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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격대담 ] <복음의 공공성> 저자 김근주 교수
구약으로 읽는 복음의 본질… “공동체적이며 공적이다”
2018년 01월 25일 (목) 15:56:35 윤지숙 기자 joshuayoon72@amennews.com

<교회와신앙> : 윤지숙 기자 】 “주님의 지상 명령은 모든 이들에게 전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의미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들 안에만 가두지 말고, 온 세상을 향해 선포하라는 명령이다.”

“천국은 약자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약자가 끝장나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새벽같이 고용된 사람은 하루 종일 일했는데, 마지막에 눈꼽만큼 일한 사람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 받았다. 새벽같이 불려온 사람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마지막에 온 사람은 일을 잘 못해서 남겨져 있었던 것일 수 있다. 나의 열심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용납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공산주의와 다른 개념의 천국을 경험하는 삶이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대표 김근주 교수의 말이다.

   
▲ <복음의 공공성>과 김근주 교수 ⓒ<교회와신앙>

김근주 교수는 그의 저서 <복음의 공공성>에서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복음의 내면화, 복음의 개인화는 복음을 심하게 왜곡한 것”이라며, “복음을 이 세대의 왕들이 복음을 이 세대의 왕들이 기뻐할 형태로 변질시킨 것”이라고 단언해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구약의 여러 본문을 성실히 주석하고 오늘의 현실과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구약이 결코 폐기된 옛 율법이 아님을, 복음의 공동체적이고 공적인 특징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교회와신앙>은 1월 24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신촌로에 위치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를 찾아 김근주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복음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CTK 2018 '올해의 책' 선정에서 <복음의 공공성>(비아토르 펴냄)을 대상을 받으신 것을 축하한다. 교수님의 저서 <나를 넘어서는 성경 읽기>(성서유니온 펴냄)도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먼저 <복음의 공공성>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졸저를 대상과 우수상 선정에 감사하다. <복음의 공공성>을 쓰기 전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정말 복음인 걸까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3-4년 전에도, 교계에서 복음이 가지는 공적 이슈들에 대한 담론들이 있었다. 사랑의교회나 명성교회의 문제 등은 목사 한 사람 이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세습 문제만 보더라도 “교회일은 세상논리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복음이 너무 협소하고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순종했더니 아이가 좋은 학교를 잘 가고, 남편은 직장에서 승진을 하게 됐다.”는 간증을 한다. 하나님은 온 땅의 하나님이신데 왜 이렇게 좁다냐? ‘하나님은 가정 일에만 신경 쓰시는 분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살면서 부당해 보이는 권력들이 있는데도 교회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는 ‘복음이 지닌 공적인 성격, 달리 말하면 복음의 공공성이 간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들을 구약에서 풀어 가보고 싶었다.

예수님이나 바울 당시 600년 동안 나라가 없었다. 예수님도, 바울도 제자공동체였지 않은가? 하지만 구약은 나라와 민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라는 복음의 공공성을 이야기하기에 훨씬 적합하다고 보았다.


- 1부 ‘구약으로 읽는 복음과 그 본질’에서 창세기의 사람 창조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언급했다.

▲ 창세기 첫머리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나타난다.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은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왕이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를 왕으로 세우셨다. 왕은 자기 출신에 한정짓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공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행동이 모두에게 유익이 된 것이면 공적, 특정집단에만 유익이 되면 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나 자기 가족, 교회에만 유익이 되고 남에게는 피해가 되는 것은 사적. 우리나라에는 유익인데,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 피해가 되면 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명성교회 세습은 그 교회로서는 가장 좋은 것이 될 수 있지만 한국교회 전체로서는 고통임으로 사적 한마디로 즉 양아치인 것이다. 양아치의 핵심은 자기집단에게는 죽고 못 살지만 남한테는 무자비 하지 않은가? 사랑의교회 건물 문제도 전체로 볼 땐 너무 심하지 않냐는 생각을 갖게 하니 양아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교회라는 멋진 신앙고백이 있다. 전체교회를 생각하며 사도신경을 제대로 묵상만 해도 사랑의교회 같은 추태들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관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기에 혼자는 못살고 관계 안에 살도록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가정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예레미야나 바울이나 예수님, 존 스토트처럼 혼자 사는 사람도 천지인데.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있지만, 공동체 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런 관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공적, 공공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욕망을 끝까지 고수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면서 관계가 파괴되고 수고와 노동과 죽음이 일상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아브라함이 그러한 삶을 살 때, 열방이 복을 받는다. 즉 아브라함은 공적인 삶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곤경에 처한 조카 롯을 구하고, 나그네를 환대하며, 소돔에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이가 없도록 마음을 썼다. 쓰는 모습을 살펴보며 아브라함이 살아간 정의와 공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 2부 ‘공동체적이며 공적인 복음과 그 구체적 실현’에서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 레위기 19:2은 “너희는 거룩하라”고 말한다. 거룩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너희를 향해 거룩을 명령하셨다. 거룩도 공동체가 해야 되는 것이다. 19장은 직업과 관련된 것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농부의 거룩은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드려지는 예배, 새벽기도, 큐티가 아니다. 추수할 때 그 마을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긴 모퉁이, 추수할 때 흘린 것을 남겨두는 것이다. 거룩을 위해 우리가 기도를 세게 하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레위기의 특징은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한지에 대한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 않는다. 이런 공동체는 내가 사회에서 뒤처지고 낙오되고 실패해도 살길이 있다. 누군가가 성공하는 이유는 남기라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비록 모퉁이를 먹지만 내년에는 네 힘으로 살아야지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혜택을 조금더 누린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벌이나 권력층의 부패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

고용주의 거룩은 직원들을 데리고 예배하기, 큐티하기가 아니라, 제 시간에 월급주기다. 기독교 기업 중에는 예배나 큐티 등 종교 행위를 강요하며 전도를 한다. 이랜드 같은 기업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급여를 짜게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도 선교헌금을 한다고 한다. 성경 안의 ‘거룩’이라는 종교적 용어를 제 시간에 주는 품삯이라는 공적인 경제적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룩은 더 이상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하는 말이 된다. 일한 만큼 바르게 지불한다면, 오히려 더 전도가 될 것이니 레위기 19장의 거룩은 멋지지 아니한가?

시간당 만원의 최저 임금 때문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해고하지 말고, 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그래도 어려우면 그때는 기도하자. 자신은 조금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괜히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만 줄었다고 정부를 향해 노동자에게 볼멘 목소리를 내지 말고, 할 것을 해야지 기도할 맛도 난다.


- 3부 ‘예언자들의 선포’에서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가 나온다. 나봇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죽음을 당하지 않았는가? 우리시대는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며 사는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 아합은 나봇에게 땅을 팔려고 하면서 돈을 겁나 많이 줄 태세였다. 나봇은 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나봇은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지키려 했던 것 같다. 레위기에 나오는 이 희년법은 너무 오래된 법이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봇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다고 믿었기에 인생대박의 기회를 걷어찼다. 이게 참 교회스럽지 않은가?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땅은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교인들은, 이명박 같은 양아치는 전국에 땅이 있지 않은가? 이딴 게 무슨 교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봇이 억울하게 죽었다. 사실 임금이 탐욕스럽게 농부의 토지를 빼앗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흔하다. 세상 법으로는 아합을 처벌할 법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거짓말한 불량배들에게 보내 감옥에 보내지 않으셨다. 나봇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하지 않은 아합에게 보내 네가 살인자고 도둑놈이라고 하시면서 박살을 내신다. 세월호의 진상은 선장을 잡아 놓는 것에 있지 않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전설적인 7시간에 대통령은 뭐했는가? 교회는 적어도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도록 사건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들어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아합과 같은 권력에 규탄해야 한다.

나봇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도 죽임을 당했다. 포도원 밖으로 끌려 나가 죽임을 당하는 모티브는 예수님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우시고, 부활, 승천하게 하셨다. 비록 나봇의 죽음은 헛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그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죽더라도 옳은 일을 한 거야!”에 그치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주신다.


- 4부 ‘포로 후기 공동체의 대응’에서 귀환공동체, 재건공동체 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은 외부적으로는 산발랏 도비야의 방해로,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의 극심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가난해서 빚지고 집도 땅도 넘어가고, 심지어 애들까지 노예로 종으로 팔려가게 됐다. 이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부유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또한 전체 백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불러다가 호되게 야단을 친다.

   
▲ 아무리 외부갈등이 심해도 그걸로 내부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근주 교수 ⓒ<교회와신앙>

우리가 포로에서 돌아왔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형제들 어렵게 하느냐면서 받은 이자 돌려주고, 저당 잡아 갖게 된 것은 돌려주게 했다. 두 자유로운 주체들의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가 총독의 권한으로 끼어들어 가난한 자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하지 않고, 부자의 재산권이 침해한 것이 됐다. 성경이라서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원칙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한다.

아무리 외부갈등이 심해도 그걸로 내부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에 대한, 인권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 쳐들어온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면서 외부적 요인을 댄다. 북한과 맞설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내부의 민주화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쳐들어 와도 “이 나라가 우리에게 한 것이 무엇인데?”라면서 싸울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과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

성경은 가난문제는 굉장히 단호하다. 교회 안에 누구는 집을 3채, 4채를 가지고 있는 반면, 누구는 집세를 못 내고 쫓겨나 어려움을 겪는데도 교인들 모두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것을 사회로 확장해 보면, 물론 기본소득이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국토보유세와 같이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좀 더 내서 기본소득에 쓰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바울은 고린도서신에서 말한 평균케 하는 원리, 균등케 하는 원리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는 서로가 지탱할 수 있다.


- 5부 ‘결론-연약한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법으로“대접받고자 하는 데로 대접하라”(마 7:12)의 황금률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는 구약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라”, 구속의 은혜, 언약이라고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바울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롬 13:19),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갈 5:14)라고 했다. 우리는 교회 용어에 익숙한데 이 분들은 성경을 보편적인 말로 풀이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 누가 이 말에 반대하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받은 백성다운 삶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권리를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길 바란다. 성경에 근거해서 교회 안에서는 동성애나 불교, 이슬람을 규탄하고 배척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내 인권만큼 다른 사람의 인권도 보호 되어야 한다.

성경은 고아, 과부, 나그네로 지칭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양 1마리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인이 한 마리를 포기하고 99마리를 쫓아다니면, ‘주인이 나를 챙기니 좋긴 한데,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주인이 나를 포기하겠구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99마리들은 낙오되면 끝이기 때문에 미친 듯이 낙오되지 않으려고 하다보면 지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이 1마리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여기는 천국이다. 전부를 위하는 길은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사랑하면 전부가 행복할 수 있다. 병원의 의사들이 병을 고치면 건강한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구나 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된다. 교회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은 편파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를 사랑하는 길인 것이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처럼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펼치면 노동자들은 많이 힘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진짜 기업이 잘되려면 노동자 중심의 정책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싶다.


한편 김근주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장신대 신대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와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은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해 칠십인역 이사야의 신학적 특징을 다룬 ‘The Identity of the Jewish Diaspora in the Septuagint Isaiah’라는 본문으로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쳤으며,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전임연구위원과 일산은혜교회의 협동목사로 청년2부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구약의 숲>, <특강 예레미야>,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구약으로 읽는 부활신앙>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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