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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학술토크쇼… “젊은 사상가, 개혁가 만들어야”
“교회 안의 불의에 대해 예언자 정신 나타나야”
2017년 11월 20일 (월) 13:43:07 윤지숙 기자 joshuayoon72@amennews.com

<교회와신앙> : 윤지숙 기자 】 한동대학교(총장 장순흥)가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개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동아시아 프로테스탄트에게 거는 기대’라는 주제로 토크쇼가 진행됐다.

11월 16일 저녁 청어람 아카데미 양희송 대표의 사회로 한국 · 일본 · 중국을 대표하는 이국운 교수(한동대),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조영헌 교수(고려대 중국사)가 유럽과 북미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동아시아의 프로테스탄트가 동아시아의 평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발언했다. 간추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토크쇼 : 왼쪽부터 이국운 교수(한동대), 조영헌 교수(고려대),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 ⓒ<교회와신앙>


양희송 대표: 이번 토크쇼는 유럽과 북미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동아시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평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먼저, 동아시아 담론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정체성이 있는가에 대해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동아시아의 역사적 공통적 유산은 없는가?

   
▲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 ⓒ<교회와신앙>

청어람ARMC에서도 동아시아 청년수련회를 갖고 있다. 일본, 중국, 한국의 청년들 50~60여명이 모이면 각자 자기말로 떠들다 어느새 1~2개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 그럴 땐 ‘동아시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동아시아 3국의 ‘영토문제’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어느새 저마다 애국자가 되어 있었다. 그럴 땐, ‘훨씬 멀구나!’라고 생각된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정치경제면에서는 멀다.

100년 정도의 과거로 돌아가면, 동아시아 3국이 문명사적 교류와 갈등 긴장고조의 시기. 지금 우리도 1세기 전 시기와 상당히 유사하다. 오늘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는데 어떤 통찰이나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이국운 교수: 유럽과 북미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유산중의 하나는 ‘가로지름’에 있다. 로만가톨릭의 핵심은 ‘로마’라는데, 루터로 시작된 프로테스탄티즘은 역사적인 콘텍스트(context)를 뛰어넘고, 유럽을 뛰어넘는 가로지름이 있었다.

   
▲ 이국운 교수(한동대) ⓒ<교회와신앙>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읽었고, 깔뱅은 불어로 읽었는데 동일한 신약성서의 메시지에 부딪혔다. 마지막 100년은 두 차례의 열전과 한 차례의 냉전은 세계를 전쟁구덩이로 밀어 넣어 오랜 시간동안 어렵게 했고 ‘유럽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동아시아에 적용하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고 산다면 역사적 공통적 유산을 가질 수 있다.


양현혜 교수: 일본에서 공부하며 윤치호와 김교신, 우치무라 간조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일본은 서구 근대문명에 완전히 투항하거나 제3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 일본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전통, 서구의 중심모델로서의 새로운 기독교를 수용한 아주 드문 사람이 우치무라 간조(Uchimura Kanzo, 1861-1930)다. 그는 무교회주의를 성서의 진리를 충실히 드러낸 기독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다시 가톨릭교회로 퇴화해버린 개신교를 원래의 종교개혁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의 제자 김교신(1901-1945)도 동의한다.

   
▲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교회와신앙>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서구인이 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오직 ‘속죄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신에게만 의지하지만 그 외의 피조물에서 독립하는 삶”을 택하면서 근대 유럽의 헤게모니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제 체제, 국가의 명령을 비판력 없이 따르지 않았다. 김교신은 “국가가 부패하는 경우, 국가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언자는 침묵하지 않는다. 죄스러운 일본 나라를 장례 지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서 동경대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그는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성서중심에서 제도교회와 교회주의를 거부했다. 간조의 또 다른 제자 함석헌(1901-1989)은 ‘인류적 지평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사람이다.

가로지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것은 중세부터 계속된 패러다임이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기독교가 이뤄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개신교는 정신적 기반을 해체하고 조상들의 전통을 부수어 버리고, 근원적인 것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국, 일본, 중국은 민족고유의 가치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찾아 기독교와 연결시켜야 한다.


조영헌 교수: 중국에서는 프로테스탄트가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왔다. 중국은 숫자(사람)는 많은데 유명 크리스천은 손문, 장개석 정도다. 서양이나 유럽은 국가가 최고의 단위였다. 중국은 EU(유럽연합)라는 단위는 사상에 없었다. 계몽의 논리가 구망(亡兦, 망함으로부터 구한다)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명나라가 망할 때도, 이민족에게 지배를 당할 때도 천하(天下)는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조영헌 교수(고려대) ⓒ<교회와신앙>

기독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오소독스(orthodox, 정통의)나 헤테로독스(heterodox, 이설의)는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 안에서 이슬람은 외적일뿐, 이방문화라고 멸시받아온 부분을 적극적으로 유교문화, 한족문화에 적응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교나 기독교 안에서 하나라는 개념보다는 “진짜가 무엇인가?”하고 싸운다. 그런 면에서는 유럽의 뇌파구조와 비슷하다고 본다.


이국운 교수: EU는 그자체가 깨지지 쉬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유럽을 2차 세계대전에서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20세기 후반의 세계의 승자였기 때문에 자신들 만의 공통성 속에 고집하고 주저앉는다면 프로테스탄트의 연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그 실천이 먼 추상화된 이웃이 아닌 죽여 버리고 싶은 가까운 적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가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이는 프로테스탄트즘은 보편과 함께 현장성을 가지고 있다. EU는 1990년부터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비행기로 15분밖에 안 되는 보스니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척했다.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속물근성으로 역설적인 프로젝트로 가져간다.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프로젝트가 시작된 적이 없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권정생의 <강아지똥>(길벗어린이)은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보편과 현장성을 이야기해주는 새로운 텍스트(text)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적어도 두 가지 차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올 때 통과해야만 했던 역사적 굴곡을 한국, 중국, 일본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달랐다. 일본의 ‘탈아’(脫亞), 중국-천하(天下)라면, 한국은 동아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수립될 것인가가 만만치 않은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우찌무라-김교신-함석헌의 모델은 한국의 자생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안목과 전망을 준다.


양현혜 교수: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서 서구(미국)로 나갔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무너지면, 자신들을 뭐라고 생각해야 될까? 일본인이야말로 정체성을 적립해야 한다. 아베 같은 사람은 미국이 찌그러지기 전에 교전권을 두고 마지막 군국주의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하지만 우찌무라 간조같이 정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의 평화 헌법 9조를 지키고 싶어 한다. 9조 1항은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2항은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고 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인간에게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벨론 감금>, <크리스찬의 자유>는 사랑의 종으로 만인에게 봉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한다.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으로 같이 가는 것이다. 권정생은 함석헌 선생의 사상과 같이 어린 자, 힘없는 자들이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한마디로 역사철학을 동화로 풀어 넣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조영헌 교수: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一帶一路)는 육 · 해상 신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하는 중국의 국가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뜻한다. 미국을 빼고 세계 전체가 하나의 패도(패권장악)를 지향한다. 하나님이 ‘일대일로’를 어떻게 사용하실 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마테오리치가 왔던 실크로드는 대항의 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욕망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 성경이 전달됐다. 이제 그 길을 이슬람-이스라엘-아프리카가 연결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그 길을 갈 수 없을 수 있다. 북한도 못가지 않는가? 그렇지만 한류의 세례를 받은 중국인들이 그 길을 지날 때 강남스타일의 찬양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다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내야 한다. 2017년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루터와 깔뱅을 검토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경험에서 발화된 삶의 존재들에 루터, 칼뱅 등의 동아시아의 젊은 사상가, 개혁가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국운 교수: 한국을 둘러싼 평화와 지형도는 1년 사이 많이 바뀌었다. 미국-일본-한국의 프로테스탄트적 상상력은 무엇인가? 예언자 정신이다. 신정론(神正論)을 중심으로 교회 안의 불의에 대해 예언자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이 그런 불의를 그냥 놓아두시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 되어 있다. 그러 면에서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을 진짜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동북아의 평화를 진짜 원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답했어야 진정한 고수다. 한국사회는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운동도 필요하지만, 100여년의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역사의 매듭을 풀어낼 상상력을 발휘해야 된다. 유길준(1856-1914)은 한반도의 평화를 이미 제안했었다. 그의 ‘한반도 중립화론’(1885)인 “조선이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선이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부활시켜야 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적 발로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에게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동북아평화통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들의 소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희송 대표: 종교개혁 500주년의 역사의 무게와 교훈, 성찰을 갖고 100년 전의 한반도 상황을 동아시아에서의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역할과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었는가의 상당히 밀도 있는 논의가 되었다.


17일과 18일에는 토시 사사오 교수(국제기독대), 장동수 교수(중국 정법대학교)가 기조 발제를 맡아 강연을 하고, 라이스 박사(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동북아시아 대표)가 폐막 연설로 학술대회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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