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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요셉의 교훈
2017년 11월 08일 (수) 11:15:44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창세기 45장 1-8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찾는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저는 누구보다도 요셉을 들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님처럼 팔렸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의해서 은 30에 팔리셨던 것처럼 요셉도 형들에 의해서 은 20에 팔렸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처럼 죄 없이 모함을 받아 죄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모함을 받아 십자가형을 받으셨던 것처럼 요셉도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용서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셨던 것처럼 요셉도 자기를 모함한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창 37장에서 50장까지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강렬한 메시지를 듣게 됐습니다. 우리가 요셉처럼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한 단편 소설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김동리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M은 젊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심하게 성병을 앓게 되었고, 그 결과 불임이 된 채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혼 때 아내를 사랑하였고,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불임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됩니다. M은 자기 아이일 수 없는 그 아이를 보면서 분노 보다는 깊은 죄책감에 빠져듭니다. 젊은 시절 무절제한 생활을 하여 불임이 된 것과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주장합니다. 처음에는 이 아들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자기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우깁니다. 그러다 양말을 벗어서 이 아이가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떠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도 아직도 예수님을 제대로 닮지 못하고, 그저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요셉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참 많이도 닮은 요셉이 부러웠습니다. 고작 발가락이 닮았다고 주장하며 살고 있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을 닮으셨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구석이 없어서 기껏 양말을 벗고서는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만큼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을 더 닮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요셉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을까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 속에서 세 가지 단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요셉이 예수님을 닮은 점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 단어는 바로 꿈, 고난 그리고 용서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한 마디로 꿈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 꿈을 꾸었고, 자라면서 그 꿈을 간직했고, 나이 들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꿈을 꾸며 시작되었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루며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 37:5-11을 보면 요셉이 17살 청소년 시절에 꾸었던 꿈 두 가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곡식의 단을 통해 나타난 꿈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곡식의 단이 자기의 곡식의 단에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둘은 하늘의 천체를 통해 나타난 꿈입니다. 요셉은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던 것입니다. 이 두 꿈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형제들과 심지어 부모까지도 자기를 높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요셉이 어려서 이 두 가지 꿈만 꾸었을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처럼 수많은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두 가지 꿈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각인시켜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하는 중에 이 꿈들을 꾸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꿈들을 통해 요셉에게 미래의 비전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온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뜻밖에도 형들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찾아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과 가족을 가뭄에서 구해 냅니다. 그리고 아예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주시키게 됩니다.

요셉은 이런 과정 속에서 청소년기에 꾸었던 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그 꿈대로 자기를 가족들 중에 높이셨고, 그리고 자기를 통해 저들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소중한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어려서 꾸었던 두 가지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소중하게 쓰임 받게 될 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꿈들은 그의 인생을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ixabay.com / geralt / christmas-card-574742_640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마 1:2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 안에 하나님의 꿈을 담아놓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일생 동안 그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는 인생을 사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요셉은 예수님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꿈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처럼 예수님을 닮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 하나님을 위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는 것이 바쁘고 오늘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힘에 겹더라도 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요셉처럼 예수님처럼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때론 오래 기다려야 하고, 또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더라도 그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고난

요셉의 인생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 생각지 못한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꾸어놓았습니다.

창 37장을 보면 요셉이 당한 고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을 받고 형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헤브론을 떠나 저 멀리 세겜과 도단까지 형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요셉을 보자 그를 시기하는 마음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요셉은 르우벤의 만류로 죽음은 모면한 채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유다의 권유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겨집니다. 그리고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서 애굽의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으로 팔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그야말로 졸지에 먼 타국에 종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부자 집 사랑받는 아들이 하루아침에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국땅에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직 청소년 시기였던 요셉에게 이 일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이 침착하게 이런 고난과 맞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묵묵히 고난을 겪어내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인 보디발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견딜만 하자 또 다시 고난이 찾아옵니다.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없어서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계획적으로 음해하여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일 역시 청년 요셉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놀라운 것은 요셉이 침착하게 이 고난과 맞섰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묵묵히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이 감옥의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배반 당하셔서 체포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으로 끌려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빌라도에게 끌려가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원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짊어지셔야 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장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겪은 고난이 어떤 고난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예수님처럼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거나 주저 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견뎌내야 하고 결국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야 하겠습니다.


용서

요셉이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은 부분이 바로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창 42장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왔습니다. 이 때 요셉이 단박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마음의 고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창 42:9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 대해 꾼 꿈을 생각하고.” 오래 전 청소년기에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를 은 20에 팔아넘긴 형들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요셉은 지금 그 외나무다리 위에서 원수인 형들을 만난 것입니다. 당연히 형들이 자기에게 저지른 그 악행이 생각나야 정상입니다. 통쾌하게 복수할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순간에 지난 날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날 그의 마음속에 담아 두셨던 그 꿈을 지금 이 순간에 결정적으로 다시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순간이 원수를 갚은 때가 아니라 그 꿈을 이룰 때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이 형들에게 복수할 때가 아니라 형들을 구원할 때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먼저 형들에게 자기와 같은 라헬의 태생인 베냐민을 데리고 오게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왔습니다. 요셉은 그제 서야 형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힙니다.

창 45:3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니라.” 형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요셉이 버젓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더더욱 요셉이 지금 애굽의 총리로 자기들 앞에 무서운 권위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아마도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 45:5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아니 용서한 정도가 아니라 저들을 구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을 통해 복수 대신 구원을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께서 더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눅 23:3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신께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게 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기도는 먼저 예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저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몇 해 전 미국의 오하이오 주의 차든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총기사고가 발생했습니다. T. J. 레인이라는 학생이 구내식당에서 총으로 난사를 하여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두 명이 병원에서 숨졌고 다른 두 명은 중태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드미트리우스 휼린이란 학생의 어머니 필리슨 퍼거슨이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해자를 용서한다고 말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과거 속에서 살지 말고 용서함으로 늘 오늘을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의 마음으로 용서했습니다. 총을 쏜 학생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닮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을 닮으려 해야 합니다. 그저 예수님을 믿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예수님을 닮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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