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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 좌절과 죽음
자유분방 동성애 양성애 추구… 육욕은 영원하지 않아
2017년 10월 05일 (목) 01:27:04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지난 9월 27일 미국의 한 명사가 타계했다. 포르노 업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휴 헤프너(91). 미국 최초의 본격 황색 대중 매거진의 하나인 '플레이보이' 창업주이자 대표였던 그는 미국에 새로운 거대 성혁명을 몰고 왔기에,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대혁명가 같은 존재였다. 대중은 그를 "혁명적", '미국의 아이콘', '큰 사람'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그가 벌여놓은 '난 몰라라' 식 포르노 산업은 미국을 망쳤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포르노에 찌들고 병들어 자신과 가족의 삶을 버려놓았다. 연구에 따르면, 포르노는 여성 비하와 여성 학대현상을 몰고 왔다. 또한 젊은이들의 성관과 결혼관을 왜곡시켜 놓았다. 중독성이 강한 포르노는 인신매매, 성매매, 아동피해 등을 몰고 온 주요인이다.

   
▲ 고 휴 헤프너 플레이보이 대표. 독실한 기독교 가문 출신이었으나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CH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프너는 절대진리 개념과 객관적 도덕을 줄기차게 거부해온 미국의 성자유와 미국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떠받들려 왔다. 미국과 서구사회의 '만트라'가 되다시피한 것은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무엇이든 맘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의 신조의 결과는, "당신이 하는 무엇이든 남에게도 영향을 주고 자신을 해치는 것이 남도 해친다."는 것.

자신이 양성애자(bisexual)였던 헤프너의 궁극적인 바람은 자유분방한 동성애 내지 양성애 사회였다. 헤프너는 다산을 암시하는 토끼를 상징물로 여성들을 '버니', 자신의 여성들을 '바니걸'로 불렀다. 플레이보이에게 여성의 몸은 남성의 눈요기와 육욕적 쾌락 대상 이상의 것이 아니다.

마땅히 부부 침실 속에 제한돼야 할 여성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토끼 머리' 상표 아래 남성들의 눈 앞에 까발린 헤프너는 반평생 여성들의 섹스 이미지를 뭇 남성에게 팔아 거부가 됐다. 잡지뿐 아니라 동명의 회사인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PE) 산하에 여러 클럽들과 기타 관련 사업도 했다.

헤프너의 유산은 4300만 달러(약 500억원). 네 자녀와 자선단체 등이 나눠 갖게 된다. 아내 해리스(31)는 결혼 당시 할리우드 힐스의 700만 달러급 저택과 별도의 500만 달러를 이미 받았다.

고인의 시신은 생시인 1992년에 7만5000달러에 매입해 두었던 '추억의 회랑' 능묘(CMM) 안, 매릴린 먼로의 무덤 곁에 묻혔다. 헤프너가 직접 만든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먼로 특집으로 표지는 물론, 속에는 그녀의 과거 나체 사진이 실렸다. 먼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육감적인 배우였고, 케네디 대통령 형제 등과 염문을 피우는 등 나름 화려한(?) 삶을 살다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장본인.

수많은 미인 여성들이 한 점 부끄럼 없이 기꺼이 헤프너의 잡지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쳤다. 헤프너가 "동침했다"고 자랑삼아 고백한 걸프렌드만도 줄잡아 1000~2000명. 대다수가 플레이보이를 장식한 '플레이메이트'였다. 결혼도 세 번에 걸쳐 했지만, 그의 역대 아내들은 그의 파트너들과의 공공연한 정사를 눈감아 주었다.

현 유족인 셋째 아내, 크리스털 해리스도도 플레이메이트 출신. 헤프너는 한 번에 둘 이상의 걸프렌드를 데리고 다니는 첫 미국 남성이었지만 그 일로 남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가 한때 데이트한 여성들은 최다 7명이었다.


독실한 정통 기독교 가문 출신… 헤프너는 무신론자

헤프너는 놀랍게도 독실한 정통 기독교 가문 출신이다. 그의 첫 미국인 선조는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 중 한 명이었고, 선조가 각각 독일계와 스웨덴 계인 부모의 양 가문 모두 대대로 기독교 배경을 갖고 있었다. 부모 자신들도 보수적인 감리교인들인 데다 학교 교사들이었다.

헤프너는 그 모든 집안 배경을 부모와 함께 자랑삼아 당당히 공개할 만큼 시인하면서도, 자신과 주변은 정반대로 무신론자였다. 헤프너는 자기 집안이 모두 키스와 포옹 등 몸으로 하는 사랑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굳은 집안이었다고 종종 회상했다. 아마도 이에 대한 반작용이 그의 나머지 평생에 극단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헤프너는 생시에 말했다. "나는 꽤 도덕적인 사나이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대로의 도덕이다. 도덕성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좋을 때를 말한다. 나는 내 눈에 옳은 것을 하려고 한다. 진정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고 사랑스럽다고 내가 믿는 바를 하련다." 그의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 쿠퍼는 아버지를 "문화 개척자"라고 부른다.

헤프너는 베벌리 힐즈의 호화저택을 사들여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맨션에서는 거의 매일밤 뻑적지근하고 질탕한 파티가 벌어져 수많은 명사들이 즐기며 다녀갔다. 헤프너는 이 맨션을 이웃인 대런 메트로풀로스에게 팔았지만, 메트로풀로스는 인접한 자신의 건물과 합하여 확장한 것을 여전히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월 수백만 달러에 임대해 주고 헤프너가 죽기까지 머물러 살길 바랐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신자인 어머니는 플레이보이 창간 당시 아들이 요청하는 대로 창간 기금 중 일부인 1,000달러를 기꺼이 투자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투자의 보상으로 부모 자신들이 백만장자가 됐고 그 부를 즐겼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부모는, 궁극적으로 섹스 이미지를 팔아 올린 투자 회수금으로 십일조까지 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런 잡지를 만들더라도 "되도록이면 선교사가 되라."고 늘 계속 충고했다고 한다. 아들은 그 대신 '자유섹스교 포교사'가 된 셈이다.

모든 창업주들이 그랬듯 헤프너도 자신이 이 매거진으로 '성공'할 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육군에 복무할 동안 군 잡지에 만화를 기고하곤 했다가 남성 잡지의 꿈을 키웠다.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예상 밖에 5만부나 팔려나갔고, 얼마 후 판매부수는 700만부로까지 급증했다. 헤프너는 성혁명가이기도 했지만 민권운동과 나름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물론 모두 여성들의 나체 사진을 팔아 이룬 업적이었다.


1990년에 플레이보이 표지 하나를 장식한 트럼프

플레이보이는 현 대통령인 트럼프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트럼프 자신 이바나 젤니코바, 말라 메이플스 등 전처를 거쳐 현재의 아내 멜라니아까지 세 번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수많은 걸프렌드를 두기도 했다. 멜라니아에게 "수작을 걸" 당시에도 또 다른 여성과 데이트 중이었다.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이었던 멜라니아는 GQ 잡지 표지를 위한 누드모델이 돼주었고 심지어 지난 2000년 대통령 문장이 그려진 카펫 위에 누운 반나체 차림의 사진이 찍히기도 했는데 이것도 예언적 제스처였던가?

   
▲ 플레이보이 표지를 자랑삼아 내보이던 트럼프 ⓒGI

헤프너가 정치에 관심을 둘 당시, 트럼프 역시 정치활동 때문에 플레이보이 세계에 매료되지 않았으나, 과거 1990년에 플레이보이 표지 하나를 장식한 바 있다. 2003년 12월 4일 뉴욕시에서 열린 플레이보이 50주년 행사 때는 당시 '플레이메이트'였던 빅토리아 실버스텟 및 아내 멜라니아를 양팔로 각각 껴안은 채 셋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후에도 트럼프는 벽에 걸어놓은 자신의 플레이보이 특집 표지를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심지어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의 캠페인용 비디오에 플레이보이 소프트코어 테이프에 실린 그의 모습이 뜨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의 아들인 쿠퍼 헤프너는 트럼프 특집판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며 "우리는 그 사나이(guy)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 휴도 지난 8월 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트럼프에게 당시 그 표지를 내준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부모가 보수적이어서 그 반동인지는 모르지만 쿠퍼는 아버지가 죽기 한 달 전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대담에서 트럼프 집권 이후, 과거 아버지 헤프너가 그렇게 항거하며 싸운 그 문화 보수주의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놀랍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그는 플레이보이 표지를 "그닥" 부끄러워하거나 황당해 하지 않는다. 그 탓인지 그가 보수주의권 표몰이를 할 때 그를 방문한 리버티침신대학교 총장 제리 폴웰 2세 부부와 찍은 사진의 배경 벽엔 (빌리 그래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엄의 사진이 들어간 '포럼' 표지와 함께 트럼프가 모델 브랜디 브랜트 양과 함께 찍은 '플레이보이' 1990년 3월호 표지 액자도 보여, 실로 보는 사람들을 경악케, 황당케 했다.

   
▲ 제리 폴웰 주니어 리버티대학교 총장 부부와 함께 한 트럼프. 뒷벽에 문제의 플레이보이 표지가 보인다. ⓒAI

더군다나 제리 폴웰은 이 사진을 자랑스럽게 곁들여 "뉴욕시에서 열린 기독교지도자 정상회담에 다널드 트럼프를 소개한 게 영예롭다. 그는 탄복스럽게 잘 해냈다!"고 트위팅을 한 것. 덩달아 플레이보이 표지까지 영예로워진(?) 셈이다.

폴웰의 아버지였던 (고) 제리 폴웰 1세 목사는 '도덕적 다수'의 창건자로 유명했다. 그는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 후보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를 허락하자 그를 규탄하면서 이 잡지를 "시대에 쓰잘 데가 없는 호색적이고 야만적인 잡지."라고 규탄했다.

왜 이런데도 사람들은 트럼프를 수용했을까? 여성을 주로 성적 대상물로 보는 후보를 보수주의자들이 택할 수 있을까? 트럼프는 더구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긴 싫다."고 한 사람이다. 자신을 친 사람에게 열 배로 갚아주겠다던 사람이다. 왜 복음주의자들은 급변했는가? 그런 트럼프의 강성 성격이 꼭 자신들과의 약속을 지켜줄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나마 트럼프는 그걸 해냈다.

사실 헤프너는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됐을 때, 공화당이 사회보수주의에 등을 돌리는 조짐을 봤다. 대선 전인 지난해 6월 헤프너는 '보수적 성혁명'이라는 칼럼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따돌린 트럼프의 대선가도는 공화당의 성혁명을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핵심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미국의 광신적인 종교적 소수계를 위한 뚜쟁이 노릇을 집어치우고, 우리의 성적 권리를 짓누르던 그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포기할 때라고 느낀 것이다. ... 우리는 성혁명에서 이겼다. 공화당이 패배를 시인하기까지 불과 50년 걸린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 침실에서 나가버려 영원히 문을 잠가놓을 때이다."

그런데도 헤프너는 정작 트럼프를 공식 지지하지 않았고, 공화당은 그의 예상과 달리 점차 사회진보적 정책을 상대로 전쟁을 펴 나가는 양상이 돼 갔다. 더 아이러닉하게도 보수적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되고난 직후 헤프너의 칼럼이 나갔다. 펜스는 낙태 절대 반대자로 낙태에 앞장서온 기관인 가족계획(PP)의 연방기금도 중단하기를 바랐다. 그야말로 상황이 헤프너에게 우습게 돼버린 것. 어쩌면 평생 성혁명을 전개해온 헤프너가 죽기 전, 결정적인 심적 타격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사실 1990년 플레이보이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진보적이 아닌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민주당 후보로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택시 기사 등) 근로자가 나를 지지한다."며 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는데 예언이 됐다.

플레이보이는 1997년 5월호에서 '도날드의 기교: 필생의 트럼프스터 무대로의 회귀'라는 제하에 재차 트럼프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당시 기사를 쓴 마크 보든은 훗날 트럼프가 터프한 대통령으로 탄생한 것에 놀라지 않았다. 트럼프는 영국의 억만장자 앨런 슈거 경이 쓰라린 고전을 견딘 경쟁자에게 일시투자금 25만 파운드(약3억원)를 상금으로 주는 영국 리앨리티쇼 '견습(The Apprentice)'의 몇몇 시즌에도 헤프너의 맨션에 등장해 도전자들과의 교류를 시도했다. 2006년의 이 장면은 그에 대한 하나의 보상으로 '견습'의 둘째 에피소드에 소개됐다.

'견습' 경쟁자의 한 명이었던 수리아 얄라만칠리 씨는 당시 트럼프는 경쟁자들 가운데 여성들을 둘러보며 "이 걸(girl)들 가운데 누가 당신(헤프너) 꺼고 누가 내 껀지 가리기 힘들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 여성들은 사실 기업체의 경력 실무자들이었다.

2016년 10월 '견습'의 또 다른 경쟁 여성후보였던 젠 호프먼도 같은 맨션에서의 당혹스런 경험을 털어놨다. "오프 카메라였지만 가청거리에서 들은 얘긴데 트럼프가 자신은 별도의 경쟁자들에게 포텐셜한 후크업(성교섭을 의미)을 상품으로 제공하길 바란다고 하더라." 트럼프는 심지어 호프먼과 그녀의 동료 경쟁자인 크리스틴 르페브르의 가슴을 플레이보이 버니 걸들과 비교하면서 "더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 사세 기우뚱… 세상은 그 육욕과 함께 지나가

헤프너의 경향과는 상관없이 부모는 모두 공화당원이었다. 헤프너는 민주당이었다가 2011년 독립당원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재선되자 그는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축제를 벌이기도. 그는 트럼프나 힐러리의 2016년 선거운동에 아무 기금도 대지 않았지만 과거엔 꾸준히 민주당 후보들에게 기금을 내곤 했다.

헤프너는 80세 당시 조지 부쉬 전 대통령 당선된 이후 그의 친기독교적 정책에 엄청 놀라고 실망했다. "현 정권은 숱한 면에서 놀랍다. 종교와 종교적 가치가 과학과 피임 등 수다한 문제에 연계돼 있다. 정말 굉장하다."고 그는 개탄스러워 했다.

모든 사업이 으레 그렇듯 전성기가 있으면 쇠퇴기도 온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의 사세는 근래 10년간 현저히 기울어왔다. 헤프너도 이를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고인은 갔으나 그가 일군 '성혁명'의 기운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선지 아들 쿠퍼 헤프너는 "또 다시 플레이보이가 미국사회의 중심에 서 주길" 희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바람이 위선적인 트럼프 집권기에 이뤄질 지는 의문이다.

성경은 부부의 사적 관계 이외에 그 어떤 분방한 '성자유'도, '성혁명'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믿음 안에서 사랑의 결연과 선서 및 언약으로 맺어진 경건한 부부 사이의 성만 인정하고 허용할 뿐이다.

헤프너는 생시에 "내세가 있다면 정말 (덤으로) 좋은 거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지 어떨지 판단 여부는 저 세계로 이미 간 헤프너 자신의 몫이다.

성경은 말한다. "세상은 그 육욕과 함께 지나가 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거한다(요일 2:17 편집자 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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