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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최상급 언어는 ‘생명언어’인 ‘복음언어’
소설은 예술성이 중요하지만 설교는 영성이 더 중요해
2017년 08월 22일 (화) 12:30:25 현의섭 목사 webmaster@amennews.com

구음(口音)과 문음(文音)

현의섭 목사 / 계원대학교회, 소설가
 

   
▲ 현의섭 목사

한 신학생이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하는 교회에 갔는데 놀라울 만큼 청중이 적었다. 그러나 설교 내용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감동적이었다. 예배 후 그 신학생이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의 그 좋은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 적은 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샘물은 마시러 오 는 사람이 있든 없든 늘 솟아나오니까 샘물이듯, 설교 역시 누가 들으러 오든 안 오든 늘 해야 되는 거야(독일의 요한 브렌즈 목사의 일화에서).”라고 답했다. 필자가 덧붙인다. 설교는 생명 샘이다.

목사는 청중의 숫자와 관계없이 주일 아침이면 설교를 한다. 설교는 보통 30분 내외를 하는데, 그건 설교시간의 기준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거의 40분간 설교하는데 간혹 50분이나 60분도 한다. 그래서 아예 성경에는 설교시간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 둔다.

소설가도 누가 읽든 안 읽든 소설을 써야 소설가다. 단편이든 긴 장편(長篇)이든 짧은 장편(掌篇)이든 소설을 써야 소설가다. 40분짜리 설교 한 편은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대략 단편소설 한편이다. 단편소설 한 편 쓰기나 제대로 된 설교 한 편 준비하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가도 매주 한 편의 소설을 써야만 되는 직업이라면 매주 한 편의 소설을 써낼 것이다. 쓰고 안 쓰고는 작가 마음대로니까 데뷔작 한 편이 한 평생의 전부인 작가도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정보화시대에 세계 275개 언어로 쓰여 진 최대 규모의 위키백과에서는 소설가를 지속적으로 소설을 쓰고 발표하는 직업인으로 정의한다. 물론 여러 분야에서 그렇듯 소설가도 겸업작가가 있고 아마추어처럼 쓰는 작가도 있고 프로작가도 있긴 하지만. 소설가는 독자가 없어서 안 쓴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청중이 없어서 설교준비 안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니. 1만 명이 읽든 10명이 읽든 소설을 써야 소설가다.

소설과 설교는 언어를 매개로 한다는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소설은 예술이다. 나는 주장한다. 설교도 예술이라고. 창의력, 상상력, 탐구력, 인내력, 문장력이 소설가에게 요구된다. 설교가에게도 상상력과 창의력과 탐구력과 인내력과 언어구사능력이 요구된다. 언어구사력을 글로 옮기면 문장력이다.

언어의 표현 수단은 구음(口音)이거나 문음(文音)이다. 설교는 구음으로 전달되지만 1차적으로 문음으로 정리된다. 소설은 문음으로만 표현된다. 아무튼 문(文)이 기본이다. 세 사람이 쓴 동일한 주제와 소재의 문(文)일지라도 쓰는 이의 지성과 이성과 감성과 경험과 탐구와 개성 등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수식되므로 오감을 자극 하거나 전달되는 효과의 농도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소설가들이 평론가들의 비평에 부정적 반응 곧 거부감을 느끼는 원인은 순전히 작가의 자존심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다양한 차이에 대한 평론가의 이해 부족 내지 논리적 근거에 높은 비중을 두는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술에는 비약이 허용되지만 논리에는 비약이 탈선이다.

필자의 입장은 소설도 쓰고 설교도 하므로 구음과 문음이 하나다. 1978년에 데뷔하여 1980년부터 1994년까지 15년 간 전업 작가로 지내던 시절에 내가 발표한 작품은 장편소설 10편(책으로는 15권), 중편소설 5편, 단편소설 31편, 장편(掌篇) 25편 등이다(최근에 필요에 의해 연보를 정리해 보니 그렇다. 이 기간에 신학 공부 4년이 포함된다).

내 나이가 희수(喜壽)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서 앞으로 쓸 작품계획을 구체화 하였다. 적어도 500여 페이지 쯤 될 장편을 두 편이나 쓸 것이며, 내 나이 80이 되는 2020년에 동시 출간할 예정이다. 더하여 30년간 구음으로 전달한 설교에서 그래도 전할 만 하였고 들을 만 하였다고 생각되는 설교를 자천으로 50여 편을 같은 해에 두 권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이에 더하여 30년 목회 중 최근 10여 년 간 매주 한 편씩 써 와 500여 편이 넘는 신앙칼럼에서 자천으로 선별하여 두세 권쯤을 출간할 계획이다. 정리하면 2020년 한 해 동안에 장편소설 2편, 설교집 2권, 신앙칼럼 등 7권 내외를 출간할 것이다. 데뷔 40년차의 소설가로서, 또 목회 30년차의 목사로서의 총 결산을 한 아름쯤 될 6권 내지 7권으로 한 해에 출간한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대로 될 줄로 나는 믿는다. 믿음이란 믿음대로 되는 능력임을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평생을 통해 허다하게 경험하였으므로.

필자가 집필 및 출간계획을 구체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세운 이유는 1994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4년 동안을 장편체질인 내가 긴 시간의 집중력과 인내력이 요구 되는 장편소설을 쓸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소설가가 설교가를 겸업할 경우 설교가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최소한 한 주간에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의 설교를 준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긴 세월을 예술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예술대학에서 교목으로, 대학교회의 담임목사로 지금도 현역이다. 그 역할이 그다지 녹녹치 않다. 소설과 달리 설교는 문음(文音)으로 기초 작업이 이루어 진 후 구음(口音)으로 전달하기까지 깊은 영적 고뇌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이 소설과 설교의 근본 적인 차이라 하겠다. 소설은 예술성이 중요하지만 설교는 영성(靈性)이 더 중요하다. 이를테면 문음으로의 준비로는 이만하면 되었다싶은데 구음으로 전달하고 나서 이게 아닌데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성의 문제다.

아무튼 소설이든 설교든 문음이다. 문음은 언어 그 자체다. 성경에는 언어의 능력 이 ‘말한 대로 된다’는 수준으로 강조되어 있다. 어디 성경뿐일까. 온 우주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대표적 근거가 언어사용에 있다. 예술 장르가 다양하지만 문학은 인간의 언어만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학의 대표 장르인 소설에서 표현되는 언어는 소홀히 다룰 수 없다. 말은 씨앗에 다름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이는 법칙이다. 중국 명언에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와, 한국의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 등 말의 능력은 일상적으로 회자된다.

H. 하이네는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 도 있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성경에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부패가 시작된 나사로라는 사람을 살려내는 장면이 리얼하다. 유대인의 시체는 매장이 아니라 굴을 파서 넣고 돌로 입구를 막아 놓는 구조다. 나사로를 부르기 전에 그 돌문부터 제거하였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한 주간 쯤 전이었다. 이는 예수께서 나를 죽이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서너 번이나 예고하신 것에 대한 사전(事前)의 확증인 셈이 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창조적인 것과 소모적인 것, 축복언어와 저주언어, 생명언어와 사망언어, 행복언어와 불행언어, 건설언어와 파괴언어, 복음언어와 저주언어 등 상반되는 개념들이 온통 뒤섞인다. 나의 언어가 긍정어인지 부정어인지조차 관심 두지 않는다. 나의 세치 혀가 죽이는지 살리는지 관심 밖에 두고 뒤범벅으로 마구 사용한다. 세상의 최상급 언어는 복음언어다. 그것이 생명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소리언어는 증발하지만 우리가 문자로 표현한 소설은 언제까지나 살아 있다. 구음도 중요하지만 문음은 한결 더, 더 중요하다. 소설가의 작품 쓰기 과정에서 이에 구속 받지 않으면서 창조언어, 생명언어, 행복언어로 소망과 활력을 더하는, 그리하여 인생을 한결 품위 있고 편안하고 밝게 하는, 그리하여 작가 자신이 행복하며 소망스러운 인생이기를 필자는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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