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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⑨
“조사심판 사상은 복음(은혜)을 박살내는 가르침”
2017년 09월 06일 (수) 10:37:40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재림교 월간잡지 교회지남 2017년 9월호에 실린 임봉경 소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재림전 심판의 관계(5) 우리의 구주요 주로서의 그리스도②]를 비판한다.

[구원의 받기 위해]라면서 선(先)조건으로 놓든, 조사심판에서 구원을 [잃지 않기 위해]라면서 후(後)조건으로 놓든, 인간의 행위(안식일, 품성변화, 순종)를 덧 붙이는 것은 같은 율법주의다. 이러 면에서 재림교는 철저히 후조건 율법주의다. 구원 이전이든 이후이든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짓는 죄에 대하여 ①도덕(윤리)적인 죄들과 ②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로 나눌 수 있다. 세상에서는 ①번만 죄이지 ②번이 죄라는 인식은 없다. 성경은 세상에 사는 동안 ①번도 아주 심각하게 경고하지만 궁극적으로 한 사람이 멸망당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의 ①번의 죄를 지고 해결하신 ②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불신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복음은 백방으로 힘써 윤리 도덕을 닦아 개과천선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자원(능력)에 백기를 들고 예수님(약속)을 믿어 생명을 것이 얻는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집착 대신 자기해체를 선언하고 자기 밖 십자가를 보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한 새 언약(약속)을 굳게 믿는 것이 구원의 믿음이고 은혜의 복음이다. 그러나 재림교는 맞는 말을 부분적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 플러스 행위]구원론, 가라지 복음으로 계속 오도(誤導)하고 있다.

율법주의 안경을 쓰고 사상(전제)이 잘못되어 있음으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성구를 끌어댄다 해도 율법적으로 해석하여 결국은 성경으로 복음을 허물어대는 안타까운 일을 하고 있다.

9월호 내용 역시 참으로 교묘한 필설로 포장이 되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나눠 비판해 본다.


재림교의 틀린 구원론의 출발은 병든 칭의관에서 비롯된다.

칭의란 최고의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 “너 의롭다!(죄없다)”하시는 선언이다.

인간이 행한 짓(?)을 따지자면 마땅히 진노깜냥(사형)이다. 그런데 그냥! 거저! 값없이! 은혜로!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용서를 넘어 죄를 완전 도말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요3/16; 10/28).

아무리 삶의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이런 혜택을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바늘 끝만도 없는데도 영원히 그렇게 봐 주시겠다니 힘차게 주님을 찬양하자. 칭의는 본질상 단번의 칭의요 영원한 칭의며 그래서 영원한 은혜다. 무조건이다. 이 유일무이한 진리가 참 교회와 가짜 교회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시는 성경의 [영원한 단번 칭의]를 ①처음 칭의 ②최종적 칭의로 나누는 개념 자체가 오류다. 나눈 이유가 무엇인가? 방종에 브레이크를 건다는 핑계지만 죄는 율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단번에 무료로 받는 칭의(은혜)에 대하여 은혜는 아무나가 아니라 은혜 받을 짓(?)을 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함으로서 무조건을 조건으로, 선물을 삯(임금, 대가)으로 변형시켜 칭의 진리를 파괴한다.

9월호 24쪽 ‘진정한 용서를 자유를 낳는다’는 소제 아래 내용은 온통 이 병든 칭의관에서 비롯된 내용으로 독자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 ⓒpixabay.com / Numbercfoto / children-of-uganda-2314806_640

한 사람이 자력으론 자신의 많은 죄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 나와 믿으면 칭의를 얻는 것이 [구원의 도]인데 재림교는 노력해서 죄를 정복하고 윤리(도덕성)를 새롭게 갖추고 능력으로 헌신 봉사하고 질적으로 높은 삶을 창출하는 것 즉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해 사는 자가’곧 칭의된 자이고 이런 유지 없이는 최종적 칭의에서 탈락된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재림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칭의하실 때 선행이든 악행이든 행위는 아예 계산하지도 않았는데 최종적 칭의 개념을 만들고 행위(열매)를 섞어서 잘못된 칭의관을 만들어 내는가?

“죄에 대해 죽는 것은 칭의후에 오는 둘째 단계가 아니라 칭의 자체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상태다.”(25쪽)

이 발언은 죄를 안 짓는 것 것이 칭의란 것이다. 생각해 보라. 스스로 죄를 죽이고 정복하는 것이 칭의라니? 이것은 수양이지 칭의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 은혜를 피나는 거래로 만들어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오류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라]는 말씀을 죄를 안 짓는 것(자)가 곧 칭의(자)라고 오해하는 처사다.

또한 임 소장은 신자는 “죄를 근본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하고 “죄가 우리를 다스리도록 허용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이루신 일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는 죄를 지을 때마다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고 칭의를 부정하는 것이란 뜻인데 이렇다면 우리는 수천 번 칭의를 잃었다가 다시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얼마나 재림교가 도덕성(행함)을 칭의와 섞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원받은 신자로서 죄를 피해야 한다. 문둥병처럼 무서워하고 필사적으로 경건을 연습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 죽어야 끝난 것이 겉 사람의 죄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칭의가 부정 되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절망스런 완전주의 몰아가는 것이고 완전주의는 율법주의요 병든 칭의관임을 알아야 한다.


성도됨과 제자됨은 다르다.

임 소장은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를 항거하다 순교한 신학자 본회퍼의 말 “자신이 오직 은혜로서 의롭게 되었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뿐이다.”를 인용했는데 대단한 착각이고 오류이다.

병든 칭의에 물든 자들이 좋아할 문구다. 은혜는 절대 거저가 아니고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죄로부터 돌아서고, 주되심에 순종하고, 기꺼이 순종하고, 제자도의 조건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은 [제자의 도]이지 [구원의 도]가 아니다. 이는 행 16/31; 요 1/12; 3/16의 구원의 도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구원의 믿음은 내 행동과 관계있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본회의 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인용자의 연결이 틀렸다. 헌신 복종 자기부인, 자기 버림(눅 14/25-33)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 모든 방향으로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것들을 행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원은 베푸신 긍휼로 얻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그 일로 구원받은 것이다. 재림교는 구원의 결과가 되어야할 것을 왜 자꾸 구원의 요구 조건으로 가르치는 오류를 계속하는가?

조지 파슨의 글(구원의 조건)을 인용해 본다.

“결과를 조건으로 바꾸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율법주의(복음의 메시지에 비성경적인 요구사항들을 더하는 것)로 바꾸지 말라. 구원하는 믿음을 구원하는 믿음이 생산하는 것(믿음의 행위!)과 혼동하지 말라. 회개와 회개의 열매를 혼동하지 말라. 행위와 열매는 구원하는 믿음의 증거들이지,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은 아니다. 열매를 뿌리와 혼동하지 말라. 당신이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come after Christ)에 먼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로 와야(come unto Christ) 한다(마 11:28). 제자도는 구원의 요구조건이 아니다. ”


계속되는 혼합식 구원론

임 소장은 “심판은 참된 믿음의 열매로서의 행함을 드러냄으로써 구원의 실재를 증거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관련된 행함에 따른 심판은,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주로서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하나님의 요구,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와 죄의 유혹에 대항하는 싸움 사이의 역동적 관계에 나타나는 구원의 총체성과 통합성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이런 관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보게 되면 칭의와 심판이 불가분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복잡하게 엮어 말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구원은 [오직 믿음(은혜)]이 아니라 [은혜]와 나의 [행위]가 플러스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판 날에 우리의 행위를 따져 구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칭의와 심판이 ‘불가분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은 칭의를 나의 행위와 직결시키는 것이다.

믿는 자는 심판이 없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는데(요5/24) 왜 재림교는 칭의와 행위를 묶어 다른 복음을 제작하는가? 구원 받고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구원받기 위한 행위로 둔갑시키지 말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또한 이런 저런 죄를 지으면, 이런 저런 행함이 없으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은 성경 진리가 아니다.


심판은 있으나 구원 재심심판(조사심판)은 없다.

임 소장은 “믿음의 열매로서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속적인 뜻의 총체적인 면을 부정하는 셈이다. ...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그분이 칭의 하신 자에게 계속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 하신다.”고 했다.

기독교인 중에 심판을 누가 부정하는가? 참 믿음인지 거짓 믿음이지 하나님만이 정확히 아시고 하시는 그 심판은 분명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재림교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심판이라는 단어가 모두 [조사심판]이겠거니 하는 것은 완전 착각이다. 성경에 심판과 조사심판은 개념이 다르고 성경에 심판은 있어도 조사심판은 없고 국어사전에도 없다. 이는 재림교가 만들어낸 율법적 개념이다. 이 둘은 다르다.

믿는 것 만 가지고 안 되고 믿음 외에 하나님의 요구 즉 십계명 안식일, 품성변화(성화) 등을 얼마나 만족시켰느냐? 까지 합산 조사(검증)하여 최종 구원을 결정한다는 그런 율법주의적 조사심판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조사심판 사상은 복음(은혜)을 박살내는 가르침일 뿐이다.

임 소장은 성령의 열매를 두고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도 되고 하나님의 요구도 된다’고 했다. 이 또한 병든 칭의관에서 의거한 것이다. 이 논리는 성령의 열매를 조사 심판하여 모자라면 믿는 자의 구원이 잘리거나 취소된다고 하는 주장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오류다. 구원이 열매를 낳는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열매가 있어야 구원이라는 말은 생활(生活)이 있어야 생일(生日)이 있다는 말과 같은 오류다.


재림교는 왜 율법주의란 비판을 받는지 한 번이라도 성찰해 보길 바란다.

재림교는 미국에서 1930년대 태동 후 50여 년 동안 자타가 인정하는 율법주의 교단 그 자체였다. 그러나 1888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총회를 기점으로 교단적으로 율법주의가 대폭 수정되는 대전환점이 분수령이 있었지만 교리적 잔재들은 여전했다.

한국의 재림교는 1888년 이신총회 후 15년이 지난 1904년에 상륙했다. 선교초반부터 1888년 결의된 [믿음의 의]를 충실히 전했다면 한반도에서 이단시비에 휘말릴 여지가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50~80년대 한국 재림교 역시 지독하게 율법주의 몸살을 앓았고 마찰은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재림교가 초반부터 [이신칭의]를 말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말했어도 [이상한 이신칭의]를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신교와 소통 부재로 인한 오해라고 얼버무릴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이상한 [이신칭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십계명 준수, 안식일, 채식교리, 품성변화를 구원의 조건으로 예수 믿음과 등가의 가치로 당당히 주장했다(계14/12). 구원 받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어림도 없지만 그때는 그것이 먹히는 시절이었다.

개신교를 바벨론으로 규정하고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했고 재림교로 이동한 사람들은 [개종자]라고 불리웠고 이들 역시 간증 할 때 단순히 교회를 옮겼다 하지 않고 남은 교회 일원되어 구원을 받았다고 했으니 사실상 재림교는 다른 개신교를 형제 그리스도인으로 결코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노골적으로 [구원받기 위해서] 안식일 지킨다고 말하는데서 작전상 일보 후퇴하여 [구원 받았기 때문에]라고 바꾸었다.

하지만 ①구원 받기 위해서 안식일 지킨다는 말이나 ②안 지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③조사 심판 날에 안식일 범한 자, 품성변화 안된 자, 죄를 짓는 자들은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은 모두 같은 말이다.

[구원의 받기 위해]라면서 선(先)조건으로 놓든, 조사심판에서 구원을 [잃지 않기 위해]라면서 후(後)조건으로 놓든, 인간의 행위(안식일, 품성변화, 순종)를 덧붙이는 것은 같은 율법주의다. 이러 면에서 재림교는 철저히 후조건 율법주의다. 구원 이전이든 이후이든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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