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세상의 정치, 사회 현실뿐 아니라, 교회 사회를 보면서 느끼는 소감은, 우리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척도가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자기 소견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모두들 자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도, 바른 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는 없고, 모두 자기 소리를 내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아, 안타까운 현실이여!

어찌하여 이런 현실에 이르게 되었을까? 이런 현상은 일찍이 르네상스, 종교 개혁 때부터 싹이 자라고 있었다. 한 사회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교회의 위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소리를 내게 되었다. 어느 공동체도 결국은 어떤 공인된 권위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으로 저 북한 땅에는 김일성 일가의 권위에 의해 그 나라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비록 폭력적인 권위로 전락했지만.

르네상스 이후로 사람들의 지식과 지각이 발달하면서, 판단과 비판의 능력이 제고되었고, 그 결과 천년 동안 유럽 사회를 유지했던 교황의 권위를 비판함으로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로 말미암은 신, 구교간의 질긴 투쟁을 끝내기 위한 웨스트팔리아 조약의 체결과 함께 유럽 사회는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작지 않았다. 그 동안 한 사회를 유재해 왔던 교회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사라진 것이다. 이어서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고, 이성과 합리성이 권위의 자리를 대신했다.

문제는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수 없는 내적 타락의 심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옳은 것을 판단할 수 있어도, 그 마음과 몸으로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연약함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사람 심성에 자리 잡은 탐욕과 무지가 사람을 넘어뜨리고, 저락의 길로 끌어 내린다. 특별히 사회적 명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포로가 되고 있다. 이 타락의 심성이 가져오는 또 다른 어리석음은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자기의 판단의 기준을 쉽게 변경시킨다는 것이다. 똑 같은 상황을 자기 이해관계에서 달리 판단한다는 것이다. 내로남불! 두 개의 추를 가지고 자기 편리한 데로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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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회, 특히 교회 사회 속의 혼란은 판단의 절대 규범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권위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절대 규범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사실 종교 개혁 시대부터 대두되었던 문제였다. 같은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는가의 문제로, 로마 교회, 개혁 교회의 갈등이 있었고, 개신 교회 안에도 화합할 수 없는 간격을 갖게 되었다.

신학이 발달하고 해석의 관점이 다양한 이 시대, 똑 같은 성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어느 새 교회는 통일된 해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결과, 성경이라는 절대 규범을 앞에 놓고도, 그 해석의 차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절대 규범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예전 여기 뉴저지 소재 신학교 안에서 “예정론과 자유 의지”에 대한 교실 안의 토론 속에는 적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2천년 전의 기적이 재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 앞에서도 은사 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교인들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느 새 자기 자신의 지식 또는 신학의 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개인의 신학적 견해에서 비롯된 해석이요, 다른 사람은 또 달리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혼란에 가까운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우리는 우리 삶에 적용될 하나님의 말씀을 확정 지을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구하고, 간절한 기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절대 규범인 성경을 바로 아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겸손과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간구하고, 성령의 도움 속에서 바른 말씀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원론적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적어도 자기 해석이 자기 독단의 해석일 수 있다는 이 가능성을 아는 일이 중요하고, 겸손하고 간절한 성령의 조명을 찾는 마음을 빼놓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도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마11: 27). 하나님을 아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그 모두가 성경을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갈등은 다음의 짧은 시 속에도 표현되어 있다:

The Book thus put in every vulgar hand,
Which each presumed he best could understand.
The Common rule was made the common prey,
And at the mercy of the rabble lay.

(성경이 세속의 모든 사람들의 손 안에 쥐어졌고,
각 사람은 자신이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주제넘게 생각했다.
공동의 규율이 공동의 희생물이 되었고,
어중이 떠중이들의 처분에 맡겨지게 되었다)

(John Dryden 1630-1700)

오늘날 우리 사회, 좁게는 교회 안의 혼돈은 이 “공동의 규범”인 성경이 함부로 취급되고, 그 참뜻을 알려는 의지의 부재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정말 하나님의 참 뜻을 알기 보다는 자기 마음과 삶에 유익이 되는, 자기에게 유리한 구절을 찾고, 해석하는 버릇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가 저락하는 이유가 되었다. 마치 성경은 사람들이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필요대로 집어가는 시장 터의 “공짜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성경의 가치와 권위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성경을 말하지만, 자기 소리 속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

교회 안의 여러 갈등에 있어, 참으로 희극적인 사실은, 대립하는 양편 모두가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소욕과 목적을 따라서... 그러면서 성경의 가치와 권위는 벌써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한 여자를 두고 여러 남자들이 덤벼 자기 소욕을 채우는 형편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그렇게 연약한 분인가? 하나님은 그렇게 침해 받을 수 있는 분인가? 성경은 그렇게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인가?

사실을 말하면,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종말에 가서는 수치가 되고 후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이 제한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의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지금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사람의 행위를 조용히 지켜 보시며, 때가 되면 갚으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을 오늘도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다”(사 40: 10).

오늘날 눈앞에 전개되는 혼돈의 현실은 상급과 보응을 결정하는 시험의 때라고 본다. 하나님의 조용한 침묵과 지켜보심 속에서 사람들은 그 앞에 있을 상급과 심판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7-8). 오늘의 선택과 결정이 영원한 상급 또는 영원한 보응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선택의 삶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