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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샬로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아 셋이 함께 기거
20세기 '신정통주의'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 비평
2017년 12월 28일 (목) 16:57:03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바르트는 자신의 살던 지역의 이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1) 이를테면, 1920년대에 독일 뮌스터에서 지낼 당시, 힘멜라이히알리(Himmelreichallee, '천국 길'이라는 뜻) 43번지에 살면서 이 도로명을 자신의 특별한 친구, 알트하우스가 사는 거리이기 때문이라고 나름 풀이했다. 또 거기서 에얼랑엔을 거쳐 힌덴부르크(Hindenburg)2) 거리로 이사 갔을 때, 동물원과 묘원 사이의 중간 위치라는 점과 연계시키기도 했다.

 

나의 슐라밋, 내 벚나무 

그랬던 바르트가 자신에게 늘 즐거움을 주던 연인이자 동반자인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의 이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했을까? 필시, 적어도 한 두 번 이상 그 의미를 곰곰이 음미하거나 상징적으로 풀이해 봤을 법하지 않은가?

   
▲ 오늘날의 힘멜라이히알리. 바르트가 살던 건물도 붉은 벽돌집이었다. ⓒhttps://www.adfc-nrw.de

샬로테(Charlotte)는 남자 이름 촬스(Charles)의 지소사(指小辭)인 샬럿(Charlot)의 여성형 고유명사이다. 촬스는 '자유인' 또는 '작은 사람(petit)', '귀여운 이'라는 뜻이다. 특히 중세 프랑크 왕국의 샬르마뉴(Charlemagne: 큰 사람이라는 뜻) 대제의 이름 때문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된 이름들이다.3) 바르트의 이름 칼(Karl)은 바로 촬스와 같고, 독일어형에 해당한다. 샬로테는 칼의 여성형이다. 적어도 이름으로 본다면, 한 마디로 샬로테는 칼의 '바로 내 여자', '나의 여인', '내 그림자'쯤 되는 이름인 셈이다!

이는 솔로몬의 아가에서도 나타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아가엔 솔로몬과 그의 궁극적인 연인인 술라미 여인4)이 나타난다. 솔로몬의 히브리어, 슐로모(שְלמה, Shlomo 또는 쉘로모, Shelomo)와 슐라밋(שולמית, Shulamith)은 본래 한 어원인 샬롬(שָׁלוֹם=평화)에서 왔다. 솔로몬도 아가를 쓰면서 다분히 자신의 이상형 '짝궁'이 자기 그림자 같은 존재임을 의식했을 것이다.5)

   
▲ 중년의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왼쪽), 아내 넬리 등. ⓒKBA

그녀의 성, 폰 키르쉬바움(von Kirschbaum)은 어떤가? '키르쉬-'는 독일 고어 키르자(Kirsa)에서 온 이름으로 '체리'라는 어의를 갖는다. 바움(Baum)은 '나무'라는 뜻이니, 키르쉬바움은 양벚나무, 체리목(cherrywood), 체리라는 의미를 고루 지닌다. 키르쉬바움이란 이름의 유래는, 본래 초기 선조가 동네의 중심지인 벚나무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사람이든지, 체리 묘목이나 버찌를 팔아 생업을 유지한 사람이었든지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6) 

키르쉬바움 가(家)는 중세 때 퍽 널리 알려진 귀족 가문들이었고, 폰 키르쉬바움 가문은 더구나 그랬다.

실로,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은 칼 바르트의 그림자와 단짝인 '내 여인', 작고 귀엽고 체리 같이 달콤한 귀족 여인이었다. 칼 바르트가 보기에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은 그의 슐라밋-'나의 완전한 여인' 격이었다.7) 크리스천 독자들이 보기야 어떻든 말이다.

   
▲ 폴 니모 교수의 해당 저서 표지. ⓒPN

 

둘은 결혼하기 원했던 사이였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냐고? 아마 그 무엇보다 바르트가 아내 넬리 대신 이 새로운 여성과 맺어지기를 바랐던 근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코틀런드의 저명한 현대 바르트 학자, 폴 T. 니모(Paul T. Nimmo) 교수는 그의 신저 '바르트를 어려워 하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Barth: A Guide for the Perplexed), 2017'에서 이 점을 명시하고 있다:

"1933년,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은 서로 결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아내 넬리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기에, 대신 한 집안에서 그들의 불편한 공존이 지속되었다."8)

독자는 봤는가? 분명 넬리의 현 남편인 '유부남' 바르트가 새로 사귄 여인인 폰 키르쉬바움과 둘이 서로 '결혼'을 원했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근거다! 둘 사이에 이보다 더 명료하게 확인되는 흔적이 있겠는가?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자, 샬로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바르트는 셋이 함께 기거하며 살아가는 극단을 택했다. 그로 인해 아내 넬리와 자녀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 역시 극단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놀랍게도 이것을 잘 극복해 나아갔다. 오히려 바르트의 친구들이나 외부인들이 더 힘들고 안타까워했지만 말이다.

이 현실은 바르트 자신이 그렇게 강조하고 외쳤던 기독교 윤리학과는 과연 어떻게 조화될까? 이것은 혹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적' 상황일까? 다음한국어사전을 보면, 상황윤리의 정의는 '일정한 원칙 없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그에 맞게 성립되는 도덕 규범'이다. 지금 바르트의 이 현실이 그렇지는 않은가? 바르트 자신은 과연 상황윤리 개념을 인식하거나 자신의 상황에 맞추거나 짐짓 자인했을까?

   
▲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 바르트의 슐람밋, '벚나무'였다. ⓒZR

상황윤리는 절대적 잣대의 성경윤리와는 대체로 상반되는 개념이다. 율법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중심한 성경 윤리는 칸트 철학에서의 소위 '범주적 명령'(kategorischer Imperativ)과도 통하는 절대적 개념이다. 반면 윤리에 대한 상황적인 어프로치는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시몬 드)부봐흐, 야스퍼스, 하이덱거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지지했던 것으로 당연히, 다분히 상대주의적이다.

흥미롭게도 실존철학이 바르트에게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바르트는 쇠렌 키에르케고르를 개혁가 마르틴 루터에 비견하기도 했다. 바르트는 자신의 영향 받은 실존철학을 자신의 부부 생활 속에 대입한 것일까?

부쉬의 바르트 전기를 보면, 그는 어릴 때 극적인 상황을 즐기면서, 뭇 누리의 관심과 주목을 무척 바라며 지냈다. 진작부터 음악과 연극을 함께 좋아했던 것. 열 세 살 적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dog theatre의 견공/犬公들 극을) 시작하는 데는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엄숙한 침묵 속에서 (돌연) 나는 외치고, 비명을 내지르고,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무척이나 즐겼다!"9)

물론 바르트는 어린 시절 퍽 괜찮은 극작가이기도 했다. 혹시 바르트는 부부를 포함한 크리스천들 셋이 함께 동거하는, 이 상황적이고 실존적이고 기이한 삶을 극적으로 쇼오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15세까지 그가 탐닉했던 시적인(poetic) 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서 잠시 또 딴 얘기를 해 본다. 부쉬의 바르트 전기에 따르면, 바르트가 청년 시절 결혼을 맹약했던 뮝어 양10) 말고도, 그 전 어릴 적 사춘기 초기에 바르트의 풋사랑이랄까 그의 '여인'은 더 있었다. 안나 히르첼이라는 소녀.11) 바르트가 스케이팅 할 때 동행하곤 하던 친구의 여친으로, 대학교 사서의 딸이었다. 바르트는 그녀에게 노이브뤼케에서 1 상팀(*centime: 100분의 1 프랑. 스위스 불어권 등의 화폐단위)씩에 파는 따뜻한 설탕물을 기꺼이 사 주곤 했다.

그는 또 히르첼과 함께 댄스클럽에도 수시로 다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좋은 춤꾼은 되지 못했다. "그(히르첼)는 내 마음 속 내 연극의 주된 여주인공이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둘은 헤어졌고, 둘이 70살이 되던 해 티치노12)에서 만나기까지 만나지 못했다. 폰 키르쉬바움을 만나기까지 지속된 바르트의 불행감을 자극한 또 다른 실연이었을까?

아무튼 그즈음 청소년 바르트가 쓴 연애시 겸 극 대사는 이랬다.

“아름다운 소녀여, 난 지금 내 사랑을 선포해야겠어
널 처음 본 때부터 난 너의 것...
내 가슴은 미친 듯 뛰놀지만,
(정작) 난 평화로워
사랑을 통해 새롭고 더 큰 힘이 나의 것 되지
내 근심의 무게가 이젠 더 내 영혼을 짓누르지 않고
나의 두려움도 가시네
젊음의 기쁨이 영광스럽게 빛나고
내게 세상은 온통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네
너, 내 사랑, 너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만 내가 그 어디 눈길을 돌리든지 내게 보이네
네 두 팔 속의 영원한 행복은
내가 찾는 전부, 널 향해 내 길을 가네"13)


바르트의 청년 시절의 이 극적이고 시적인 모든 사랑의 꿈과 비전이 훗날 폰 키르쉬바움에게서 모두 이루어지고 구현된 것일까?  <계속>
 

각주

1) Busch, Eberhard, Karl Barth: His Life from Letters and Autobiographical Text, 165를 보라. 본 회에 이 책을 자주 인용한다.
2) Hinde는 '동물학', Burg는 '성(城)' 또는 '숙소'라는 뜻이 있음.
3) 다양한 영어/독일어 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
4) 구약전서 아가 6:13.
5) 참고로, 주석가 등 일부 학자들은 이 슐라밋을 (아도니야처럼 솔로몬도 아마 내심 흠모했을지 모를) 아버지 다윗의 말년의 청상과부, 곧 평생 처녀였고 이스라엘 최고 미인이었던 수넴 여인(שׁוּנַמִּית 슈남밋), 아비삭으로 추정한다(구약 열왕기상 1:1~4). 심지어 슐라밋과 슈남밋의 발음이 매우 비슷한 점에 착안하기도 한다. 물론 추정일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6) 참고사례: https://www.houseofnames.com/kirschbaum-family-crest
7) 아가 5:2 참고.
8) Nimmo, Paul T., Barth: A Guide for the Perplexed, 3. Bloomsbury Academic (T&T Clark: 2017). 올해 1월 12일자로 출판된 바르트 관련 최신 도서의 하나. 저자 폴 니모 박사는 에든버러의 애버딘 대학교 킹스칼리지의 현 신학과장이자 조직신학 교수로, 바르트와 슐라이어마허,개혁신학 등의 전문학자다. 첫 저서인 바르트 윤리학 관련 도서, Being in Action: The Theological Shape of Barth's Ethical Vision으로 템플턴 상을 받았다. 프린스턴 신대원 바르트학 연구소(CBS) 연구원. 현재 옥스퍼드 핸드북-칼 바르트 편을 집필중이다.
9) Busch, 같은 책 27.
10) 시리즈 3회 참조.
11) Busch, 28 참고.
12) Ticino. 스위스 최남단의 이탈리아어권 주.
13) 1901년 작. 바르트가 쓴 가장 긴 희곡인 전투적 비극, '몬테누오바의 레오나르도 또는 자유와 사랑'의 한 대목. 1931년 본 대학교 학생들이 재발굴해 헬무트 골비처의 지원으로 공연했다. 부쉬는 이 대목이 들어간 부분의 제목을 '전사와 시인'으로 잡았다. Busch, 같은 책, 같은 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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