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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영적인 보살핌
2017년 08월 23일 (수) 11:39:20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3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약육강식’(弱肉强食)입니다. “약한 자의 살을 강한 자가 먹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는 잡아먹는 포식자가 있고, 잡아먹히는 피식자가 있습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들은 잡아먹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끝없이 사냥에 나섭니다. 이에 비해 누우나 영양과 같은 초식동물들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며 포식자들을 경계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영적 세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벧전 5: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는 자들의 대적인 마귀가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이감을 찾아 두루 다니는 것처럼 공격대상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사탄 마귀는 믿는 성도들을 공격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공격대상을 찾아 믿는 성도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영적으로 깨어서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목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들의 생존노력입니다. 약육강식의 원리 속에서 약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보살핌입니다. 동물들은 포식자들로부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물소 떼를 보면 힘센 수컷이 무리를 이끕니다. 사자가 나타나면 대장 물소가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수컷들이 무리를 에워쌉니다. 그 뒤로 암컷들이 둘러서고 그 안에 새끼들을 숨깁니다. 포식자들로부터 연약한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소중한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리더들은 믿음이 어린 성도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는 바로 이런 영적인 보살핌의 이야기입니다. 영적 리더인 사도 바울이 믿음이 연약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저들을 영적으로 보살펴주는 이야기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입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뒤에 데살로니가로 온 바울은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 야손이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행 17:4을 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 17:5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오히려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집회 장소였던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박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며 복음을 전한지 3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유대인들의 박해가 극심해져서 바울이 더 이상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예수 믿게 된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을 베뢰아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저들이 베뢰아에까지 와서 박해를 가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을 급히 아덴까지 피신시켰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아덴에 와 있습니다.

아덴에 와 있는 바울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제 막 예수 믿은 교인들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스스로 믿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박해가 거셉니다. 보통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몇 차례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탄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탄이 유대인들을 내세워 바울이 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올 수 없게 했고, 오더라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만날 수 없게 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은 이 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다못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다시 데살로니가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그래서 무엇인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어미가 자식을 향한 마음과 같은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여 시험이 들까? 행여 믿음이 흔들릴까? 행여 믿음을 잃어버릴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의 파송

그러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이 어린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돌봐주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금까지 중국선교를 해 온 방식은 독특합니다.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교회를 개척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중국에 가서 직접 복음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국신학교를 지원했고 신학생들을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농촌의 어려운 교회를 격려하고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그들이 힘 있게 사역을 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국 선교를 하게 된 것은 고 주관준 원로목사님의 중국선교 기본 원칙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주목사님께서는 중국의 개혁개방 후에 일찍 중국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이제 막 교회의 문을 다시 열고 예배를 드리고, 신학교를 다시 세워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정말 연약한 교회들과 신학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셨습니다.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말씀으로 격려하셨습니다.

한 번은 신학교를 방문하셨는데 학생들이 굶주림에 가죽만 남은 것처럼 보이더랍니다. 식당에 가서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데 음식이 너무 형편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학장에게 주머니를 털어서 3만 불을 손에 쥐어주며 학생들 잘 먹이라고 하셨답니다.

훗날 제가 이 신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학장님께서 제게 오래전에 있었던 그 이야기를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때 이 학장님 눈시울이 젖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 목사님의 그 격려가 오늘 자기 신학교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도 주관준 목사님께서 하신 원칙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20년을 달려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중국으로 보내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신학교와 어려운 중국 교회를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디모데처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보내시기 원하십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게 하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게 하십니다. 디모데처럼 오늘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주님의 보살핌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를 다녀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데살로니가의 상황을 소상하게 보고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보고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쁜 소식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할 때 쓰던 말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기뻤던 것처럼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기에게 이에 못지않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쁜 소식이란 무엇일까요? 6절을 보면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쁜 소식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기쁜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기쁜 소식입니다.

믿음의 기쁜 소식이란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유대인들의 모진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기쁜 소식이란 또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희생과 수고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는 소식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워진지 이제 몇 달이 안 되는 교회입니다. 교역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장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인들 모두가 복음을 들은 지 몇 달 밖에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박해와 환난이 극심합니다.

그런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믿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바울은 정말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자기들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일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설명이 불가능한 미스터리입니다. 답은 한 가지 주님의 보살핌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보살펴주신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런 체험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그는 3년 동안 누구에게도 영적인 보살핌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라비아 광야에 있을 때 혼자였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직접 자신을 영적으로 세워주셨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주님께서 친히 보살펴 주셨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던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매주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예배에 나온 교우들을 보면서 깊이 깨닫습니다. 많은 교우들은 저와 깊은 영적 대화를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우들은 근자에 제게 영적인 양육을 받은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인간적으로 불안합니다.

혹시 교우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혹시 시험에 들어 믿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참 불안합니다. 특히 토요일이면 더합니다. 교우들이 내일 주일을 지키려 교회에 나와야 할텐데...

그러나 주일이 되면 교우들이 열심을 내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모여듭니다. 제가 전화해서 내일 꼭 교회에 나오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는 분인데도 씩씩하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십니다.

제가 다시 한 번 깊이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우들을 이 험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보살펴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믿음을 지키도록 돌보아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 모두를 보살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 앞에 서있습니다. 기뻐하며 우리를 보살펴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중보기도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뒤에 정말 감사한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자기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데살로니가를 떠나는 날부터 안타까운 마음으로 중보기도 해왔는데 주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저들을 위해 중보기도합니다. 그 기도 내용이 11-13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데살로니가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더욱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기도는 응답의 확신 가운데 드린 기도라는 것입니다.

   
▲ ⓒpixabay.com / Gadini / praying-614374_640

바울은 그동안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이제 막 예수 믿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모진 박해를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를 통해 전해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아가 주님께서 자기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다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우 가운데 한 분이 자녀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근자에 교회를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배우자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이 자녀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오셨습니다.

제가 이 사정을 알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번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녀와 배우자를 데리고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 자녀의 속 깊은 곳에 아름다운 믿음이 굳게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우자까지도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권면하니 두 사람이 결혼 후 함께 교회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부모의 중보기도가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분의 간절한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하셔서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의 중보기도를 들으십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자녀들을 위한 중보기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하십시오.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한 가지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영적 보살핌의 사명입니다. 우리 가족들 가운데, 교우들 가운데 그리고 우리 주변에 주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 가운데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영적으로 보살피는 사명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그들을 향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위로하고 격려하십시오.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중보기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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