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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오직 성경
2017년 11월 01일 (수) 10:17:55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의 정문에 95개조로 된 반박문을 내건 사건이 16세기의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에 이 날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은 이 사건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기독교가 오늘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로 더욱 뜻깊게 지키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부패한 천주교의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을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하게 제안했습니다. 후대의 학자들은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신념, 주장, 그리고 가르침을 다섯 가지 ‘오직’으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
넷째, 오직 믿음(Sola Fide)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가 강조했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 세 가지를 널리 가르쳐졌습니다. 그러다 칼뱅이 강조했던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종교개혁의 모토 즉 ‘다섯 가지 오직’(Five Sola)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첫 번째 모토인 오직 성경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

우선 ‘오직 성경’이란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천주교의 잘못된 가르침을 반박하면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웠던 첫 번째 모토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천주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최고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 왔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지만 성경 외에도 교회의 전통과 교회의 공적 회의의 결정도 같은 수준의 권위를 갖는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최고의 권위는 성경을 비롯해서 교회의 전통과 교회 회의인 공의회의 결정에도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입장을 신학에서는 “성경 우선”(prima scriptura)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우선 되지만 성경 외에도 전통과 공의회 결정과 같은 것이 함께 권위를 존중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교회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최고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천주교와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최고의 권위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 그러니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는 오직 성경의 권위 하에 있다 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되 성경의 권위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합한 교회의 전통은 존중하되,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교회의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라고 합니다.

루터의 등장으로 종교개혁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자 천주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을 진압하고 잃어버린 세력을 되찾기 위해 거센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반종교개혁 운동’(Counter-Reformation)이라고 합니다. 이 운동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 1546년 트렌트에서 공의회로 모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저들은 이렇게 결정해서 선포했습니다. “성경 뿐 아니라 전통도 동등한 경건한 사랑과 존경으로 받아들이고 경외하여야 한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에도 천주교회는 성경과 전통을 둘 다 동등하게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길을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까지 천주교와 우리 기독교의 입장은 ‘성경 우선’(prima scriptura)이냐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냐의 차이로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천주교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며 물었답니다. “왜 천주교는 성직자들이 독신을 고수합니까? 딤전 3장을 보면 분명하게 감독의 자격 중에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라는 말과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구약의 제사장, 선지자 대부분이 결혼하여 가정이 있고, 사도들도 바울 외에는 대부분 결혼하여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천주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신부님이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딤전 3장 말씀은 초대교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바울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성직자의 자격은 성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회가 판단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이후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하여 사제는 독신이어야 한다고 교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고 신자들은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까 천주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결정을 하였고 이것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루터는 신부로서 독신으로 살다가 이 점을 깨닫고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그 뒤를 따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행위의 최종 권위(final authority)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인 기독교인들도 오직 성경이라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왜 오직 성경이라는 이 가르침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루터가 오직 성경을 주창하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터가 신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훈련을 받을 때 고민하며 해결하려고 힘썼던 문제가 바로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늘 내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 같은 추한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우선 당시 천주교가 가르쳐온 대로 고해성사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철저하게 고행을 하며 선행을 하여 공덕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죄사함의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순교자의 피와 사도들의 유물의 신령한 힘의 도움을 사모하여 로마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 또한 허사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동안 죄사함을 위해 교회가 전통에 근거해서 가르쳐온 것을 다 따랐지만 허사였습니다.

후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신학교 교수로서 로마서를 가르치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롬 1:17절 말씀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pixabay.com / Tama66 / dresden-2041065_640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란 말씀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복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죄사함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루터는 성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천주교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그 가르침들이 성경 말씀과는 달랐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이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가로막는 걸림돌 노릇을 한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비텐베르크에 면죄부 판매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참된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것도 모자라 이제 구원도 돈으로 팔려고 하는 일이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뿌리가 천주교가 그동안 가르쳐 왔던 “성경 우선”이라는 주장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성경이 권위가 있지만 교회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또 교회가 성경에 없는 것도 결정하여 지키게 할 수 있다는 이런 주장 때문에 이 모든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성경”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지 교회가 제멋대로 성경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없는 것을 교회가 결정해서 교리로 만들거나 행동지침으로 만들어 선포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으면 부패하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따르게 됩니다. 심지어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말로는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교회의 분열입니다. 엡 4:3 이하를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를 이루고 교회가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는 교파가 나뉘고, 교회들이 갈라지고, 교회 안에 끊임없이 분열과 다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천주교는 하나를 이루어 오고 있는데 기독교는 분열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성공주의에 물들어서 대형화를 추구하고, 세속주의 물결에 휩쓸려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 세습의 문제, 교회 내의 성적인 타락과 윤리의 문제 같은 것들이 세상의 빛이어야 할 교회를 지탄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더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단의 문제 또한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들입니다.


어떻게?

그러면 오늘 한국교회가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4-1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배워서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성경’의 삶을 살려면 우선 성경을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른 채 성경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행정 능력이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면장은 동장, 군수, 구청장과 같은 면을 이끄는 기관장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한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공자가 아들에게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장면(牆面)’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장면이란 담벼락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이 답답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주남과 소남은 시경에 나오는 일상생활에 대한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시경을 모르면 마치 담벼락에 이마를 맞대고 서있는 사람처럼 답답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반대로 ‘면장(免牆)’이란 얼굴 앞에 담을 면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경을 알면 무식해서 답답한 상태를 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루터 당시 천주교인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에 대해 장면 상태에 있었습니다.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있고 자기 집에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 먼저 한 일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마침 이 때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되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 사람들이 독일어로 된 성경을 가지게 되었고 읽고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독일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면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대해 장면 상태에 있으면 안 됩니다. 부지런히 읽고 배워서 면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직 성경의 길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 안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소개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하게 설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참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때 성경에 묻고 또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오직 성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일본의 MK택시는 독특한 경영으로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싸면서도 친절한 택시로 유명합니다. 특히 교토에서는 이 회사를 교토의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설립자 유봉식 사장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분은 어떻게 택시 회사를 경영할까 고민하다가 성경에서 그 답을 찾기로 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섬기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 답으로 찾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택시 기사를 가족처럼 섬겼습니다. 그리고 기사들 사이의 화목을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들이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갖가지 문제들,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 그 문제들을 가지고 성경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시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물을 때 성경은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성경에서 묻고 답을 찾게 될 때 우리는 오직 성경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특별히 종교개혁의 5대 모토 중 첫 번째 “오직 성경”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을 부지런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탐구하여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성경 앞으로 가지고 가서 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서 답을 찾고 그 답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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