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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빛 칼럼 ] 어린 아이
2018년 02월 23일 (금) 13:25:29 김희건 목사 dockimus@naver.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요즘 어린 아이와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를 보면서, 오히려 어른들에 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옛날 W. Wordsworth의 시 구절 속에 “어린이는 사람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는 말이 있다. 이 시의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어린 아이는 평생 어른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 또는 어린 아이는 어른이 자기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과 같다는 뜻이 들어 있다. 더 나아가서, 어린 아이는 어른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의 스승과도 같다는 것이다.

조직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 중,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을 언급할 수 있다. (지금도 살아 계신다) 돌아가신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와 함께 조직신학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시다. 그가 2000년 뉴저지 소재 드루 대학교에 초청강사로 와서 강의한 주제가 “어린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어린 아이를 강의했던 것이 그 당시에는 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앞선 시대를 살아가신 분이라는 소견을 갖게 된다. “어린 아이는 사람의 아버지”로서, 많은 영감과 통찰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른이 되는 일에 중요한 요소는 생명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생명을 낳고, 생명을 양육하면서, 진정 어른으로 변화되어 간다. 어른은 이 어린 아이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자기를 성찰하고, 어른으로 변화의 과정을 체험한다. 그런 점에서 “어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어른이 어른으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죄는 어린 아이, 자기 자녀 앞에 부끄럽게 사는 것이다. 어른은 어린 아이의 “롤 모델 (role model)”이기 때문이요, 어른의 그 모습을 필연적으로 어린 자녀들에게 덧입혀 주기 때문이다.

   
▲ ⓒpixabay.com / Papafox / squirrel-3158846_640

매일 보고 듣는 많은 뉴스에서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소식을 보고 듣는다. 이는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교회 안의 어른들의 판단과 행동은 자녀들에게 즉각 영향을 미친다. 그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영향을 자녀들에게 주고 있을까? 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 자녀들의 마음 속에 오래 오래 상처가 남는 일은 부모 된 어른들이 힘을 다해 피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어른들이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 안의 자녀들이 보고 듣기 때문이다. 그것을 배우고, 그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18:3). 여기 어린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어린 아이에게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순수함이 있다. 해맑은 얼굴만큼 그 영혼은 순수하다. 어른이 되어 살면서 안타까운 일은 이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쉽게 잃어 버린다는 것이다. 거친 세상을 살면서, 이 보석을 저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최는 어느 유명 인사에 대한 이야기 속에, 그가 학창 시절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여러 가지 불법으로 인해 구금된 처지가 되었다. 아, 그 소시의 이상은 어디로 가고, 부끄러운 어른으로 변해 버렸단 말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학창 시절, “젊은 시절”에 관한 슈바이처 박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이상을 지켜 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보이는 많은 어른들은 소시의 이상과 순수함을 저버리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가운데, 거친 풍랑을 이겨내기 위해 그 배 안의 보물들을 바다 속에 내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 보석들이 곧, 순수함이요, 소시(少時)의 이상이라는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 본인의 삶은 과연 소년의 이상을 평생 지켜온 분임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생을 마치는 때, 어떤 보배를 안고 떠나갈까?

어린 아이 앞에는 항상 어른 부모가 존재한다. 어린 아이는 그 어른 앞에 삶으로 어린 아이의 착하고 겸손한 모습을 지켜 살 수 있다. 그것은 항상 열려진 마음, 듣고 배우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 겪는 불행 중 하나는 배움의 통로가 막힌다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 배워야 하지 않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항상 배우며 산다는 점에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예배 생활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운다. 저 높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 속에서 변화와 성장의 길을 그침 없이 가고 있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가정과 사회 속의 어른이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과 삶을 다시 찾아야 한다. 듣고 배우는 삶, 성경을 통해, 자연을 통해, 인간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는 삶은 우리를 더 크고 넓은 생의 바다로 인도해 준다. 사람이 배우기를 중단할 때 거기 늘어나는 것이 고집이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에게는 그런 고집스러움이 없다. 그 앞에 어른이 있고 배움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의 기본에는 나보다 큰 이가 항상 내 앞에 살아 있다는 이 사실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의 겸손과 순수함을 지켜 살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삶 속의 비극 하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 바라볼 어른이 없다는 것과 함께, 우리 앞에 어른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시대의 풍조가 안타깝다. 모두가 어른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정한 어른을 찾기 힘들다. 어른의 어른 됨도 자기 앞에 어른을 모심으로 가능한 것 아닌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이 성장과 어른이 되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 된 우리도 사실 평생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녀로 살아간다. 우리 앞, 우리 위에는 온 마음으로 들어야 할 하늘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 그를 들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바로 보는 밝은 눈, 지혜의 마음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는 평생 공경하며 살아야 할 하늘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를 공경함으로 우리는 사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삶, 그것은 모든 신자들이 나아갈 삶의 목적이다. 장차 들어갈 천국의 삶도, 그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삶 그것이다. 부모된 어른도 하늘의 아버지를 생각함으로 부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 앞에는 우리의 작은 것까지도 돌보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 그는 만물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선과 유익을 위해 다스리신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니, 무엇 하나 그 앞에 숨겨진 것이 없다.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부모가 자녀의 슬픔과 기쁨과 무관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루하루 우리의 삶은 곧, 하늘의 아버지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우리의 슬픔은 곧, 그의 슬픔이 되고, 우리의 기쁨은 그의 기쁨이다. 우리가 감사와 즐거움의 삶을 힘쓰는 이유도,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다. 그는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우리 안에, 우리의 동행자와 도움으로 살아 계신다. 우리가 그의 자녀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라면, 이 하늘 아버지를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때론 믿음으로, 때론 감사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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