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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론 심층연구 ]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 ①
한국 전통종교들 속의 종말사상과 주요한 특징
2017년 10월 17일 (화) 12:42:53 박응규 교수 ungkpak@acts.ac.kr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 ①

박응규 교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교회사

여는 말

   
▲ 박응규 교수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을 고찰하고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신학적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한말의 국난과 일제치하라는 질곡의 시련을 헤치고 나가야 했기에, 종말신앙의 확고한 특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종말신앙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한국교회의 신앙적 자화상을 파악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초기의 한국교회가 종말신앙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던 요인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특성들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당시의 역사문화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고찰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 종교들 속의 종말사상, 기독교 신앙을 전래해 준 선교사들의 종말론적 입장, 그리고 한말 및 일제치하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초기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종말신앙을 강하게 소유하게 되는지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1)


I. 한국 전통종교들 속의 종말사상

I. 1. 한국종교들의 역사적 배경

한국의 역사는 강대국들에 휩싸여서 바람 잘 날 없었던 시련의 연속으로 점철되어진 특성이 있다. 그래서 한국은 “동양의 팔레스타인 ”(the Palestine of the Orient), 혹은 “고통의 여왕”(the Queen of Suffering)으로 비유되곤 하였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한국이 강하면 문화가 교차하는 다리의 역할을, 그리고 약해지면 강대국들의 전투장으로 변모하는 역설적인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이러한 시련의 역사 가운데 종교는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를 형성해 가는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한국의 문화형성 및 발달과정에서 종교는 그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였다. 종교의 영향력의 변천은 대체로 무속종교(샤마니즘),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 순으로 한국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한국의 지리적 그리고 역사적 상황 때문에 초래되는 지속적인 심리적 불안함은 공포심을 자아냈으며, 그것은 종교에의 강한 집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특성 중의 하나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국운이 위태해 질 때마다, 종교도 변천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무교가 주된 종교였으나 서서히 불교가 전래되면서 영향을 끼쳤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가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불교의 위치를 밀어내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가 일제의 침략으로 위태 해 질 때에 한국 백성은 기독교의 전래를 국운과 연결시켜 수용하는 현상이 일어났다.2) 이렇게 국가적 상황과 종교가 강하게 연결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의 종교는 특정종교가 특정시대를 지배하면서, 호국적인 성격과 더불어 나라를 개혁하는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무속적인 의식 대부분이 개인적이고 국가적인 액운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실시되었으며, 불교도 한국에서는 호국 불교적 성격이 아주 강하게 나타났으며, 조선 왕조가 유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하는 배후에는 유교를 통한 체제정신을 개혁코자하는 열망이 드세었다.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개화 종교로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3) 이렇게 왕조에 따라 종교도 바뀌는 가운데, 어느 한 종교의 영향력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라, 잔존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4) 한국 종교사상에는 종교 혼합주의적 요소들이 다분히 배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이러한 특성을 “한국인들은 무교인 처럼 생각하고, 불교인처럼 믿고, 그리고 유교인처럼 행동한다”고 표현했다.5)


I. 2. 한국종교 사상의 주요한 종말론적 특징들

어느 누구든지, 그리고 어느 종교든지 나름대로의 종말론적 특성을 함유하고 있다.6) 한국의 전통종교들 속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종말론적인 특성들을 고찰하는 데에 무교는 그 기반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세계관이나 종교적 심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무교의 중요성은 간과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무교는 모든 한국인의 종교 경험의 기층이 되었기 때문이다.7) 한국 무교의 신관은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다신교적 정령신앙을 신봉하면서도 일신교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8)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후에 중국에서 들어온 종교의 영향으로, 특히 유교의 하늘(天) 사상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초월적인 면이 상실되었으며, 도교의 영향으로 보다 내재적이고 범신적인 양상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신관은 불교의 범신론적인 특성과 혼합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무교의 신관에 있어서 유일신적인 경향이 다신교적 정령신앙으로 변천되면서 종말과 심판에 대한 인식이나 윤리적 관심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9) 그러면서 무당의 역할은 어떤 악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도덕적인 해석이나 윤리적인 차원이 아닌, 단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일상사에 있어서 무당의 제례의식은 악한 영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무교적 인간관은 이원론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은 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인간이 죽어도 혼은 불멸한다고 인식한다. 인간생명의 근원은 혼이며, 죽음은 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혼은 다른 인간의 육체에 소생되어질 수 있다는 관념도 지녔다. 그래서 죽음으로써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또 다른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 환생의 고리로 여겼다.10) 이러한 혼의 존재가 불멸한다는 관념은 현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막기 위하여 조상숭배나 자연물에 내재한 정령숭배가 자연스럽게 강조되었으며, 자연을 정복하기 보다는 순응하고 숭배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변혁의 자세보다는, 현세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하여 많은 정령들과 자연에 지배되는 운명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상이 보다 강조되었다.11)

무교에서는 인간은 죽으면, 조상신이 되든가, 원귀가 된다고 믿었다. 이 땅에서의 삶에서 잘 살다 가면 조상신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악한 영이 되어 방황하며 많은 재앙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굿을 통하여 무당은 조상신에게는 청원을, 원귀에게는 위무함으로 현세의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유교의 조상숭배와 연결되어 질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12) 조상제사가 파급되는 주요한 원인으로는 인간의 복이나 행운은 자신의 결정이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좌우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런 운명론은 타율적인 세계관을 조성하였으며 역사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교적인 관념 속에는 역사는 직선사관이 아닌, 순환적인 반복이 계속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졌다. 역사의 전개과정에 진보라는 개념은 없으며,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는 별 다를 바가 없고 그러기에 현세 중심적인 세계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현세중심적 사고 속에는 이중적인 경향이 내재하는데, 즉 현세에 집착하면서도, 현세를 탈피하려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불교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염세적인 세계관일 것이다. 인생을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요인은 인간의 욕심이며, 그것으로부터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열반의 경지는 세상과의 유기적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마음의 평정뿐만 아니라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출생, 죽음, 환생이라는 윤회가 반복되는 과정이기에 어떤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보다는 고통을 자아내는 고리부터의 탈피가 최우선 적인 과제가 된다.13) 그러나 이러한 염원은 열반의 세계나 내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14) 극락에 대한 개념이야말로 불교의 타계지향적 특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도 불교의 영향으로 낙원 내지는 이향(異鄕)사상은 융성하게 되었으며, 도가사상은 내세에 대한 환상적 허구를 극대화하여 현세도피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15)

불교에서 내세에 대한 관심은 소승불교에서는 개인적 참선과 도덕적 삶을 통하여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대승불교에서는 세상을 구원하는 보다 확대된 영역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보살”이라는 개념으로 형상화되어지는 불교의 구원 개념 속에는 인간의 해탈이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까지 확대 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한국에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개인에게는 위로와 소망 을 제공하고, 국가의 시련을 극복케 하는 호국적 성격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염세적인 경향이 강하게 부각되었으며 무교의 영향으로 미신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가미되었다.16) 이러한 결과 한국종교의 보편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종교혼합적인 성향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국가의 위기 시에는 보다 강화되었다. 바로 이러한 불교의 특성 때문에 20세기 초에 원효의 사상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한용운이 불교유신론을 제창하면서 불교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내세관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개념과 상이하지만, 한국 전통종교 가운데 초월적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평가가 따르리라는 심판의식을 어느 정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낙원이나 지옥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의 전래 이전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심성에 어느 정도 각인되었다. 무교의 영향이 다분히 나타나는 혼합적인 면이 강하지만, 불교는 한국인에게 종교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경건성과 도덕적 삶에 상벌이 따른다는 사상을 심화시킨 최초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17) 불교의 아미타불 신앙은 민속종교와 불교의 교리를 혼합한 것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서 영광스러운 극락에서 자비로운 지배자와 더불어 영원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을 내포하고 있다.18) 불교의 이런 타계지향 적인 특성은 현세부정적이고 염세적인 경향을 국가의 위기와 시련 속에서 더욱 고조시킬 수 있는 요인을 한국인의 심성에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전래된 유교는 초월적 존재나 영에 대한 관심보다는 천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인륜이나 도덕성에 역점을 두는 종교였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며 음양의 원리에 순응해 나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간주되었다. 이런 특성은 주어진 환경을 개척해나가는 역동적인 자세보다는,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를 배양하였다. 조상숭배는 유교가 전래되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의식인데 유교로 인하여 이론적 토대와 함께 그것이 차지하는 사회적 차원을 확고히 했다. 유교의 의식 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상제사는 종교적 의식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의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늘”로 여겨지기도 하며, 부자지간의 종교적 연합은 국가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역사관 역시 순환적인 성향을 지니면서 운명론적인 특성이 강하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없이 과거지향적인 유교의 특성은 사회변혁적인 면보다는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부각 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유교는 시간이 지남에 그 종교적 특성을 상실했으며, 그리고 정치현실에 과도한 참여와 함께 당파적 논쟁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조선조 말에 불교와 천 주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더 나아가 유교가 기반인 조선왕조의 종말을 염원하게 되었고, 18세기에 민간인들 가운데 널리 유포된 <정감록>의 내용은 그것을 단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 이상 한국의 전통종교들, 특히 유교가 한국문화와 사회를 지도해 나갈 수 있는 이념이 부재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19)

또한 새로운 세계건설을 목적으로 종교혼합적인 성격을 지닌 동학의 발생은 그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20) 불안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종교를 통한 문화 창조 및 계도가 약화되었을 때, 기독교는 한국에 그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찰한 한국전통종교들의 내세관적 특징을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언급할 수 있다: 1) 여러 종교의 혼합주의적 성격이 한국인의 종말론 형성에 나타나게 되었다; 2) 이원론적이고 운명론적인 경향이 한국인의 종말사상에 뿌리박게 된다; 3) 죽은 영혼, 특히 조상의 영이 현실의 세계에 선한, 혹은 악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조상숭배를 필수적인 한국인의 삶의 양태로 자리 잡게 하였다. 그 리고 가족, 씨족 중심의 사회관을 고착시켰고, 전체 사회구조에 대한 변혁의지가 박약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4) 한국인의 종말구조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대립구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에 기독교의 종말론적인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 긴장관계가 수용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5) 한국인의 심성 속에 자리 잡은 역사관은 대체적으로 순환사관이기에, 기독교적인 직선사관에서 나타나는 역사진행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종국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밖에 없으며, 자연적으로 현세중심의 주관적인 역사인식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21) 무교에 치르는 굿이나 여러 종교적인 의식들도 결국은 현세의 안녕과 실용적 목적을 도모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도 불교에 내재해 있는 타계적 내세관의 영향과 함께 역사적인 상황이 위기로 봉착하게 될 때에 한국인의 사상 속에 내재해 있는 강한 이원론적이고 운명론적인 경향이 쉽게 염세적이고 이 세상을 부정하는, 묵시론적 세계관(apocalyptic mentality)을 소유하게 되었다.22)  < 계 속 >


각주 ) ------------

1) 한국교회의 종말신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서들이 있다. Ung Kyu Pak, "From Fear To Hope: The Shaping of Premillennialism in Korea, 1884-1945" (Ph. D. diss.,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98); Ung Kyu Pak, Millennialism in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New York: Peter Lang Publishing Inc., 2005); Seung Joon Lee, "The Significance of Eschatology in the Shaping of Korean Evangelical Religion, 1883-1945" (Ph. D. diss., Drew University, 1997). 본고는 졸고, “일제하 한국교회의 종말론 형성에 관한 연구,” <역사신학논총>2 (2000): 176-198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임.

2) 제임스 헌틀리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강돈구 역 (서울: 민족사, 1995), 348-349. 그레이슨은 한 국의 종교사를 일관한 후, 주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특정 종교가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현상이 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한국 종교사를 다음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1) 원시종교 시기; 2) 불 교가 지배하던 시기; 3) 유교가 지배하던 시기; 그리고 4) 유교 이후의 시기.

3) 한국인의 기독교로의 입교동기에 대하여는 C. E. Sharp, "Motives for Seeking Christ," Korean Mission Field 2 (1906): 182를 참고하라. 간하배(Harvie M. Conn)은 한국은 당시에 기독교 신앙, 즉 새로운 세계관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언급했다. Conn, "Conversion and Culture: A Theological Perspective with Reference to Korea," in Gospel and Culture, eds. John Stott and Robert T. Coote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1979), 222-223.

4) 그레이슨은 이러한 특성을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보수성”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349.

5) Shannon McCune, Korea's Heritage: A Regional and Social Geography (Rutland, Vt.: Charles

E. Tuttle Company, 1956), 70.

6) Herman Bavinck, The Last Things: Hope for This World and the Next,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Books, 1996), 21.

7)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5), 15; Pyong-choon Ham, "Shamanism and the Korean World-view," in Shamanism: The Spirit World of Korea, ed. Richard W. I. Guisso and Chai-shin Yu (Berkeley: Asian Humanities Press, 1988), 60-97; Pong Bae Park, "Christianity in the Land of Shamanism, Buddhism, and Confucianism," Asia Journal of Theology 1 (1972): 33; Donald Dean Owens, "Korean Shamanism: Its Components, Context, and Functions" (Ph. D. diss., University of Oklahoma, 1975), 281.

8) Pong Bae Park, "The Encounter of Christianity with Traditional Culture and Ethics in Korea" (Ph. D. diss., Vanderbilt University, 1970), 40. 한국의 종교를 연구했던 선교사들은 한국인의 하나님(혹은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유일신적인 특성을 지닌 매우 독특한 현상으로 인식했다. 물론 기독교적 유일신 사상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러한 신관을 기독교적으로 변혁시키는 데에 긍정 적인 요소로 간주하였다. Homer B. Hulbert, The Passing of Korea (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1969), 104; Horace G. Underwood, The Religions of Eastern Asia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10), 103-111; Charles A. Clark, Religions of Old Korea (New York: Fleming H. Revell, 1932), 196.

9) Pong Bae Park, "The Encounter of Christianity with Traditional Culture and Ethics in Korea," 41-43.

10) 김득황, <한국종교사> (서울: 백암사, 1963), 48; 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서울: 집문당, 1985), 300.

11) 졸고, "From Fear To Hope," 41-42. Cf. Jong-Il Kim, "'Mukyo' and Its Implication to the Christian Church in Korea" (Ph. D. diss., Fuller Theological Seminary, 1985).

12) 최길성, <한국무속의 연구> (서울: 아시아출판사, 1980), 122. 그런데 조상숭배의 동기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무교에서는 살아있는 가족들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상숭배가 필수적이라면, 유교에서는 사회윤리적인 의무로서의 강조가 두드러진다 하겠다.

13) Carl B. Becker, Breaking the Circle: Death and the Afterlife in Buddhism (Carbondale: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1993), 23-24.

14) Becker, Breaking the Circle , viii.

15) 김석하, “중국문학의 낙원표상,” <한국문학의 낙원사상연구> (서울: 일신사, 1973), 227; Cf. 김종 회, <한국소설의 낙원의식연구> (서울: 문학아카데미, 1990), 38-41. 김종회는 이러한 낙원의식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현실감각을 개입시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16) 정병조, <한국의 종교> (서울: 정음사, 1987), 52.

17)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64.

18)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221.

19) 조선사회에 대한 공식적인 유교의 영향이 종말을 고하는 과정은 19세기의 약 70여 년 동안에 극 적으로 전개되었다. 고종의 부친인 대원군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킬지도 모르는 모든 지방분권적인 힘들을 제거함으로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조선조의 유교사회의 기반이었던 전국의 서원들을 소수만 남기고 철폐했다. 이 조치는 “조선 사회에서 유교가 공식적인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치는 15세기에 있었던 불교사찰의 대규모 폐쇄가 불교에 미쳤던 것과 같은 효과를 유교에 미쳤다. 그런데 유교제도인 서원의 철폐는 바로 유교적인 정부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216-217. Cf. James H. Grayson, Early Buddhism and Christianity in Korea: A Study in the Implantation of Religion (Leiden: E. J. Brill, 1985), 68-69.

20) 나중에 천도교로 개명되었는데, 그 핵심적인 신념체계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중심으로 도교, 불교,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301.

21) 졸고, “From Fear To Hope." 71-79

22) Ibid., 79; 김영재, “한국교회의 종말론” <신학정론> 11: 1 (1993):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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