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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의 저주의 종결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상태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가계저주론’ 이윤호 목사의 반론(完)
2003년 06월 04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들어가는 말

어떤 분들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끊어졌다”라고 주장하면서 ‘가계의 저주’를 끊는 사역의 정당성을 일축했다. 필자는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이런 주장을 평가해 보고자 한다.

가계의 저주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저주의 종결은 구원의 완성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저주’에서 우리 신자들을 이미 속량했기 때문에, 우리 신자들은 더 이상 ‘상태적으로’ 저주 아래 살지 않게 되었는가? 그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세 가지로 변증하고 싶다: 1) 구원론과 불일치; 2) 종말론적 증언과 부조화; 3) 교회사적 전통 교리의 불인정.

1. 구원론과 불일치
“신자들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는가?”에 대한 혼돈은 어쩌면 구원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자들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구원론으로 바꾼다면, “신자들의 구원은 상태적으로 이미 완성되었는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 구원은 인간의 죄로 인해 손상 받은 영, 혼, 육에 임한 모든 결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물론, 저주는 인간의 죄로 인한 모든 결과를 포함한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단번엷 ‘이미’ 이루신 구원은 신자들에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구원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완성될 수가 없으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 이는 구원의 세 가지 단계 때문이다: 칭의, 성화, 영화. 따라서, 구원이 점진적이라면, 죄의 결과로부터의 회복 역시 점진적이다.

2. 종말론적 증언과 부조화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고난의 저주(the curse of suffering)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고 가르친다(롬 8:19~21) (D. R. McConnell, <A Different Gospel>, pp. 158~159). 성경은 또한 모든 저주로부터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증언한다(빌 3:20~21; 고전 15:51~53; 요일 3:2) (Erickson, <Christian Theology>, p. 655).

결론적으로 말해, 계시록 22장 3절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때에야 비로소, “다시는 저주가 없게 된다”(No longer will there be any curse).

신자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미래시제를 주목해 보라! 따라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해 신자가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은 신자의 ‘신분/위캄 혹은 ‘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지, 신자의 ‘실제적인 현재 상태’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신자들이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혹은 미래에 ‘완성될’ 것과 현재에 ‘미완성’된 중간 상태의 종말론적 긴장의 삶을 살고 있다.

3. 교회사적 전통 교리의 불인정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는 우리가 저주로부터 이 세상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5, 88문과 <대요리문답> 제153~154문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변한다: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중보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즉, 신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외적 혹은 보통 방편인 말씀, 성례,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85문 역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의인들이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한 저주인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구출되지 않음”을 천명한다.

사실상, “신자들은 죄의 저주에서 이미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주장은 한국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구원파’의 주장과 흡사하다.

“구원파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구원,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깨닫는다는 의미에서의 거듭남만을 가르칠 뿐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벧후 3:18)는 의미에서의 구원, 점진적인 성화과정(聖化科程)으로서의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동섭,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와 남침례교의 비교연구’, 침례신학대학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6면). 그들은 “신자들은 더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통 신학은 “신자들은 의인인 동시에 아직도 죄인이다”라고 답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위치적/신분적으로는 저주에서 이미 해방되었지만, 경험적/상태적으로는 아직도 저주아래 있다”라는 주장은 성서적이다.

이는 메릴 엉거교수가 신자가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은 ‘위치적’ 진리이고, 이미 거룩하게 된 신자가 죄를 짓는 것은 ‘경험적’ 진리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What Demons Can Do to Saints>, pp. 35~41).

또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고든 피박사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말하는 ‘율법의 저주’는 신명기 28장에서 언급된 ‘저주목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The Disease of the Health and Wealth Gospel>, p. 18).

맺는 말

필자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근거해서 “가계의 저주가 이미 끝났다”는 혹자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분석하였다.
필자는 또한 이런 주장이 성경의 구원론 및 종말론과 불일치할뿐더러 교회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잘못한 교리임을 증명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이미 해방시켰기 때문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을 필요가 없다”라는 주장은 성서적 근거가 사실상 없다.

따라서, 신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5, 88문이 가르치는 대로, 신자들은 ‘외적 혹은 보통 방편’인 말씀, 성례,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함으로 ‘가계의 저주’를 포함한 모든 상태적인 저주를 끊어야 한다.

또한, 신자들은 ‘가계의 저주’를 포함한 모든 저주를 끊기 위한 ‘내적’ 혹은 ‘특별한 방편’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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