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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폭력 예방… 기독교 윤리적 이해와 대안
[ 지상중계 ] 교회 내 성폭력 예방교육 지도자 세미나 ③
2018년 03월 19일 (월) 12:18:55 김은혜 교수 uhk@puts.ac.kr

[ ‘#MeToo’로 세상을 떠들썩한 가운데 지난 2월 19-20일 양일간 예장통합(총회장 최기학 목사)이 국내선교부 주관으로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 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 발제문들을 주최 측으로부터 제공받아 지상중계 한다. / 편집자 주 ]


교회 성폭력 예방을 위한 성폭력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이해와 대안

김은혜 교수 /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1. 들어가는 말: 청년문제인식과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 기르기

   
▲ 김은혜 교수

지난 몇 년간 수행한 필자의 교회 청년 이탈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교회문화는 위계적이고 가부장적 문화와 그리스도인들의 배타적 자세이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교회에서 배운 신앙과 세상의 삶의 기준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절망과 무기력감에 대한 토로이다. 개신교 교단마다 주일학교 학생의 감소로 나타나는 다음세대에 한 염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빠르게 진행되는 청년들의 이탈은 한국교회의 가까운 미래가 어둡다는 의미에서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교회 청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괴리감 중의 하나는 교회의 성(性)에 대한 침묵과 전통적 가르침에서 오는 무력감이다. 청년들은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성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으로 살아야하는 불안과 죄의식으로 생기를 잃고 형식적 신앙으로 살아가면서 결혼, 성, 사랑 등 다양한 가치관의 혼돈을 경험한다.

한국 사회문화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청년들은 몸과 성에 한 가치관과 그들의 신앙을 어떻게 결합하며 살아가야 할지 방황하고 질문한다. 그러나 교회는 오랫동안 성에 대해 침묵하여 왔고 때로는 부정적 가르침으로 일관하였다. 성도들이 성문제로 고민할 때 그리고 다양한 성문제가 제기될 때 은폐와 축소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상담을 한다 해도 대단히 제한적이고 좁은 의미에서 성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교리적 이해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성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책임적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양성평등문화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정착되는 과정 가운데 있는 21세기에도 성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별히 무엇이 성폭력을 야기하는지에 하여 생물학적 사회심리학적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왔다. 최근 교회가 성폭력 현장 중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자괴감과 우려의 소리가 높다. 그만큼 교회의 성의식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와 자성의 소리도 들려온다. 2015년 우리 교단은 목회자 윤리강령을 발표하고 특별히 성윤리에 대한 목회자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한국교회 현장이 오히려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폭력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는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은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성폭력의 대상은 누구인가?

통계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의 약 80%가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성폭력을 으슥한 밤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 의해 기습적으로 당하는 비일상적인 일로 여기는 우리의 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21세기에도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경험은 모든 일상 속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다. 여성혐오는 생활현장, 일터, 거리 곳곳에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 안의 여성은 상화된 어떤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딸들이고 누이이며 아내이고 어머니들이다.

성폭력은 친한 사이, 직장이나 같은 집단 내 등 일상적 공간과 가장 도덕적 안전성을 보여주어야 할 가정과 교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사회에 만 연한 성문화와 구별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교회의 성의식과 한국교회 성관계, 데이트 관계, 부부관계, 심지어 교역자와 성도 간에 일어나는 심각한 성범죄는 성 관계와 성폭력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폭력과 친밀함이 모호하게 맞닿아 때로는 올바른 판단을 어렵게 한다. 특별히 목회자와 여성도간의 성폭력은 목자와 양 무리 간의 영적 돌봄과 목회적 차원의 긴밀한 관계가 인격적 관계보다는 위계적 관계 속에서 쉽게 왜곡되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기독교 성의식을 확립함으로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더욱 예민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왔고, 외부 사회와 단절되어 왔으며,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역사는 남성의 폭력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반적이었으므로, 아내폭력의 문제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은폐되거나 문화적으로 사회 안에서 암암리에 수용되거나 조장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반성하면서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서조차 발생하는 다양한 성폭 력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 성의식 전반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의 원인들이 다양하게 분석되어 왔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불평등한 위계적 여남 관계이다. 그로부터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의식이 고착화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적 체계는 남성중심적 문화를 강고히 형성하여왔고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뿌리 깊은 의식으로 내제화되어 왔다. 즉 기독교 성윤리적 관점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된 성문화와 성의식은 남성 중심적 언어와 관점, 여성에 대한 폭력을 수용하고 부정의 한 성역할의 사회화, 왜곡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정체성, 아내와 자녀에 대한 가부장적 소유의식 등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측면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온 것이다.1) 이러한 관계를 좀 더 근본적으로 인식하고 현실적 변화에 대한 다양한 노력들과 새로운 인식의 공유와 성교육 그리고 실천적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연구결과는 결론적으로 여전히 한국 교회의 신학적 전통과 전제 속에 위계적이고 계층적 이원론이 내재해 있는 한 이러한 폭력의 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물론 유아에게 가해지는 유치원 보육교사들의 폭력이나 자녀에게 가해지는 어머니들의 폭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성폭력의 지배적인 피해자인 여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교회의 건전한 성윤리를 확립하기 위해서 뿌리 깊이 내재하고 있는 신학적 전제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실제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성교육과 철저한 의식개혁, 그리고 고통과 침묵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정책적 입법화도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에서 성폭력으로 규정되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성”을 바라보는 시각 뿐 아니라, 성폭력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교회의 처리방식을 다시 한 번 반성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3. 교회공동체 속에 현존하는 위계적 이분법 해체하기

어떻게 하면 성폭력을 사전에 예방하고, 또 그것이 발생한 후에 대처 혹은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가해자의 절적인 다수가 남성이지만 그 책임이 오히려 피해자의 다수인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여성과 남성 간의 관계의 양상과 힘의 구조에 있어, 그 기저에 어떤 신학적 전통과 기독교적 가치관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의 역사 동안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문화의 일부로 행해 져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법의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서구에서도 30년 남짓 되었을 만큼 최근의 일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비가시화 된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를 명명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근절하기 위한 운동도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 말하기를 요청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남성 중심적 언어와 관점이 보편성을 인정받는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는 하나의 혼란으로 보이기 때문에 쉽게 진실성을 의심받는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직장과 가정 혹은 교회 내 발생하는 심각한 폭력은 쉽게 하찮고 사사로운 일로 여겨진다.

광의의 성폭력 개념은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통제, 즉 위계 체계적 성별체계 안에 나타나는 힘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폭력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게 해준다.2)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위계 체계적 성별 권력구조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가해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며,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폭력이 단순히 개인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으로 근원적 성별권력구조가 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교회 내 성폭력은 교회의 목회자나 교역자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남용하여 성도에게 가하는 성폭력과 간음 또는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또한 더욱 유의해야 하는 현실은 폭력성을 수반하지 않았더라도 목회자의 영적 권위를 이용하여 여신도들의 성을 유린했다면 이러한 것도 성폭력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3)

1) 기독교의 성차별의 역사와 한국교회 내에 구조화된 불평등한 관계

(1) 성차별의 역사

기독교 신학 전통은 오랫동안 여성과 남성의 위계적 관계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관점으로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규정해 왔다. 특별히 기독교 성윤리를 확립함에 있어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성을 동시에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언급하는 이유는 성의식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가르침이 가정에서 형성되고 부모의 관계성에서 가장 기초적 남녀관계를 배우기 때문이다. 서양의 기독교 국가 중 많은 나라들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편이 아내를 훈육하기 위해 구타하는 것을 용인하고, 교회법이나 관습법으로 아내 구타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와 여성의 성을 관련시켰고 여성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품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에 대한 그의 견해는 아내의 매질 시행을 묵인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 때문에 영의 의지는 육체를 올 바르게 조절할 수 없고, 이런 조절의 부족은 부분 성적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여성의 종속에 대한 논의에서도 그는 남성의 여성 종속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여성의 성은 남성보다 죄에 더 오염되었다고 믿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유럽에서는 아내가 순종하지 않을 경우, 남편에게 이에 대한 처벌로서 폭력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한 법적 종교적인 ‘체벌법’을 제공했다. 식민지 시기의 미국에서는 순종적 아내의 규범에 한 내용이 뉴잉글랜드 청교도 교리문답에 나타나기도 했다. 아내들에게는 “나의 남편은 나의 상전(my superior), 나보다 나은 분(my better)”으로 끝나는 교리문답을 반복적으로 외우도록 했다. 이러한 태도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남편에 의해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아내가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생각이고 또 다른 유형은 매 맞는 아내에 한 것을 중한 범죄로 보지 않는 것이다.4)

(2) 성서 오용과 왜곡된 성서해석

많은 교회 내 성폭력 현장에서 일어나는 목회자들의 성적 비행과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은폐와 무관심은 이러한 전통신학에 내재한 성차별적인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여남 관계의 잘못된 이해 속에서 이루어진 성서 오용과 왜곡된 성서해석은 교회 내 성폭력을 정당화시켜 주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다스리는 남편의 지배(창 3:16)가 죄의 결과라는 성서의 내용은 창조 속에 있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죄가 원인이 된 힘의 왜곡을 영속하기보다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과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새로운 남녀관계성을 만드는 작업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교회 내 성폭력은 그 수법이나 파렴치성에서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종교인들의 성폭력이 주로 사이비 교주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교단의 목회자와 교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오히려 피해자의 죄의식과 수치심이 강조되었다. 성서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잘못된 이해를 기초로, 영적이고 절적 권위를 이용하여 자신을 신의 대리자로 미화하거나 정신적 남편 혹은 상징적 아버지로 섬기게 만드는 특수한 메커니즘5)을 통해 교회 내에서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3) 신적인 권위의 오인

이렇게 때로는 무소불위의 힘으로 군림하는 목회자들의 성적 요구와 폭력 앞에서 신도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인간적 판단력조차 잃기 십상이고 그 요구와 폭력을 신적인 권위와 요청으로 오인하며 잘못 판단하고 때로는 지속적이고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현실이다.6) 기독교여성상담소가 교회 내 성폭력의 특징을 정리한 것을 보면 부분의 피해자들은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쉽게 거부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회 내 성폭력은 대부분 화간의 형태를 띠는 강간인 경우가 많은데 주의 종을 기쁘게 한다거나 목회자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섬기는 신앙의 행위로 생각하게 만든 다고 한다.7) 교회 안에서 학습된 순종적 여성성에 한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양성평등문화의 실현과 교회 내에서 지배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성에 한 신학적 재구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2) 성폭력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기독교 윤리적 대안

(1) 성차별의 역사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기독교 윤리적 대안

한국 개신교에 지한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여성에 대한 이해와 그 신학적 토대는 왜 아직도 많은 교회 현장에서 다양한 성폭력이 지속되는지에 대한 근거 가 된다. 여성의 성을 죄와 관련시킨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여성의 성을 수치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 교회사학자 토르제센에 따르면, “여성의 성은 남성의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에 통제되어야 했다. 통제되지 않는 여성의 성은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다.”라고 보았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용기, 정의, 극기’와 같은 덕목이, 여성에게는 ‘순결, 침묵, 복종’의 덕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8) 남성의 계층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현대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철저한 폭력 근절을 위해 이러한 의식의 변화와 교육이 더 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2) 성서 오용과 왜곡된 성서해석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기독교 윤리적 대안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회 여성들은 신학적으로 성서해석학적으로 이런 관계를 지속하고 유지하게 하는 남녀의 위계적 관계에 기초한 전통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성도와 목회자, 아내와 남편 사이의 위계적 질서에 기초한 남녀관계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는 안목과 관점이 교회교육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제 이러한 신학적 작업이 여성신학자들의 학문적 영역을 넘어, 각 교회 여성 지도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을 교육할 수 있고 의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의 잘못된 성서해석은 교회를 심각한 성폭력의 현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모 교회 목회자는 라헬의 이야기로 2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을 성폭행하였으며,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는 목회자의 성폭력을 쉽게 용서하는데 정당한 이야기로 사용된다. 구약학자인 이경숙 교수는 여성들이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고 남성들이 나누어 갖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며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존재로 자주 묘사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목회자들이 이러한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마치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였다.9)

여성 성서신학자들은 목회자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용된 성서본문이 불필요 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르게 해석함을 통해 그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성서가 이천 년이 지난 현실에도 자행되는 정신, 성고문, 인신매매, 성상품화 등 여성을 비하하고 폭력을 야기하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중요한 본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10) 또한 엘리자베스 피오렌 자(Elizabeth Fiorenza)는 고통 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성서본문, 즉 회상의 해석학(hermeneutics of remembrance)11)을 주장한다. 왜 폭력의 절대 다수의 피해자가 여성인가? 왜 성폭력의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가? 왜 교회가 심각한 성폭력의 현장 중 하나가 되고 있는가? 질문하고 이에 교회는 책임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3) 남성다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기독교 윤리적 대안

일반적으로 가장 왜곡된 사회통념은 첫째, 많은 사람이 남성의 폭력을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기보다 본능적인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며 남성들의 성폭력을 억제 할 수 없는 생리적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폭력은 남성의 생물학적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주의 사회(sexist society) 현상의 결과이다.12) 남성의 높은 성욕을 폭력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일반적 통념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전제하며, 이러한 통념이 수많은 세월동안 성폭력을 남성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지나치게 남성의 폭력을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 가부장제는 성적 관계에서 여성에게 수동적인 역할을, 남성에게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이중적인 성 규범 각본을 부여한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는 데 구조적인 제약이 있다. 동의라는 개념은 남성들에게는 ‘자발성’을 의미할 수 있지만, 여성들에게는 ‘거부하지 않음’으로만 이해될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폭력과 성 관계를 구분하기 모호한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한국사회의 성인식에 대한 대중적 담론은 ‘본질적’으로 남성의 우월성을 기초로 호르몬에 기인한 남성의 공격성이라는 확실한 생물학적 이론으로 지지받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그 반대를 주장한다. “공격적 행위가 남성 호르몬 분비를 촉진 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지배해야 한다는 기는 남성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기 위한 상황을 제공하고, 폭력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 상관관계로 고려해야 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육체적 차이는 생물학적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상황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13) 따라서 기독교는 현대문화 속에 상징화되어 있는 왜곡된 남성다움의 반문화적 이해, 즉 남을 다스리는 힘과 폭력을 통하여 남성성을 나타내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의미의 성서적이고 복음적 부성(父性)과 남성성에 대한 이미지를 재발견하고 교회에서 교육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공동체로서 교회 내의 성폭력은 명백히 인간의 죄의 결과이며, 회개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 때문에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의 가부장적인 전통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가르쳐온 남존여비의 잘못된 유교사상과 여성을 타락의 역사를 만들어낸 열등하고 불경한 존재로 남성의 보호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온 가부장적인 유대 기독교와 만나면서 여성에 대한 가장 왜곡된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는 도덕적 근거를 제공해 왔다. 이러한 배경은 세계교회 속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교회가 성평등 부분에서는 세계교회에서 가장 뒤쳐진 상황을 만들게 했다.

3) 성역할과 성폭력의 바른 이해: 새로운 관계적 힘의 형성과 상호섬김

(1) 성역할의 위계적 질서에서 상호존중과 상호배려의 평등공동체로

성폭력 극복을 위해 필요한 의식변화는 먼저, 교회 내에 만연한 위계질서의 변화이다. 남존여비의 유교적 전통과 남성중심적 전통 기독교 사상이 만나면서 한국사회의 기독교 안에 심각한 여성 차별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전통신학은 여성을 원죄와 관련시키며 여성이란 도덕적, 지적으로 자제력이 부족하여 사탄에게 유혹 받기 쉬운 죄악의 원인 제공자이며 남성에 비해 영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여남 관계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 사이의 차별과 위계적 관계를 극복한 평등공동체로서 거듭나야 한다. 그러므로 의식의 변화에 따른 교회문화의 형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신앙공동체는 배려와 존중의 평등공동체에 기초한 문화여야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성문화가 여성과 남성의 지배(우위) 복종 이데올로기가 좀 더 온전한 양성평등 의식과 상호존중과 인간존엄에 기초한 건전한 성문화로 정착된다면, 이러한 의식과 구조의 변화는 구체적으로 교회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고, 오히려 한국사회를 통해 전해 오는 사회화 관습과 접한 관련성 속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가부장적 구조의 변화시키는 주체로 복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그리스도인들과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앞장설 수 있으며 이러한 교회공동체로 거듭날 때 세상을 살리고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는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의 창조 원리는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 하는 가장 엄중하고 근원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는 말씀에 기초하여 차별을 극복하며 어떠한 형태의 폭력과 어떠한 상황에서의 성적 폭력도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 하는 신앙을 회복하여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폭력을 생산하는 배제와 차별의 정책과 신념에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저항해야한다. 그리고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인종과 계급과 성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어떻게 급진적인 평등성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지 모색하고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2) 사회화된 성역할에서 상호관계와 상호존중을 통한 상호 섬김의 공동체로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의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 두 번째는 성도들 간의 성역할의 사회화와 성폭력 사이의 연결을 깨뜨리고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해체하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호강화(Mutual Empowerment)와 상호존중을 관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14) 성폭력은 남녀 간의 사회문화적 위계질서뿐 아니라 성역할에 의해서 정당화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폭력 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기초적인 인권 개념은 성차별 사회에서는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누구나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 담론은 인간으로서 맞지 않을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를 더 강조하며 ‘맞을 짓’, ‘당할 만한 짓’을 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유교적 지배복종의 문화 안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이라 여겨지는 충실한 수행여부를 더 추궁하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6년 동안 가정 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목회할 때의 경험을 통해서도 많은 피해여성들이 자신이 부족하고 죄가 많으며, 여성으로서 잘 참고 살지 못함에 대한 자책이 일반적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였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과 부정의(不正義)는 종종 성역할로 정당화되며 정상화된다. 이러한 문화와 관습 속에서 여성의 성역할과 인권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된다.15) 특별히 한국 사회의 유교적 성역할 이데올로기는 남녀유별을 강조하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적이고 의존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가르쳐왔다. 물론 남녀 성역할의 분업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우월성과 중요성을 주입시키고 정당화 시킨다. 이렇게 끊임없는 사회화의 과정은 남성우월주의나 위계적 권위주의로 쉽게 전환 되고 남성의 지배를 여성에 대한 보호로 왜곡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남성 폭력의 가해자는 종종 보호자로 위장하게 된다.16) 일반적으로 폭력이 수용적인 환경 속에서 성폭력도 더 자주 일어난다. 성공회대학교 윤종모 목회상담학 교수는 목회자 중에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폭력적인 성향은 양육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목회자의 선발 과정에서 좀 더 면밀한 심사과정을 통하여 부적절한 사람은 후보로 추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7) 이러한 폭력적인 성향은 남성의 지배적 경향이 전통적인 성역할이라는 명목 하에 암묵적으로 정당화 되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 된 몸으로서의 힘은 관계를 맺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때의 힘은 공동체를 평등하고 아름답게 지속시키는 사람들의 관계 서 재창조되는 연합의 과정이다. 신앙공동체는 남성과 여성 한쪽이 힘을 일방적으로 소유하고 행사할 것이 아니라 힘의 내어줌을 통한 상호의존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강화의 모델은 피조물의 공동체에서 평등하게 행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행사하는 여성과 남성을 고려한다. 이제는 교회의 문화가 일방적이고 위계적이고 지배자적 관계를 정당화해온 가부장적 문화의 반성과 해체를 통해 지배/종속적으로 드러나는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상호 소통하고 존중하는 평등의 제자직을 수행하는 교회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상호성과 평등성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성숙한 의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더불어 성스러운 몸과 체현된 영(Sacred Body and Embodiment Soul)에 한 이해가 충분히 신학적으로 숙고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몸은 모두 존중되어야 하며 몸은 육체적 발달만큼이나 영적인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성을 몸과 성으로, 남성을 영과 영성으로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 대신, 여성과 남성 모두가 전체적으로 몸과 영이며, 성적 존재이자 영적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함께 섬기고 격려하며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함께 힘을 모아도 교회만이 희망임을 증거 하기가 힘겨운 현실이다. 하나님은 허락하셨으나 인간이 허락하치 않은 양성평등이 관습과 문화를 넘어서는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이제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교회의 질서가 평등과 섬김의 가치 위에 새롭게 재정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여성과 남성이 상호 섬기는 리더십으로 교회와 세상을 위해 함께 동역할 때 교회는 평등한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4. 나가는 말: 하나님의 형상과 기독교 인간성의 회복

사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해 왔다. 전통적으로 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거나, 인간을 죄로 이끄는 유혹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은 억제하거나 통제되어야 할 제멋로인 본능, 특히 남성의 본능으로 여겨져 왔다. 어쩌면 한국교회 역시 성서에 기초한 기독교적 성 이해에 기초하기보다는 사회문화 속에 지배적인 성문화, 다시 말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전통에 의해 우리의 삶과 문화 전반에서 받아들여진 것들에 기초해 있다.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온전한 하나님 이해와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경험에 터한 신앙을 가꾸어야 한다. 여성은 스스로를 일방적인 피해자,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성도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남성 목회자에 한 무비판적인 신격화, 여성의 영적 리더십 부정은 모두 남성 중심적인 신학 전통에 근거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해를 전제하고 남성과 여성의 근원적 평등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남성들 또한 가부장적 성역할 및 자기이해로부터 벗어나 올바른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비판적으로 정당화된 지배자의 위치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질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잘못된 하나님이해와 잘못된 인간이해로부터 형성된 전통적인 자기이해로부터 벗어나 남성으로서의 자기 뿐 아니라 상 여성에 대한 존재적 이해를 바르게 하고,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자신의 회복 뿐 아니라 타자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길이며, 이것이 진정한 관계의 회복이다. 부당한 폭력과 억압에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쉽게 전복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인간됨과 나됨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 성찰에 근거한 관계맺음이 필요하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폭력에 한 책임적이고 윤리적인 기독교 신앙을 위해 성(Sexuality)과 영성(Spirituality), 도덕성(Morality)이 분리되지 않은 온전한 인간성과 그리스도인의 인격, 도덕성을 통합적으로 교육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남성들과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와 언어들에 대해 저항하며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구분되고 고착된 모습들을 비관습적, 복음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수직적 위계구조와 가부장적 문화가 맞물려 낳은 교회문화 속에서 무감각해진 성도덕과 다양한 성폭력 사건들로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바르게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교단총회 안에서 성차별을 극복하지 않는 한 교회는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공동체로 거듭날 수 없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양성평등이 온전히 실현되고 성폭력 제로존(Zero Zone)으로 교회를 변화시키는 일이 요원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은 희망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신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참여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 생각해 봅시다.

1) 교회 안에서 성문제를 공적으로 토론한 경험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교회문화의 차이와 갈등에 대하여 토론해 봅시다.
3) 다양한 교회 성문제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도전을 받거나 실망한 적이 있는지 구체적으 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 함께 보면 좋은 문화콘텐츠

방송: “영화 속 사건들로 본 성희롱예방교육”(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https://www.youtube.com/watch?v=_1JW4RpAaP4&t=327s
영화에 나타난 다양한 성희롱 사례들을 통해 어떤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방송: 세바시 717회 “문제는 불평등한 성교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28VzNxYRgo&t=775s
어려서부터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조언들이 불평등한 성교육을 내재화시키는 것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영화: <노스 컨츄리>(2006)
1984년 미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승소한 사례를 소재로 한 영화. 광산에 취업한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가부장적 가족과 조직문화에 맞서 싸우는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영화: <한공주>(2013)
2004년 경상남도 양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누구보다 평범한 열일곱 소녀 한공주가 전학을 가면서까지 일상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피해자에게 가혹한 우리 사회에 비판적 메시지를 던진다.

책: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매진, 2012)
목회자 아버지에게 오랜 시간 성폭력, 가정폭력을 겪은 ‘생존자’의 치열한 자기 기록. 상처를 노출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자기 치유에 투자하라는 처방을 하며 오랜 세월 치유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들려준다.
 

각주)----------

1) 미셸 하웨이, 제임스 M. 오닐/김태련, 김정휘 옮김, <남성의 폭력성에 관하여: 무엇이 여성에 한 남성의 폭력을 야기시키는가>(서울: 이화여출판부, 2002).

2) 정희진,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한 폭력,” <성폭력을 다시 쓴다: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파주: 한울아카데미, 2003), 17-36.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권리이다. 성폭력은 강간, 강제추행, 언어적 성희롱, 음란성 메시지, 몰래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침해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성적인 폭력을 의미한다. 1995 년 UN 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의 인권에 포함시켜 각종 여성운동의 행동강령에 반영하면서 등장한 용어로, 원하지 않는 성행위나 임신, 출산, 성기완 절제 등을 강요받지 않고 모든 성 관련 행위를 본 인의 결정에 따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성부/위민넷, 다음 오픈백과)

3) 정숙자, “교회 내 성폭력의 문제와 안 모색,” <한국여성신학> 36 (1998), 33.

4) Kathlyn A. Breazeale, Mutual Empower ment : A Theology of Marriage, Intimacy and Redempt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8), 6-9.

5) 이원규, “교회 내 성폭력에 한 종교사회적 분석,” 65.

6) 이은선, “교회 내 성폭력 추방과 ‘성직’의 ‘비신화화’,” <한국여성신학> 65 (2007/7), 2-13.

7) 앞의 글, 12.

8) Kathlyn A. Breazeale, Mutual Empowerment : A Theology of Marriage, Intimacy and Redemption, 58.

9) 이경숙, “성폭력과 성서,” <성폭력과 기독교> (서울: 여성신학사, 2000), 36-37.

10) 필리스 트리블 / 최민자 옮김, <성서에 나타난 여성들의 희생: 성서의 여성신학적 재조명> (서울: 전 망사, 1984), 18.

11) 이우정 편, <여성들을 위한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115.

12) 윤종모, “교회 내 성폭력 문제의 안 모색을 위한 제언,” 33.

13) Kathlyn A. Breazeale, Mutual Empowerment : A Theology of Marriage, Intimacy and Redemption, 15.

14) 앞의 책, 11.

15) 정희진,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한 폭력,” 35.

16) 이원규, “교회 내 성폭력에 한 종교사회적 분석,” <한국여성신학> 38 (1999), 65.

17) 윤종모, "교회 내 성폭력 문제의 안 모색을 위한 제언", <한국여성신학> 36 (1998),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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