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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선택의 지혜
2018년 03월 07일 (수) 11:05:13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전도서 7장 1-4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고사성어 가운데 ‘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중국의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됐습니다.

한나라의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정복했을 때 일입니다. 유방은 함양에 들어가서는 승리에 도취해서 호화로운 생활과 주색에 빠져있었습니다. 항우와 일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신하인 번괘가 유방에게 진언을 고했습니다. 유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색에 깊이 빠져들어만 갔습니다. 이 때 최측근인 장량이 나서서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가 되고,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잘 듣습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씁니다. 그러나 잘 먹으면 몸에는 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중한 교훈은 귀에 거슬려서 듣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잘 듣고 잘 따르면 삶에 유익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가 바로 그런 교훈들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잘 듣고 따라야 하는 교훈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훈들은 대부분 듣고 따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그러나 양약고구의 자세로 그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면 그 삶이 복될 것입니다. 여기에 선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두 가지를 비교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하나는 달콤하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것과 다른 하나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것의 비교입니다. 그러면서 입에는 쓰지만 몸에 좋은 것을 택하라 형식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로 양약고구의 선택, 다시 말해서 선택의 지혜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선택하라

본문 1절에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좋은 기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올리브 열매에서 추출한 향유를 말합니다. 이 향유는 구약시대에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성전의 등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쓰였습니다. 피부 건조나 화상을 막아주는 의약품으로도 쓰였습니다. 귀한 손님을 초대하여 베푸는 잔치에 향을 내는 향수로도 쓰였습니다. 여인들의 화장품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용품으로도 쓰였습니다.

이렇게 당시 좋은 기름은 귀하고 값비싼 물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좋은 기름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좋은 기름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물질적인 가치를 상징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이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좋은 이름이란 사람이 선호하는 이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50-60년대는 영아사망률이 높아서 이름에 ‘길 영(永)’자가 들어간 이름을 선호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철, 영희... 70-80년대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알 지(知)’ 또는 ‘슬기 지(智)’가 들어간 이름을 선호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훈, 지혜... 2000년대 이후에는 부르기 좋은 이름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민준, 서연... 본문이 말씀하는 좋은 이름이란 이런 뜻은 물론 아닙니다.

다음으로 좋은 이름이란 그 사람이 출세하거나 성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름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연예계 스타, 스포츠 스타와 같은 인기가 있는 이름이나 각계의 유명인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이름이란 명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이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평판을 말합니다. 아무개라는 이름이 누구에게는 잊을 수 없이 고마운 이름이 될 때 바로 그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개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름일 때 바로 그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이름이란 명예를 말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이름보다 좋은 기름을 얻고자 합니다. 명예를 보존하는 것보다는 손에 잡히는 돈을 더 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축구가 소위 ‘축구굴기’를 위해서 세계적 톱클래스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이목을 끄는 선수가 브라질 출신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 팀의 오스카입니다. 이 선수는 이적료로 886억원 그리고 연봉이 295억 5천만 원에 상해의 상강팀으로 이적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는 현재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메시보다 많은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축구계에서는 말이 많습니다. 이제 25살의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가 돈 때문에 축구변방인 중국리그로 갔다고 비난의 목수리가 높습니다. 명예고 미래고 다 버리고 오직 돈만 바라보고 이적했다고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자본주의 시대에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이해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풍조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돈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이름보다 좋은 기름을 택하는 것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오늘의 올림픽의 기원인 고대 올림픽은 주전 8세기부터 그리스에서 매 4년마다 열렸습니다. 각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했습니다. 이 선수들은 4년간 자국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4년간 이 대회를 위해 훈련하고 준비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우승자에게 시상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우승자에게 주는 상은 한가지뿐이었습니다. 올림피아 경기장 안에 있는 제우스 신전 앞 올리브 나뭇가지에서 딴 잎으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승자는 그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며 족하게 생각했습니다.

페르시아 왕이 그리스를 침공하려고 정탐꾼을 보내서 그리스 전반에 대해 알아오게 했습니다. 정탐꾼의 보고 가운데 이 올림픽 이야기를 듣는 중에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금방 말라버릴 잎사귀 관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토록 충성을 다할 수 있는가?, 돈 받고 전쟁에 나가는 용병부대가 어떻게 명예 하나만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이길 수 있는가? 하며 두려워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돈보다 명예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그들의 삶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좋은 기름이 뿜어내는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아닌 삶 깊은 곳에서 샘솟듯 솟아나는 깊은 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들은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이렇게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택했습니다. 행 11:2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사람들이 안디옥 교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 아니고 그들을 지켜본 세상사람들이 부른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이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을까요? 당시 안디옥 사람들이 볼 때 저들은 유대지방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기는 한데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랐습니다. 저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그리스도를 위해 가진 재산도 버릴 수 있고, 그리스도를 위해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조롱조로 불리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름이 세상사람들과 다른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흔쾌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다시 조롱조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개독’이라는 욕으로 변형해서 부르기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택하며 살아야 할 텐데, 오히려 좋은 이름보다 좋은 기름을 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예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안디옥 교인들처럼 나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고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름보다는 좋은 이름을 택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선택하라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잔칫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잔치가 벌어진 집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백일이나 첫돌 때, 자녀들이 결혼할 때, 부모님이 칠순, 팔순을 맞았을 때,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잔치를 벌입니다.

이 잔칫집에는 삶의 행복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잔치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참석하여 기쁨을 나눕니다.

다음 초상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초상이란 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낼 때까지의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초상집이란 장례를 치르고 있는 집을 말합니다.

   
▲ ⓒpixabay.com / geralt / mourning-3064504_640

이 초상집에는 죽음으로 인한 큰 슬픔이 가득합니다. 고인과의 사별로 인한 애통함으로 충만합니다. 갑작스런 죽음일 경우 큰 충격으로 경황이 없습니다. 때로는 앞으로의 일 때문에 염려와 걱정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초상집을 꺼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고 싶은 잔칫집을 선택하지 말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초상집을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4절을 보면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늘 잔칫집을 마음에 두고 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늘 초상집을 마음에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지혜로운 사람은 늘 초상집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해서 두 가지로 답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사람들은 결국 죽을 것이고 자신의 초상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 초상집을 선택하고, 늘 초상집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축하할 일이 있습니다. 잔치도 벌이고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잔치할 일이 참 많은 삶이 복된 삶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잔칫집에 참여하여 잔치를 즐기는 일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잔치가 우리에게 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약을 먹을 때 그 약의 부작용에 대해 알고 대비해야 하는 것처럼, 잔치에 참여할 때 우리가 알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종말에 대한 불감증입니다. 잔치에서 즐기다 보면 마치 이 잔치가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잔치가 계속되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게 종말이 있고 그 종말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두렵고 불안할 때 술을 마시며 잊으려 하는 것과 같은 심리라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을 한 이유는 원자탄 투하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자료를 보면, 미군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기 전에 여러 차례 삐라를 뿌려 경고를 했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6일 0시 이전까지 50리 밖으로 피하라.”는 경고문을 뿌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로시마 사람들이 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다가 큰 피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히로시마 시민이 24만 명인데 그 중에 14만 명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말에 대한 불감증이 문제입니다. 경고를 받고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잔칫집은 종말에 대한 불감증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잔칫집에 가더라도 잔치는 곧 끝난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슬픔의 교훈 때문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슬픔이 웃음보다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힘든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초상집에 자주 간다는 것입니다. 아마 평균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임목사이다 보니 초상집에 가서는 늘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의 의미를 말씀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유족들과 나눕니다.

그 깨달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이 화(禍)가 아니고 복(福)이라는 점입니다. 죽음이 복인 이유는 이 세상을 떠나 저 천국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림자처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의 잔치와 달리, 저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리는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잔치에 참여해서 맛보는 웃음은 잠시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진통제와 같습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참여하여 느끼는 슬픔은 쓰지만 병을 치료하게 해주는 명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웃음보다 슬픔이 우리 마음에 유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초상집에서 마음에 얻는 교훈을 지키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저 천국으로 가야할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잠시 있다 끝이 날 잔치보다는 저 하늘나라에 영원한 잔치를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을 택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지혜는 올바른 것을 선택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 올바른 선택은 우리 삶을 복되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교훈하는 선택의 지혜를 마음에 새기고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선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선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선택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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