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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정 “니골라당 괴수 김기동… 속지 말아야”
“하나님 싫어하는 것 골고루… 거짓의 아비처럼 표리부동”
2017년 08월 01일 (화) 12:27:58 양봉식 목사 sunyang@amennews.com

<교회와신앙> : 양봉식 목사 】 쑥대밭 된 베뢰아 성락교회. 김기동 지지 측과 성개협 측(성락교회 교회개혁협의회)이 대립한 가운데 서로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전략상 고소고발을 하는 등 치열한 법정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X파일을 꺼내 들어 이 사태를 촉발시킨 윤준호 교수에 이어, 성개협 대표 장학정 장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장학정 장로는 김기동 씨를 사석에서 ‘아버지’로 호칭할 만큼 성락교회 골수파였다. 그러던 그가 김기동 씨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앞서 윤준호 교수는 X파일의 작성자이면서 베뢰아 사상과신학을 잘 알고 있고 목회자라는 입장에서 인터뷰를 했다면, 장학정 장로는 성개협 대표이면서 평신도 교회개혁의 회장이라는 점에서 평신도 입장에서 본 성락교회와 김기동 씨의 문제를 짚어 보려는 것으로, 성개협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속내 이야기를 들었다..


장학정 “성락교회 개척 초기부터 출석한 개척 맴버”

   
▲ 성락교회 교회개혁협의회 장학정 대표 ⓒ<교회와신앙>

- 언제부터 성락교회 출석했는가? 특별히 성락교회를 나간 동기가 있었는가?

“70년 7월 24일 방학 때다. 중학교 3학년 때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성락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다닌 것이고 기억으로는 교회 학생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영신교회라는 곳을 다닌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물에 빠져 30분 동안 죽은 적이 있었다. 인공호흡으로 살아나았는데, 물에 빠져 죽어갈 때 하나님께 내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 데 아직 죽어서는 안 되지 않으냐고 했다. 그래서 살려주신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아마 성락교회 개혁을 하라고 하신 게 아니가 싶다. 성락교회가 69년 11월 29일에 개척했고 3층 세 들어 8개월 채 안되었을 때에 출석했다.”


- 당시 김기동 씨의 어느 면이 좋아서 성락교회를 다녔는가?

“그 당시에 맨 처음 교회 정착은 김기동 목사 때문이 아니다. 김 목사는 일주일 내내 교회 없었고 다른 지역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나타났다. 장병찬 목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 때문에 정착했다. 설교 들으면서 김기동 목사의 파가 되었다. 성락교회 주일학교에 다녔고 주일 예배는 어른들과 함께 드렸다. 출석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되어서 성령을 체험했다. 김기동 목사는 일주일 내내 부흥회 하고, 단시간 내에 설교를 쏟아내서 당시 일반 설교가 아니라 방언처럼 들렸다. 그 때만해도 정말 은혜로운 설교가 쏟아져 나왔다. 장로 안수는 2016년에 받았다.”


- 김기동 씨에 대해 교계에서 이단 시비가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는가? 일반교회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았을 텐데 다른 점으로 인한 갈등이 전혀 없었는가?

“없었다. 이단 시비가 있었어도 갑자기 교회가 부흥하니까 시샘해서 하는 공작이라고 생각했다. 기성교회 설교를 많이 들어봤다.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편에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이고 일반 다른 교회는 사람 편에서 바라본 하나님을 주장하는 신학적 측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김기동 목사로부터 신본주의(성락교회)냐 인본주의(일반교회)냐로 배웠고 그렇게 김기동 목사가 가르쳤다.”


“사석에서 김기동을 아버지라 불렀던 골수파”

- 성락교회와 김기동 씨에게 매우 충실한 장로로 알고 있었는데 개혁 측에 가담한 결정적 이유는? X파일 초기에는 김기동 씨 편이지 않았는가?

“충성파가 아니라 골수파이다. 사석에서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 X파일 터졌을 때 느낌이 어떠했는가?

“X파일 작성부터 이야기 하면 나도 몇 가지(김기동 씨의 문제)는 (그전에) 실제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실수로 그럴 수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지 이렇게 많이 복잡할 줄은 몰랐다. X파일을 작성하게 된 경위도 잘 알고 있다.

윤준호 목사는 성락교회를 견제할 마지막 세력이다. 저 양반마저 나가면 성락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김성현 목사가 담임감독으로 있으면서 교인들이 계속 이탈되고 있는 상태였고) 최○○ 사모를 비롯한 세력들이 윤준호 목사를 쳐 낼라고 할 때 내가 윤준호 목사를 만나자고 했다. 당시 내가 제주도에 있을 때이다. 제주도 출장 갔다가 서울 올라와서 윤준호 목사를 만나서 백그라운드를 이야기 해줬다. 왜 김성현 목사가 저렇게 비뚤어진 마음(아버지 김기동 씨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였다.

(나는) 김성현 목사가 아버지 행동에 쇼크 받은 장면들을 알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해서 거기에 대한 증인 몇 명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증인들이 새끼 쳐서 다른 증인들을 물고 들어왔다. 서로 통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 가지고 완성된 게 X파일이다.

그것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랬을 때 (김기동 씨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 목회자가 이 정도로 해도 될 것 같으면 세상에 목회자 안할 사람 어디 있겠어요? 다 목사하죠. 그럴(인격적이고 경건한 삶) 자신이 없기 때문에 목사님을 우러러 보고 존경하는 건데, 이거는 일반 집사들도 안하는 짓을 다 했단 말이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X파일, Y파일, Z파일이 완성되게 되니까 이거는 아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성락)교회를 나가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기(성락교회)에서 48년 신앙생활 했으니까 그냥 나가면 인생이 아까운 것보다 하나님 앞에 혼날 것 같았다. 이 나쁜 걸 보고 그냥 다른 교회로 빠져 나간다면 치사한 것 같고 하나님 앞에서 별로 칭찬 받을 것 같지 않았다. 뭔가를 개혁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 아버지처럼 대한 사람이라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지 않는가? 김기동 씨가 도와 달라고 불렀을 때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를 대면서 거절했는가?

“거꾸로 너무 잘못한 것이 알려지게 되고 교회 여론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이게 되니까 ‘목사님은 더 이상 단에 서셔서는 안 될 것 같다. 현재 이 상태에서 후배들한테 물려주십시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일 나가서 하시고 대신에 연합 예배, 오후 예배 강단에 서는 정도로 하시고 완전히 물러 나십시오.’라고 했다. 당시 김성현 목사가 담임감독으로 있을 때라 ‘김성현 목사를 퇴위 시키십시오. 하고, 다른 제자들 중에서 세우고 개인 재산 다 가지고 나가서 편히 여생 보내십시오.’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 평생에 소원은 목사님 돌아가시면 꽃 한 송이 들고 가서 정말 멋있게 세상 살다 가셨습니다.’ 내 인생의 멘토. 그렇게 말씀 드렸다.”


“김기동 씨, 사태 본질 외면하고 교회 재산만 챙기려해”

- 그렇게 말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자꾸 돈 이야기만 하셨다. ‘지금 이대로 가면 교회가 부도난다.’ 내 이야기는 귀에 들으려고 하지 않고 저 양반 속에는 교회 재산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지금 일주일에 헌금이 얼마 들어오는데 은행에 얼마가 가야되고 헌금이 들어오지 않고 이 상태 유지되면 몇 달이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오고 교회 망한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교회 자산이 너무 많은데 한쪽 때려 팔고 우리교회 쓰지 않은 재산 많은데 목사님은 그런 것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 했고 이 양반은 물러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주위에 ‘김성현 목사는 성령이 세운 목사기 때문에 이걸 끌어 내리려고 하는 것은 마귀들이 하는 짓이다.’ 막 이렇게 칼럼에 쓰고 그래서, 아! 이 양반하고는 물 건너갔구나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들어줄 것 같이 했었다. 그래서 뭔가 좋은 조치가 나올 것이다 했는데 (김성현을 대적한다고) 그 주간에 완전히 마귀의 자식으로 몰아가버리더니, 그 다음 주에, 복잡해지니까 김성현 목사는 해임했다.

핵심이 뭐냐면 자기 필요한 때에 가서는 성경도 갖다 붙였다. 맨 처음 베뢰아 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그것이 우리 신앙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았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우리만 그렇게 살았고 저분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표리부동한 행동과 말을 계속했다. 그것을 안 다음부터는 저분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성락교인 전체가 불쌍해졌다.”


- 성락교회 장로가 총 몇 명인가? 그 중에 개혁 측에 가담한 사람은 몇 명 정도인가? 장로들 중에 개혁 측에 가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로가 250명에서 300명 정도이다. 50% 이상이 개혁 측을 지지한다. (장로들 가운데 김기동지지 측에 잔류하는) 제일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사업으로 묶이거나 집안 인척으로 많이 묶여 있다. (자녀가) 전도사를 하던지, 열심히 장로까지 할 때는 집안에 목회자도 있고, 그래도 제일 순수한 팀이 인간적인 의리로 김기동 목사 배반할 수 없다 하는 마지막 부류이다.

그 앞에 와서 대개 설치는 사람들을 보면 김기동 목사님과 거의 90% 이상이 금전적 문제로 얽혀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관계들을 다 작성해서 어떻게 커넥션 되어있는 것 분석했다. 그러나 인신공격될 것 같아 덮어버리고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의 이사, 손주들이 이사로 되어 있는 것 등, 하여튼 못 봐준다. 나중에 검찰조사가 있게 되면 조사할 것이다.”


- 김성현 목사에 대한 생각은? 세습에 대한 갈등은 처음에는 없었지 않았는가?

“김성현 목사가 불쌍하다. 아들은 목회할 생각이 없었다. 억지로 자리(담임목사)에 앉힌 게 강 사모와 최○○의 작품으로 목사가 되었다.”


- 항간에는 김기동 씨의 사생활이 아들의 성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인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쇼킹한 일로 아들이 영향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사모와도 관계와 원만하지 못했다. 또한 김기동 목사가 아들과 어릴 때부터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심하게 대해서 어릴 때부터 상처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강순 사모도 맞아서 눈이 부어서 시퍼렇게 멍들어 다닌 것을 여러 번 보았다.”


- 김기동 목사의 행실을 직접 본 셈인가?

“거짓말하니까 교인들과 갈등하기도 하고, 대법관으로 있던 분이 성락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갔는데 왜 나갔는지 말하지 않았다. 몇 년을 이야기 하지 않다가 아주 친한 사람이 왜 나갔느냐 물으니까 목사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첫마디가 그 이야기였다고 한다.”


- 장 장로는 김기동 씨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초기부터 알고 있었는가?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누가 그런 소리해도 자기랑 안 맞으니까 하겠지 믿으려고 안했지. 지금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모두 다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도 거짓말로 알고 아직도 안보는 사람이 많다."


“속은 줄 알고 제일 먼저 버린 게 김기동 책”

- 장 장로는 신학적 문제 이전에 개인적인 사생활 이것이 더 충격적이었겠네요.

“그렇죠. 쇼크는 거기서 받았죠.”


-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는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분이 쓴 <내가 체험은 그리스도 신유와 거룩한 이적>이라는 책이 있다. 그게 다 구라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전에는 하나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하늘의 비를 그치게 하고 홍수가 난 깊은 데를 발목만 차게 건넜다는 내용의 부분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두 가지 책을 없애 버렸다. <베뢰아 신서>는 내용 가치가 있어 보여 그냥 두고 <월산 문학>이라고 해서 나온 수상 수필집과 앞에 말한 것은 제일 먼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책의 내용은 보통 사람 평생에 하나나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이적을 수십 개나 자기가 체험했다고 나와 있다.”


- 신학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신도들에게 헌금을 내도록 독려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신도들은 자기 집을 팔아 전세로 갔다가 월세로 가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 않을 만큼 헌금을 열심히 한 것으로 듣고 있다. 어느 정도 헌금을 강요했는가?

“일 년에 한 번씩 헌신하게 한다. 일 년 동안의 모든 자금 계획은 (년초) 다 마친다. 이번에는 얼마를 하고 일 년 동안 생활비 벌어서 내 생활비 얼마를 하고 헌신 얼마 하고 이렇게 맞추면서 거기에 액수가 작년보다 못하면 속상해 하고 조금이라고 더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살았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는 그동안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이 양반이 초창기에 성경대로 잘 가르쳤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지 않는가? 정말 은혜가 되고 성경대로 한다하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폭발적인 교인증가와 우리 부흥이 왔다.

그런데 우리는 고지식해서 그대로 믿는 성격이라 그것을 계속 유지했는데 좀 똑똑한 사람들은 김기동 목사의 설교가 바뀐 것을 느낀 거다. 그래서 많이 이탈자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김성현 목사가 능력 없는 설교를 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조자룡 헌칼 쓰듯이 조금이라도 불평만 하면 다 잘랐다. 정말 다 잘랐다. 국내에 있는 사람이든 외국에 있는 사람이든 막론하고 다 잘랐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 이건 좀 이상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김성현 목사 사촌동생인 비서에게 내가 주일학교 때 가르치고 했으니까 ‘만나자고 전해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교묘하게 피하더라. 안 만난다는 소리가 아니라 바쁘다며 다음에 보자는 식으로 피했다. 그러던 중에 (사태가 벌어져) 김기동 목사 죽을 때까지 다니자 이런 생각을 했다.”


- 헌신을 요구할 때는 명분이 있다. 어떤 명분으로 헌신을 요구했나?

“하늘에 쌓아두라. 제일 큰 게 그거였다. 그 말 듣고 집도 한 채 사지 않았다. 자기는 땅에 진진 나게 쌓아 놓고 자손 대대 몇 대까지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김기동 목사를) 교회 재산 횡령 배임으로 고소한 상태”

- 윤 교수 인터뷰 때 김기동 씨의 재산이 확인된 것은 500억 규모이고 의구심이 있는 것까지 합치면 약 천억 정도 된다고 하던데 재산 환원을 포기하고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어떤 조치를 할 생각인가?

“이미 손을 썼다. 교회 재산 횡령 배임에 대해서 사법절차를 밟고 고소를 한 상태이고 이미 조서를 받았다. 저쪽도 곧 부를 것이다.”


-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장 장로께서 교회 재산 탐했다는 의혹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좀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교회)재산이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고 인감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고, 부동산 업자가 와서 녹음한 것을 보면 한 시간 반을 이야기 한 것이 주로 김기동 목사 흥분할 내용으로 김기동 목사 욕한 게 전부이다. 말을 전하라고 한 이야기다. 그런데 한 시간 이상의 내용을 시리즈로 편집해서 합쳐서 5분 정도 되게 짜깁기 했더라. 불법 녹음해서 넘겨 준 것인데 편집해서 공격한 것이라 아예 원본을 녹음한 사람들에게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예배 시간에 공개해버렸다. 부동산 업자도 저쪽에 이용당해서 흥분하고 고소한다고 변호사까지 알아보고 했던 모양이다.”


- 김기동 씨가 원로감독에서 다시 현 감독으로 복귀한 이유에 대해 김기동 측에서는 애초 김성현 씨에게 물려줄 때 공동목회였다는 문건을 내 놓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동목회라는 단어 들어본 적도 없다. 김성현이 취임할 때부터 공동목회는 없었다. 아마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서 법정에서 도저히 가망이 없으니까 어거지를 쓰고 나온 것이다. 이미 공동목회가 가짜라는 반박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내가 재산을 탐욕했다는 이야기에 대한 녹음 원본을 가지고 있는지도 (김기동 측은) 모른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까 나중에 (개혁 측이) 헌금을 따로 쓰니까 ‘떨어나간 다른 교회다.’ 이 논리로 마지막 전략을 쓰는 것 같다. 다른 교회면 어떻게 부동산을 팔겠는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내가 비자금 천 몇 백 억 만들려고 한다고 소문 퍼뜨리고 있다. 비자금 천억을 만들려면 (교회 재산) 열배 이상 팔아야 나오는 돈인데, 성락교회 다 합쳐서 1조가 안 된다. 급하게 팔면 몇 천 억 밖에 못 받는다. 더구나 종교부지라 가격이 그렇게 쎄지 않다. 내가 그런 걸 추진하는 주장 자체가 바보스런 말이다.”


“김 씨 부자 4년 동안 눈길 마주치지 않아”

- 김기동 씨와 그의 아들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아들이 담임으로 있을 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사이가 좋지 않았는가?

“어느 날 그런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서실에서 나온 이야기다. 둘이 만나지 않는다. 김성현 목사가 김기동 목사를 피해 다닌다.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주고 피해 다닌다. 실제 설교할 때 궁금하잖아요. 거기서 마주치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 마주치는 모습을 매번 눈뜨고 봤어요. 정말 눈길도 마주치지 않더라. 김기동 목사는 김성현 목사를 쳐다보고 들어가고 김성현은 약간 사선으로 눈을 깔고 마이크를 향해서 간다. 거기서 악수도 목례도 안했다. 지 아버지에 대해서. 그런 생활을 한지가 4년 정도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소식 듣고 신경 써서 보고 있는 사람은 그 내용 알고 있다.”


- 성락교회 지성전까지 총 교인이 몇 명인가?

“지금 8천 명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 이것을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분이 교인 수가 1만 5천명이라고 말해서다.

“작년에 전교인 총동원 한 적이 있다. 11월 교회 창립 기념일 때이다. 그 때 총 모인 교인이 8천 몇 백 명이었다. 센터에 총 집결한 인원이었다. 그 뒤로도 이 사태 겪으면서 엄청나게 떨어져 나갔다. 1만 5천명은 부풀려도 너무 나간 숫자이다.


- 그럼 김기동 씨를 지지하는 교인이 몇 명 정도인가?

“정말 맥스로 봐줘도 2천 5백 명이다.”


- 지금 기성교회와 접촉을 해 본적이 있는가?

“그럴 여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자체 개혁도 안 되어 있는 판에 마음은 있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 저번 주에 윤준호 교수가 설교 시간에 한 이야긴데, 신도들이 김기동 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헌금을 했고, 이것에 대해 교회가 어느 정도 보상해야 된다고 했다. 이런 논의들이 개혁 측 지도자들 간에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또 보상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보상할 것인가?

“아직 구체적인 구상은 하지 못했지만 프로그램 만들려고 한다. 상처 받은 전체 교인들에 대한 사과, 교회에서 상처받고 나간 분들에 대한 사과, 김성현 목사에 의해서 쫓겨난 목사님들에게 사과와 동시에 다시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떤가 하는 논의가 오고가고 있다.”


- 분열 전에 나간 목회자 분들은 기성교단으로 가 있는가?

“아니다. 우리가 베뢰아 연합이라는 명칭으로 교단이 형성되어 있다. 많은 베뢰아 출신들의 사역자들이 다른 데로 가기가 힘드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연합에 가입된 경우가 많다. 분열 사태 이후 일부는 찾아오기도 하고 꼭 성공하라고 격려도 한다. 또한 나간 사역자들 중에 한두 명 저쪽에 가 있는 사람도 몇 명 있고 나머지는 개혁 측으로 왔다. 김기동 목사가 나간 사람 전체에게 연락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다. 나간 사람들 중에 내가 알기로 한두 명 정도가 저쪽으로 가고 나머지가 개혁 측으로 왔다.”


“성폭행 피해자 2차 인격 살인하는 교회”

- 김기동 씨의 성 추문과 관련해서 다루는 것이 쉽지가 않다. <교회와신앙>도 18세의 미성년자 청소년을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후에야 인용했을 만큼 다루기가 쉽지 않다. 팩트로 확증되지 않은 단계에서 보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언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A 씨 같은 경우에는 당시 만 17세였다. 그 친구는 완전히 미성년자 일 때 당했는데, 그 뒤로 교회가 하는 행동이 문제가 있다. 문제가 나오면 최소한 그 사람에 대한 2차 인격 살인해서는 안 된다. 일반 사회라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성락교회가 아주 비도덕인 것으로 가기로 한 단체이기 때문에 막 전화를 해서 금전으로도 회유해 보고 본인한테는 직접 못하고 처음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 가족과 그 집안의 형제들에게 금전으로 회유해 보고 공갈도 치고, 그 블로거들 시켜서 가짜, 없는 그들이 한 행동을 블로그에 띄우고 ‘(성추행한 관련자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좇아와서 악수 했다.’ 이런 소문을 퍼뜨렸다. 2차 3차로 인격살인을 한 것이다.”


- 그 배후 조종을 누구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쪽 핵심은 김기동 목사이다. 말하지 않아도 누가 했는지 알 수 있다. 뻔한 수법이다. 윤 교수가 실명이 있는 파일은 김기동 목사에게만 주었는데 해당 당사자가 어떻게 알고 윤 교수를 고발하겠는가? 그런 문건을 가진 자의 소행이라고 밖에 다르게 볼 수 없지 않은가?”


-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또한 거듭났다면 죄를 저질렀을 때 고통스러워한다. 지금의 김기동 씨의 태도는 비성경적이지 않는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성락교회)는 완전히 재물의 왕국이다. 그런 것을 봤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구나 절실히 느꼈다. 저 양반은 지금 모든 설교 말미에, 우리 공격하는 말미에 우리를 교회를 해체시키고 팔아버린다. 그리고 맨 금전적인 이야기, 물질 이야기만 한다. 여러분은 헌금 많이 해야 되고, 이번에는 우리 때문에 매년 하던 헌신을 하지 못했다. 저쪽 떨어져 나갔으니 여러분(남아 있는 교인)들이 두 배로 헌금하라고 한다. 저쪽 사람들은 겨우 견디고 있는데 모든 게 물질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돈을 내라. 코드가 맨날 똑같다.”


-개혁 측이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어떻게 되는가?

“인용이 되면 김기동 목사가 모든 법적인 활동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본안 소송으로 들어간다. 임시대표는 양쪽 합의나 법원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교파의 변호사를 임시대표로 세울 수 있다.”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기동 목사가 경험한 하나님을 베뢰아라고 부른다. 여태까지. 그게 하나님 전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극히 일부를 김기동 목사가 경험한 것이 베뢰아다. 하나님은 그렇게 협소하거나 작으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김기동 목사가 주창한 베뢰아를 더 확대 해석 하고자 한다. 기존 교회와 부딪히는 것은 과감히 정리를 하겠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 너무 제약을 받았다. 김기동 목사 땜에. 심지어는 베뢰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책도 못 보게 했다. 강요된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다른 교회 보다 월등히 앞 선다 자부하고 교만하고 이랬던 것이 있었다. 한 꺼풀 벗고 나서 다른 책들을 보고 다른 목사님들, 요새 인기 있는 목사님을 유튜브 들어가서 많이 보곤 한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신앙생활 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기쁨과 소망이 넘쳐야 하는데 뭔가 눌려 살았다. 항상 돈 많이 내야 한다. 모임에 꼭 출석해야 된다. 예배 시간이 길든 작든 불평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어떤 행동을 하던 무조건 100% 따라야 된다. 이런 패러다임에 갇혀가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신앙생활이 아니고 강요되고 억압받는 그런 신앙생활을 했다. 거기서 탈피하려는 거다. 김기동 목사가 경험한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아니다. 더 큰 하나님, 더 자유로운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다. 지금 개인적인 소견이다.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 교인들 공감한다.

김기동 목사가 강요하는 하나님의 패러다임에 안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다 알고 거기서 한 꺼풀 벗고 나오니까 예배 볼 때, 설교를 들을 때, 찬송을 할 때 정말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동영상을 통해서나 예배 현장에서 그런 것을 목격한다. 저쪽 사람들은 예배보고 나오면 다 인상을 쓰고 나오는데 어쨌든 우리는 웃으면서 예배드리고 끝나고 가지 않고 교인들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 김기동 목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골고루 하는 니골라당의 괴수이다. 거짓의 아비처럼 거짓말 한다. 표리부동의 대표자이다. 물질을 하늘에 쌓아두라 해 놓고 본인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더 이상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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