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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인터뷰 ]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다면?
해법 제시한 전문우 작가의 책… 안경승 교수에게 묻다
2018년 02월 19일 (월) 11:19:49 윤지숙 기자 joshuayoon72@amennews.com

<교회와신앙> : 윤지숙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삶을 뿌리 채 뒤흔들었다.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더 이상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는 계속 글을 써야만 했다. 게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고, 책을 쓰는 과정은 그가 우울증을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이것은 자신을 위한 ‘치유의 글쓰기’였다. 문학·예술·철학 책부터 신문, 심지어 영화, 뮤지컬까지 우울증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당시를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말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길고 어두운 숨 막히는 고통의 터널을 조금씩 빠져나왔다. 그의 이야기가 ‘몸의 통증’을 줄여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약이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 이 책과의 만남이 우울증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책읽기’가 되었으면 한다.”

   
▲ 전문우 작가의 책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누림북스, 2017)

전문우 작가가 자신이 지독한 우울증을 극복한 열정적인 독서가의 가슴 뭉클한 기록을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누림북스, 2017)라는 책 서문에 담았다. 이처럼 책이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치유 과정을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독서치료)’라고 한다. 기자가 이 책을 들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경승 교수를 찾은 것은 2월 13일 오후 2시다.


- 안녕하세요? 우울증하면 현대인들이 흔히 앓고 있는 마음의 감기(p.254) 가벼운 질병 정도로 이해될 때가 있는데요. 전문우 작가의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는 (기독교상담이나 심리상담) 여느 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시중에 소개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학문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 우울증의 원인, 증상, 그리고 대안의 주제를 저자의 학문적이고 임상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정신의학, 심리치료, 그중에서도 인지치료, 한의학의 관점과 함께 신앙적 접근까지 포함됩니다. 또한 우울증을 겪는 대상에 초점을 맞춰 주부, 남성, 아동, 청소년, 노인 등으로 세분화하여 구성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저자 개인의 우울 경험과 회복의 체험을 에세이 형태로 저술한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독자와 체험적 교감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강점이 있습니다.

전문우 작가의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라는 책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 안경승 교수 ⓒ<교회와신앙>

첫째, 책이 치료의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작가가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가 접한 예술작품(영화, 뮤지컬, 노래 등)과 함께 읽었던 도서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방대한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전문적 내용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고 사유하며 붙잡아가는 독서의 유익은 놓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책이 사람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독서치료가 이런 것이니 우울증을 위해서 이런 저런 책을 읽으라는 안내나 권고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이해하지 못할 감정과 고통을 헤어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 책 읽기였고 그것을 담담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둘째, 글쓰기의 유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고 생각한 것을 정리하는 통찰과 분별의 과정을 갖게 됩니다. 작가가 치료현장에 있는 우울증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균형 잡힌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책이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글을 통해 정리한 것입니다. 게다가 독서를 통해 듣는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평가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글을 통해 표현하면 대화를 하게 됩니다. 저자와 독자 사이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글로 확증되면서 생각에 그칠 수 있는 지식이 삶과 행동으로 적용되는 변화의 가능성 역시 열리게 됩니다. 이것은 말이 주는 강력한 힘으로 말 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하고 가능한 사람에게 좋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특별히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성격이 있는 걸까요?(p.104) 긍정적 차원의 우울증도 있을까요?

▲ 우리가 한 사람의 신체적인 건강을 생각할 때도 특정한 병에 취약한 어떤 체질이 있듯이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성격은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성격 성향으로 이해되는 기질 중에 우울질(melancholy) 내지 신중형이라는 유형이 있습니다. 성격이론에서 구분하는 성격특성에서도 신경증(neuroticism)으로 구분하는 피검자의 10% 전후를 차지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이런 기질과 성격의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합니다. 그래서 외적 상황이나 평가에 민감하여 스트레스를 잘 받고 이에 따라 분노, 우울감, 불안감과 같은 감정을 비교적 쉽게 느낍니다.

또한 걱정이 많고 외로움, 죄책감, 절망이 자주 찾아오고 자신에 대해서는 가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성격이 “한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의 일관된 모습”이라고 정의되듯이, 이런 민감한 성격은 잠시 동안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해도, 결국 우울 감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그동안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해 왔느냐에 따라서 실제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신체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방하고 조심하며 오히려 건강하게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금은 치우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연구한 인지심리학자가 주의 깊게 본 것 중에 하나가 세상과 미래, 그리고 타인과 자신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 부분에 왜곡이 있어서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때 우울증이 깊어지는데 이런 모습이 성격화 된 것이 양극단적 생각을 가진 경계선적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지나치고 왜곡된 자기비하로 인해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불안과 함께 우울의 감정에 힘들어 합니다. 강박성격의 특징 중의 하나가 완벽주의인데 이것은 마치 자기 내면에 엄격하기 그지없는 판단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판단자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판단하며 실수를 드러내고 약점을 부각시켜 수치, 열등, 그리고 우울의 감정에 빠지게 합니다. 더구나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시대 속에서 과대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이게 될 때, 이들은 실패나 상실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일정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지요.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 차원의 우울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질 성향의 사람들이 가진 신중함, 예술성, 완벽함 등에 대한 긍정적 자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연구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문제인 우울증이 긍정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단순하게 답을 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울증을 포함한 인간의 슬픔과 고난에 대해서 질문했지만 결코 쉽게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우리 역시 일명 “고난은 유익이다”라는 정답이지만 누가 강요하기 어려운 답을 통해 우울증을 겪는 이들을 본의 아니게 오도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작가는 글의 말미에서(p. 304) “우울증의 깊은 수렁에서 허덕일 때는, ‘우울증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명언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 신자인 우리가 “그 (우울증) 껍질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선물까지 모조리 빼앗길 이유”(하재성,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p.18)는 없습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우울증의 깊은 아픔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섣부른 이야기이고 그 선물을 발견하는 과정이 달갑지 않지만 소망으로 바라볼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울증이 성숙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함께 늘 빠지지 않고 첨가되는 것이 아픔입니다. 믿고 알고 생각했던 하나님이 만나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맛보아 진정으로 아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상실, 몸의 질병, 그리고 실패로 찾아오지만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는 결국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울은 성숙을 위한 첨가물이 아니고 주재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이웃을 알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이웃을 섬기는 나를 만드는 현장에는 고난과 함께 우울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우울해질 것 같고, 우울한 감정도 쉽게 전염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p.297)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사회적, 집단적인 영향권 안에서 절망감과 죄책감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또한 실제 우울증에 걸렸을 때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직면하면 좋을까요?

▲ 사회적이고 집단적 영향으로 인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러한 현상을 가져오게 한 시스템의 변혁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치와 복음의 능력은 개인만이 아니고 시스템의 변화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기독교 공동체가 이러한 대처를 얼마나 지혜롭고 효율적이며 신실하게 접근해서 하느냐 하는 것과 그것을 감당하는 기독교인의 역량과 성품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 지도자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 내의 자괴감과 실망이 만연해 있고 세상의 세속화의 흐름이 거세고 벅차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역사가 증거하듯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를 전하고 파수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구성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시민운동을 통해 사회에 속한 구성원을 자살로 이끄는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복음의 전초기지이고 성도의 공동체 일 뿐 아니라, 한국의 구석구석에 심어져 있는 정신건강 센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교회에 찾아와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취약한 정신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치료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는 더 오랜 치유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만나서 치유된 간증과 자원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놓는가 하는 것이 모든 교회 공동체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을 예방하고 직면하기 위해서는 첫째, 무엇보다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이 말 그대로 우울증을 직면해야 합니다. 직면한다는 것은 포장하거나 축소,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떤 때는 나 혼자나 이웃의 도움으로만 가능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상담자, 의사, 목회자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문제는 직면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탐색되고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되고 분별되어야 그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둘째, 이런 과정을 갖기 위해서는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우울증을 오해하여 너무 쉽게 여기거나 또는 지나치게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부인하고 도움을 거절하고 자기만의 세계나 자기 가족의 영역에서만 머무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을 가진 것이 우울증입니다. 부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우울증은 불신앙이나 심각한 죄로 인한 것이라고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모든 접근이 우울증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특히 주의해서 봐야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울증 징후가 있는 사람의 자살 가능성입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고 어떤 때는 자살의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우울증은 정신력이 약해서 생긴다는 편견이나, 누군가 “정신과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게는 미친 사람처럼 느껴져 망설여지거나(p.43). 정신과의 진료기록이 남아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가기를 꺼려하거나(p.264), 약에 중독될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복용하기를 꺼려하기도 하는데요(p.4). 이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한국은 정신병과 관련한 오해와 곡해가 있어 왔습니다. 아직도 정신병 하면 예전에 경험했던 부정적 이미지의 어떤 사람(산발한 머리, 지저분한 복장, 기괴한 음성과 주문 같은 이야기, 폭력적이거나 괴이한 표현 등)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정신병력을 가졌거나 가진 사람은 가족 구성원에게도 알리지 않을 만큼 수치로 여겼던 폐쇄적 가족문화도 있습니다. 그 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 평가한 부분도 있고 왜곡된 편견에 근거한 부당한 비판도 있어왔습니다. 이제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몇 번 언급한 우울증에 대한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우울증을 너무 가볍게 여기게 만든 요인도 되었지만, 우울증을 정상적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어려움으로 수용하게 만든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또한 정신과의 진료기록이 남아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가기를 꺼려하거나, 약에 중독될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복용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조금 더 사실 관계의 규명을 통한 계몽적 차원의 안내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 사생활 보호의 법규와 규정이 강화되는 현실에서 한 개인의 진료기록을 쉽게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약물과 관련된 문제는 중독의 문제를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일상성의 회복과 극단적 행동의 방지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약을 먹어야 하는 생물학적 요인이 큰 우울증이 있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반응성 우울증 역시 약을 통해 고통을 줄이고 우울 감정에서 혹 발생할지 모르는 극단적인 행동을 방지하며 일상의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후에 약물을 조절하는 문제는 중독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전문가와 상의하며 풀어갈 수 있습니다.


- 우울증을 정신질환(F코드)이나 정신증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뇌의 문제나 마음의 문제로 보는 견해(p.192, 246)가 있는 듯 합니다.

▲ 우울증을 구분할 때 출발점 중의 하나가 신경증적인 우울인가 아니면 정신병적 우울인가 하는 것 입니다. 정신병적 우울증은 그럴만한 외적인 사건이나 환경의 영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뇌를 포함한 생물학적 원인으로 인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보는 것으로 다른 말로 자동적 또는 내인성 우울증이라고 표현합니다. 신경증적 우울증은 우울을 느낄만한 사건과 외적 환경으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반응적 내지 외인성 우울증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울증은 뇌의 문제로 생기기도 하고 마음의 문제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100% 신체로부터 기인하고 저것은 100% 환경에로부터 왔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상황과 아픔을 주는 상실의 사건으로 인해 그러잖아도 원인을 내재하고 있던 몸이 반응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정신병 치유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거나, 전기충격, 약물치료, 전두엽 수술 등의 사례가 여과 없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데요. 기독교상담·심리상담 분야에서는 우울증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 기독교 상담은 인간을 보는 관점이 독특합니다. 인간 문제의 원인이 뇌나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영역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사실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의 실재를 분명하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이 하나님과 잇대어 있어야 진정한 생명과 평안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영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상호작용하는 몸, 마음, 감정, 관계의 내용을 전인적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의학적 도움이나 일반상담과 협조하지만 기독교 상담이 줄 수 있는 치료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치유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안내하고 지정의의 중안통제센터로 기능하는 마음의 온전함과 변화를 위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실제 치료적 접근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기독교 인지상담입니다. 일반 인지상담이 우울증에 유용하다는 것이 밝혀졌듯이 기독교 상담 역시 인지상담적 과정을 동일하게 시도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인지상담은 합리적, 긍정적, 적응적 생각의 기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온전한 논박의 근거와 질서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핵심 인지도식인 세상과 미래 그리고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지적 대안이 있습니다. 소망과 평안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진리에 근거한 자원입니다. 또한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그 한 사람으로 함께 하는 기독교 상담자가 되기를 위해서 힘씁니다. 더 나아가 가장 풍성한 만남의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치료적 자원을 강조합니다. 고립과 소외가 두드러진 증상인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개인 상담자와 함께 만남의 장을 끊임없이 인내하며 제공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습관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마음의 병에 대한 가장 좋은 대안은 예방입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기적인 자기사랑이나 자신만 돌보는 것으로 왜곡되면 안 되겠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를 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여러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봄은 각 영역들, 즉 영, 신체, 마음, 감정, 관계를 살피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고 탈진과 피로를 예방하는 쉼과 정규적인 신체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욕구와 감정 그리고 생각을 부인하거나 억압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이 어떤 때는 부담되고 불편해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신앙공동체에 속해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 기도로 돕는 것입니다.


- “작가는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글을 쓴다.”(p.21)고 하는데 ‘나를 위한 치유 글쓰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우울증이 생기면 가장 힘든 것이 무력감과 고립감입니다.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 누굴 만나는 것도, 어디 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다 귀찮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전 작가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이러한 무력감을 극복하게 하는 탈출구였습니다. 힘들지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 놀랍고 이런 시간들이 세상과 사람과 만나며 자신을 객관화하고 살피게 만드는 좋은 통로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통한 치유적 접근은 상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사유의 장, 통찰과 정리의 시간, 글로 확증하는 고백 등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우울증을 극복하게 하는 인지의 변화에도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왜곡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의 글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터져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읽고 정리했던 다른 글과 그 글의 저자와의 만남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치유적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통계상 우울증으로 매 30초마다 세계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p.40)고 하는데. 극도의 슬픔은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책 제목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어떻게 돕는 것이 격려나 위로가 될까요?

▲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식의 변화와 공감적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 내에도 생과 사의 기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돌아보는 관심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 분별이 필요한 부분은 자살에 대한 생각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파악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특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청소년기나 청년기는 상대적으로 자살에 취약한데 다양한 증상으로 표현됩니다. 자살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개인적 물건들을 버리거나 주는 것, 급작스럽게 조용해지거나 즐거워하는 것,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 주변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것,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취미나 기타 활동에 흥미를 잃는 것, 절망, 무가치함, 무력감 등을 호소하는 것, 지속적인 우울, 부정적 정서, 불평을 드러내는 것, 과격하고 파괴적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 외모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학교에 빠지는 것, 먹고 자는 것에 문제를 보일 때, 중독 증상 등이 위험 신호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 엘리야, 욥, 예레미야 등을 포함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심한 어려움 속에 고민하였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살 소망까지 끊어진 경험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증거 되는 믿음의 선배들은 긍정적인 정서만이 아니고 부정적인 정서들도 함께 표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슬픔 가운데 있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괴적이고, 깊은 정서적 절망의 감정 상태 자체를 불신앙이라고 쉽게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 옆에 내가 머물게 될 때, 그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조금 씩 이나마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듯, 아니 오히려 쾌활하고 기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 줄 때, 그들의 보이지 않는 형편을 깊게 공감하며 들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누구를 만나기를 꺼려합니다. 그래서 다가가는 사람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인내해야 하고 나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바로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으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은혜를 느끼게 하는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다시 붙잡고 견뎌낼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힘쓰는 가운데 이웃만이 아니고 우리 자신도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한편, 안경승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B.A.),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을 전공하고, 미국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학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회, 상담전공대학원협의회, 한국가족상담협회의 감독상담사를 맡고 있다. 또한 기독교상담을 위한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자원을 찾는데 초점을 모으고 있고, 이를 한국교회 현장과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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