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백악관과 기독교교계 인사들 사이의 '유례없는 밀월'이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지도가 날로 곤두박질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날이 '복음주의자'들과 밀착감을 다지려 한다고 종교통신(RNS)이 지적했다. 자신의 강력한 '표밭'인 미 복음주의자들의 마음이라도 더 사놓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는 것. 이들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evangelicals'로 통칭된다.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는 강력한 보수성향 공약으로 과거의 조지 부쉬나 좐 맥케인, 미트 람니 후보를 웃도는 백인 복음주의권 지지(81%)를 얻어냈다. 마치 신랑신부 들러리들처럼 트럼프를 호위하고 있는 양상인 이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복음주의권 전체의 지지를 받느냐면 그도 아니다는 게 정평. 뉴욕교계 명사인 R.A. 버너드 목사는 최근 백악관 종교자문위원직을 내동댕이치면서 다른 위원들에게도 트럼프 비판 목청을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 복음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담소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RNS

RNS는 이를 계기로 최신기사에서 트럼프 측근 복음주의자들의 동향을 "샅샅이 훑어보는" 작업을 했다. 최근 그동안 트럼프와 직접은 연계되지 않았던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뜻하지 않게 백악관의 '부르심'을 받았다. 상당수는 주섬거리며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셀피'를 준비했다.

트럼프는 이들을 따듯하게 반기며 "지금 이분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영향력을 끼치시는 리얼 파워네요."라고 과찬했다. 잠시 후 이들은 대통령을 빙 둘러싼 채 모두 손을 얹고 안수축복기도를 시작했다. 전국히스패닉(=중남미계)기독교지도자컨퍼런스(NHCLC)의 부회장인 토니 수아레즈는 이런 크리스천들의 백악관 모임은 "마치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 방 안에 있는 듯 느껴졌다."고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트럼프 가장 가까이엔 거의 언제나 플로리다의 번영복음 목회자인 폴라 화이트 여성목사가 서 있곤 한다. 트럼프의 '개심'을 이끌었다는 화이트는 연전에 세속 락뮤직 가수 좌너턴 케인을 세 번째 남편으로 맞아들였다(화이트는 케인의 4번째 아내다).

화이트는 이전에 신유부흥집회 강사 베니 힌과 '반짝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벤과 화이트, 둘이 각각 로마로 비밀여행을 가서는 손잡고 호텔문을 나선 광경이 때마침 파파라치의 매눈 카메라에 걸려든 것. 둘은 '섬띵'을 적극 부인했으나 결국 화이트는 자기 교회를 떠나 '뉴데스티니' 교회 담임목회자로 부임했다(이 교회 직전 담임목사는 호텔에서 코카인 중독사한 것으로 수사당국이 추정함). 벤은 아내와 이혼 위기였다가 공식 해명 후 재화합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측근인 팀 클린턴 목사는 전국 기독교상담가협회(AACS) 회장이다. 백악관에 새롭게 콜링 받은 종교측근 가운데는 놀랍게도 '제3물결' 오순절운동이자 '신사도운동'의 한 상징이다시피 한, 라드니 하워드-브라운 목사도 있다. 남아프리카 출신인 그는 플로리다의 대형교회인 '더 리버'의 담임목사이자 국제부흥선교회(RMI) 대표로, '거룩한 웃음' 현상으로 유명세를 탄 '토론토 블레싱'의 장본인이다.

이들은 트럼프 취임후 지금까지 모임, 디너, 포토옵, 컨퍼런스 콜 등에 줄대어서 쾌히 참석했다. 그밖에도 기도회, 사인회, 음악회 등등등 "끝도 없는" 다른 만남에도 호응했다. 이들 중 일부가 지난 9월 1일 태풍 하비 피해자들을 위해 대통령이 선포한 (임시)전국기도의날 백악관 행사에도 나타났다. 당시 제프리스 목사는 다시 대통령에 손 얹기 기도를 이끌면서 트럼프를 나라의 '구세주'격으로 등극시켜 놨다.

"아버지, 기도의 권능을 믿는 대통령을 우리가 모신 것, 감사합니다. 이 나라는 수십년 간격으로 지독한 분파싸움을 잇대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나이다!" 제프리스는 그렇게 기도했다.

펜실베이니어주 소재 기독교 사학인 머사이어칼리지(=메시아대학)의 좐 페이 교수(미국사)는, 라벗 제프리스, 제리 폴웰2세 목사 등이 "이 분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친기독교적인 분"이라고 상찬하는 말에 대하여 "어떤 의미에선 옳다."며 "복음주의 목회자 그룹이 백악관에 이렇게까지 근접한 적이 일찍이 없었다."고 평가.

최근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폭력이 저질러진 버지니아 샬러츠빌 사태에 대해 입장이 엇갈린 백악관 비지니스 자문회의와는 달리, 이들은 변함없이 트럼프 곁을 지킨다.

백인 보수층과 복음주의자들은 대법관 임명으로부터 이민 문제, 범죄정의개혁까지 나랏일에 관심이 많다. 과거에도 빌리 그래엄 전도자 등이 백악관에 깊이 관여돼 있었으나 트럼프 신앙팀의 다른 점은 대통령의 영적 웰빙뿐 아니라 주요 국가 정책과 비밀 이슈에도 관여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나라 살림과 일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휘두르는지 또는 어떤 혜택을 얻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트럼프가 화이트 목사를 비롯한 이들의 열띤 축복기도와 '기름부음' 안수를 탐할 정도로 매우 즐기고 영유한다는 점이다.

이 그룹을 위해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는 자니 무어 목사는 이들을 가리켜 "백악관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연맹"이라고 간추리면서 "학교와 연관은 있지만 학교에 딱히 직함이나 공식 직무가 없는 동문들과도 같다."고 비유한다.

왜 자신이 백악관 모임에 초대 받았었는지 현재 무슨 관계인지 어정쩡한 사람들도 없지 않다. 남침례교 총회장을 역임한 프랭크 페이지 목사는 "나는 실제로 (그들의) 일부인지 아닌지 모른다."며 "아직 체계적인 뭔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시큰둥한 반응.

빌리 그래엄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엄 목사를 비롯한 몇몇은 이 모임체를 '신앙회의'(faith council)라고 부른다. 제프리스는 그런 용어에 대해 부정적이다. 백악관 스태프도 이 그룹이나 모임의 공식성에 대해 구체적이지 않고 불투명한 입장. 모임 일정이나 연락처조차 쉽게 제공해주지 않는다. 또 이 목회자들 자신이 백악관과 관련한 언론과의 대담 등 외부 접촉을 꺼린다. 일부는 '신앙리더십이니셔티브(FLI)'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모임에는 으레 백악관 스태프 하급 직원들이 참석해 이들의 말을 부지런히 메모하여 행정부의 다양한 부서에 전달도 한다. 모임과 발언 내용에 따라 메모는 엄청난 분량이 되기도 한다. 어감이 어떤지는 몰라도, 어쩌면 이들이 좀 더 차원 높고 신앙적인 의미의, 미국판 '최순실 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든든한 백인복음주의권이 압도적으로 이들과 트럼프 및 행정부를 지지하는 이상, '국정농단'은 아닐 터이다.

몇 주마다 모이곤 하는 이들은 지난 7월 케네디센터에서 '자유축제 음악회'도 열었다. 제프리스 목사네 교회가 공동주관했다. 이렇게 복음주의자들이 백악관과의 친교를 즐기지만, 기독교계 주류교파와 교단들이 진을 친 전국교회협의회(NCC)나 무슬림과 시크교 등 타 종교단체는 '찬밥' 신세다.

지난번 모임처럼 간혹 대통령의 사위이자 수석자문인 제이릿 커쉬너가 참석하기도 한다. 커쉬너는 모임 중 나갔다가도 으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데리고 되돌아온다. 펜스는 주로 격려의 말을 던진다. "여러분의 말씀을 대통령님도 전해 들으시고 고맙다 하시더군요. 비록 여긴 못 오셔도, 오벌룸에도 자주 들르시라고요."

그러던 중 대형 아프리칸 교회의 담임목회자인 버나드 목사의 백악관 단절은 찬물을 끼얹기보다 의아스러움을 자아낸 사건이다. 버나드는 트럼프가 샬러츠빌 사건에 대하여 "(흑백)양쪽에 좋은 사람들이 있군요." 하고 말하자 곧 사임해 버렸다. 이에 대해 제프리스는 샬러츠빌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응수했다.

반면 수아레즈는 노골적인 불편감을 토로한다. "다들 대통령에게 아멘 코너를 제공해둔 것 같더라고요. 목회자적인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칭찬도 나누고 영감도 나누고 대통령과 기도도 나누고, 성경도 나누고, 그런데 걱정거리도 나누죠."

그는 특히 여성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다량분포된 도덕과 덕성의 표본이라고 하기엔 어림도 없는 트럼프 같은 사람과 복음주의자가 더불어 함께 나란히 어울릴 수 있는 길을 다윗 시대의 나단 선지자 같은 역할이라고 간추린다.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사건 후 "뭐요? 밧세바와 잠자리를 같이 하셨다고요? 저는 이젠 왕과 끝입니다!"라고 선언한 게 아니라, "임금님이 바로 (간음한) 장본인입니다."라고 딱 부러지게 지적했다.

이들 복음주의 목회자들은 종교자유 담당대사로 천주교인인 샘 브라운백을 지명할 당시 배후에서 입김을 불어넣었다. 또 국무부가 반유대인주의자들을 감시하고 대응할 특사를 지탱하도록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압력을 가했다. 국무부 예산이 모자라는데도.

미군 내에 트랜스젠더를 금한 것도 톰 퍼킨스(가족연구협회, FRC) 등 이들의 입김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토빈 그랜트 교수(남부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는 남침례교 윤리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도 거친 리처드 랜드 전 기독교연합(CC) 대표나 신앙자유연맹(F&F)이란 단체를 이끄는 랠프 리드 등 외에는 다 목회자들이지, 정치꾼이 아니라고 사레를 친다.

그랜트는 말한다. "이 분들은 정작 정치나 정책엔 관심이 없어요. 이 분야엔 신출내기인 셈이죠." 그랜트에 따르면, 최근의 닐 고서치 대법관의 지명에도 복음주의자들이 배후에서 얼마나 입김을 불어넣었는지 알기 어렵다.

복음주의자들이 미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당시 폴웰(1세)의 도덕적 다수(MM), 리드의 기독교연합, 제임스 답슨의 가정초점(FOF) 등 굵직굵직한 기구들이 이 일에 앞장 섰다. 리드와 폴웰 같은 이들이 미국 대통령을 통하여 학교내 기도, 낙태 문제, 결혼 문제와 동성애자 권리 등 이슈에 있어 보수적 가치관을 높이길 희구했다. 페이 교수는 이를 '각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라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몰표를 모아줬고, 부시 정부 당시엔 아예 신앙기조공동체이니셔티브오피스(OFBCI)를 구성해 백악관 근처 잭슨 플레이스에 설치하고 마약-알코올 중독자 재활 등 사회봉사, 방과후프로그램 등에 개입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들에게 정책 추천 같은 역할부담을 하도록 부탁하지는 않았다.

버락 오바마는 신앙자문회를 개설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집권 8년간 20~25명의 자문위원들이 연 1회 만나서 인신매매, 빈곤, 종파간 협력 등 특정 이슈를 연구하도록 작업을 맡겼다. 위원들 가운데는 신구교 인사들은 물론, 유대교, 몰몬교, 무슬림, 원주민 토속종교인 등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들과 실제로 만난 것은 단 2회 뿐이었다.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복음주의권이라는 말을 타면 잘 달릴 줄로 계산했다. 레이건, 부시와 대동소이한 생각이다. 그러나 비지니스맨 출신인 그는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사업적인 머리를 굴려 "이들을 가까이 두자."고 판단했다고 페이 교수는 분석한다.

한편 지난 8월 중순 돌연 백악관 복음주의자문위원 직을 도로 내놓은 A. R. 버나드 목사는 뉴욕시 최대급 복음주의 교회의 하나인 크리스천문화센터(CCC)의 리드목사이다. 버나드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보수적이기보다 좀 관용적인 입장이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CCC는 다양한 인종 ․ 국적 출신 교인으로 형성된 복합적 공동체다. 버나드 목사는 트럼프 취임후 자문위 최초의 이탈자이다. 취임 전에도 이미 시카고 하베스트바이블교회의 제임스 맥다널드 목사가 사퇴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수아레즈는 "다니엘, 예레미야, 사무엘, 나단, 이사야 선지자 등이 왕에게 '이젠 더 자문을 해 줄 수 없소'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제프리스 목사도 "대통령의 신앙이니셔티브 협의회(FIC)에서 섬길 수 있음이 영광스럽다."며 "그 분은 역대 대통령들보다 더 많은 일을 단 6개월만에 단행하셨다."고 추켜올렸다.

한편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미 복음주의 명사들이 한국에 집회 차 수시로 드나들어, 이들이 트럼프를 통해 한국에 좋은 영향을 줄 만한 정책을 구사할 지도 모른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물론 미 복음주의자들은 한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파워를 잘 알고들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