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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목사, 한국교회 개혁 운운할 자격 있는가?
이종윤 목사님께서 <한국장로신문>에 쓴 글을 보고
2017년 10월 24일 (화) 17:10:33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론 : 언론의 부패는 법관의 부패보다 더 무섭다.

1. 성경에 보면 불의한 시대의 대표적 특징은 재판관의 불의이며, 하나님은 그 시대를 심판하신다.

   
▲ 최삼경 목사

어느 시대나 강자들은 자기를 스스로 지킬 힘이 넘치지만 약자는 그렇지 못하여, 자기를 지킬 힘이 없다. 그래서 동물의 약육강식의 원리는 어디나 어느 때나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모든 시대의 약자들은 강자의 횡포로 인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법이다. 약자들은 의로운 법정과 의로운 법관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혹 당해도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다.

그런데 불의한 시대는 법관들이 억울한 약자를 대변하여 바른 판단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 편을 들어 이익을 챙기고, 그렇지 않아도 억울한 약자로 더 억울하게 하여 깊은 원한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약자들의 눈물과 핏 소리를 들으시고 그 시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 점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2014년에 일어난 소위 ‘세월호참사’ 하나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총체적 부패를 보았다. 이 하나의 사고를 통하여 모든 부분에서 우리 민족의 낮은 윤리적 수준을 보았다. 정치인, 공무원, 종교인, 그리고 언론인 등의 부정부패는 물론 법조인의 부정부패까지 다 드러냈다. 어느 시대나 판검사의 부정부패는 그 시대의 대표적 부패가 되는 것이다.


2. 현대는 언론의 부패가 법관의 부패보다 더 문제다.

과거에는 언론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언론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정한 법관은 현대에도 필요하지만, 공정한 언론 또한 그보다 더 필요하다. 현대의 부패한 언론은 부패한 법관보다 더 무섭다. 우리나라에는 세 하나님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는 판검사 하나님이요, 하나는 언론 하나님이요, 하나는 여론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여론은 바로 언론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바른 언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한국 기독교계의 언론들은 어떤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교단 내의 언론들은 교권 때문이고, 교단에 속하지 않은 언론들은 돈 때문에 굽기 쉽다. 그래서 교단에 속하지 않은 언론들 중에 이단에 대하여 너그럽거나 이단 옹호언론들이 많은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다. 드러나게 이단을 옹호하는 상습적 이단옹호 언론들도 적지 않고, 광고를 내주어 수입을 올리는 언론들도 많고, 그런가 하면 은근하게 이단들이나 굽은 사람들의 대변지 노릇을 하는 언론들의 수는 참으로 많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장로신문>은 정직한 언론인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3. <한국장로신문>은 반론의 기회를 달라는 필자의 요구를 들어주기 바란다.

지난 2016년 7월 2일자 <한국장로신문>에 무려 2백자 원고지 66매나 되는 “서울교회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일들”이란 김철홍 교수(장신대 부교수)의 글이 게재된바 있다. 그 글은 필자가 <교회와신앙>을 통하여 이종윤 목사의 표절 설교에 대하여 밝히자, 김철홍 교수가 이종윤 목사가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옹호하기 위하여 필자의 글에 대한 반론 내지 비판의 글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2017년 3월 8일자로 <한국장로신문>사로 같은 지면의 같은 양의 반론의 기회를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 다시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반론의 기회를 주어야 정론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11회에 걸쳐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밝히는 글을 쓰면서도 단 한 번도 김철홍 목사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K 교수나 K 목사로 했다. 그런데 김철홍 목사는 무례하게 (?) 필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여 공개적으로 비판한 글을 썼고, 그것을 게재한 언론이 <한국장로신문>사인데 반론을 요구해도 응하지 않다면 정론지가 아니란 비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한국장로신문>사는 김 교수의 필자에 대해 비판 글이 옳다고 여겼다면, 계속되었던 필자의 글에 대한 김 교수의 비판을 계속해서 쓰게 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김철홍 교수의 글을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장로신문>사는 김 교수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다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잘못은 김철홍 교수에게 있다는 말이니, 당사자인 김 교수는 필자에게 사과를 하든지, 그리고 <한국장로신문>사는 필자에게도 반론의 기회를 주어야 정론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장로신문>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기다려 보겠다.


본론 : 이종윤 목사님은 한국교회 개혁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1. 2017년 8월 26일에 <한국장로신문>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각오와 결단이 요청된다.”(제1562호)라는 글을 이종윤 목사님께서 쓰셨다.

(http://jangro.kr/Jculture/detail.htm?aid=1503449931)

이 글의 핵심을 풀어 보면, 연합(unity), 가견적인 것(visibility), 명료성(clarity), 일관성(consistency), 겸손(humility), 그리고 안식년 강조 등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위의 글 서론에서 “부정부패, 정경유착, 적폐청산 그리고 구조조정, 정리해고, 퇴출운동 등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이 가을에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변하되 나부터, 우리 교회, 우리 노회, 우리 총회부터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나라가 변할 것이다.”라고 서술하였다.

필자는 이종윤 목사님에게 그런 글을 쓰실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위의 글을 보는 순간 서울교회 원로목사 이종윤 목사님과 위의 글을 쓰신 분이 동일인인가 의심스러웠다.

말은 누가 해도 옳은 말은 옳은 것이고, 누가 해도 틀린 말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누가 했느냐에 의하여 그 미치는 영향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말은 말만이 아니라 인격이 내포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똑 같은 말을 해도 신뢰감이 가는 사람의 말은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말은 오히려 옳은 말 자체를 더럽히게 된다.

한국교회에 옳은 말들이 없어서 한국교회의 위상이 이렇게 추락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지럽도록 옳은 말들이 난무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피로감만 줄뿐이다. 심지어 부도덕한 사람들이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쏟아내는 말들로 어지럽고 혼돈스러울 정도이다. 옳은 말을 하지만 옳은 삶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종윤 목사님은 현재 본인이 개척한 교회에 본인이 선택하여 세운 후임자 박노철 목사와 이렇게 피 튀게 법정에서, 노회와 총회에서, 그리고 서울교회 내에서 싸우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의 ‘연합(unity), 가견적인 것(visibility), 명료성(clarity), 일관성(consistency), 겸손(humility), 그리고 안식년 강조’에서 ‘명료성’과 ‘일관성’은 복음 자체에 대한 원론적인 것으로 굳이 필자가 분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머지는 반드시 실천으로 나타나고 보여주어야 할 덕이란 점에서 하나씩 열거하며 이종윤 목사님의 자격을 묻겠다.


2. 이종윤 목사님은 연합(unity)을 말씀하실 자격이 있는가?

한국교회에 대표적으로 연합하지 못하시는 분이 바로 이종윤 목사님 자신이시다. 서울교회도 연합하지 못하고 있고, 노회와도 연합하지 못하고 있고, 총회와도 연합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교회’에서 연합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연합은커녕 분열되고 찢겨진 교회가 바로 ‘서울교회’이며, 그 중심에 이종윤 목사님이 계시다. 주로 자신들이 먼저 세상 법정에서 고소하여 대부분 다 지고도, 예배당을 철 H빔으로 두르고 반대 측 교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쪽은 다름 아닌 이종윤 목사님을 지지하는 측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연합을 운운할 수 있는가? 글을 쓰실 때는 지금 이종윤 목사님 자신이 서 계신 그 자리도 상황도 다 잊으신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다는 말인가?

연합이란 의로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있어도, 아니 객관적으로 옳아도,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하고, 인내하고, 자기를 희생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먼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뼈를 깎는 아픔으로 서울 교회의 연합을 이루고 그 후에 한국교회에게 ‘연합’을 가르치시기 바란다.


3. 이종윤 목사님은 가견적인 것(visibility)을 말씀하실 자격이 있는가?

이종윤 목사님은 “세상 앞에 내어놓을 가견적인 것(visibility)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그것은 어떤 허례적인 것이나 자기 선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자기 경건을 보이려고 선을 행하거나 칭찬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권능이 보여지지 않으면 복음의 신뢰성이 약화되기 때문에 복음은 들려지듯이 능력을 보여지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만일 그동안 이종윤 목사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목회를 하셨다면 그 열매는 가시적으로 선명하게 이 목사님의 사역지마다 나타났어야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마지막으로 목회한 바로 ‘서울교회’에는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멋있게 풍성한 열매들로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전 목회지 ‘충현교회’에도, 지금의 ‘서울교회’에도 이종윤 목사님이 강조하는 세상에 보여줄 그 ‘가견적 열매’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4. 이종윤 목사님은 겸손(humility)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종윤 목사님은 “겸손보다 더 아름다운 덕성은 없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모델은 어린아이였다. 전도자의 겸손이란 성령께 의존하는 삶이다. 성령의 증거 없이는 우리의 증거는 헛되다.”라고 했다.

‘누가 겸손하냐 아니냐’ 인간의 눈으로 판단이 어렵다.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영역이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만하게 보여도 겸손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의 겸손과 교만은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다음으로는 장본인이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감히 이종윤 목사님을 교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툼이 있는 곳에 겸손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겸손한자들끼리 모인 자리는 항상 화목이 이루어지지만, 교만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는 항상 다툼이 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곳에는 다툼이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빌 2:3).

과연 겸손하신 이종윤 목사님이신데, 과거 자신을 길러주고 담임목사로 세워주셨던 ‘충현교회’ 원로목사 고 김창인 목사님과 한국교회가 시끄럽도록 싸우고 나오셨고, 이제는 반대로 원로목사님으로서 자신이 주권적으로 세운 담임목사 박노철 목사와 불화하여 한국교회에 온갖 추태(?)를 보이셨다. 원로목사님을 모실 때에도, 원로목사님이 되셨을 때에도 다 불화하셨다. 그런 이 목사님께서 겸손을 공개적으로 말씀하셨기에 드리는 고언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5. 이종윤 목사님은 안식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종윤 목사님은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할 항존직은 스코틀랜드 존 낙스가 장로교회를 창설할 때 만든 제도다. 국회의원 ․ 대통령도 임기가 있다. 그래야 자기를 점검해 보기도 하고 새 출발도 한다. 목사 ․ 장로에게 안식년을 주어 그 끝에 당회에서 재신임 투표를 하게하고 2/3 찬성을 받지 못할 경우 공동의회에서 겸손히 다시 신임을 묻는 것이 말기암환자처럼 죽어가는 교회에 활력을 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케 할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그것도 겸손을 강조하며, 갑자기 안식년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후임자 박노철 목사의 안식년 문제가 서울교회 분규의 한 가지 핵심 문제이기 때문에 나온 말임에 틀림 없다.

과연 안식년 제도가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살리는데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생각해보자. 과연 이 목사님의 말처럼 ‘말기암환자처럼 죽어가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핵심이 안식년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먼저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은 안식년을 배부른 교회들의 배부른 소리로 여기고 있다. 작은 교회 목사는 큰 교회 목사보다 맡은 짐이 몇 곱이 되어, 그 피로도 역시 몇 곱이다. 안식년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지만, 그들은 안식년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한다. 이종윤 목사님의 안식년관이 옳다면, 안식년을 할 수도 없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말기암환자처럼 죽어간다는 말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종윤 목사님은 그렇게 중요한 안식년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는가를 묻고 싶다. 위의 이 목사님의 말을 분석해 보면 ‘안식년을 통하여 목사가 안식하고 재충전하는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활력 있고 신선하게 목회를 하자’는 뜻으로 보이지 않는다. 안식년 제도를 통하여 목사의 신임을 묻자는데 그 초점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안식년은 맘에 들지 않는 목사를 걸러내자는 수단으로 사용할 제도인가?

그렇게 중요한 안식년 제도를 만드신 이종윤 목사님은 20여년 동안 목회를 하시면서 왜 한 번도 안식년을 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안식년을 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개혁의 핵심이라도 되는 양 주장하셨는데, 지금 ‘서울교회’의 문제들은 혹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하지 않으셔서 생긴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이종윤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서울 교회에 이종윤 목사님께서 안식년 제도를 만드시고 안식년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 지금 서울교회가 말기암환자와 같은 교회를 만든 원인인가요?”


결론 : 이종윤 목사님은 자신을 돌아보고 글을 쓰셨어야 했다.

글을 쓰시든 안 쓰시든 그것은 이 목사님의 자유다. 그러나 필자 같으면 작금의 서울교회 사태 앞에서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40년 동안 목회를 하시면서 남의 책으로 표절설교를 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그 표절설교를 27권이나 되는 책으로 출판하시고, 서울교회가 이렇게 어렵게 된 마당에 한국교회 개혁 운운하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여도 부끄러워 자숙하고 자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위의 글에서 이종윤 목사님 스스로 귀한 답을 주셨다고 본다. “이제는 한국교회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이 가을에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변하되 나부터, 우리 교회, 우리 노회, 우리 총회부터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나라가 변할 것이다.” 이 목사님 자신부터 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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