 유 전 회장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케이스 유가 누군지 모르겠다. ‘어른 분들’, 직급 좀 있는 분들은 외근 중이다.”
4월 21일, <주간경향>은 유 회장 일가와 관련이 있는 회사들이 모여 있는 강남구 역삼1동 798-3번지에 소재한 문진미디어에 전화를 했다. 문진미디어는 아동교육도서 및 방문교육 전문업체다. 케이스 유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유혁기씨의 영어 이름이다. 직원은 “자신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라며 대표이사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간경향>이 지난 일주일간 추적한 ‘아직 언론들이 거론하지 않은’ 다른 회사들의 반응도 대부분 비슷했다. 한 회사의 대표자(여성) 휴대폰 번호를 입수해 전화를 했다. 그는 기자와 통화에서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원”이라며 “급하게 퇴근해야 하는데 나가려다 전화를 받았다. 특별하게 답변드릴 것은 없다”고 말했다. 허브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한 회사의 대표는 “우리 회사는 유 회장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언론에 ‘유 전 회장의 강연과 사진작품 전시 판매’를 해온 것으로 소개된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의 홈페이지에는 인간과 환경의 순환에서 ‘피의 중요성’이 역설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설명을 볼 수 없다. 이 연구소는 유 회장 측 출판사인 아해프레스와 함께 4월 25일 오후 4시에 강남의 그랜드컨티넨탈 호텔에서 연례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4월 21일까지만 하더라도 이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공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4월 25일 확인한 결과, 이 홈페이지 자체가 삭제되었다. 그랜드컨티넨탈 측은 “이날 행사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해 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주초에 기자가 확인한 유 회장 관련 회사들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선전 글, SNS와 각종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도 4월 25일 현재 급히 흔적을 지우는 중이다.

심복·아들 수사 전 해외로 출국

궁금한 점은 유 회장과 관련된 보이는 이 수많은 회사들을 설립한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것이다. 유 회장의 핵심 측근이었던 전 구원파 관계자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신도들에게 성금을 받았고, 신도들에게 주식을 팔아 마련한 자금”이라며 “그렇게 모아진 돈들이 다시 유 회장 일가의 개인 재산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말했다. 1980년대 ㈜세모의 주수입원이었던 세모 스쿠알렌은 지금도 방문판매업체인 ㈜다판다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최근 여기에 더해진 것이 가정용 대장세척기인 ‘내클리어’와 휴대용인 ‘이너클리어’다. 구원파와 관련한 상담글들을 보면 “구원파에 빠진 신도들이 비싼 가격의 대장세척기 등을 다 구입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내클리어는 150만원, 이너클리어는 78만원에 팔린다. 유 회장의 아들 유대균씨가 발명한 것으로 특허청에 등록되어 있는 이너클리어는 스테인글래스 용기와 순은 99.9%로 되어 있다는 항문삽입꼭지(팁) 부분을 제외하면 전부 실리콘 재질이다. 특허권료 등을 제외한다면 생산단가에 비해 폭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대장 세척에 사용하는 물도 관련 권유 블로그 글 등에 따르면 ‘워터월드’나 해양심층수라고 하는 내클리어·언더클리어 전용 물을 쓰면 좋다고 되어 있다. 부가적으로 역시 이 회사가 판매하는 정수기 ‘물보라 언더씽크’를 이용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세월호 사건 수사가 유병언 일가의 역외탈세, 내부자거래 문제로 비화되자 관련 ‘흔적’을 지우고 있지만, 이들 회사와 유병언 회장 일가의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은 금융감독원에 공시되어 있는 각 회사들의 감사보고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에 등록되지 않은 회사들도 있다. 이것을 보여주는 정부 기록은 또 있다. 바로 특허청의 특허정보서비스(키프리스)다. 키프리스에서 상표출원자를 검색해 보면 유병언 명의로 449건의 상표와 167건의 디자인이 등록되어 있다. 첫째 아들 유대균씨의 이름으로는 647건의 상표가, 둘째 아들 유혁기씨 이름으로는 222건의 상표(디자인 19건)가 등록되어 있다. 시효가 소멸되거나 등록 거절된 상표도 상당수지만, 유씨 일가가 어떤 사업에 ‘관여’했고 권리를 주장하는지 그 역사가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다. 유씨의 두 딸을 포함해서 특허청 등록 상표로 유추해 보면 아직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유씨 일가 관련 기업은 100~2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언론은 한국제약 김혜경 대표를 유 회장의 부인으로 보도했지만 오보다. 유씨의 부인은 권윤자씨(71)다. 권씨는 권신찬 목사의 외동딸이었다. 역시 특허청 상표 검색을 통해 권씨가 지난 1960년대부터 ‘크레오파트라’라는 남녀·아동 맞춤복 회사를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의 전 구원파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 김혜경씨를 유 회장의 내연녀라고 보도했지만, 과거 수십년간 유씨의 비서를 역임한 인사로, 말하자면 심복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김씨와 아들 유혁기씨는 현재 해외로 출국해 검찰 수사망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회사 세모가 도산한 후 다시 청해진해운이라는 이름으로 연안해운사업권 등 각종 이권사업을 어떻게 따낼 수 있었느냐를 두고 정·관계 로비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고 있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전직 구원파 고위 인사는 “유씨를 비롯한 구원파 인사들은 1970년대부터 중앙정보부를 통해 정·관계에 꾸준히 비자금을 상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 22일자에서 유 회장의 전 측근의 말을 인용, ‘정치권에 돈이 든 박스를 배달한 정황’을 보도했다. 오대양사건과 관련한 사기 혐의로 복역, 출소한 뒤 유 회장은 주변에 “자신에 대한 반대파의 정치적 모략으로 감옥에 갔다”고 설명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4월 23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을 포함한 청해진해운 관계사와 관련 종교단체 사무실 등 10여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기독교복음침례회 서울교회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정치권 로비’ 최근까지 계속됐다

정치권과 구원파의 관계에 대한 의혹은 최근까지 지속된다. <주간경향>이 지난주에 보도한 청해진해운 측이 한강 수상콜택시 사업권을 따낸 것은 2006년 11월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이다. 2007년부터 20년간, 그러니까 2027년까지 독점적인 사업권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특혜 내지는 유착 의혹이 제기된다. 세월호 사건이 불거진 후인 지난 4월 21일 한강 수상콜택시 사업은 잠정 중단됐다. 관할 기관인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 투여 없이 사업 권한을 준 것이기 때문에 수익성 여부와 상관없이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며 “정상적인 공모과정을 거쳐 사업자를 선정한 것으로 알지만, 자세한 부분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급격하게 유병언 회장 일가의 비리사건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물타기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사건에 대해 들끓는 국민적 분노에 대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회사 소유관계로 방향을 전환해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 부재 문제를 호도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인천지검 관계자는 “현재 검찰 수사는 종교시설이나 단체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세월호 사건과 관계되는 청해진해운이나 관계회사들의 운영상의 잘못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라며 “현재까지 수사방향은 정·관계 로비의혹 쪽으로는 맞추고 있지 않으며, 구원파 신도들을 이용해 축재한 과정 등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병언 회장 특허, 유독 선박관련 많아

사고를 일으킨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유병언씨 일가로 밝혀진 뒤 나오는 보도들을 보면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세모월드의 약칭이다”, “세모라는 이름은 모세를 뒤집은 것으로 유 회장 자신이 선지자라는 주장을 감추고 있는 이름이다” 등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특허청의 등록사항만 놓고 보면 이 추측은 너무 앞서 가는 주장이다. 특허청이 거절한 ㈜세모의 초기 도안은 말 그대로 삼각형, 세모다. 오히려 천해지 등의 이름이 하늘, 바다, 땅을 뜻한다는 점에서 세모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유 회장이 제출해놓은 상표나 디자인 특허 이외에 실용신안 특허를 보면 앞서 언급한 대장세척기나 유 회장의 주변에서 천재 발명가로 치켜세우는 데 주로 거론하는 ‘종이비누’나 ‘개폐식 환풍기’를 제외하면 유난히 배와 관련된 것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왜일까. 한 교계 관계자는 “구원파의 기원을 보면 그 뿌리에 정식 선교사 출신이 아니면서도 한국에서 제자를 양성한 미국인 딕욕(1928년생)이 있는데, 그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10대 후반 시절 미국 상선에서 일한 경험이 유 회장의 배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 유병언 회장이 지난 1982년 실용신안특허를 냈다가 거절당한 ‘오토바이용 구동보우트’ 특허. 유 회장이 신청한 특허 중엔 이밖에도 ‘구보로 추진되는 보우트’, ‘제차량의 구동력으로 추진되는 보우트’, ‘배의 와류방지 장치’, ‘보우트의 안전장치’ 등 배와 관련한 것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특허청


7. 유병언 '5공 유착설' 의혹의 그때 그 사람들

최종수정 2016.09.27 14:29 기사입력 2014.05.23 12:36 

검찰, 1991년 재수사 했지만 의문 남아…유병언, 정치권 자금줄 역할 했는데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검찰이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73) '은닉재산' 추적에 나서면서 '5공 유착설'을 둘러싼 의혹도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유병언 일가가 승승장구하게 된 것은 5공 시절 특혜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4년 3월23일 유 전 회장의 ㈜삼우트레이딩을 방문한 장면은 5공과의 유착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애로사항을 검토해 돌봐주라"고 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사공 수석은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본인은 이 건의사항의 해결이 가능한지를 관련 경제비서진과 함께 검토하도록 한 바 있다"면서 "2주 동안에 걸친 관계자들의 검토작업 결과 삼우트레이딩의 대환 요청은 은행 측이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삼우 트레이딩 관계자에게 통고해 준 바 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이형구 당시 재무부 차관보는 김명호 당시 은행감독원 부원장보를 통해 한일은행 등 4개의 삼우 거래은행 상무들과 대출문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측이 난색을 표명하자 삼우 측은 부동산 담보제공과 사업범위 축소 등 은행 측 요구를 받아들인 뒤 4개 은행에서 25억원을 대출받았다. 

검찰은 '오대양 사건'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1991년 8월17일 사 수석과 이 차관보, 김 부원장보 등을 소환해 대출 과정에서 불법·특혜가 없었는지 조사했다. 검찰은 8월20일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는 의혹 당사자의 해명 전달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씨와 유 전 회장의 친분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하면서 친분 관계를 맺었다. 1986년 세모가 한강유람선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도 전경환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측은 '5공 유착설'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구원파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한강유람선 시절 5공의 비호 아래 유람선을 따냈다는 의혹이 무성했지만 1986년 당시 세무조사로 3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는 등 오히려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유 전 회장이 5공 임기말 세무조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민정당 뒤를 이어 민자당 재정위원까지 맡으면서 건재를 과시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 전 회장이 당시 여권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은 인사들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8. 유병언의 죽음에 안도하는 사람들은 누구?

김아사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asakim@chosun.com
입력 : 2014.07.23 05:46 | 수정 : 2014.07.23 12:56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의외의 시신으로 발견된데 대해 안도했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 5공 때부터 정치권에 로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유씨와 유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겐 유씨가 검·경에 체포되는 것은 악몽일 것이다.

생전(生前)의 유씨 뒤에는 항상 돈과 권력이 있었다. 그가 법정관리까지 갔던 세모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베풀어준 특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여러 신도의 도움을 받으며 장기간의 도피 생활을 이어갔던 것 역시 종교와 돈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수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5공 때부터 TK 지역 의원들에게 로비

유씨는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다섯살때부터 대구로 건너왔기 때문에 실제적 고향은 대구다. 이 때문에 5공시절부터 TK 출신 인맥들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당시 유씨의 대표적인 인맥으로 세간에 오르내렸던 사람은  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다. 지난 1985년 세모가 한강유람선 운항업체로 선정될 때, 전경환 씨와 당시 서울시장  보현씨가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한살 차이(전경환씨는 1942년생)였던 두 사람 사이는 상당히  까웠다고 한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유씨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자리 역시 전경환씨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84년 3월 당시 전두환 통령이 삼우 트레이딩 부천공장에 들러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오른쪽이 유병언씨 /조선일보 DB

유 씨가 운영하던 삼우트레이딩은 1985년 부도 위기를 맞아 한일은행으로부터 25억 원을 대출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형구 전 재무부 차관보와 김명호 전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등이 한일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1991년 오대양 사건 및 5공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당시 검찰 조사 결과 뚜렷한 혐의점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구원파 연구가인 진용식 목사는 “유병언씨는 5공화국에서 정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다”고 했다.

6공 때 유씨는 민자당의 재정위원을 지내며 돈줄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1년 민주당 김현 의원은 유씨가 월계수회의 회원이라고 주장했다. 월계수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6공 황태자’로 불리는 박철언 당시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주도한 모임이다.

이 당시 정치권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당시 유씨는 언론에 자선사업가 등으로 보도되면 이를 발판으로 TK 출신 정관계 인사들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을 사귄 것으로 알려졌었다”고 했다. 한 구원파 관계자는 “이 시절 집회 때 얼굴을 알 만한 인사가 많았다”고 했다 . 유씨는 이 시절부터 신도들에게 자신을 목사님이라 부르지 말고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유병언에 특혜를 베푼 사람들

유씨가 법정관리 상태였던 세모그룹을 다시 일으킨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금융권 고위 인사가 그의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1997년 세모해운의 실적 악화로 인해 세모는 부도를 맞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부채는 2245억원이었다. 그런데 유씨는 2008년 ‘새무리’라는 계열사를 통해 당시 계열사들을 336억 9000만원에 다시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1000억원이 넘는 빚을 탕감해줬다. 당시 세모의 부채 2245억원 가운데 채권단이 754억원을 탕감해주고, 1155억원은 출자전환(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회사의 주식을 받는 것)을 해줬다. 10년간의 법정관리 과정에서 개선 실적이 없는 기업에 1000억원 이상의 빚을 탕감해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 세모가 부채를 정리한 방법/조선일보 DB

특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새무리의 2007년과 2008년 매출은 각각 1억9000만원, 1억6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새무리 컨소시엄은 세모를 인수하기 전인 2007년 기업은행에서 95억원, 농협중앙회에서 128억원을 단기차입금으로 빌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세모의 사례는 정상적인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며 “이익 개선 여지가 불분명한데도 대출과 출자전환 등이 있었다는 것은 특혜가 있었는지 의심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했다.

유씨 차명 재산 가진 이들, 재산권 주장 여지 생겨

유씨의 재산 중 계열사 소유 자산은 대부분 차명으로 돼 있다. 정부가 계열사에 구상권을 청구한다 해도 이들이 부당이익 반환 소송을 한다면 돈을 받아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회사 소유 부동산은 구원파 신도 등의 명의로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 유씨의 건설 계열사 트라이곤코리아는 서울 삼성동, 강원 고성군, 제주 서귀포시 등 부동산 24곳에 세월호 사고 이후 근저당을 설정한 상태다. 시가가 270억원에 상당한다. 근저당이 설정되면 설사 정부가 부동산을 압류한다 해도 이들이 재산권을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9. 일그러진 대한민국 성공 신화 유병언 세월호 소유주

'세월호' 유병언과 권력의 희한한 인연
박세열 기자 2014.04.23 17:25:43

비극적인 참사를 낳은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검찰 수사는 2000억 원대를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되는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 형성 의혹,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정관계 로비 의혹 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여객·해운업 등을 토대로 자산을 불려 온 유 전 회장의 개인사는 권력과 유착으로 점철돼 있다. 

1991년 오대양 사건 연루 의혹으로 청구된 유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그리고 1986년 사정 당국의 내사 기록 등에는 그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유 전 회장은 다섯 살 때인 1946년 부모를 따라 대구로 이주한다. 1962년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대구의 한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유 전 회장은 권신찬 목사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인 권 목사와 유 전 회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의 전신인 평신도복음선교회를 이끌고 전도 활동에 힘을 쏟았다. 서울 성동구의 한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유 전 회장은 <극동방송> 부국장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유 전 회장은 1976년 신자들의 헌금 등으로 조성한 자금을 동원, 부도 직전에 있던 삼우상사를 인수, 1978년 세모(청해진해운 전신)의 전신 격인 삼우트레이딩을 설립,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유 전 회장은 "삼우트레이딩 등 사업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 "돈을 내서 회사를 살려야 천국에 간다"는 식의 교리를 신도들에게 내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신자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사채놀이'에 나섰다. 그는 미양코리아, 영진상공사를 인수, 1982년 이 업체 명의로 계좌를 열어 신자들에게 5억8600만 원의 어음을 발행한 후, 1984년 부도를 내는 방식으로 10억 원가량을 사취한 의혹도 받았다.

   
▲ 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세모 전신인 삼우 트레이딩 부천공장을 방문, 유병언 사장과 함께 작업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유 전 회장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은 권력 실세와의 관계를 이용해 이를 무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회장과 전두환 정권 간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했다는 후문이다.

1981년부터 유 전 회장은 '한국기독교멸공회'라는 반공단체와 함께 정부 지지집회를 열고 친정부 발언을 해왔다. '무인(武人)의 정'으로 전경환 씨와 친분이 있던 유 씨는 전 씨가 새마을중앙회장을 지낼 당시 그에게 경호원을 붙여주는 등 꾸준히 편의를 제공했다. 1983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 방한 때는 자신의 경호 요원을 파견시키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유 전 회장은 내무장관으로부터 공로감사장을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3월 23일, 인천시 초도순시를 마치고 부천에 들러 유 전 회장이 운영하는 삼우트레이딩 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1984년 삼우트레이딩은 부도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한일은행으로부터 25억 원을 대출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형구 전 재무부차관보, 김명호 전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등이 한일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1991년 오대양 사건 및 5공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었다.

검찰은 당시 "대출 압력을 가한 사실이 없고 담보를 제공한 뒤 정상적 방법으로 대출받았으며 대출금 모두 변제"했다고 발표했다. 

유병언 같은 인사가 30년 가까이 여객선을 운영하는 나라

유 전 회장이 1982년 10월 급조된 회사인 세모를 전면에 앞세우고 여객업에 뛰어든 것은, 1985년 9월 주식회사 원광과 함께 서울시로부터 한강유람선 사업 승인을 얻어낸 것이 계기였다. '세모'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모세를 거꾸로 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유 전 회장은 "(모세를 뒤집은 것이 아니고) 안정감을 주는 모든 도형의 기초인 삼각형"을 의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세모가 선박 사업에 주력하는 이유로 유 전 회장이 구원파 신도들에게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하나님의 사업을 한다"고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나돌았다.

당시 수사기관의 내사 기록 등에 따르면 세모가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낸 데에는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원광의 회장 유복수 씨 역시 민자당 당원으로 전경환 씨, 전 전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 씨 등과 가까운 사이였다. 당초 한 개의 업체만 선정하려던 것을 뒤집고 서울시가 원광과 세모 두 개 업체를 선정한 것은 유 전 회장과 원광 측의 치열한 로비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대양 사건 수사 당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세모 고위관계자는 "전경환 씨가 평소 유병언 사장과 가까워 전 씨를 상대로 집중적인 로비를 했다"고 말했다.

세모는 여객선 운영업을 할 준비가 안 된 회사였다. 유람선 건조에 일반적으로 7개월이 걸리는 데 반해 세모의 유람선은 4개월 만에 건조됐다. 당시 수사 기관은 세모와 관련해 "건조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고 승선 인원이 210명으로 과다하게 책정돼 안전사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 내사 보고서에는 "조선 기술 경험이 없는 데다, 승선요금도 8개 신청업체 중 가장 비싸게(다른 업체에 비해 2~3배) 책정됐는데 서울시가 사업 허가를 내준 데 대한 비난이 자자"하다는 여론 동향도 포함돼 있다.

수사 당국은 당시 유 전 회장 구속 수사 의견을 상부에 올렸으나 묵살됐고, 결국 유 전 회장에 대해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한다. 

1986년 10월 25일 원광과 세모의 한강 유람선이 정식 운항을 개시했다. 그러나 세모 소속 유람선의 사정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운행 첫날 저수로에 돌출된 모래 언덕에 스크루가 걸려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세모는 정식 운항 다음날인 26일에야 영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한강유람선은 각종 사고를 내, 신문 사회면을 단골로 장식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90년 9월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원광 소속 한강유람선이 급류에 떠내려가 세모의 바지선을 들이받았고, 두 배에 타고 있던 선원 등 15명이 숨진 사건이었다. 또 1995년에는 세모 소속 133톤급 원앙새호에서 화재가 발생, 선박 내부가 전소하는 일도 났다. 

1995년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세모는 여객선의 의자를 임의로 개조하거나 여객용 보조의자를 규정보다 많이 설치해 적발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의자를 선체에 고정해 선박검사를 통과한 후, 그 의자를 뜯어내 이동식 의자로 사용한 일도 발각됐다. 인명 구조 장비를 법정기준보다 부족하게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부실 운영 그 자체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모는 계속 유람선과 여객선을 운영했다. 1997년 부도가 난 이후에도 유 전 회장의 여객선 사업은 계속됐다. 각종 사고를 내놓고도 단 한 번도 면허를 빼앗기지 않고 여객선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진 부실 운행 행태가 결국 세월호 침몰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에 참사를 맞은 세월호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의 덕을 톡톡히 본 배였다. 선령 18년짜리 배를 들여와 증축, 개조해 바다로 띄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선령 제한을 기존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규제 완화’ 정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8월 국토해양부는 94건의 행정 규제 개선 과제를 발표하며 20년으로 획일화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완화안을 포함시켰다. 2009년 1월,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런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해 유 전 회장은 2012년 18년 된 노후 선박을 국내에 들여왔다. 이후 벌어진 사건은 우리가 모두 아는 일들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10. [진도 여객선 침몰]청해진해운 진짜주인, 세모유람선 유병언家

'해운황제' 꿈꾸던 유병언 전회장 두 아들 실소유
한강 세모유람선 운영 등..97년 부도 이후 승계
세모, 오대양사건·5공 유착說 ..한때 준재벌 급성장

사고 여객선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과거 한강 세모유람선을 운영하면서 '해운 황제'를 꿈꾸던 유병언(73) 전 세모회장의 아들들 소유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청해진해운의 주요 주주는 조선업체인 천해지(39.4%)와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11.6%), 경영자문업체인 아이원아이홀딩스(7.1%) 등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천해지의 최대 주주는 아이원아이홀딩스로 4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원아이홀딩스-천해지-청해진해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지주사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는 2007년 설립됐으며 주요 주주가 유대균(19.4%), 유혁기(19.4%), 김혜경(6.3%)씨 등이다.

유대균·유혁기씨는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첫째·둘째 아들로 1997년 세모의 부도 와중에서도 경영 승계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무역 오퍼상을 하던 유병언 전 회장은 1979년 (주)세모를 설립했다. 스쿠알렌 등 건강식품, 한강 유람선, 자동차 부품제조, 조선, 건설업 등을 주요 업종으로 9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준재벌 급으로 부상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6년 9월 유수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모는 1990년 한강 유람선 운영 중 승객 15명이 실종됐던 사고가 나기도 했다.

유 전회장은 세모에서 해운사업본부를 분리해 세모해운을 1995년 설립했고, 서해안과 남해안에 20여 개 항로 27척의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항하는 국내 최대의 연안여객업체로 급성장했었다.

아울러 기독교 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의 목사이기도 한 그는 장인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1981년 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는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창립했다. 이로 인해 1987년 종말론 등을 내세우며 한국 최초의 종교집단 자살사건으로 알려진 '오대양 집단자살사건'과의 연관설로 검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오대양사건은 특정교파의 광신도 32명이 금전문제에 얽혀 집단자살해 사회적 충격을 안긴 사건이다.

오대양사건 후유증과 5공 유착설, 오너 구속수감, 병원사업과 조선 및 자동차 부품업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 등으로 결국 1997년에 부도를 맞았다. 이번에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은 세모 부도 2년 후인 1999년 설립돼 인천과 제주항로를 주로 운항해왔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09년 20억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었지만, 해운업황이 악화하면서 최근 3년간 실적이 부진했고 특히 작년에는 영업손실이 7억 8500만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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