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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수 바른말 ] 풍비박산 風飛雹散
풍비박산 風飛雹散 : O / 풍지박살 風地博殺 : ×
2018년 02월 01일 (목) 11:32:23 김준수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김준수 목사 / 밝은세상교회 담임, 카리스바이블아카데미 대표

   
▲ 김준수 목사

‘풍비박산’(風飛雹散)은 바람이 흩어지고 우박이 사방으로 날리듯 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 사자성어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 말을 ‘풍지박산’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아마도 이것은 바람과 우박이 지면 위로 떨어지는 현상과 얼른 연상이 되고, 또한 ‘풍비’라는 어색한 발음보다 ‘풍지’가 발음에 편하고 유연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지박살 ‘風地雹散’(풍지박산)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風地雹散’(풍지박산)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눈 씻고 찾으려 해도 그런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전에 그런 엉터리 말이 나올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 ‘풍비박산’을 ‘풍지박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을 억지로 사자성어로 써본다면 ‘風地博殺’쯤으로 조립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괴상한 단어가 사전에 나올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박산’(雹散)은 어떤 물건이나 형태가 깨어져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풍비박산’(風飛雹散)이란 바람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우박이 어지럽게 날리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곧 아찔하게 앞이 안 보이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상황이 꼬이고 어지럽게 되어 흩어져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령 어떤 가장이 사업주로 있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났을 때 “회사가 부도를 내자 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가족들은 흩어져 서로 연락이 닿지 않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 말을 쓰면 무리가 없다.

2017년 대한민국은 최순실 국정농단(國政壟斷)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상황을 ‘풍비박산’을 수식어로 묘사하려 한다면, “최순실 사건으로 풍비박산 난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부터 그 거취가 불투명해짐으로써 이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표현하면 된다.

그런데 풍비박산이란 사자성어를 “중고차 가격이 풍비박산 나서 이 기회에 중고차를 한번 사봄직도 하다”라고 한다거나, “그는 인생이 풍비박산 나서 모든 희망들을 접고 방에 처박혀 생활한 지 벌써 3 년이 되었다”에서처럼 쓴다면 표현이 어째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차 가격과 인생을 풍비박산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당초부터 무리이기 때문이다.

   
▲ ⓒpixabay.com / Comfreak / cyclone-2102397_640

‘풍비박산’(風飛雹散)을 ‘風地博殺’(풍지박살)로 잘못 말하는 경우는 병영생활을 하였거나 아니면 태권도 등 무도장(武道場)을 다녔거나, 한 때 용감무쌍(勇敢無雙)한 경험을 했던 사람일수록 심하다.

‘풍지박살’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그럴듯한 단어조립이다. 이 말은 얼른 느끼기에 풍비박산보다 의미가 훨씬 강하다. 왜냐 하면 이 말은 큰 지진이 나서 땅들이 갈라지고 건물들이 죄다 파괴된 것 마냥 땅이 형체가 없어지고 그 위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모조리 부서지는 처참한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군대를 갔다 온 50대 이상 남자라면 성경에서 10계명을 흉내 낸 것 같은 ‘사병 10가지 수칙’을 달달 외워야 세 끼 ‘짭밥’도 먹고 저녁에 잠도 잘 수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론 제1수칙이 “나는 초전에 적을 박살내겠다”였다. 1970-80년대 병영의 정문 간판이나 건물 벽에는 대개는 ‘초전박살’(初戰博殺)이란 큰 글씨의 구호가 붙어있기 마련이었다. ‘초전박살’ 밑에 혹은 따로 비장의 반공구호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때려잡자 김일성, 박살내자 괴뢰군”이라는 듣기만 해도 살벌한 캐치프레이즈였다. 대한민국의 사병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전의를 불살랐지만 박살나도 시원찮을 김일성이 여든세 살이나 장수하고 자연사(1994 년)했으니 유신체제하(維新體制下)의 그 구호가 무색하게 되었다.

아무튼 여기에서 말하는 ‘박살’(博殺)은 깨어지고 부서지다는 뜻이다.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에도 ‘박살내다’라는 말이 있어 ‘박살’이란 단어는 특이하다. ‘박살내다’라는 말은 서로 치고 받는 정치권에서 흔히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서로 멱살을 쥐고 씩씩거리며 싸움하는 사람이 눈을 부라리면서 “박살 나봐야 알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빈번히 쓰인다. 2017년 7월 정계를 발각 뒤집어놓은 문재인 대통령 아들에 대한 취업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미필적고의’ 운운하자, 이에 발끈한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TV 인터뷰에서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당을 박살내려 하고 있다”고 성토해 그 무렵 세간에 ‘박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나 문학 작품에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를 우리말 성경은 가급적 사용을 회피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아마도 이것은 번역가들이 쉬운 문자로 한글을 널리 보급하려는 데 우선적인 관심이 있었고, 또한 사자성어가 과장된 어감이 있기에 가능한 한 간결하고 짧은 어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런 경향은 한글이 보편화되는 추세인 요즘에 갈수록 심화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개역개정 성경이 나오기 전 개역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전능을 찬양하면서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편 139:14)고 번역했다. 그런데 1998년 나온 개역개정 성경은 이를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약간 쉽게 번역했다.

성경이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필자가 보기에도 잘한 일이다. 가령 백세의 아브라함과 구십 세의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세기 17:17)라고 성경은 번역해놓고 있다.

그런데 여기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를 사자성어로 표현하여 “아브라함이 포복절도(抱腹絶倒)하며”한다든가, “아브라함이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한다든가, 혹은 “아브라함이 파안대소(破題大笑)하며”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재미는 있는지 몰라도 거룩한 성경의 진지함이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성경 번역에서 사자성어를 사용하길 꺼려하는 이유다.

성경이 구태여 ‘풍비박산’이란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곳은 부지기수로 많다. 이를테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르비딤 전투에서 아멜렉 사람들과 겨루어 대승을 거두었을 때, 아모리 다섯 족속들을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몰아붙여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삼손이 다곤 신전을 무너뜨려 3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을 때,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시기에 유다 왕국을 공격하던 산헤립 군대가 그들의 진영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혼비백산(魂飛魄散)이 되어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다 전원이 죽어나빠졌을 때 등의 상황은 적들이 깨지고 흩어지며 죽게 되는 형국이므로 그러한 묘사는 ‘풍비박산’(風飛雹散)이 잘 어울린다.

대중 앞에서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풍비박산’을 적절한 부분에서 능란하게 사용하면 설교를 한층 박진감 있게 해주면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죄가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주지 않아야 한다(로마서 6:12-13).

그래서 첫 전투가 중요하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첫 전투에서 마귀 사탄에게 밀리면 그는 여지없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사탄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초전박살’(初戰博殺)의 영적 기상으로 적들을 무찔러야 한다. 그럴 경우 저들은 한 길로 왔다가 ‘풍비박산’ 일곱 길로 달아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를 흉내 내 귀신을 쫓아보겠다고 나선 에베소의 유대인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처럼 어설픈 영적 상태로는 귀신을 쫓기는커녕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성령의 전신갑주(全身甲冑)이다. 믿는 자는 악한 마귀들을 첫 전투에서부터 무찌르려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방패를 손에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들어야 한다(에베소서 6:10-17).

[ <바른말의 품격-한자편>(도서출판 밀알서원), pp. 2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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