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그리스도인의 성윤리 정립을 위한 이론적 토대
[ 지상중계 ] 교회 내 성폭력 예방교육 지도자 세미나 ②
2018년 03월 07일 (수) 11:26:17 김은혜 교수 uhk@puts.ac.kr

[ ‘#MeToo’로 세상이 떠들썩한 가운데 지난 2월 19-20일 양일간 예장통합(총회장 최기학 목사)이 국내선교부 주관으로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 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 발제문들을 주최 측으로부터 제공받아 지상중계 한다. / 편집자 주 ]


그리스도인의 성윤리 정립을 위한 이론적 토대
- 한국교회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며

김은혜 교수 /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1. 들어가는 말

   
▲ 김은혜 교수
ⓒ<교회와신앙>

2017년 제102회기 교단총회에서 통과된 ‘성적 비행 의무 교육 및 교육과정 개발 연구위원회 조직’ 청원 건으로 목회자와 교회직원들의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위한 교재를 발간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고 모델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부분적으로나마 비추어줄 때 교회는 본질을 상실하지 않고 믿음의 공동체로서 건강하게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 제아무리 몸집이 크고 힘을 가졌다 해도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분리될 때 교회는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개신교 인구가 967만 6천 명으로 국내 종교 인구 중 가장 많았다. 개신교 인구가 국내 종교 인구 중 1위를 차지한 것은 인구주택총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1) 그러나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교회에 대한 신뢰도 또한 종교인구비율과 반비례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종교는 가톨릭(32.9%)과 불교(22.1%)이고, 개신교(18.9%)는 그 뒤를 잇고 있다.2)

이러한 한국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불신과 지탄, 우려의 중심에 교회 내에서의 다양한 성추문들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교회 지도자들의 성폭력 사건들이 있다. 한편, 지난 촛불정국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변혁에 한 갈망이 높은 가운데, 세계적인 성폭력 폭로 운동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라는 뜻)캠페인’이 국내에서도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3) 이렇게 사회는 변화하고 때로는 진보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성추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성에 대한 신앙적 담론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聖)직 종사자들의 성(性)범죄는 피해자의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파괴할 수 있기에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목회자들의 성범죄가 이토록 중대차한 의미를 갖지만, 그동안 기독교계는 교회, 교단을 막론하고 이렇다 할 정책도, 책임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결국 교회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회 내 성폭력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심각한 점은 가장 큰 종교조직인 한국교회 내에는 여전히 성에 대한 체계적 기독교 교육과 신앙적 성찰은 물론, 성폭력에 피해 입은 여성들이 찾아가 도움을 받거나 상처를 치유할 상담기관이 전무한 상태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던 삼일교회의 경우 외부 기관에 피해자 상담을 의뢰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기초적 법제정도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보호와 가해자의 처벌을 위해서는 교회 밖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의 치유를 전담할 기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통해 교회의 전통적인 성 이해를 비판하고 새로운 성에 대한 기독교적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이번 성폭력예방교육 시행을 계기로 한국교회 성윤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모범이 되고, 믿음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성문제를 신앙적으로 성찰하고 함께 대화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 교단에 속한 다양한 신앙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문화를 정착하고 성폭력 제로존(Zero Zone)을 실현함으로 교회가 한국사회의 어두운 성문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여성과 남성의 건강한 관계의 모범이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2. 한국교회의 도덕적 리더십과 성윤리

(1) 삶의 거룩함의 두 축, 영성과 도덕성

이번 교단의 정책결정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영적 도덕적 리더십을 회복 하는 중대차한 의미가 있다. 영성과 도덕성은 거룩한 삶의 두 가지 기둥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과 개인 사이에 긴한 영적 관계를 맺고 있을지 모르나, 윤리적 삶과 도덕성이 전제되지 않은 영성은 불완전하다. 앞서 언급한 기윤실의 설문결과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신뢰도 회복을 위한 개선점으로 “불투명한 재정 사용”(26.1%)에 대한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타종교에 한 태도(21.9%)”, “교회 지도자들의 삶(17.2%)”, “교인들의 삶(14.5%)” 순이었다. 또한 신뢰도 제고를 위한 사회적 활동으로는 가장 많은 응답이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45.3%)으로,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내용을 들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을 주목하고 그들의 신행불일치의 삶으로 인해 교회의 복음과 기독교 진리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이웃과의 관계와 깊은 상호관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시급하다. 즉 다양한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 도덕적 인격적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2) 교회 공동체의 도덕성 회복의 첫 걸음, 목회자의 건전한 성윤리

요즘 들어 한국사회 전반에서 성에 대한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수치상으로 성범죄가 줄어들고 있지는 않지만, 한편에서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들이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성폭력 특별법의 강화와 성희롱 방지법 제정의 문제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성문화에 대한 왜곡을 비판하며 성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점이다. 최근 목회자의 도덕적 리더십과 목회적 영성이 성문제 앞에 무너져 내리는 사례가 연달아 밝혀졌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까지 5년간 발생한 전문직 종사자의 성 범죄 총 3,050건 중 종교인이 442건으로 가장 많았다. 교회의 잘못된 기독교 성 이해와 성에 대한 왜곡된 성서적 해석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가장 양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목회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 여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재차 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성윤리에 대한 기독교적 가르침을 수행하기 위하여 가장 기본적으로 성과 몸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왜 성범죄의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은지를 신앙적으로 묻고 응답할 수 있어야 건전한 교회 성문화의 확립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교회 성문제의 현실은 교회의 성문화와 그리스도인들의 성이해를 심각하게 왜곡시켜온 전통신학의 육체 경멸의 사상과 성에 대한 부정적 이해, 그리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에서 성폭력으로 규정되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성을 바라보는 시각 뿐 아니라, 성폭력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교회의 처리 방식 등을 다시 한 번 반성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3. 몸(육체)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건강한 성윤리의 확립

기독교 역사 안에서 몸은 끊임없이 평가절하 당해왔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기독교 전통 안에서 인간의 몸(body)과 신체성(flesh), 그리고 성(sexuality)은 신학적 성찰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다. 서구교회의 전통 속에서 성적 욕망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이원론은 정신과 자아로부터 철저히 몸을 소외시켜, 몸을 상징하는 여성의 억압을 정당화시켰다. 그러므로 기독교 여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형성하는 길을 원초적으로 막는다. 따라서 몸 신학의 과제는 이러한 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몸을 다시 신학의 주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4)임을 고백하고 양성평등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온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깊은 신앙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1) 전통적 신학에서의 몸의 소외와 성의 부정

① 몸에 대한 서구철학의 이해

기독교 전통에서 나타나는 성에 대한 견해는 몸(육체)에 대한 부정과 함께 전개되어 왔다. 기독교적 몸 이해는 히브리적 사유뿐 아니라 헬레니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서구 철학의 토대가 되어 온 헬레니즘 전통은 몸을 정신에 비해 이차적이고 이질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비(非)자아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플라톤은 "몸은 내게 매여 있고 부착되어 있으며 못 박혀 있다."고 하였을 뿐 아니라 몸을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의 감옥으로 묘사했다. 근대적 사유를 시작한 데카르트는, 몸이란 내적이고 근원적 자아, 즉 생각하는 자아를 싸고 있는 외피이고,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내적 자아와 구별되고 기계처럼 작동하며 사실상 동물적 존재에 비유된다고 했다.5)

② 몸에 대한 서구 전통신학의 이해

철학이 물질적 세계로부터 이성적 정신을 분리시킨 시도는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을 이성적 정신과 동일시하고 물질적 세계로부터 분리시켰다. 이성적 정신은 유한하고 신은 무한하나 둘 다 탈육체적이다.6) 기독교 신학은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이성을 찬양하는 반면, 몸을 죄와 타락의 영역으로 가져갔다. 또한 전통적 신학은 몸을 제한과 한계의 경험으로 이해했다. 고대 교부의 대표적 신학자이며 개혁교회 신학의 가장 근원적 토대를 제공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몸을 육체의 더러운 욕망의 거처이며, 사고의 혼란과 불명료함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였다. 몸이 이성의 방해물이므로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몸의 유혹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자 영적으로 자유해지는 것이라 보았다. 그에게 더러운 욕망의 거처인 몸의 유혹으로부터 미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신앙의 깊은 단계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열망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해 실현되어 온 금욕주의를 통해 성을 억압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와 도덕의 핵심적인 사상이 되어왔다. 또한, 몸은 정신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며 육체적 욕망은 우리의 영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학적 개념과 담론에서 몸을 철저히 소외시켰다.

(2) 몸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성찰

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이해할 때 몸은 중요한 개념이다. 성경은 인간을 낮춰 말할 때, ‘육신’(flesh)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영적인 영광과 우리 육신의 지독한 추함 사이의 간격은 대단히 깊고 멀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셔서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육신’을 친히 취하셨다. 여기서 ‘육신’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타락한 본성을 가리키기 위함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을 가리키려고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언급하는 ‘육신’이라는 말 속에 ‘전인(全人)’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형상의 완전한 모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생명과 삶을 의미한다. 예수의 몸은 전통적 기독교가 생각하는 것처럼 죄를 짓는 장소가 아니라, 가장 친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영혼의 거처다. 현대신학을 통해 발전되어 온 몸 신학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육체성에 집중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의 의미를 주목하며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 1:14)는 요한의 주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거룩한 몸은 영적인 인간 이해에 몸을 포함하는 비이원론적이고 통합적인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한다.

② 인간의 주체성과 신앙인의 정체성으로서 몸의 존재

이러한 몸 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인간이 개별적인 몸으로 존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신앙은 삶의 현장과 괴리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지각, 생각, 행동은 몸의 체험을 통해서 존재와 삶을 형성한다. 몸은 인간의 주체성과 신앙인의 정체성에 늘 우선한다. 몸을 떠나서는 영혼의 건강함을 전제할 수 없다. 인간은 몸과 관련될 때에만 영적 건강과 깊은 영성을 소유할 수 있고 몸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은 우리의 영성의 근원적 관계일 뿐 아니라 성적으로 특수성을 가지며 사회문화 계급, 인종적으로도 특별한 상황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몸의 삶이란 없다.7) 성육신적 관점에서 몸에 대한 이해가 인식론적, 존재론적으로 전환된 신앙은 서구 전통 신학적 이론들의 방향을 재조정한다. 그러한 전환에 기초해 새롭게 재구성된 몸 신학은 인간 주체성의 형성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한다. 더 나아가 몸신학적 관점은 말과 생각의 신앙적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신행일치의 삶과 생명력 있는 신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 된다.

(3) 왜 성폭력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8)이 지배적인가?

① 전통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여/남의 관계

형이상학적, 성적 이원론에 기초해 몸은 신학적 성찰의 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육체 경멸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었다. 또한, 육체와 성에 대한 이중적 윤리를 형성하고 몸의 상징인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차별적 관계는 여성혐오사상으로 축약된다. 인간을 몸과 영혼의 위계적 관계로 이해하던 것에서 나아가 영혼의 대표자로 남성을, 몸의 상징으로 여성을 내세우면서 여성을 남성의 부수적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정신/이성과 한 축을 이루는 남성에 비해 몸인 여성은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구약은 가부장제적인 히브리 문화가, 신약에서는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차별이 나타나는 남성지배적인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교부 신학자들로부터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부분의 신학자들은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혼자서는 독립할 수 없으며, 악을 분별할 능력이 부족하여 남성에게 의존하여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를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여성의 몸을 ‘아이 낳는 그릇’, ‘유혹하는 몸’, ‘잘못된 남성’ 등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창세기를 성차별적 신학으로 읽었다. 죄와 악의 근원으로서 여성의 몸이 이성과 영혼의 담지자인 남성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잘못된 성서해석으로 이천 년을 지배 하였다. 영혼이 육체 위에, 정신이 물질 위에 있는 것처럼, 남성이 여성 위에 존재하는 위계적 질서를 당연시하고 때로는 신적인 질서로 믿게 되었다. 이러한 성에 대한 전통 신학적 이해로 인해 교회는 성적 욕망에 대한 영적 지배를 여성에 한 남성의 통제와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였다. 교회 문화 안에서 보이는 뿌리 깊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역사적으로 성차별을 정당화 시켜온 신학이론에 근거한다.

② 오늘날 한국교회의 여/남의 관계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성은 모든 악의 근원이며 구원의 가장 큰 장애로 간주된다. 여자란 위험한 존재이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식이 목회자들 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의 문제를 단순하게 돈 문제와 여자문제라고 말한다. 목회자들이 돈을 “조심”하고 여자를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를 통해 돈과 여자 문제로 인한 목회자의 비윤리적 문제가 언급된다. 이러한 “여자 때문에”라는 관습적 이해에는 여성이 성문제의 원인 제공자라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비난이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을 야기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성차별을 고착화시키는 다양한 위계적 사고방식, 남성 중심적 언어와 관점, 남성과 여성에 한 왜곡된 이해, 부정의한 성역할의 사회화, 아내와 자녀에 대한 가부장적 소유 의식과 폭력 수용 등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측면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9)

성추문을 일으킨 목회자는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성적 일탈에 대해, 그리고 지금까지의 교회의 성장과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인간적 도덕성의 결핍에 대해 비난받았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성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는 피해자 중심의 목회적 돌봄의 자세보다는 목회자에 대한 성도들의 신속하고 "은혜로운" 용서, 그리고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암묵적인 질타의 목소리들을 내왔던 것이 대부분이다. 성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결과이다. 동시에 도덕적 행위자로서 남성 목회자들의 비주체적 무책임함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몸이 영혼의 체현이며 몸을 상징하는 여성이 유혹이나 성적인 대상이 아님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내재해 있는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왜곡된 섹슈얼리티에 반성하고 재교육하여 다시 건강한 기독교 성윤리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4) 몸의 긍정과 기독교 성윤리

몸 신학은 몸에 대해 긍정하는 신학이다.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신앙의 성숙과 믿음의 구체성은 스스로 몸에 대한 부정적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재의미화 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더 나아가 몸에 대한 긍정은 곧 몸이 지닌 욕망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신앙적 삶은 단순히 몸의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이 성찰함으로써, 영혼과 정신의 깊은 체험과 몸의 지각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영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몸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성윤리가 가능하다. 윤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적 규범과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몸의 욕망이 긍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성의 가치가 재정립될 때, 비로소 건전하고 조화로운 성윤리가 가능해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윤리적 그리고 인격적 삶이 담보된 상태에서 비로소 욕망의 온전한 긍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수많은 성폭력이 왜곡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왜 몸에 대해 긍정해야 하는가?

① 하나님 현존의 방식으로서의 몸

먼저, 하나님이 직접 육체를 입으시고 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육체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성윤리를 새롭게 정립함에 있어서 이 두 신학적 주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더욱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육체를 창조 하셨다. 육체는 하나님이 자신을 현존하시는 방법이다. 육체는 존재론적으로 시간과 영원을 가로질러 위치하는 중함을 가진다. 육체적 경험과 육체적 표현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처럼 존재의 양쪽 영역에서 기초적인 인식론적 도구가 되었다. 육체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랑도 불가능함을 기억할 때 생각을 넘어 몸으로 신앙하는 생활신앙이 가능하다. 즉 체현(embodiment)의 방식을 통해 육체가 전달하는 지식은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지식이다. 여기에 육체의 목적이 있다. 육체는 지금 그리고 다가오는 삶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무엇을 알 수 있으며, 알아야 할 것인가에 한 배경을 제공한다.10) 이렇게 육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토대 위에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② 하나님 경험의 통로로서의 몸

몸 신학은 지금 여기에서, 삶의 육체성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영원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과 신앙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나는 장소이고 인간을 구원하시고 높이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보고 우리의 귀는 그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인간과 신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지각과 감각의 근원적 경험으로 나아가야 한다.11) 이러한 몸 신학적 성찰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그 분의 살아계심이 그저 사변적인 것이거나 추상적인 현상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오히려 만남과 지각, 감각적 경험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몸속에 완전히 쏟으시고 우리의 앎과 경험의 도구가 되셨다. 또한 성례전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 각각의 몸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몸을 어떠한 것으로도 분리시키지 못한다. 몸은 이제 핵심적인 신학의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은혜의 일상적인 근원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③ 예배의 장소로서의 몸

다시 말해서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앎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성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중요한 신학적 과제는 기도와 찬양의 장소로서 몸을 예배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12) 예를 들면, 고대 시리아 기독교는 심오한 육체적 감수성을 예배로 표현했다. 육체적 행위는 그 실재에 적절한 응답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인간의 밝은 눈과 투명한 마음이 경험과 행위 안에 포함된 진리를 인식 하는데 필수적이다. 초기 시리아 기독교의 핵심에는 육체와 영혼의 하나 됨, 즉 인간의 하나 됨(oneness)이라는 명백한 이해가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서로에게 본질적인 것이 된다. 다른 하나가 없으면 서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13) 우리는 제 아무리 성스러운 영혼의 것을 추구한다 해도 그것이 몸으로부터 시작하고 몸을 통해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영혼이 깃든 몸과 체현된 인간의 영혼은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온전하게 성장하는 것이며 몸과 육체의 욕망이 항상 정신과 영혼의 성장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유일하게 몸을 통한 길만이 예수의 성육신을 고백할 수 있는 육화된 삶을 가능하게 한다.

④ 몸 신학과 대중문화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비판적으로 인식해야하는 것은 자본주의 몸문화와 성문화 속에 나타나는 외모중심주의이다. 한국사회 대중문화를 통해 상업적으로 만들어지고 왜곡된 이미지로 각인된 통제되고 감각적으로만 훈육된 몸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에 대한 비판을 제공한다. 따라서 몸 신학은 전통적 탈 육체적 신학의 재구성을 위한 끼어들기, 그리고 몸의 느낌과 경험, 감각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몸 신학 새로 짜기 등을 통해 둘 긴장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성과 인종과 계급, 성 문화 등 차이의 이슈들이 건강하게 토론되고 재구성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교회 내에서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4. 나가는 말

- 기독교 인간 이해와 영육/여남/상호관계성(Inter-relationships)

몸 신학은 몸에서 몸으로 연결된 상호신체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자아중심적 자율적 자아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리고 신학적 인간학의 핵심인 화적이고 관계적인 인간 이해와 만난다. 예수님의 삶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또한 타인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성육신으로 몸을 입은 하나님은 지금도 성례전을 통하여 우리와 몸을 나누시며, 몸이 말씀이 되는 존재의 변화를 보여준다. 즉, 몸은 신앙인들의 자아를 형성하는 자리이고 그 자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더욱 참된 신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육체를 영혼의 생명적 육화, 다시 말해 영적 차원을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육체 바깥에서 구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 육체 속에 온전히 삽입되어 오직 육체를 통해서만 표현되며 교통한다고 말하는 몸 신학의 의미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육체에 기초하여 어떤 사람의 선함과 악함, 기쁨과 평온함, 게으름과 탐욕 등을 읽는다. 육체는 영혼의 표현이며 육체는 영혼의 상징일 뿐 아니라 성육신을 통해 신의 상징이 된다. 신이 현현하는 방법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육체의 신적인 상징화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말씀인 그리스도의 육체성은 구원의 도구이고 그것을 통해서만 죽기까지 사랑 할 수 있으며 육체의 부활을 통해 성스러운 육체성을 볼 수 있다. 반면에 몸에서 분리 된 자아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각세계와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함으로 인해 불안해지고 폭력적이게 되며 영성과 정신의 불균형이 초래됨을 깊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건전한 기독교 성윤리의 확립을 위하여 몸에서 다시 출발하는 인간은 누구인가, 에 대한 존재론적 전환을 통해 신앙인의 정체성에 기초한 몸 신학적 의의를 깊이 새겨야 한다. 이러한 몸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인식은 근대 가부장제가 낳은 온갖 폐해의 기저에 있는 이원론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이제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롬 12:4-5)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의 말씀에 따라 몸의 거룩함을 우리의 영혼의 거룩함과 깊은 상호관련 속에서 깨달아, 보다 근본적인 신앙의 언어로 몸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몸은 이제 핵심적인 신앙의 언어로 재인식되며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으로 하나님의 경험과 은혜의 일상적인 자리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생각해 봅시다.

1) 신앙인으로 몸의 욕망을 영적 성장과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며 살아야하는지 함께 논의해봅시다.

2) 성적 욕구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건강한 성적 표현과 잘못된 성적 표현, 그리고 그 극복방법을 나누어봅시다.

3) 생활현장과 일터에서 외모와 몸에 대한 불편한 일을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태도와 언어에 대하여 대안을 모색해 봅시다.


◆ 함께 보면 좋은 문화콘텐츠

영상: Pro Infirmis의 “Because who is perfect?”
https://youtu.be/EFS5Pg0yagE
스위스의 사회복지단체 ‘Pro Infirmis’가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몸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위해 제작한 공익광고이다. 정상적이며 완벽한 몸의 이미지를 재단하며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이질적이며 복수적인 몸의 존재를 통해 진정한 완벽함이란 무엇인가를 직시하게 한다.

영화: <피아노>(1993)
낯선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빅토리아 시 식민지인 뉴질랜드에 도착한 에이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힘을 상징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소유물이자 교환 대상이었다. 반면, 남편의 친구는 수평적이고 관계적이다. 그와 에이다는 상호적 관계 안에서 감정적 교감을 느끼게 된다. ‘지배’와 ‘배려’의 상징인 두 남성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 여성으로서 에이다의 성장과 정체성 회복의 과정을 잘 담았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
영화 <남자는 괴로워>가 ‘미남’이나 ‘몸 만들기’와는 상관없이 서민의 가부장적 억압을 코믹하게 다루는 반면,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제목부터 ‘여자’가 아닌 ‘미녀’라는 점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외모강박이 드러난다. 몸의 변화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한나의 이야기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낭만적 연애의 완성과 사회적 성공을 위한 성형의 정당화가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2016)
1960년 미국 나사에 근무했던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역할과 성취를 얻기 위해 “여성의 사고 구조는 지나치게 감성에 치우쳐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냉대, 고된 업무와 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을 유쾌한 상업영화의 톤으로 담아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는 한국의 현실을 상기하며 영화를 본다면, 불평등 일소를 이뤄낸 ‘숨겨진 조력자들’이 상기시키는 바가 있을 것이다.

책: 진 에드워드, <하나님의 딸들>(죠이북스, 2017)
<세 왕 이야기>, <3호실의 죄수> 등으로 유명한 진 에드워드 목사가 2천 년간 여성을 억압해온 역사들을 돌아보며 여성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를 오늘의 언어로 새로이 번역하고자 했다.

광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러브 마이 바디 캠페인’(위)을 패러디한 도브의 ‘리얼 뷰티 캠페인’(아래)
아름다운 몸에 대한 단일하고 강박적인 기준에 도전장을 내미는 듯 몸에 대해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두 광고. 외모에 대한 통제가 타인과 미디어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남성에 비해 유독 여성을 외모와 연결 짓고 ‘육체적’ 존재로 환원시키는 사회문화적 기준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각주)------------

1) 2위는 불교로 761만 9천 명, 3위는 389만 명인 천주교가 차지했다.

2)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세미나 자료집,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보고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7.03.03.

3)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 추문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 “나도 성폭행·성희롱의 피해자”라는 의미로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는 캠페인이다. SN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4)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16-17).

5) 수전 보르도,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페미니즘, 서구문화, 몸> (서울: 또하나의문화, 2003), 181.

6) Janet Trisk, "Embodied Subject", in Journal of Theology for South Africa 117 (2003), 42.

7) 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서울:여이연, 2001), 141.

8) 2014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의하면, 성폭력의 피해자 중 남성은 1,055건, 여성은 19,936건으로 남성이 전체의 5% 정도를 차지한다면,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는 약 95%이다. 반면, 가해자의 경우 남성이 20,154건(약 98%), 여성이 345건(2%)로 피해자의 경우 여성이, 가해자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성폭력에는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기타강간 및 강제 추행 등이 포함된다.

9) 미셸 하웨이, 제임스 M. 오닐/김태련, 김정휘 옮김, <남성의 폭력성에 관하여: 무엇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야기시키는가> (서울: 이화여대출판부, 2002).

10) 앞의 글, 9-11.

11) Susan A. Harvey, “Embodiment in Time and Eternity: A Syric Perspective”, ed. Eugene F Roger, Theology and Sexuality : Classic and Contemporary Readings (Oxford, UK: Blackwell Publishers, 2002), 7.

12) 앞의 글, 12.

13) 앞의 글, 12-13.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23) 김삼환-김하나 세습 중에
코너몰린 김기동측, 개혁대표 성범
김기동의 왜곡된 ‘교회론’에 눈귀
교회세습, 공교회 아닌 남의교회
예장통합 신임재판국장 선출 무주공
“아버지! 이제 제발 그곳에서 나
(22) 한국교회를 망신 시킨 김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