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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교사 교주 사망… 종신형 받아 감옥서
히피 출신으로 ‘맨슨가족교’ 만들어… 신도들 절대복종
2017년 11월 21일 (화) 14:48:49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악명 높은 히피 컬트인 '맨슨가족교' 교주이자 7명 여성들의 연쇄 살인을 주도한 혐의로 40여년간 수감생활을 해온 찰스 맨슨이 지난 11월 19일 캘리포니아주 컨 카운티의 한 병원에서 83세로 사망했다.

맨슨은 1969년 자신을 절대복종하던 '패밀리' 추종자 4명을 시켜, 당시 임신 8개월이던, 로먼 폴랜스키 영화감독의 아내이자 여배우인 샤론 테이트를 비롯한 7명의 여성들을 이틀에 걸쳐 차례로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해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및 국제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다. 그후 캘리포니아 콜커란 주립교도소에서 종신 수형중 위장내출혈 등 건강 문제로 입원해 있었다.

   
▲ 옥중사한 교주 ․ 연쇄살인교사범 찰스 맨슨의 만년 시절. 왕년에 히번덕거리던 눈총이 죽어있다. 이마의 스와스티카도 흐릿하다. ⓒCBC

7명의 피살자들은 마구 찔리고 난자당하거나 신체가 절단된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다. 범인의 별명 '잭 더 리퍼'로 유명한 지난 1888년 8월 7일부터 9월 10일까지 주로 벌어진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 화이트채플 매매촌의 연쇄 살인사건을 연상시킬 만큼 끔찍했다.

런던 화이트채플 사건 당시 '주피해자(canonnical)'로 불리는 최소 5명의 성매매 여성들 외에 여럿이 대부분 목 앞과 신체 일부가 짓뭉개지거나 잘려나가거나 내장이 분해된 채 일부 장기가 없어지거나 돌출되는 등 소위 '의식처형(ritual execution)'이 된 모습으로 살해돼 엄청난 공포와 의문을 자아냈다. 현재까지도 결정적인 용의자나 단서가 발견되지 않고 추측만 난무해왔을 뿐이다.

맨슨과 가족교도들은 주로 시골 동네를 다니며 쓰레기더미를 뒤지거나 훔치거나 비틀즈의 노래제목을 딴 '헬터스켈터'로 자신들이 지칭한 '종말 인종 전쟁'을 준비하는 생활을 살았다. 맨슨은 또 장기간 재판을 받으면서 그 잔혹성과 악명 탓에 지속적으로 대중문화를 장식하기도 했다.


연쇄 살인 사건 사주

맨슨 일당은 모두 백인인 피살자 7명이 마치 흑인 민병대에 당한 것처럼 꾸며 '인종전쟁'을 앞당길 양 계산된 범죄를 단행했다. 그래서 아프리칸계 미국인들을 향한 백인들의 감정을 돋움으로써 흑인들의 더 큰 폭력을 일궈낼 것이라고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맨슨의 자칭 '음악 재능'을 거부한 할리우드 측에 대한 앙심과 분노를 몇 주에 걸쳐 계속 발출함으로써 더욱 추종자들의 살인욕을 부추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헬터 스켈터 학살' 또는 '테이트-라비앙카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희대의 사건으로 맨슨과 추종자 등 5명은 1971년 모두 가스처형 선고를 받았으나 1972년 캘리포니아 주법원이 사형제를 폐지하면서 전원 종신징역으로 감형됐다. 이 '학살'로 다양한 민담과 책, 노래, 영화와 오페라까지 생기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 테이트-라비앙카 살인범들이 체포된 후 데스밸리에 피신중인 맨슨가족교 교도들. 평소 맨슨의 교시에 따라 약물중독과 그룹섹스로 나날을 보냈다. ⓒSOM

여러 달에 걸친 재판 기간 동안 맨슨과 여성인 수전 앳킨스, 패트리셔 크렌윙컬, 레즐리 밴 후턴 등 3명이 선고를 함께 받았고, 또 다른 남성인 찰스 '텍스' 왓슨은 별도의 재판을 받았다. 맨슨 일당과 법정 밖에서 온 추종자들은 장난과 익살, 알아들을 수 없는 슬로건, 일제히 항거의 풍월을 읊는 등 재판 진행을 막았다. 한 번은 맨슨이 판사에게 돌진하려다 집행관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유난히 희번득거려 섬뜩하고 특이한 눈의 소유자인 맨슨은 교주답게 법정을 휘둘러보며 "너희 자신을 돌아 보거라. 너희는 모두 멸망하게 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맨슨 못지않게 돌진형인 맨슨 기소 담당 빈슨트 부글리오시 LA 지방 부검사는 그를 '악의 메타포어(은유)'라고 칭했다.


맨슨의 범죄심리

맨슨은 흔히 범죄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등 인간행동 관련 학문의 연구 대상이 되곤 한다. 그는 체구도 작고 땅딸막한 편이지만 추종자들 특히 여성들을 설득하는 거의 최면적인 파워가 있어, 일각에서는 '신적' 존재로 불리기도 했다. 수사관들과 연구가들, 저널리스트 등은 그를 저돌적이고 변덕스럽고도 집중적인 기타의 달인, 동물애호가, 인종차별주의자, 유대인 혐오자, 기존체제를 혐오하는 좌파, 특히 자신의 음악을 거부한 할리우드와 전체 미국에 대한 증오와 '앙심덩어리' 등으로 간파했다.

맨슨을 연구한 행동심리학자들은 그가 광인은 아니었으나 능히 광인 흉내를 낼 수 있었고, 남을 통제하려는 부단한 욕구에 사로잡혀 순진하고 어리숙한 신봉자들을 충성맹세형 추종자로 기르는 능력 등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얼라이언트 국제대학교(AIU) 산하 캘리포니아법정학대학(CSFS)의 에릭 히키 학장은 "맨슨은 근본적으로 비겁자였다."며 "자신이 내릴 명령을 남에게 내맡기기도 하고 아둔한 사람들을 적극 이용하며 즐기는 타입이었다."고 분석했다.


맨슨 삶의 내력

주범인 찰스 밀즈 맨슨은 1934년 11월 12일 신시내티에서 역시 경범자 출신인 16세 미혼여성에게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 전혀 모른 채 자랐다. 어머니는 수시로 감옥을 드나드는 통에 어린 맨슨은 웨스트 버지니아와 켄터키주 소도시의 친척들 집을 오가다 자신도 훔치기 등 경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기탁부양가정과 감화원 등을 전전했다. 학업은 중학교 1학년 때 중도하차했다가 교도소에서 정상적인 IQ121를 기록하기도 했다.

1950년대엔 10대 웨이트레스인 로절리 윌리스와 결혼했다가 3년만에 이혼한 뒤 성매매녀 출신인 딴 여성과 재혼했고 두 번째 이혼했다. 그의 첫 아들 맨슨 주니어(자칭 제이 화이트)는 1993년 자살했다. 그밖에 다른 자녀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맨슨은 그후 샌프란시스코와 LA 등에서 히피문화와 접해 빠져들었다가 추종자들을 모아들였다. 그들 다수는 다양한 사회경제층의 젊은이들로 환멸과 정신혼란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타 연주와 노래 짓기 솜씨를 쐐기 삼아 할리우드 부유층의 환심을 사려고 들었다. 그 결과 '비치보이즈' 멤버인 드니스 윌슨, 녹음프로듀서이자 여배우 도리스 데이의 아들인 테리 멜처 등과 어울리기도 했다.

1968년엔 비치보이 앨범 '20/20'에 '존재를 멈추다'란 노래 한 곡으로 올리기도 했으나 윌슨이 나중 제목을 '사랑 안하길 배우진 마라'로 바꿔버렸다. 모든 게 맨슨의 뜻대로 되지를 않자 그는 분노와 앙심에 빠져갔다.

대신 교주가 되어 추종자 자체 단합에 들어간 맨슨은 그들을 다양한 지역 그룹씩 묶어 엄격한 룰을 적용해가며 공동체로 몰아갔다. '룰'에는 의무적인 그룹섹스와 마약남용도 포함됐다. 공범인 크렌윙클은 1994년 옥중 인터뷰에서 "우린 LSD(환각제의 일종) 환각 여행을 수백 차례 했다."며 "(그룹섹스도) 하나의 통제도구로서 치밀하게 계획됐다."고 밝혔다.

저널리스트 제프 귄의 책, '맨슨의 삶과 시대'에 따르면, 맨슨가족교 교도들은 남성에게 전적으로 맹종했고, 돈은 모두 맨슨에게 바쳤다. 여자들이 요리를 하면 언제나 남자들이 먼저 먹었고 여자들은 남은 것을 먹어야 했다. 이들 '가족'에게서 4명의 자녀가 태어나 그중 한 명은 교주인 맨슨이 챙겼다.

1960년 후반 무렵 맨슨은 '인종전쟁' 아마겟돈의 환상을 "봤다"며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중 '헬터스켈터', '검정새', '피기'(돼지) 등 코드화된 용어와 성경 예언들을 짬뽕하여 교도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이 아마겟돈 중 흑인들이 백인들을 이길 것이라고 하여 추종자들이 모두 자신과 함께 대스밸리(죽음의 골짝) 땅 속에 내려가 있다가, 승전한 흑인들로부터 리더십을 전수받아 "재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종차별 아마겟돈 전초전?

이를 위해 백인 부자들을 죽여야 한다고 맨슨은 추종자들을 부추겼다. 1969년 8월 9일 드디어 두 가족팀 중 하나가 로스앤젤레스 부유촌에 과거 멜처가 임차해 살던 집을 겨냥하고 들어가, 안에 있던 테이트와 세 친구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찌르고 쏴 죽였다.

이유 없이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피해자들은 배우 테이트 외에 커피회사 상속자인 애비게일 폴저와 그녀의 남자친구, 연예인 미용사 제이 세브링이었다. 이 부동산의 관리인인 또 다른 피해자 스티브 페런트는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테이트의 남편인 폴랜스키는 마침 해외에 나가있어 죽음을 모면했다.

이튿날인 8월 10일엔 다른 가족팀이 딴 이웃 지역에 맨슨이 앞서 점찍어놓은 집을 쳐들어가 식품점 체인 업주인 리노 라비앙카 씨 부부를 죽였다. 테이트의 집을 비롯한 두 집 모두 벽과 가구 등에 '돼지들에게 죽음을', '일어나라', 전설적인 블랙팬더의 발자국 등의 낙서가 갈겨져 있어 경찰을 혼동시켰다.

수사대는 여러 달 공전 상태에 있다가 이와 무관한 살인죄로 수감된 앳킨스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앳킨스는 감방동료들에게 테이트-라비앙카 살해 공모죄를 털어놓아 수사대에 단서를 흘린 셈이 됐다. 지문과 탄흔 검색을 통해 앳킨스의 진술이 사실로 확인되자 역시 무관한 범죄로 구금중인 맨슨 역시 즉각 기소됐다.

검찰에 의하면 맨슨은 매우 치밀한 살인 계획을 세웠으나 자신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고 가족들이 증언했다. 맨슨은 1969년에 저질러진 또 다른 2건의 살해사건에 대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맨슨은 수감기간 내내 자신의 살해 사주 혐의를 계속 부인하면서, 철창 속에서 산더미 같은 외부 편지에 답장하는가 하면, 끈으로 전갈과 거미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이따금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면서 소일했다. 그러나 늙어가자 힘도 빠지고 더부룩한 그의 모발과 이마에 새겨 넣은 나치 상징 문양인 스와스티카도 퇴색돼갔다. 앳킨스는 지난 2009년 61세로 앞서 죽었다.

한편 이름은 같지만 딴 사람인 가수 매릴린 맨슨은 찰스 맨슨의 죽음 소식을 듣고, 죽은 맨슨의 젊은 시절 얼굴을 라이프 매거진 표지사진처럼 조작해 라이프에서 'F'를 뺀 'LIE' 곧 '거짓말'이라고 표제를 달았다. 현재 샥 라커인 매릴린 맨슨은 죽은 여배우 매릴린 먼로와 촬스 맨슨에게서 각각 이름을 따 자기 예명을 만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금번에 매릴린 맨슨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여 트위터에 애도를 표하기도.


의사의 맨슨 가족 관찰

맨슨의 젊은 시절 실험적으로 그와 교도들의 건강 클리닉을 돌봤던 의사 데이빗 스밋(헤이트 애쉬베리 프리클리닉 설립자)은 당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50년전 '사랑의 여름철'의 절정에 약 3만의 히피 족이 샌프랜시스코 금문교 공원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레잇풀 데드'(고마운 고인) 등의 밴드가 고안해낸 사이키델릭 뮤직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수많은 젊은이들도 몰려들었다. 그후 이 작은 이웃은 화학성 약물이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식의 철학에 바탕을 둔 소위 반문화운동의 진원지가 됐다. (바로 이 와중에 찰스 맨슨의 괴물성이 빚어졌다.)

나는 1960년대 후반기에 심리작동 약물 연구를 위해 이들과 접촉했다가 그가 사랑의 여름의 어두운 쪽 상징이 됐음을 알았다. 내가 맨슨과 여성 추종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1967년. 나는 그 지역의 젊은 마약 사용자들의 인구도 조사하고 그들을 진찰하던 중 그들과 접했다.

맨슨 패밀리는 주로 환각제와 마인드콘트럴에 바탕을 둔 환상에 젖은 철학을 지녔음을 나는 발견했다. 맨슨은 추종자 여성들의 언행을 통제했고 그들의 이름조차 바꾸어 정체성을 용해시켜 버렸다. 당시는 헤이트-애쉬베리 지역 사람들 모두가 대동소이해 그저 그렇거니 했다.

두번째 만난 것은 1969년이었다. 그즈음 히피족은 시골로 흩어졌기에 우리는 방문 간호팀 중심의 헬스그룹을 조직해 그들 세계로 파고들면서 그들의 반문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 클리닉 관리자 앨 로즈는 임시로 맨슨 가족 목장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로즈의 관찰기록은 '사이키델릭 약물' 저널에 실린 우리의 논문 '집단결혼 공동체: 사례연구'의 바탕이 됐다. 그러던 차 맨슨 패밀리의 살인 사건이 터졌다. 맨슨은 절대지배자였고 자신의 정신력을 보여주려고 마약에서 비롯된 매직과 트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룹은 약 20명의 핵심멤버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맨슨은 누가 자신의 철학과 통제에 얼마나 충실히 따라 주냐를 여성들의 성생활로 파악하곤 했다. 적응하지 않는 추종자에겐 벌이 내려졌고 다수는 강제출교됐다. 맨슨의 철학에 불응하여 그룹섹스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 역시 축출됐다.

맨슨가족교 사람들은 결코 우리 의료진에게 살인폭력 등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1980년 수전 앳킨스과의 대담을 통해 맨슨이 '헬터스켈터' 세계관을 공식으로 만들어 미국에 인종전쟁을 예고했고 평소 환각제를 상용하던 그대로 테이트-라비앙카 살인사건을 일으켰음이 밝혀졌다.

앳킨스는 맨슨이 자신의 뇌리를 떠나기 전에 이미 5년간 수감 중이었다고 밝혔다. 약물상용으로 형성되는 마인드컨트럴은 취약한 젊은이들 가운데 매우 실제적인 현상이 돼 있다. 이것을 파악하거나 예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마약과 컬트, 청소년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나날이 증가하는 마약 문제는 더 위험한 폭력과 컬트 문제로 비화할 포텐셜이 되어 있다.

수많은 기성인들이 맨슨의 에피소드를 반문화운동에 대한 두려움의 뿌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사이키델릭 뮤직의 창출이 이뤄졌고, 인종, 성별, 종교 간의 관용이 증대됐다. 또 약물중독은 의료 세팅에서 질병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히피 운동은 찰스 맨슨 같은 '괴물'도 낳았지만, 캘버리 교단 창시자, 척 스미스 같은 복음전도자들을 낳기도 했다. 비록 스미스의 삶, 특히 후기의 삶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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