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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신앙생활은 달리기 경주
2017년 12월 13일 (수) 10:30:23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히브리서 12장 1-3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신앙생활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고전 9:24 말씀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 20:24를 보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딤후 4:7을 보면 “나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 3:12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이 마치 달리기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경기하는 과정과 같다고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신앙생활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해왔고, 또 하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도 해 가야 할 신앙생활이 달리기 경주와 무엇이 유사하기에 이렇게 비유하는 것일까요?

우선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같기 때문입니다. 달리기 경주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저 천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해진 과정이 있다는 점이 같기 때문입니다. 달리기 경주가 정해진 코스를 달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 길을 따라합니다.

그리고 상이 있다는 점이 같기 때문입니다. 달리기 경주에서 잘 달린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마라톤의 경우 완주상을 주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목표까지 잘 달려서 완주한 사람들이 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역시 신앙생활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면서 매우 중요한 점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해 나갈 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증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1절을 시작하고 있는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이 이러므로는 11장과 12장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11장 내용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보다 먼저 신앙의 경주를 잘 마친 신앙의 선배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우리보다 먼저 신앙의 경주를 잘 마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탠드에는 우리보다 먼저 달리기 경기를 끝내고 상을 받은 선수들이 앉아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여러 차례 출전은 했지만 1승도 거두지 못한 축구 약소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당당히 4강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것도 폴란드, 포르투갈, 이태리, 스페인, 세계의 내로라는 강팀들을 다 이기고 올랐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것이 바로 응원의 효과입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을 소리높이 외쳤던 저 길거리 응원은 아마도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하나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 응원에 힘입어 우리도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달리기 경주를 해 나갈 때 우리를 위해 응원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는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가신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예를 들어 우리의 가족들 가운데 먼저 믿음의 경주를 마친 분들, 우리 교우들 가운데 먼저 믿음의 경주를 마친 분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힘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지금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한 몇 가지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리기 경주할 때 선수들이 달리기에 불필요한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달리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의 달리기를 경주할 때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년 전 성지순례 차 교우들과 함께 그리스를 다녀왔습니다. 이때 일정이 맞아서 올림픽 발상지인 올림피아드를 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직 그 옛날 운동장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름을 스타디움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내하시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옛날 이 경기장에서 달리기 경기를 벌였는데, 선수들 모두가 다 벌거벗은 몸으로 출전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달리기 경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모두 벗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선수나 관객들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아마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 비유를 말씀할 때 이 경기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달리기 경주에 출전한 선수들은 달리기에 불편한 모든 것들을 다 벗어던지고 경기에 임했던 것입니다. 이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경주에 임할 때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을 보면 특히 두 가지를 벗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무거운 것이란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우리가 짊어지기에 무거운 것을 지게 하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둘씩 무엇인가를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짐을 짊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짊어지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나온 과거가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자아 자체가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는 일이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이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 재미가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짐입니다....

이렇게 저마다 지금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것들이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그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주 앞에서 내려놓을 때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잘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얽매이기 쉬운 죄란 반복해서 저지르는 죄요, 회개하고 또다시 저지르는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이 설수 없게 만드는 바로 그런 죄를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반복되는 죄 때문에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심하고, 때로는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같은 죄를 또 회개하러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 너무도 죄송해서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회개를 포기하려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절대로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 때 비로소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2. 인내해야 합니다.

1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인내로써 경주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앞에 닥친 갖가지 고난과 십자가를 인내하셔서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1:16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인내의 본을 보이셨기에 자기도 주님의 인내의 본을 받아 인내하며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ixabay.com / Barni1 / sport-659224_640

그러면 왜 신앙의 경주에 인내가 필요할까요? 마라톤 경기를 비유로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마라톤 경기는 그 코스가 길고도 험난합니다. 일반적으로 달리기 경기를 셋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단거리 경주입니다.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경주들을 말합니다. 둘은 중거리 경주입니다. 800미터, 1500미터, 3000미터 경주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셋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5000미터, 10000미터 경주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라톤 경기는 이 경기들과 비교할 수 없이 긴 42.195 킬로미터를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이와 같습니다. 단거리나 중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평생을 달려야 하는 길고도 긴 경주입니다. 그래서 인내도 보통 인내가 아니라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마라톤 경기는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달리기 경주에서 단거리, 중거리, 심지어 장거리 경주까지도 다른 선수와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다른 선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다릅니다.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야 다른 선수들과의 싸움을 해 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 긴 거리를 달리며 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독하게 달리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동요를 인내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내의 경기라고 합니다.

신앙의 경주가 이와 같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달리며 겪게 되는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연약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시험과 유혹도 잘 견뎌내야 합니다. 이 모두가 인내로 싸워내는 경주입니다.

주목할 것은 마라톤 경기는 육상대회나 올림픽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우선 모든 경기의 대미를 이 마라톤이 장식합니다. 이 마라톤 경기가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대 올림픽에서는 이 마라톤 우승자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라톤 경기만큼은 꼴찌로 완주한 사람에게도 박수를 쳐줍니다.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완주한 사람에게는 하늘의 칭찬이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예수만 바라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상 경기 가운데 100미터 달리기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경기입니다. 0.01초차로 순위가 바뀝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가장 직선거리를 달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코스를 갈지자로 우왕좌왕하면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골인 지점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경주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이것저것에 기웃거리고 한눈 팔다보면 제대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맹수 조련사들은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를 훈련시킬 때 특별한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스툴(stool)이라는 의자로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툴이란 등받이 없이 다리 네 개로만 된 의자를 말합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이 스툴을 들고 다리부분을 호랑이나 사자의 얼굴 앞에 들이대면 됩니다. 맹수들은 다리 네 개가 각각 자기를 찌르려 한다고 생각하고 각 다리를 집중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개가 아니라 다른 네 개를 보다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정신이 나른해 진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마취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수가 애완동물처럼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맹수라도 바라보는 시선이 흐트러지면 제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이것저것 한눈팔게 되면 목표를 놓치게 되고 싸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의 경주의 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면서 그분이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분이 하신 것처럼 하게 되고 그분의 마음을 닮아가게 됩니다.

고전 1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신앙의 경주를 하며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빌 2: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역시 힘써야 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잘 해 가려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으려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려고 하고, 예수님처럼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달리기 경주와 같습니다. 목표인 저 천국을 향해 주어진 길을 달려간 후 주님 앞에서 상을 받는 것이기에 달리기 경주와 같습니다. 이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필요한 것을 벗어야 합니다. 무거운 것들 그리고 얽매이는 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저 천국에 당도할 때까지 잘 참아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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