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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여호와 앞에 누가 서리요
2018년 02월 07일 (수) 11:19:20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사무엘상 6장 13-21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주 특별한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궤입니다. 다른 말로 언약궤, 증거궤, 그리고 법궤라고도 합니다.

이 궤는 길이가 두 규빗 반 약 114센티미터이고, 높이와 넓이가 각각 한 규빗 반 약 68센티 정도 되는 나무로 만든 상자입니다. 윗면에는 순금 판으로 덮였고, 옆면에는 운반용 막대를 낄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윗면 양쪽에 금으로 만든 그룹이라는 천사 모습의 조각상이 서로 마주 보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궤가 특별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물건 때문입니다. 바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이런 물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던 아주 특별한 역사의 증거물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인 구체적인 증거물이었던 것입니다.

이 궤가 여호와의 궤라 불리는 이유는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민 7:89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하나님께서 이 궤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시고 또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여호와의 궤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궤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군해 갈 때 늘 앞장섰습니다. 특히 이 궤는 요단강을 건널 때 그리고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앞장서며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이 궤가 앞장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갈 때 그 누구도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궤와 함께 할 때 그 무엇도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 여호와의 궤는 윗면에는 순금 판으로 덮였고, 옆면에는 운반용 막대를 낄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다. 윗면 양쪽에 금으로 만든 그룹이라는 천사 모습의 조각상이 서로 마주 보게 자리하고 있다. 안에는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넣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토록 소중한 여호와의 궤를 빼앗긴 것입니다. 저들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여호와의 궤를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들이 이 궤를 찾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한 일이 없지만 되찾게 된 것입니다.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되찾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궤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더 큰 충격에 빠져들게 됐고 이 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됐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여호와의 궤와 함께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러면서 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제 그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빼앗기다.

때는 사사시대가 끝나갈 즈음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이끌고 있을 때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맞서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했고, 4000명이나 전사했습니다.

군사들이 돌아와서 지도자들에게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지도자들이 블레셋을 물리칠 방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궤를 앞세워서 전투를 벌이자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자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볼 때 확실한 대안으로 믿을 만했습니다. 민 10:35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일찍이 모세가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고 행군할 때 이렇게 기도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고 행군할 때 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 방법을 다시 쓰기로 한 것입니다. 실로에 있던 성소에서 여호와의 궤를 전장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직을 수행하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함께 했습니다. 이제 조상들이 하던 방법대로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고 블레셋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고 전투에 나섰지만 또 졌습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졌습니다. 이스라엘 군사가 무려 3만 명이나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메고 앞장섰던 두 제사장 홉니와 비스하스도 죽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사실 이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투에서 자기들이 이렇게 대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여호와의 궤를 빼앗길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왜 여호와의 궤를 빼앗기게 된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상징(symbol)과 실체(substance)를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궤는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일 뿐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여호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여호와의 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알려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궤를 여호와라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드라큘라와 십자가>라는 성극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음산한 길을 갑니다. 드라큘라가 나온다는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려워 벌벌 떱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담대합니다. 알고 보니 드라큘라가 싫어한다는 것들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빛을 싫어한다고 해서 밝은 손전등을 준비했습니다.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고 해서 마늘 한 움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십자가를 두려워한다 하여 나무십자가를 준비했습니다.

길을 걷던 중에 정말 드라큘라가 나타났습니다. 손전등을 비췄는데 허사였습니다. 마늘을 뿌렸는데도 허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 때 드라큘라가 말했습니다. “너 예수 믿니?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든 십자가는 그냥 나무조각일 뿐이야.”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없이 앞세워진 여호와의 궤는 그저 나무상자일 뿐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믿음 없이 앞장세운 여호와의 궤는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 없이 십자가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믿음 없이 여호와의 궤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자기는 모태신앙으로 철저하게 성수주일한다는 것을 내세웁니다. 자기는 교회 봉사를 오래 해왔다는 것을 내세웁니다. 자기는 헌금을 얼마나 했다는 것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내세워진 이런 것들은 다 부적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십자가를 높이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체가 있는 상징은 놀라운 능력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돌아오다

그런데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로 되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노력해서 되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궤를 빼앗은 뒤 아스돗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 깊은 곳 다곤 신상 앞에 두었습니다.

고대에 전쟁은 민족이 섬기는 신들의 전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겼다면,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이 다른 민족이 섬기는 신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민족은 진 민족이 섬기던 신상을 자기들이 섬기는 신상 앞에 바쳤습니다. 진 민족의 신을 제물로 바쳤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신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섬기는 신인 다곤과 이스라엘이 섬기던 신인 여호와의 전쟁에서 다곤이 여호와를 이겼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다곤에게 제물로 바친다고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상 앞에 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은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바로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고개를 땅에 처박고 엎드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다곤이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들이 얼른 다곤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들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바로 다곤 신상의 머리와 다리가 잘린 채 몸뚱어리만 내팽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곤을 섬기던 아스돗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독한종기가 저들에게 발병했습니다. 저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여호와의 궤를 가드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가드에 더 심한 독한종기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저들이 놀라서 여호와의 궤를 또 에글론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에글론에서도 역시 심한 독한종기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어쩔 수 없이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다곤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점치는 자들이 모여서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를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되 속건제물을 함께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새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매어보지 않은 암소 두 마리로 수레를 끌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암소 두 마리가 여호와의 궤와 속건제물을 실은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실로 일곱 달 만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 일을 겪은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 저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다곤이 여호와를 이겼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 말로 참 신임을 분명히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아마도 현대 세계사에 가장 큰 사건은 소련의 붕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소비에트연방이 건립되었습니다. 이 소련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이 땅에 세워진 첫 번째 나라였던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철저한 유물사상에 기초한 사상입니다. 초월적이고 영적인 실재를 부인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는 아편과 같아서 나라 건설에 장애물이 된다하여 무자비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법적으로 소련 내의 모든 종교활동을 금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91년 어느 날 아침 소련은 한 순간에 눈 녹듯 사라져버렸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하여 12개국으로 분리되어버렸습니다. 그날 아침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74년만에 다시 교회가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생각해 볼 때 마치 여호와의 궤가 돌아온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한 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워 이기고 전리품으로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가 결국 승리한 것처럼 생각했지만, 상상도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패배를 자인하고 여호와의 궤를 돌려주어야 했던 것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이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은 잠시의 승리를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잠시의 승리에 도취되어 기고만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승리의 선언에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승리는 안개처럼 잠시 있다 걷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으로 옮겨가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돌아온 여호와의 궤로 인해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모셔두며 섬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칠십 명을 죽이신 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저들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졸지에 여호와의 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큰 기쁨이 큰 슬픔으로 뒤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여호와의 궤를 감당할 수 없어서 기럇여아림이라는 곳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궤는 벧세메스를 떠나 다시 기럇여아림이라는 마을로 옮겨지게 됐고,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모셔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큰 은혜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대함에 있어서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 4:19-20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하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성물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조심 또 조심해서 다루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만일 함부로 다루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벧세메스 사람들은 성물을 섬기는 레위인이 아닙니다. 더더욱 제사장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일 뿐입니다. 그런 저들이 가장 거룩한 지성물인 여호와의 궤를 함부로 들여다본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칠십 명이 들여다 본 것입니다. 너도 나도 들여다 본 것입니다. 거룩한 지성물을 대할 때 조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큰 은혜를 받은 뒤에 영적인 긴장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에 조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명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모세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조심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남다른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출애굽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저들이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장차 가나안 땅에서 영적인 긴장의 끈을 풀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분노케 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노의 하나님 앞에 서게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조심 또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으로 영적인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는 심정으로 조심하며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예배는 제대로 드리고 있는지, 맡은 일은 제대로 충성하고 있는지, 서원한 것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헌금은 제대로 드리고 있는지... 조심하며 지켜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 함부로 설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지속적으로 은혜 안에 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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