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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마음,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2017년 11월 29일 (수) 12:07:40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잠언 4장 20-27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풀어보면 “세상사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 편으로는 지나쳐 보입니다. 정말 모든 일이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마음먹고 무엇인가 이루려고 해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한편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일화입니다.

원효가 후배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천안 부근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밤은 깊어 가는데 폭우가 계속 쏟아지자 두 사람은 부득이하게 동굴 안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원효가 새우잠을 자다 한 밤중에 갈증이 나서 무심코 주변을 더듬어 무엇엔가 담겨있는 물을 마셨습니다. 시원하다고 느끼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자기가 마셨던 물을 보니 해골 안에 고여 있던 물이었습니다. 해골 물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현상을 보아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목이 타서 간절한 마음으로 물을 볼 때와 물을 마실 생각이 없이 물을 볼 때 그 물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그렇게 중요해도 그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을 먹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도 그 마음이 지속되지 못하고 변한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의 마음을 갈대로 비유하곤 합니다. 바람이 불면 갈대는 그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흔들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예컨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변합니다. 조석변개라는 말처럼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변합니다. 때로는 기분에 따라 그 마음이 변합니다. 기분 좋을 때 마음과 기분 나쁠 때 마음이 다릅니다. 감정에 따라 그 마음이 달라집니다. 화가 날 때 마음과 사랑이 충만할 때 마음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늘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 16:3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를 교훈해 줍니다.


1. 마음을 채우라

본문 20-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자녀에게 부모가 가르쳐주는 교훈의 말씀을 듣고, 늘 보며, 그리고 잊지 말고 마음속에 잘 담아두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말씀을 마음속에 채우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 아파트 광고 카피를 보고 고개를 끄떡였던 적이 있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비울수록 가득해집니다.
바람을 위해, 햇살을 위해, 아름다움을 위해 비웠습니다.
비울수록 가득 채워지는 아름다움…”

이 광고 카피의 중심은 두 가지 단어입니다. 하나는 ‘비움’이고 다른 하나는 ‘채움’입니다. 집 안에 바람, 햇살, 그리고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먼저 불필요한 것들을 다 비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바람, 햇살,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채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네 아파트가 참 좋은 아파트라는 광고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마음 안에도 이렇게 비움과 채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비움입니다. 빌 2:5-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먼저 자기를 비우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 능력, 그리고 뜻까지 다 비우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케노시스“(kenosis)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닮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비움 즉 케노시스의 영성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움은 단순히 청소하고 비워두기 위한 비움이 아닙니다. 이 비움은 더 귀한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비움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을 비워둔 채로 그대로 둔다면 더 나쁜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깨끗이 청소해 두고 나면 계속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어느새 먼지가 가득 쌓이고, 곰팡이도 생기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거미가 와서 거미줄을 쳐 놓습니다.

   
▲ ⓒpixabay.com / G4889166 / hearts-2501323_640

그래서 비움 이후 채움이 이어져야 합니다. 요1:1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비우신 뒤에 비운 채로 그대로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비우셨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어느새 새로운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와 진리였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플레로스”(pleros)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닮고자 할 때 채움 즉 플레로스의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요? 겔 3: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으며 본 환상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에 성경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전 교인이 하나의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반부에는 교구별로 하나의 성경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필사하며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한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성경을 필사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해 줄 것입니다.


2. 마음을 지키라

본문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품었던 그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원문을 보면 이 말은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빼앗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성을 지킨다고 할 때 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사랑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을 때 그 마음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충성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마음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무엇인가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 그 마음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5:8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대적 마귀가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때 대적 마귀의 주된 공격목표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시 1: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 말씀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대적 마귀가 우리를 악인들의 꾀를 따르도록 미혹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도록 미혹하고, 그리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도록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사람들은 그런 미혹을 뿌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인도하는 그 길 곧 하나님의 백성이 가야 하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라는 잡지에 심장 전문의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인 허버트 벤슨 박사의 논문이 발표된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한 마디로 성경 말씀 묵상이 현대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주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성경을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씩 묵상했던 그리스도인 환자들에게 분명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스피린이나 소화제의 효력보다도 더 강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내면화될 때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치유가 일어나게 되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그리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또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열심히 권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줍니다. 외부로부터 우리 마음을 향해 공격해 오는 대적 마귀의 미혹을 물리쳐 줍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각종 스트레스를 완화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 1:1에 나오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야로 묵상할 때 그 효과는 놀랍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3. 마음을 실천에 옮기라

본문 24절 이하를 보면 우리의 신체 기관 세 가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입입니다.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한 마디로 마음속에 담겨있는 선한 마음 그대로 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눈입니다. 25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한 마디로 이곳저곳 한 눈 팔지 말고 선한 마음이 닿는 곳을 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입니다. 26-2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한 마디로 선한 마음을 따라 인생길을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채우고 또 지켜온 그 마음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할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특히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마음이 없는 행동입니다. 이선관이라는 시인이 쓴 짧지만 여운이 긴 시가 있습니다. 제목이 <없다>입니다.

번개시장에는 번개가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
정치판에는 정치가 없네.

혹시 우리가 하는 행동 속에 우리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가정에서 아내를 대하고 자녀를 대할 때 마음 없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까? 일터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속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이렇게 마음 없는 행동을 계속해 갈 때 우리 마음은 꽃병에 담겨있는 꽃들처럼 시들어 갈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과 다른 행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에 하나가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을 다르게 할 때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마음과 다른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어쩌다 생각 없이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압박이 두려워서 또는 눈앞의 이익을 놓칠세라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마음 따로 행동 따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 마음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잠 3: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신앙생활할 때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채워진 선한 마음, 말씀을 묵상하며 지켜온 그 선한 마음을 이제 실천으로 옮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그 선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잘 지키고, 그리고 그 마음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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