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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단 ] 제2의 종교개혁 : 로마서 9-11장을 중심으로 ③
“이스라엘 회복과 하나님의 선교에 힘 모아야”
2017년 09월 29일 (금) 11:44:58 소기천 교수 kychunso@puts.ac.kr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제2의 종교 개혁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개혁은 무엇일까? 소기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의 논고를 3회에 걸쳐 연재하여 제2의 종교개혁에 대한 갈증 해갈의 길을 모색해 본다. / 편집자 주 ]


제2의 종교개혁 : 로마서 9-11장을 중심으로 (3)

소기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성서신학, 예수말씀연구소 소장

V. 하나님의 비밀 가운데 있는 이방인의 구원과 유대인의 구원

   
▲ 소기천 교수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구원을 받는 것으로 완성되지만, 그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비밀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바울은 이 같은 구원의 비밀에 관하여 종말론적 차원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1. 이방인의 구원으로 확장되는 제2의 종교개혁

11장에 들어서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마저도 다시 완악하여 졌다(7)고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저들(남은 자)이 완악하여 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이 뼈아프다.(8-10) 그렇다고 저들이 멸망하기까지 넘어졌는가?(11)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데 있었다. 곧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가 날 정도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허락되었던 사실이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은 곧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한 것”(롬 11:11)에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이방인에게 나타나게 된 것을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된다.”(롬 11:12)고 말한다.

강경한 어조로 유대인 혈통을 자랑한 바울(롬 11:1, 참고, 빌 3장)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구원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롬 11:13)고 고백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미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내 골육을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4)고 말한다. 이렇게 이방인에게 복음이 미친 것이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의 특권을 맡았던 이스라엘이 시기함으로 다시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 있다고 바울은 다시금 강조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비밀이다. 이스라엘을 버리는 것이 이방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길이 되는 것처럼, 다시 이스라엘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롬 11:15)

바울은 이방인에게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밝힌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고 유대인을 돌이키려는 간절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에게 붙인 ‘이방인의 사도’란 이름을 과장하는 것도 아무쪼록 자기 동족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케 하여 그들 가운데 얼마를 구원하고자 함이다. 유대인을 다시 찾는 일은 죽은 자들로부터 사는 것처럼 굉장한 일이다.(참고 눅 15:32) 이런 연유로 16절에서 바울은 그 심중에 이스라엘의 거룩성을 가르친다.

이제 바울은 예수의 비유를 흉내라도 내려는 듯이 자연의 이치를 따라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롬 11:16-24)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제안한다. 이런 비유를 통하여 바울은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과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의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한다. 원가지인 참감람나무가 꺾이지 않고 넘어지지 않을 때 온전히 설 수 있는 것처럼,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도 온전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을 때 찍히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바울은 참감람나무이든 돌감람나무이든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모두 높은데 마음을 품는 교만을 버리고 두려워함으로 항상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어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을 일깨우고 있다.

바울은 비유적인 설명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원가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이방인을 상징하는 돌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이 비유를 통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곧 (1)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받은 이방인들의 계속적인 근신(20b, 21-22)과 (2) 이스라엘의 구원 가능성(23-24)이다. 이렇게 이방인은 용납(admission)하고 유대인은 배척(exclusion)하는 일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활동과 관계된 섭리이다.

제2의 종교개혁은 참감람나무이든 돌감람나무이든 모두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항상 두려움으로 머물기를 원하는 진실한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만한 마음으로 인생의 뿌리이신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 인생은 아낌없이 찍힌 바가 되어 버려지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과연 얼마나 그 중심에 새기고 살아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2의 종교개혁은 마지막 재림주와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맞이할 기름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은 신실한 남은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도록 온 교회가 다시 이방인 선교와 유대인 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매진해 나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 전도의 사명을 우리에게 새롭게 일깨워준다.


2.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완성되는 제2의 종교개혁

이방인에게 구원이 미치게 된 것이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함으로 다시 구원이 이스라엘에 미치게 된다면, 그 방식은 어떤 식으로 일어날 것인가?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단지 하나님의 신비요 “비밀”이라고만 설명한다.(롬 11:25)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로 인하여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면, 결국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비전을 깨달은 바울은 마침내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노래한다.(사 59:20 이하; 사 27:9 이하)

여기서 바울은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은밀한 계시에 관해서 감히 언급한다. 그것은 이방인의 구원에 더하여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구원이 임한다는 사실이다.(25b-26) 비록 복음에 있어서는 현재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과거에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었던 자였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취소할 수 없다. 30-32에서 바울은 9-11장 전체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결정적인 필치로 요약한다. (1) 과거에 이방인이 불순종한 가운데 있었으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30).

그러나 (2) 이방인에게 구원이 이른 지금 아직도 불순종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다시 하나님의 자비가 이르게 된다.(31) 이러한 바울의 논리에 있어서 주요한 사실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두 불순종 가운데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다.(32)

다시 이스라엘이 복음의 자리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원수의 자리에 있었지만, 원래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다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누리게 될 하나님의 사랑도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롬 11: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 11:29) 이로써 바울은 로마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온 인류에게 미치는 복된 소식을 찬양한다(롬 10:30-36).

바울 이전에 이스라엘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종말론의 도식은 ‘유대인->종말->이방인’의 순서로 구원이 전개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부함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가고 이를 시기한 이스라엘이 다시 복음의 자리로 나아오는 과정을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한 바울로 인하여, 이제는 ‘유대인->이방인->종말’의 순서로 하나님의 구원이 전개되는 시대가 이 마지막 시대에 교회에게 주어진 선교의 시대인 21세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다메섹 체험 이후에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였다.(갈 1:16, 행 9:15)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정책은 사도행전 1장 8절에 잘 드러나 있다.(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 끝, 즉 유대인→이방인의 도식이다) 그러나 바울의 편에서 볼 때, 이미 유대인은 결정적인 실격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새로운 도식, 즉 ‘이방인→유대인’이란 구원사를 제시한다.

이 점에서 제2의 종교개혁은 여전히 하나님의 비밀 가운데 유대인의 구원이 실현되고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오늘날 온 이방인 교회가 다시금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교회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복음에 빚진 자들인 온 세상의 이방인 교회가 이스라엘에 복음의 꽃이 다시 피어 날 수 있도록 모든 재정과 노력을 기울여서 예루살렘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점점 가득하여 아직도 구약성서가 예언한 메시아가 초림하시기만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이 이미 2천 년 전에 오신 메시아께서 머지않아 재림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비밀스런 구원사의 과정 가운데 다시 이스라엘의 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믿고 더 늦기 전에 속히 구원의 길로 나아 올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VI. 결론

2017년 8월 21일(현지시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에 의해 정규군 총사령관으로 새로 임명된 압돌라힘 무사비는 임명 뒤 첫 공개석상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강한 적대를 표했다. 무사비는 24일 밤 이란 중북부 종교도시 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모흐센 호자지와 같은 순교자의 헌신으로 시오니즘 정권(이스라엘)은 25년 안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모흐센 호자지란 인물은 시리아에 이슬람테러단체(ISIL)를 격퇴하기 위한 전쟁에 군사 고문단으로 파견됐다가 8월 7일에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지대에서 이슬람테러단체에 사로잡혀 9일에 참수된 이란 장교다. 왜 자기 나라 무슬림 장교가 형제 무슬림에 의해 무참히 참수된 비극적인 일을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포화를 퍼 붇는가? 이보다 한 달 앞서서 7월 18일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7월 9일에 극적으로 이루어진 시리아 남서부 지역의 휴전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시리아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군 및 해군기지를 설치하려 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중동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이란과 반이스라엘의 정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음부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게까지 내려가셔서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처럼, 모든 교회는 악한 권세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포기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시 찾아가서 끝까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지구촌이 하나로 급속하게 연결되는 상황에서 아직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땅 끝이라고 인식함으로써 교회가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한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을 찾아 나서야한다.

제2의 종교개혁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강권적으로 행하셔야 가능하다. 루터의 마음에 성령이 활짝 열리지 못한 채 로마 천주교의 교황주의와 대립각만을 세우고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정문에 내다 걸고,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천주교회를 비판하고자 그의 마음속에 이신칭의의 교리만으로 가득 채우게 될 때, 정작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오래 참으시는 긍휼(χάρις')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도 행위구원을 비판하고 믿음구원만을 부르짖을 때 ‘탄식하시는 성령’(롬 8:26)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공생애를 사셨다. 이제 개혁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바울처럼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께서 이방인 선교의 문을 활짝 여셔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하신 복음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복음의 비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지체하지 말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한다.

바울은 로마서 9-11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5가지의 과제들을 통하여 제2의 종교개혁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첫째, 이 땅의 모든 교회는 교만을 버리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겸손하게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은 율법의 실천이나 행위로 인한 자랑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긍휼로 바뀜으로 인해 오는 은혜인 줄로 깨닫고 다시금 믿음을 통한 의가 변화된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룩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모든 형식적인 위선을 버려야 한다.

둘째, 루터는 종교개혁을 믿음을 통한 구원인 이신칭의로 이루었는데, 이제 모든 교회는 행동으로 믿음을 보이는 신행일치를 통해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그동안 말만 앞세우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진심으로 이웃과 멍에를 같이 하는 긍휼사역에 힘써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이다. 그러므로 대형교회의 우상을 버리고 진심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삶의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셋째, 루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행하려고만 하고 그 율법 속에 나타나 있는 본뜻인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원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스스로 거치는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처럼 실감나게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시는 원리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때부터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무거운 짐을 지게해서 넘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지켜 주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이것이 율법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원리이다. 바로 바울은 이 율법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원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곧 율법을 완성하는 길(롬 13:8)이라는 사실을 천명하게 된다. 루터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행하려고만 했다고 비판하였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율법의 속뜻인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원리를 바울처럼 확신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2의 종교개혁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현장에서 믿음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일로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제2의 종교개혁을 새롭게 이루기 위해서 교회는 율법의 특권을 맡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통해 행위구원만을 받으려하였다는 오해에서 벗어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인 십자가를 통해 자기를 희생하시고 헌신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참 믿음을 속히 재발견하고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교만한 자리에서 돌이켜 겸손하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계에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선교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다섯째, 유대인은 복음의 특권을 먼저 맡았던 자들이다. 그들이 다시 복음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개혁교회는 먼저 회개함으로써 로마서 9-11장을 통한 제2의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한다. 유대인의 교만은 하나님의 구원이 자기들에게 미칠 때 종말이 임할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방인의 교만은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더 이상 복음이 이스라엘에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개혁교회의 교만은 이신칭의만을 강조하여 신행일치를 소홀히 하였다. 한국교회의 교만은 단시일 내에 교회성장을 이루다보니 다시금 자기의 의만을 자랑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개혁교회이건 한국교회이건 모두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 복음의 원리로 되돌아가서 겸손하게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써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이 마지막 때에 성취되도록 위해서 성서가 가르치는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선교에 겸손히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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