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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고넬료의 집에서 생긴 일
2017년 09월 13일 (수) 10:38:09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사도행전 10장 44-48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강림 후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들을 중심으로 성령 받은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행 1:8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지역을 넘어, 사마리아 땅을 넘어, 그리고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는 가운데 가장 넘기 힘든 장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문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저들은 유대인들이 다 그렇듯이 유대인들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한다면 먼저 유대인으로 개종을 하고 그 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고작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 주변만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가지 못하도록 저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벽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이 장벽을 허무신 것입니다. 바로 그 사건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고넬료라는 사람의 집에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신 사건입니다.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우선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라는 사람에게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합니다. 그 명을 받고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봅니다. 하늘에서 그릇에 담긴 먹거리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먹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베드로가 살펴보니 정결한 것만 먹어야 한다는 유대인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먹지 못하겠다고 답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된 후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그를 맞으라고 말씀하셔서 베드로는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천사의 지시를 따라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여 자기 집에서 말씀을 들으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됩니다.

다음 날 베드로가 찾아온 사람들을 따라서 고넬료의 집으로 갑니다. 이 때 고넬료의 집에는 고넬료의 친구들과 친척들 즉 이방인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초지종을 살핀 후에 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다음이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듣던 이방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예루살렘 교인들이 지켜보았습니다.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예루살렘 교인들이 성령 받았던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저들이 이방인들이지만 유대인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저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머물며 저들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 이 소식이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저들이 베드로를 비난했습니다.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겼다고 공격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저들에게 그동안 되어진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행 11: 17을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이 말씀을 들은 예루살렘 교인들이 더 이상 비난할 수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 11:18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이 이야기는 앞에서 말씀드린 복음이 전파되는 가운데 저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장벽을 제거해 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 줍니다. 그 일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장벽이 무너지다

당시 사도들을 비롯한 예루살렘 교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 28:19 이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분명하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 16:15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온 천하로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인들은 이런 말씀들을 지상명령으로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을 넘어서 온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장벽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ixabay.com / geralt / grim-reaper-75672_640

사실 저들은 오랜 세월 이방인과 상종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만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들과 상종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고, 그 결과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들 마음속에 거대한 장벽이 되어있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마음속에 저마다의 장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들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아는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일터에서 늘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거절 당해서 관계가 서먹해 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론 거친 반응으로 아예 관계가 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등 마음속에 장벽이 있습니다.

오래 전 제가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대규모 전도축제를 벌인 일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예수초청큰 잔치’입니다. 하루에 10번 예배를 드렸고, 이 때 초청되어온 사람이 무려 5만 명에 가까웠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 예배에 스님이 초청되어 온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장삼을 입은 스님이 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제가 이분을 초청한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스님을 초청할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이 권사님 말씀이 전도하고 있는데 스님이 지나가더랍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망설였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일단 복음을 전해보라는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래도 하고 머뭇거렸는데 또 그런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그런데 마음이 뜨거워지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인 줄로 믿고 담대하게 전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흔쾌하게 참석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예배 내내 제 시선은 이 스님에게 가 있었습니다. 이분이 정말 진지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끝나고 제가 소감을 물었습니다. 이 스님 말씀이 걸작입니다.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장벽을 넘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보십시오.


편견이 깨지다

당시 사도와 예루살렘 교인들을 가로막았던 마음의 장벽은 편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인데 비해서 저들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종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편견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도중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옵니다. 그 안에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잡아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릇 안을 보니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자기들의 법도에는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지 못하겠다고 하자 놀라운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속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깨끗하다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사람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남녀차별, 약자에 대한 차별, 인종에 대한 차별, 장애에 대한 차별, 외모에 대한 차별, 학벌에 대한 차별 등 크고 작은 차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런 차별을 두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차별도 용납하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같은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이고, 예수 믿으면 모두가 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편견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차별도 동의하거나 가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런 차별을 극복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근자에 이런 방송 캠페인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일, 내일의 행복을 위한 일입니다.
이 캠페인은 00금융그룹이 함께합니다.
[나의 꿈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요.”,
“미술 선생님이요.”, “로켓트 과학자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꿈이 아니라 다양한 대한민국 아이들의 꿈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꿈속에 더 큰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과 함께 합니다.”

근자에 우리 사회의 가장 문제가 되는 편견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견 때문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이 심각합니다. 정부와 여러 기업들이 나서서 차별 극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차별이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야 합니다. 다문화 가정을 보듬고, 탈북자들도 보듬고,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에 눈물 흘리고 있는 분들을 보듬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강림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4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성령이 말씀 듣는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5-4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한 베드로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놀랐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왜 놀랐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이 자기들이 성령 체험했던 사건과 똑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기로 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했던 사건과 이방인으로 복음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 똑 같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을 부어주신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똑 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누구라도 예수를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셔서 우리 삶의 이끄실 때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 힘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신앙생활하면서 기쁨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계시지만 충만하게 역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공회의 토레이 목사님의 글을 자주 읽습니다. 경건의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만 우리가 흔들림 없이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영적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심을 느끼고, 성령께서 내 삶을 주장하시도록 주도권을 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넬료의 집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유대인들의 마음의 장벽이 무너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졌던 것처럼 우리의 편견도 깨져서 모든 차별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성령 받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 받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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