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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구원 그 큰 은혜
2017년 11월 22일 (수) 11:55:40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5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요사이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을 영적으로 격려하고 각 가정을 위해 기도해 드리기 위해서 심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각 가정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간증하시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제가 더 큰 격려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 마음에 가장 큰 격려와 감동이 된 이야기는 이런 것들입니다. 한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집에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가장 감사할 것은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랍니다. 원래 자기 가정은 한 사람도 믿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되고 그 후 세월이 가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예수를 믿다가 이제는 모두가 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목회자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그 무엇보다도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그 무엇보다 가족들이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생각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마땅히 감사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해야 할 제목이 바로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구원 받게 해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데살로니가에는 단 한 사람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후 50년 경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가서 처음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 때 야손이라는 사람과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같은 소수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야손의 집에서 모여 예배하며 데살로니가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 때 많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박해가 극심해서 더 이상 데살로니가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 3주 만에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인근 베뢰아 지역을 지나서 남쪽 아덴을 거쳐 고린도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이 됐습니다.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하고 막 예수 믿게 된 사람들만 남겨두고 떠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고, 저가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한 마디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것이 많았지만 바울이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의 믿음을 지켜주셔서 받은바 구원을 잘 지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가장 감사한 것은 바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믿음 가운데 받은바 구원을 잘 지켜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왜 구원 받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왜 그렇게 구원 받은 것이 감사한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먼저 구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말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면 그저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고 응급환자를 살려내는 인명 구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야구에서 구원 투수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왜 멀쩡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자기가 누구이고 지금 자기가 어떤 형편에 놓여있는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죽음 이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 앞에 거대한 폭포를 앞에 두고 유람선 위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조금 뒤에 유람선이 폭포 밑으로 떨어지게 될 텐데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저 파티를 즐기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당장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달라집니다.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 알게 됩니다. 특히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김세윤 박사가 쓴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옳지 않은 태도이다.” 이 말은 성경의 죄에 대한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옳지 않은 태도란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하나님을 떠나 살고자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기 보다는 자기 뜻대로 살려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태도로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리가 이런 죄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 ⓒpixabay.com / geralt / jesus-924562_640

다음으로 죄의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게 됩니다. 먼저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죄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습니다. 김세윤 박사는 이것을 ‘삼중 소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이웃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진정한 자아로부터의 소외입니다. 이것 역시 성경의 가르침을 현대의 언어로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 3장을 보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아담과 하와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이것은 마치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린 채 혼자서 두려워 울부짖으며 길을 헤매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인간이 이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 인생길을 걸으며 평안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웃으로부터의 소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 4장을 보면 형제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 없는 이 세상에 살면서 두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문제로 경쟁하며 시기하다가 결국 친 형이 자기 친 동생을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겪은 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깨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을 약속하고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 부부가 이혼을 생각하며 서로에 대해 불평하고 미워하며 한 집안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화목을 잃어버리고 경쟁, 시기, 미움 속에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롬 7장을 보면 바울은 자신 안에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기 모습은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과의 관계가 깨져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로부터의 소외입니다.

이것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에 탄 채로 언덕 위를 내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절제가 안 됩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싫습니다. 그래서 참된 자기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미워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을 저주하며 살아가기 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런 삼중 소외 속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소외 속에 평안을 잃어버리고 불안에 떨며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소외 속에 화목을 잃어버리고 경쟁하며 미움과 시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과의 소외 속에 진정한 자기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후 비로소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우리가 왜 만족스런 인생을 살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히 9: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계 20: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말씀은 이런 말입니다. 심판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는 분리의 단계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과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영생을 얻어 구원 받은 사람과 예수 믿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상벌의 단계입니다. 우선 그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들은 행위책에 기록된 대로 상급이 결정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는지 여부, 맡겨주신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에 따라 상급이 다르게 주어집니다. 다음으로 그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 역시 행위책에 기록된 대로 형벌이 결정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악을 저질렀는지에 따라 지옥에서 형벌의 경중이 결정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이후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때 구원을 받아 그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들은 천국으로 보내져 상을 받지만, 안타깝게도 구원 받지 못해 그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보내져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저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No!” 결코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도와 줄 수 있을까요? 역시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해서 남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무엇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역시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구원을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졌다 해도 그 권세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덕과 수련을 쌓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요 3: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구원 받게 된 과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 말씀 속에서 세 단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선택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선택하셨는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는 우선 선택의 은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룩하게 하심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세상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회개하게 하시고 죄사함을 받게 해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지는 역시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등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는 거룩하게 해 주시는 은혜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셋째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거룩하게 해 주신 사람들을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죄사함 받은 사람들이 진리를 믿게 해 주시고 그 믿음으로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리를 믿게 되는지 역시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그 동안 그렇게 믿을 수 없던 말씀들이 이제 어떻게 믿고 아멘하게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는 믿음의 은혜로 마무리가 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무 공로 없지만 구원받은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된 것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게 된 것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은혜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죄로 인해 이 세상을 고통 가운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우리가 구원 받게 된 이 크신 은혜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감사해도 이 보다 더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욱 구원 받음의 그 큰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 또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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