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목회·신학 > 칼 바르트 | 바르트와 비서의 연정(戀情)
       
(2) 바르트 유족들… 비서 폰 키르쉬바움과의 서신공개 하기로
20세기 '신정통주의'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 비평
2017년 11월 24일 (금) 16:38:40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시리즈 첫 회에 밝힌 대로, 칼 바르트와 그의 신학 저술 조력자 겸 비서였던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 여인과의 관계는 바르트가 죽기까지 35년 넘게 이어졌다.

과거에는 둘의 관계가 퍽 학적이면서 추상적인 모호한 관계로 어림되곤 해 왔다. 특히 바르트의 후학들, 바르트에 대하여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연구가들은 둘 사이가 그다지 큰 문제나 스캔들의 소재가 될 만큼 심각한 관계가 아니길 내심 희망하면서 어영부영 적당히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근거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 딱히 이렇다 저렇다 깊이 할 말도 없었던 것.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인터넷 정보시대 아닌가. 모든 정보는 되도록 밝혀야 정보인 것이다. 그래서 둘의 비밀은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둘의 그 어느 쪽도 공개를 원치 않던 것이었건만.


90년대말 주요 관련 서적

1998년 1월 1일, 펜실베이니어 주립대 출판사에서 바르트 연구가 겸 사가이자 여권운동가이고 드류대학교 신학사서인 수잰 셀린저 (현)부교수가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과 칼 바르트: 전기적, 신학사적 연구>란 책을 펴 냈다.1)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춘 최초의 저작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책 나름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때까지도 미처 공개되지 않은 더 깊은 자료들 때문이다.

   
▲ 바르트와 그의 '하나님의 기쁨인 지지자' 폰 키르쉬바움. ⓒsrf.ch

책 소개문에서, 셀린저는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에 관한 과거 오랫동안의 논의는 단지 루머와 추정의 소용돌이였을 뿐, 바르트의 신학적 성취를 위한 개인적 관계로만 이해됐었다고 전제, 저자 자신은 둘의 협력을 좀 더 다차원적으로 묘사하느라 했다고 밝혔다.2)

1949년에 행한 한 연속 강의에서, 폰 키르쉬바움은 자신이 성경, 신학, 교회의 관점으로 본 여성관을 논한 바 있는데, 내용이 그 해에 곧 출판됐다. 그런가 하면, 바르트는 자신의 역작 <교회교의학> 중 세 권을 할애해 인간론을 다룰 때, 하나님의 형상의 위치로서 남녀 관계를 논하면서, 폰 키르쉬바움의 학적 면모를 소개하고 치하했다. 그것은 주제상 확실히 두 사람 자신들의 관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바르트를 단정적으로 배척해온 이유는 바로 성의 인류학적 이슈 때문이었다.3) 이에 대해 자신도 페미니스트인 셀린저는 일부는 깊이 동의하지만, 두 사람을 "상황적"으로 이해하자는 입장이다. 즉 우선 전기적(傳記的)으로, 그리고 영어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초기 독일 페미니즘, 변증법적 개인주의라고 알려진 지적 운동,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둘이 위협받으며 겪은 위기의식 등을 모두 감안하여 이해하자는 것.

사실 셀린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1990년 당시 드류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한국인, 고광필 박사4)가 선사한 책 한 권에서 비롯했다. 레나테 쾨블러의 <칼 바르트의 그림자 속에서-샬로테 폰 키르쉬바움>5)이라는 책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둘 사이의 서신들과 함께, 바르트-키르쉬바움 연구에 있어 특히 중시되는 자료다. 

셀린저는, 그후 바르트의 비서로서 폰 키르쉬바움의 뒤를 이은 에버하르트 부쉬(괴팅엔 대학교 개혁신학과장)와 바르트의 아들인 마르쿠스 바르트 등 생시의 바르트를 아는 수많은 지인들 및 중요한 바르트 연구가들과 교류한 결과로 이 책을 펴냈다.6)


'삼각관계' 서신 공개 과정7)

이런 연구 열기로부터의 압박감 때문인지는 모르나, 셀린저의 책 출판 딱 2년 뒤인 2000년 바르트 유족들이 처음으로 바르트의 편지를 공개했다. 1930~1935년의 약 5년간 친구 에두와르트 투르나이젠과 나눈 내용이었다. 이 편지들 가운데는 바르트와 아내, 폰 키르쉬바움 사이의 사적 관계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사실 이전에도 서신집 공개 노력은 없지 않았다.

투르나이젠 자신이 1973~1974년 편집 발표한 것으로, 당시는 바르트 '삼각관계' 건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1985년에도 바르트의 유족이자 폰 키르쉬바우의 합법적 상속자들이 둘 사이의 진한 사랑 편지를 공개하기로 이미 결심했었다.

1991년 유족들은 바르트-투르나이젠 서신들을 더 감추지 않고 공개하기로 하고, 특히 바르트가 아내 넬리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를 포함시켜 출판하기로 했다.

1993년엔 프란치스카와 마르쿠스 바르트가 이 결정을 재확인했다.

아무튼 이에 따라 2000년 이래로 바르트-폰 키르쉬바움의 옛 사랑 관계는 공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2008년에는 바르트 유족들이 1925~1935년에 나눈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의 편지를 공개했다.

2016년 이것은 또 다른 여성학자 크리스티아네 티츠 교수(취리히대학교)가 바르트와 아내 넬리, 폰 키르쉬바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심층분석하여 발표하기에 이른다.

바르트-넬리-폰 키르쉬바움 서신의 공개 과정은 이런 '진화'를 거쳤다. 유족들이 전체 스토리를 이젠 더 루머로만 남겨 둘 순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둘의 첫 만남8)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은 각각 38세, 25세 때였던 1924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바르트는 괴팅엔 대학교에 갓 부임한 개혁신학 교수였다. 자신의 <로마서 주석>이 인기의 급물살을 탄 결과로 스위스 목양지였던 자펜빌을 두고 떠나왔다(1921). 그러나 경험 부족과 벅찬 강의 준비 등에 압도됐고 고독감도 느낀 나머지 '평생 반려 도우미'가 필요할 모양이라고 고향 친구 에두와르트 투르나이젠에게 시사했다.

1925년 봄학기 말, 바르트는 뮌스터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 자리로 옮겨가게 된다. 1년 전 만난 폰 키르쉬바움과는 더욱 깊고 돈독한 사이가 돼 갔다. 폰 키르쉬바움은 그즈음 뮌헨의 독일 적십자사 간호원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꽤 궁금해 하던 이슈 하나는 그녀의 배경과 내력이었다.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은 1899년 바바리아(=봐이에른)의 잉골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본디 귀족 가문의 하나였으나, 아버지가 장교였기에 딸은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타곤 했다. 아버지는 딸의 지성적인 재능을 일찍부터 인식해 칭찬하고 고무해 주곤 하여, 부녀지정이 도타웠다.

샬로테는 대학 입학에는 좀 모자란 리체움 교육을 1915년 마쳤다. 미술, 바느질, 현대 언어 등을 강조하는 수준이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1차) 대전에서 전사하자 간호사가 될 맘이 생겼다. 그 이전에 환자들을 돌보던 군대 내 종교단체인 '성 요한회'에 가입할 뜻도 있었다. 전쟁 끝에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가 곧장 다시 떠나 적십자 간호원 훈련을 받게 된다. 당시 여성사회운동은 민족주의적, 보수적이고 루터교적이었다.

폰 키르쉬바움은 일찍부터 신학공부를 하고 싶던 차, 뮌헨의 지성들 중 한 명이고 크리스티안 카이저 출판사9)의 신학고문이었던 게오르크 메르츠 목사를 알게 된다. 그녀의 목회자가 된 메르츠는 바르트의 신학을 소개한 데 이어 바르트 자신을 소개한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둘이 함께 건느게 된 시발점이었다. 이 당시에 폰 키르쉬바움은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완독하여 소화한 터였다.   

둘의 첫 만남은 (아마도) 루에디와 게르티 페스탈로치의 여름별장에서 이루어진다.10) 페스탈로치와 샬로테는 금세 친근해졌고, 1925년에도 메르츠와 함께 좀 더 긴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여행은 그녀의 간호사 업무로부터 휴식이 필요해서 이뤄졌단다.

바르트는 1925년 여름의 이 만남을 특별한 것으로 여겼고, 샬로테를 모두가 아는 애칭 '롤로'(Lollo)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후 바르트는 페스탈로치의 재정지원으로 샬로테를 뮌헨의 비서학교로 보낸다.11)    < 계 속 >

각주

1) Sellinger, Suzanne, Charlotte Von Kirschbaum and Karl Barth: A Study in Biography and the History of Theology.

2) 이하는 이 책 서문(Acknowledgment)과 제1부(Pt.1) 서두를 참조했다.

3) 같은 책 서문.

4) 전 광신대학교 대학원장 ․ 조직신학, 현재 은퇴.

5) Köbler, Renate, In the Shadow of Karl Barth: Charlotte von Kirschbaum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4). 또 하나의 중요한 관련 자료. 시리즈 딴 회에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6) 셀린저는 그들로부터 가능한 최대한의 자료를 확보했다. 노력이 눈부실 정도로.

7) 이 부분은 다음을 참조함. THEOLOGY TODAY 2017, Vol.74(2) 86-111: Tietz, Christiane, Karl Barth and Charlotte von Kirshbaum. Article, 86-88.

8) Selinger, 같은 책 1~4. 영문 위키피디어, 'Charlotte von Kirschbaum'항 참조.

9) Christian Kaiser Verlag. 이 출판사가 바르트와 변증신학 동료들의 저작물을 소화하게 된다.

10) 첫 만남이 어디서였는지 약간의 이견이 있는 듯. 아무튼 이 장소는 바르트, 투르나이젠, 기타 여러 사람들의 '본부'가 되어, 1920~1950년대까지 활용된다.

11) Selinger, 같은 책, 4.

     관련기사
· 20세기 '신정통주의'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 비평 ①
김정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통합재판국원 김점동 목사 저녁식사
(24) 9월 총회에서 쓰나미처럼
김기동! 자네가 한 행정조치 모두
이재록 신매자 이희진 “(이씨 구
세습 인정받은 김삼환, 쓰나미 세
신사참배보다 치욕스런 명성 세습,
“명성 세습판결 바로잡고 교회다움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