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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아브라함의 교훈
2017년 08월 30일 (수) 15:56:47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창세기 12장 1-4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성경퀴즈 하나를 드려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벗’이라고 부르신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하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신 단 한 사람 그는 누구일까요?

답은 아브라함입니다. 사 41:8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만은 ‘나의 벗’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나의 벗이라고 부르신 것일까요?

함석헌 선생의 시 가운데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이 이 시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벗 곧 친구가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고 계시던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요 15:1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지만 이제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라도 주님의 친구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90장 3절을 보면 이렇게 찬송하고 있습니다.

“내 진실하신 친구여 큰 은혜 내려 주사 날 항상 보호하시고 내 방패 되옵소서 그 풍성하신 참 사랑을 뉘 능히 끊을소냐 날 구원하신 예수는 참 좋은 나의 친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친구가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친구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을 친구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친구의 원조인 아브라함에게서 그 비결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약 2: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칭함을 받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해 주시고 그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을 의로운 사람이라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야고보 사도가 창 15:9 말씀을 인용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창 15:6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처음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신 첫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4:11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신 처음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belief’이고, 다른 하나는 ‘faith’입니다. 이 두 단어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우선 belief란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believe’란 동사에서 왔습니다. 영어 문장에서 ‘I believe 무엇’이라고 하면 ‘내가 무엇을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믿는 주체는 나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belief란 말은 내가 믿는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신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faith란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릅니다. 대신 이 말에서 파생된 말 가운데 ‘faithful’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충실하다’, 또는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믿는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faith 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서도 그 믿음을 인정해 주시는 그런 믿음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faith라는 신앙의 세계를 새롭게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롭다고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belief 라는 신념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faith 라는 신앙의 차원까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땠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셨을까요?

창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 명하시면서 큰 민족을 이루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창 15장을 보면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마음이 조급해 졌습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자식이 없자 충성스런 종인 엘리에셀에게 상속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보게 하신 뒤 다시금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저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15:6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 약속을 굳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0세 전후입니다. 지금 자식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후에 자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롬 4:18을 보면 이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미 나이가 80이나 됐는데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볼 때 끝난 것이 아닙니까? 더 이상 자식 낳기를 바라기 힘든 상황이 아닙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주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믿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믿음을 faith,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불론딘이라는 사람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줄타기 곡예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한 번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외줄을 타고 폭포를 건너 캐나다 쪽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사람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믿는다고 소리쳤던 사람들에게 자기 등에 업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 한 꼬마가 자기가 업히겠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그 아이를 등에 업고 안전벨트로 잘 묶은 다음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줄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꼬마를 업고 다시 폭포를 건넜습니다. 불론딘은 자기 등에 업힌 이 꼬마의 믿음만 인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faith라는 믿음입니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하며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본을 보여준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순종의 사람

히 1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가장 결정적인 특징을 순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5:1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 15:15을 보면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신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 ⓒpixabay.com / StockSnap / coffee-2565441_640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게 된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순종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아브라함의 가장 대표적인 순종은 창 12장에 나옵니다. 창 1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4절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 명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우선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향, 친척, 그리고 아버지 집입니다.

우선 고향을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정붙이고 살던 지역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다음으로 친척을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더불어 살던 공동체를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선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터 잡고 살던 공간을 떠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속해 살던 공동체를 떠나고, 하나님께서 맺어주시지 않은 인간관계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입니다. 이 나이에 평생을 공들여 온 삶의 공간을 떠나고, 정붙이고 살던 사람들을 떠나고 심지어 가족까지 떠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친구라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내 스스로 자리 잡고 살던 터전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내가 좋아서 맺고 살던 인간관계 그러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인간관계 정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온 과거를 청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떠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돌아서는 아픔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단한 것은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떠날 수 없는 곳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떠날 수 없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의 친구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아브라함이 보인 순종은 창 2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도 머뭇거리거나 마지 못해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명을 받은 다음날 아침 일찍 순종의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은 어떤 존재입니까?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 생명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번제물이 될지언정 이 아들만큼은 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토록 소중한 아들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씨앗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들은 자기의 내일의 희망입니다. 이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기고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그런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내일의 희망마저도 내려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내어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자칫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을 내어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의 희망으로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라 말씀하십니다. 자칫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친구라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친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처럼 남다른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남다르게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시는 곳을 떠나고, 내놓으라는 것을 내놓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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