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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빛 칼럼 ] 강아지 생각
2018년 01월 05일 (금) 14:38:11 김희건 목사 dockimus@naver.com

김희건 목사 / 빛 교회 담임, 조직신학, Ph. D.

   
▲ 김희건 목사

오래 전 미국으로 거주를 옮길 때, 같이 살던 세 살 된 치와와 ‘나리’를 함께 데리고 왔다. 다른 가족이 없던 우리에게 나리는 한 가족, 분신처럼 느껴졌고, 이 나리의 똑똑함이 우리를 종종 놀라게 했다. 서울에 있을 때, 멀리서 3층 아래서도 내 발자국 소리를 알고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한다. 이곳에 와서도 나리를 혼자 밖으로 내어 보내주면, 한 시간 정도 넓은 주거 단지 잔디밭을 혼자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난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한번은 다른 집에 가 있었는데, 그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려서, 함께 있던 사람들이 놀란 적도 있다.

프린스턴신학교 기숙사는 나리와 함께 있도록 허락했지만, 드루대학교 기숙사는 허락하지 않아서 몰래 2년을 같이 살다가 할 수 없이, 멀리 버지니아에 있는 친척 집에 맡겨 두었다. 두세 달 만에 그 집을 찾아가면, 이 나리의 반가움이 눈물겹지만, 그를 홀로 두고 떠날 때, 그 눈 속의 슬픔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옮겨 그를 데려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3개월 정도 지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나무로 관을 만들어 그를 땅에 묻어 주었다. 그 사진이 항상 문 앞에 붙어 있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

16년 전, 2달된 말티스를 데려 왔다. 하얗고 작은 이 강아지의 앙증맞은 모습은 귀여움 자체였다. 나갔다 들어오면, 뱅글뱅글 다섯 바퀴를 돌고 나서 안정을 찾는다. 이 강아지의 이름은 ‘아리’였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아리는 항상 책상 밑에서 그 머리를 내 발에 기대고 누워있었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그 비좁은 빈틈으로 뛰어 올라 내 옆에 나란히 눕는다. 나는 그 머리에 손을 얹고 그의 건강을 위해 틈틈이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셔서, 그가 지난 3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픈 적이 없었다. 떠나기 전 그 몸이 몹시 힘들었을 텐데 어디서나 항상 나를 주목하며 앉아 있었다. 소파든, 의자든,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가 떠난 지 10개월이 가까워 온다. 16년을 함께 살면서, 나의 기쁨이 되어 준 강아지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리 친구.” 나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옆에 있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종종 해 주었다. 이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서, 성경 속에 동물들의 위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생각에, 사람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짐승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천국에 들어가서 사람들만 있는 것이,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에 이 세상의 동물들, 특히 이 땅에서 함께 살았던 강아지가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대감을 갖게 된다.

보통 사람의 영혼을 특징짓는 것으로 “지, 정, 의”를 말한다. 그러나 강아지를 키우면서 깨닫는 것은 강아지도 지, 정, 의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의 깊이와 차원을 갖지 못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인식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의지적인 행동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 정, 의가 사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구원관은 대개 사람 중심이다. 근래에 있어, 자연의 구원, 세상의 구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속에 이 동물들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에 “사람 같고,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독수리 같은 생물”이 있다고 한다(계4: 7). 어떤 이는 이들이 모든 피조물의 대표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천국에도 이런 피조물이 함께 거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물, 동물 세계에 불화와 적대감이 생겨났지만, 세상이 새로워진 그날에는 모든 피조물, 사람과 동물들이 서로 화평한 가운데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만 사는 것보다 동물들이 함께 있음으로, 더 풍요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닐까? 구약 선지자의 말씀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 말씀한다(사 11: 6-9). 나는 그런 세계를 동경하며 사모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개, 강아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충성스러움에 있을 것이다. 한 주인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고 충성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은 그 강아지를 옆에 두고, 위로 받고, 기쁨을 얻는다. 미국 사회에서 강아지의 별명은 “가장 좋은 친구 (best friend)”이다. 종종 우리들은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을 보고 듣는다: 사기, 의리 없음, 배반, 해침, 무정함… 그러나 이 작은 미물은 무슨 조화로 그렇게 사람을 친하고 사람 곁에 있는 것이 그의 행복이 되었을까? 얼만 전, 한국에서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길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어느 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저리고 아픈 사연이었다.

어쩌자고 성경에서는 “개들을 삼가라”는 말씀이나(빌 3: 2),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는 “개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 등장했는지, 안타깝다(계22: 15). 물론 이는 상징적인 표현인지라, 못난 사람, 개만큼의 의리나 충성심도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분명하다. 문자적으로 이렇게 충성스럽고, 주인을 따르는 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개, 강아지를 지으셔서 사람 곁에 두셨음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올 해가 개의 해라 하니, 다른 때보다 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평생 변치 않고, 사람 곁에서, 사람의 기쁨이 되어 주는 개, 강아지가 있다는 사실이, 삭막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꽃처럼, 그 향기처럼 즐거움의 이유가 된다. 한국 사회에도 의식이 변하여, 이 좋은 친구를 먹이 감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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