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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논문 ]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⑥
2017년 11월 28일 (화) 10:20:31 양용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 신학연구논문 ]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⑥

- 마태복음 13:24-30, 36-43 의 의미와 적용

양용의 교수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4. 결론; 가라지 비유의 메시지와 실천적 함의

   
▲ 양용의 교수

지금까지 가라지 비유와 비유 해설을 석의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성경 본문 해석은 그 석의 결과가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는지를 살피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아래에서는 가라지 비유와 비유 해설에 대한 지금까지 석의적 논의의 결과들을 정리해 보고 그 결과들이 오늘날 교회에 던져주는 신학적 메시지와 그 실천적 함의를 정리해 보려 한다.


4.1. 논의 요약

지금까지 논의에서 다음 결론들이 도출되었다.

첫째, 가라지 비유와 비유 해설은 예수님께 그 기원을 둔다.

둘째, 가라지 비유와 비유 해설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따라서 둘은 함께 연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가라지 비유는 4:17-9:38과 10장에서 각각 기술된 예수님과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 그리고 11-12장에서 기술된 그 복음 선포에 대한 이스라엘의 부정적 반응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넷째, 가라지 비유는 씨 뿌리는 자 비유와 공통점도 있지만, 그 메시지에 있어서는 분명히 구분되고 따라서 상호보완적 기능을 한다. 한편으로, 두 비유는 공히 비유는 무리에게 주어진 데 반해 비유 해설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는 10-17절과 34-35절에서 언급된 하나님 나라 비밀이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원리를 잘 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 씨 뿌리는 자 비유의 경우 씨앗은 모두 좋았지만 좋은 밭과 나쁜 밭이 문제가 되었던 데 반해, 가라지 비유의 경우 밭은 문제가 없지만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이 문제가 된다. 그 결과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책임이 씨 뿌리는 자 비유의 경우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있는 데 반해, 가라지 비유의 경우 마귀에게 돌려진다. 이로써 두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원인과 책임의 다양한 요인들을 상호보완적으로 균형 있게 보여준다.

다섯째, 가라지 비유에는 다양한 대조들이 나타난다. 집주인과 원수(곧 인자와 마귀), 좋은 씨앗과 가라지(곧 그 나라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 종들의 생각과 집주인의 생각(곧 당장 제거와 추수까지 기다림), 공존의 때와 구분의 때, 종들의 역할과 추수꾼들의 역할(곧 인내와 구분), 불태움과 곳간(곧 심판과 구원). 이러한 대조들은 비유의 메시지를 매우 선명하게 돋보이게 해 준다. 먼저 인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뿌리지만, 마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을 뿌린다. 종들, 곧 제자들은 악한 자들을 당장 제거할 것을 기대하지만 집주인은 시대의 끝까지 기다릴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인자의 기다림은 악한 자들보다는 당신 백성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또한 인자의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다. 시대의 끝이 이르면 당신의 백성과 악한 자들은 구분되고 둘의 운명은 최종적 심판과 영원한 구원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밀과 가라지가 추수까지 함께 자라는 밭은 교회가 아니라 인자의 통치가 영향을 미치는 온 세상이다(참조. 단 7:14). 가라지 비유는 순결한 교회를 추구하는 영적 열정을 자제시키는 것이 아니라(참조. 18:15-18) 악이 없는 의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인간적 열정을 자제시킨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도 내다보았듯이(3:12),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악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의인들만의 세상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5-9장)과 제자들(10장)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에도 불구하고 그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 많은 악한 자들이 나타났고(11-12장), 제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나서서 악한 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세상 가운데(아니면 적어도 이스라엘 가운데)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원했을 수 있다(참조. 눅 9:52 54).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 가운데 이미 임한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는 제자들의 기대와 달리 의인들과 악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 따라서 현 시대에 세상 가운데서 악인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다가 자칫 의인들도 악인들과 함께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끝이 오면, 곧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의인과 악인은 구분될 것인데, 그 구분은 최종적인 것이다. 그 결과 악인은 파멸을 당하고 의인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연결 및 대조시킴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핵심 비밀을 밝혀준다. 한편, 가라지 비유와 해설 부분을 공유하는 그물 비유(47-50절)는 교회 안에 참 신자와 가짜 신자의 공존 상황을 그려주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물 비유에는 악인들을 제거하지 마라는 가라지 비유의 명령(참조. 29-30절)이 없으며, 따라서 18:15-17과의 충돌도 생겨나지 않는다.

일곱째,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제자들의 몫이 아니라 인자와 천사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심판은 전면적인 것이어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여덟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내하며 기다린 의인들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 비유는 인내를 권면하고 심판을 경고하며 구원을 내다보게 한다.


4.2. 신학적 메시지

지금까지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가라지 비유는 다음 몇 가지 신학적 메시지를 제공해 준다.

첫째, 가라지 비유는 종말론의 ‘이미’와 ‘아직’의 두 요소와 그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예수님의 선포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이미 도래하였고, 그 나라의 자녀들을 통해 지금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악한 자의 자녀들도 그 나라의 자녀들과 함께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존의 상태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시대의 끝’이 도래하면 의인과 악인이 구분될 것이고, 이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완성된 나라에는 오로지 의인들만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악인들은 예외 없이 모아져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최종 심판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당장 제거하지 않으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나라의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농부들은 가라지를 제거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는 데 관심이 있다. 하지만 집주인은 밀 하나하나의 안전에 관심이 있다. 집주인의 이러한 모습은 세상 농사법과 너무도 다르며, 바로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있다. 제자들의 조급한 마음은 세상에서 악인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루빨리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세우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대의 끝에 이르기까지 공존의 기간 동안 의인한 사람이라도 피해를 입지 않는 그들의 영적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신다(참조. 18:14). 바로 이러한 관심 때문에 하나님은 악인들을 당장 제거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신다.

셋째, 시대의 끝이 도래하여 심판이 시행될 때, 심판의 주도권은 철저히 인자에게 주어진다. 현 시대뿐 아니라 시대의 끝에도 심판을 시행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제자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그 뜻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열정을 내려놓고 시대의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주권이 자신들이 아니라 인자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심판의 때가 도래하면 인자께서 제자들이 아니라 당신의 천사들을 통해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의 끝을 기다리는 동안 악인들에 대한 제자의 태도는 판단적이기보다는 선교적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을 박해하는 세상을 향해 선교적 임무를 수행할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이다(참조. 5:11-16, 44; 28:19-20).

끝으로, 씨 뿌리는 자 비유가 열매 맺지 못하는 책임이 밭인 사람들에게 있음을 지적한 데 반해,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 복음에 반응하지 못한 근본적인 책임이 마귀에게 있음을 확인해 준다. 하나님 나라가 현 세상에 도래하였지만, 마귀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복음에 올바른 반응을 하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마귀의 그러한 적극적 대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한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보존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29절, 참조. 18:14).


4.3. 실천적 함의

이러한 신학적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천적 함의를 던져준다.

첫째, 가라지 비유는 인위적인 열정과 방법으로 악인들을 구분하고 제거하려는 시도를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은 현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자이신 예수님의 절대적 명령이다. 현재 하나님 나라에서 악인들을 제거하려는 조급한 열망은 무릇 열두 제자들 그리고 마태 공동체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제거하여 당장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보려는 이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섣부른 악인 제거 시도는 자칫 의인마저 제거하는 실책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관심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인 중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참조. 18:12-14).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지금 당장 제거하지 않고 기다리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 당장 완전하게 의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들을 끝까지 안전하게 보존하는 데 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들이 세상 가운데서 힘을 발휘하고 대개는 의인들보다 더 번성하고 더 나아가서는 의인들을 박해하기까지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그러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만 바라보는 것은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심판과 판단의 권한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자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인은 비록 안타깝고 답답하고 힘들지라도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을 참아내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서(5:29 30; 18:8-9), 교회적 차원에서(참조. 18:15-20),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서도(참조. 6:10, 33) 악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순수하고 의로운 사회 실현에 집작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이상 실현의 실패로 말미암아 실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의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그것을 추구해 나가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86)

둘째, 하지만 악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인내의 태도는 무관심과 구분되어야 한다. 가라지 비유 자체가 명시적으로 명령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인들에 대한 인내의 태도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참조. 5:44). 그런데 악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그들에 대한 복음 선포의 선교적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한 기도의 최선의 결과는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본을 몸소 보여주셨고(참조. 눅 23:34), 스데반도 그분의 모본을 따랐다(참조. 행 7:60).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인들을 향하여 판단하거나 원망하거나 저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최선의 삶을 위해 기도하며(5:44) 그들에게도 시대의 끝이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참조. 28:19-20).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마귀와 그 세력 그리고 그 체제에 대한 싸움이다. 그러면서도 마귀의 사역의 피해자들인 악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긍휼히 여김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들을 향한 복음 선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가라지 비유는 현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악한 자들의 수많은 공격과 비난에 시달리고 갖가지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참조. 5:10, 11-12).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혹시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는지, 아니면 그분의 능력이 부족한지 의구심을 표현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능력이 부족하신 것도 아니다. 세상은 어디든지 이미 인자의 통치권 하에 있다(28:18; 참조. 단 7: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단지 때를 기다리시며 악인들을 용납하실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오면 악한 자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현 세상에서 악한 자들로 말미암아 지금 고난과 괴롭힘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난과 괴롭힘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침내 해처럼 빛나는 영광스런 보상이 보장되어 있다. 이러한 약속은 현 세상 가운데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격려를 제공해 준다. 현 세상의 고난과 역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영원히 누리게 될 영광에 비추어볼 때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가라지 비유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현실 가운데서 부패한 정부와 사회 체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밀과 가라지가 그 정체성 자체에서 구분되듯이,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불의와 부패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나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협력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세상의 불의와 부패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불의와 부패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고 목말라해야 한다(참조. 5:6).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다가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는 것까지도 기쁨으로 감수해야 한다(참조. 5:10, 11-12).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불의와 부패를 뒤엎거나 무너뜨리거나 제거하는 것 자체를 최고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의인이 하나라도 피해를 입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가운데 불의와 부패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기를 갈망하고(5:6)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6:10) 그것을 향해 힘을 다해 나아가야 하지만(참조. 6:33),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사실 악한 자들을 제거해버리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인자께서 마귀와 그 체제 그리고 악한 자들을 모두 철저히 심판하실 것을 신뢰하면서(참조. 계 17:1-19:5; 20:11-15), 그 심판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각주)----------

86) 참조. Wenham, Parables, pp.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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