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 12월 25일은 성탄절로 대부분 공휴일이다. 물론 정교회는 성탄절을 1월 초에 지킨다. 그런데 성탄절을 12월 25일과 1월 초 이렇게 2번이나 공휴일로 지정해 지키는 나라들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3일, 국가 차원에서 서구식 성탄절인 12월 25일을 공식휴일로 선포하고 25일 성대한 행사를 가짐으로써,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레바논 몰도바에 이어 5번째로 2개 성탄절을 지키는 나라의 대열에 끼었다.

우크라이나 국회인 베르코브나 라다는 지난 11월 16일 관련 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페트로 포로쉥코 대통령이 서명해 12월 3일 발효시켰다. 이 나라는 그동안 세계 정교회(Orthodox Church)에 공통되게 그레고리 교회력이 아닌 율리우스력에 맞추어 1월 초의 성탄절만 지켜왔으나, 이번부터 12월 25일의 서구 성탄절도 함께 지키기로 하고, 당일 수도 키에프의 '거룩한 지혜'(Sofiiskaia) 대성당 앞 광장에서 이벤트를 가진 것. 옛 소련 위성국가들은 모두 대체로 정교회식 성탄절을 지켜왔다.

이번 행사는 또한 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클라이맥스 행사로서 치러졌다. 정교회의 크리스마스 절기는 12월 19일부터 이듬해 1월 14일까지 지켜진다. 이날 거룩한 지혜 대문으로부터 성 미카엘 대성당까지의 지역을 차량통행을 통제하고, 기념품과 음식, 선물 등을 길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바자가 계속됐다.

▲ 정교회 성탄절과 함께 서구 성탄절인 12월 25일도 지키게 된 우크라이나 신자들. ⓒEconomist

이번 행사의 준비위원장인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지난 2015년부터 서구식 크리스마스를 지키려고 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서온 인물로 이날 연설과 기도로써 시작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이므로 우리는 이제 모든 유럽 문화권과 함께 나란히 즐기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투르치노프는 또 "우크라이나는 이제 서구선진사회와 함께 계속 크리스마스를 즐겨 나갈 것이다."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스크바의 달력과 러시아 제국표준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역시 서구식 첫 크리스마스 시대를 여는 데 힘써온 에프게니 니쉬추크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은 이날 5가지 개혁원리를 가리키는 복음주의 신교 메달을 수여받았다. 장관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며 모두를 위한 평화를 기원했다.

니쉬추크는 또 "우리는 나라의 결속에 목숨을 바친 천사(같은 애국인)들을 상기하고 전쟁으로 인한 모든 상처의 치유를 갈망한다."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한 관용, 지혜, 지원을 바란다.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님이 그렇게 앞서 거쳐 갔듯 큰 시련을 치러왔다. 그러므로 선과 사랑의 가치를 고백하고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 외에도 우크라이나 그리스정교회의 대변인격인 올레스카 페트리프 대주교도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무대 위에서는 성탄절 노래가 퍼졌고, '자유의 입김' 워십 그룹과 기타 송라이터들이 창작한 새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축전장 주변은 총 길이 110km에 달하는 장식화환으로 꾸며졌고, 거룩한 지혜에서 어렵사리 운반해온 대형 크리스마스 추리의 장식등이 반짝였다. 대성당 주변엔 진짜 양들이 있는 양 우리가 꾸며져 있고 바자와 촬영지역이 설정돼 있었고, 따끈한 음식과 캔디, 음료 등이 제공됐다. 성 미카엘 광장에서는 어린이들이 새 회전목마를 타며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최초로 12월 25일에 지켜진 크리스마스에 대한 반응은 둘로 엇갈렸다. 일부는 앞으로 두 개의 성탄절을 지키게 됨을 크게 기뻐하면서 서로들 인사와 덕담을 나눴으나, 일부는 왜 1월 7일이 아닌 날 무대에서 기도가 흘러나오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크리스마스 추리를 향하기도 했다. 화가인 타마라 씨는 "왜 12월 25일을 국경일로 지킬 필요가 있는지 난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어차피 우리나라 달력엔 유대인 공휴일과 무슬림 휴일도 있는데, 정교회에 맞게 1월 7일을 지키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12월 25일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켜온 크리스마스 절기로, 신교권 대다수가 그대로 받아들였고, 현재는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정교회와 키프리오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알바니아 정교회 등이 받아들여 1월 성탄절과 함께 지켜오다 금번에 우크라이나가 합세한 것.

이렇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 동기도 있다. 유럽에 속했기에 유럽의 한 국가로 대륙과의 결속도 강화할 겸, 정교인 아닌 가톨릭과 신교인들의 입지와 바탕도 함께 굳혀주기로 한 것. 또한 러시아의 슬라브 문화적 예속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의의도 있다.

우크라이나정치분석관리연구소의 루슬란 보르트닉 소장은 "이것은 우리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시민문화적 장벽을 구축하려는 한 시도"라면서 "이젠 러시아 종교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지역 나름의 전통과 문화환경을 조성하자는 노력의 일환이다."고 분석. 안드레이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회의장도 "이로써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의 정신적 지배를 끊어버리고 세계 자유민 가족으로 귀의하는 셈"이라고 자임.

그러나 모스크바 대교구에 속한 우크라이나 정교회 이르펜 대교구의 클레멘트 대주교 겸 정보교육국 국장은 종교적 상부인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 대주교좌에 보낸 보고서에서 12월 25일을 국경일로 선포한 결정은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에 맞게 조율되지 못한 결정이라고 믿는다."며 "이 결정을 통해 국회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의견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표시"라고 풀이. 앞서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의 바톨로뮤 대주교는 우크라이나 고위관리들에게 교회 문제와 교회간 대화 문제에 관여하거나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 4,700만의 대다수인 80%가 정월 7일 성탄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아울러 국민의 76%는 신자로, 그중 대다수는 정교회 신자로 자처했다. 정교인들의 25%는 모스크바 대교구 산하 (우크라이나)정교인으로, 32%는 키에프 대교구에 속한 교구민으로 각각 자임했다. 국내 그리스 정교인은 7.8%, 천주교인과 신교인이 각각 1%, '그냥 신자'라는 사람들이 6.3%였다. 이는 아직도 모스크바에 대한 '종교 예속'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음을 암시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991년 8월 24일 옛 소련(소비예트사회주의연방=USSR)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율리우스력(曆)은 기원전 45년을 시작으로 설정한 달력으로 그레고리력보다 13일 늦다. 가톨릭 교회력과 같은 그레고리력은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승인한 것으로 수많은 유럽국가들이 이를 채택했으나 여타 국가들은 여러 세기가 걸렸다. 러시아의 경우 1918년에야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으나 아직도 러시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그루지야 정교회 등은 지금까지도 율리우스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첫 2개 성탄절을 지키게 되면서인지는 몰라도 크리스마스 장식품 사업이 활황을 누리고 있다. 성탄절 장식품 수출은 올해 34% 진작됐다. 지난해 상반기 10개월간 장식품은 모두 610만 달러어치가 팔렸는데, 주요 대상국은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벨라루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